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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마스터 1(8화)
3. 시작(5)


쨍그랑!
그리고 그 순간 화면이 산산조각으로 깨지는 유리 영상으로 바뀌더니,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걸어 다닐 수 있을 것만 같은 구름.
구름 위에 커다랗게 존재하는 한 개의 태양.
그리고 그 태양에서부터 떨어져 나온 붉은 나뭇잎 하나…….

「이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너는 이것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
「너는 무조건 이것 말고 다른 것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뭇잎이 천천히 떨어짐과 함께 화면에 천천히 떠오르고, 천천히 사라지는 글자들.
현성은 멍하니 그 영상을 쳐다보았다.
나뭇잎은 천천히, 천천히 지상에 있는 호수의 한복판에 떨어져 작은 물결을 일으키면서 떨어졌다.
나뭇잎은 미풍이 부는 방향대로 정처 없이 흔들리면서 호수 위를 계속 떠다니고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쳇바퀴 같은 하루.」
「숨이 콱콱 막히는 현실의 무게.」
「현실에서는 벽에 가로막혀 이룰 수 없던 꿈들.」

그렇게 조용하고 평화롭게 호수 위를 떠다니는 붉은 나뭇잎.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평화로움!
하지만…… 변화가 시작되었다.
강풍이 불어왔고, 나뭇잎은 강풍에 밀려서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리고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과 함께 인간들이 사는 도시가 보이고, 동물들이 뛰노는 숲이 아주 작게 보여 왔다.

「새로운 변화.」
「현실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환상의 세계.」
「또 다른 세상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나뭇잎은 점점 도시 안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들을 데리고 놀아 주는 아버지의 모습.
한 여자에게 청혼을 하고 있는 기사의 모습.
꽃을 팔고 있는 소녀와 그 소녀를 약간 떨어진 곳에서 훔쳐보면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러브레터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소년.

「현실과 같지만 현실이 아닌 곳.」
「당신의 진실한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세상.」
「당신을 반겨 주는 세상.」

나뭇잎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또 다른 것들을 보여 주겠다는 듯이, 바람에 휘말리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목수.
열정적인 얼굴로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
사람들에게 크게 소리치면서 물건을 팔고자 하는 상인.

「당신의 노력, 끈기, 성실, 의지…….」
「불가능하다고 했던 모든 일들…….」
「당신의 꿈은 실현될 수 있습니다.」

바람에 휘말리며 날아가던 나뭇잎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팔랑거리면서 땅에 떨어지고, 붉은 나뭇잎은 거리에 돌아다니는 다른 나뭇잎에 휩쓸린 채 하늘로 솟구쳐서 사라졌다.

「또 다른 삶. Another Life.」

쨍그랑!
마지막 문구가 연기처럼 흩어짐과 함께 다시 유리 깨는 소리와 함께 TV 화면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현성은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TV 화면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포기했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공간.
노력을 배반하지 않는 세상.
자신이 꿈꿔 왔던 이상을 그릴 수 있는 곳!
마음에 너무나도 절실하게 와 닿는 말이 아닌가!
세상은 철저하게 불공평했다.
사회는 철저하게 약자를 착취하는 구조였다.
사람은 사회에 살면서 점점 냉혹하게 평가되어진다.
초등학교 때는 천재 소리를 듣는다.
무엇을 해도 똘똘해 보이는 때.
거기다가 가진 재능 전부가 드러나는 시점이다.
중학교 때는 영재 소리를 듣는다.
현실을 알아 가는 나이.
하지만 현실을 알았다고 해서 가진 바 재능이 다 사라지지는 않는다.
꿈도 있고, 야망도 있는 시점.
고등학교 때는 철저하게 성적으로 구분 지어진다.
성적이 좋으면 수재.
성적이 나쁘면 바보.
단지 그뿐이다.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성적을 가진 이들은 전부 패배자가 되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을 가진 이들은 전부 승리자가 된다. 그리고 그 승리자 중에서도 서열이 정해지고, 승리자들 중에서도 패배자가 있고 승리자가 생긴다.
오로지 단 하나의 기준으로써 평가되는 시점.
꿈과 야망 따위는 현실에 파묻혀 버린다.
현실에 완전히 꺾여서 무기력하게 변해 버린다.
그리고…… 대부분이 예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과거 초등학교 때 자신이 썼던 장래희망 같은 것을 보아야 겨우겨우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초등학교 때에는 대통령, 우주비행사, 사장 등…… 멋있어 보이는 것들을 꿈으로 삼고는 자신이 그 직업이 된 것을 상상하면서 즐거워했으나, 고등학교 때에는 당장 대학에 들어갈 것을 걱정하고, 취직할 것을 걱정한다.
현실을 이렇듯, 사람들의 꿈을 짓밟아 버린다.
현실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꿈들을 짓밟아 버린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어렸을 때 품은 꿈들을 전부 포기해 버린다.
어렸을 때 품었던 꿈들.
너무나도 큰 꿈이기에 노력을 하더라도 헛수고.
결국 모두…… 노력을 해도 돌아오지 않는 대가에 좌절하면서 꿈을 포기해 버린다.
꿈?
현실에서는 너무나 동떨어진 단어다.
오죽하면 사람들 대부분이 현실의 반대말이 꿈이라고 생각할까?
현실에서는 이상을 이룰 수 없다.
이상을 이루고자 한다면 현실에서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현실에 타협해 가면서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뿐이다!
차디찬 현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운 현실!
인간의 악의가 가득 차 있는 세상!
하지만…… 그 무서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 생겼다.
틀어박혀서 게임을 할 수 있는 방 안이 아니다.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는 잠도 아니다.
노력을 해도 배반을 하지 않는 세상.
꿈을 이루고 싶으면 노력을 하고, 노력을 하면 꿈이 이루어진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그리면 그것이 그대로 그려진다.
새로운 현실…….
“Another Life…….”
현성은 지금까지 자신이 가상현실 게임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상현실 게임은 그냥 게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래픽만 좋은 그냥 게임도 아니었다.
이름 그대로의 의미.
어나더 라이프(Another Life).
또 다른 현실인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현실.
다시 한 번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그저 그냥 게임이라고만 생각했었던 가상현실 게임.
그저 막연히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해 보고 싶었던 게임.
하지만…… 방금 그 광고를 보고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게임이 아니라, 꿈을 이룰 수 있는 또 다른 현실.
두근두근―
가슴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서 경험해 보고 싶다고, 어서 겪어 보고 싶다고.
‘이런 것을 설레임이라고 부르던가?’
수십 년 전에 유행했던 아이스크림의 이름이 아닌, 무언가를 갈망하는 감각!
살아오면서 손에 꼽을 정도로 느꼈었던 감각이 지금 현성의 온몸에 맴돌고 있었다.
딩동!
어나더 라이프 홍보 영상을 보고 두근거리고 있는 현성의 귀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리가 들렸다.
철컥!
비호같이 달려서 문을 여는 현성.
그리고 현성이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활기찬 얼굴로 말하는 두 남자.
“안녕하세요. 어나더 라이프에서 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부활한 현성!
현성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남자에게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캡슐은 어디 있나요?”
갑자기 확 변하는 현성의 태도에 두 남자는 약간 황당해하면서 자신들의 뒤에 있는 상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현성은 그것을 보고는 다시 한 번 두 눈을 빛내면서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설치해 주십시오! 어서!”
어서 설치를 하지 않으면 네놈들의 몸뚱이를 뜯어먹어 버리겠노라고 말하는 듯한 현성의 눈!
현성의 눈을 본 두 남자는 흠칫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시선을 교차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자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최대한 빨리 설치하자!’
게임을 빨리 하고 싶다는 욕망에 그들을 계속 보고 있는 현성!
접속기를 설치하러 온 직원들에게 그런 현성의 눈빛은 먹이를 노리고 있는 살쾡이와 전혀 다를 게 없었다.
가장 위험한 부류.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어서, 게임이 언제 오나―게임이 언제 설치되나―이런 생각밖에 못하고 있는 사람이 가장 위험했다.
배달 시간이 늦으면 그것 때문에 툴툴대고, 설치를 하는 과정에서 실수 같은 것이 일어나면 그것 때문에 또 툴툴댄다. 서비스업종에서 고객에게서 불만이 나온다는 것은 곧 모가지를 내놓는다는 말과 같았다.
저런 사람 앞에서 완벽함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저쪽 방에 설치해 주십시오.”
현성은 자신의 방을 가리키면서 직원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직원들은 서로 다시 한 번 눈으로 대화를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현성의 방으로 들어가서 순식간에 설치를 시작했다.
찌이익!
상자를 밀봉하고 있던 테이프를 떼고, 상자를 아예 뜯어 버렸다. 칼로 찢어 버린 것이 아니라, 손으로!
상자 안에 있는 스티로폼부터 제거하고 가상현실 게임 접속기와 각종 선들을 조심조심 꺼내 들고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설치를 시작했다.
코드를 커다란 캡슐에 꽂고, 그 코드들을 방 안에 가장 적합해 보이는 곳으로 배치해 놓는다.
굵은 것은 책상의 아래를 통과하도록 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도록 한 다음 발에 걸리지 않도록 벽 쪽에 테이프를 이용해서 선을 고정시켜 놓았다. 작은 선들은 역시 침대 아래, 책꽂이 뒤 등을 이용해서 보이지 않게 했다.
그리고…… 콘센트를 꽂고, 가상현실 게임 접속기를 뒤덮고 있는 비닐을 벗겼다.
“설치 끝났습니다.”
설치가 끝나자마자 웃으면서 말하는 두 직원!
현성은 그런 그들을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현성은 속으로 가상현실 게임 접속기가 몇 분 만에 설치되는지 세고 있었다. 게임을 하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으로 1초에 숫자 하나씩. 그렇게 200을 막 세려고 할 때, 직원들이 다가와서 설치가 다 끝났다고 말한 것이다!
약 3분!
컵라면이 다 끓을 시간에 설치가 전부 끝나 버린 것이다!
“게임 이용 방법은 간단합니다. 일단 캡슐에 들어가시면 약 1분 동안 들어가 있는 사람의 몸을 스캔하고, 그 다음 홍채를 인식합니다. 그 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만들겠냐는 말이 나오는데, 그때 아이디를 만들면 됩니다. 그 후 게임에 접속될 겁니다.”
직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는 현성에게 재빨리 기계의 사용법을 설명해 주고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집을 빠져나갔다.
“대단한 인간들…….”
현성은 그 두 명이 나간 문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철컥.
하지만 놀라운 건 놀라운 것이고, 이제 중요한 것은 게임이다.
현관문을 걸어 잠근 현성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 광채를 발하고 있는 둥근 캡슐 형태의 가상현실 게임 접속기!
광채에 눈이 부실 지경.
거룩하도다. 거룩하도다.
현성은 감격 어린 얼굴로 캡슐을 끌어안고 중얼거렸다.
“드디어 가상현실 게임을 하는구나…….”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캡슐을 아기를 쓰다듬듯이 매만지고 있는 현성.
누가 보면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미친놈이라면서 욕을 할 광경이었다.
현성은 그렇게 미친 짓을 한동안 하다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이제 이건 내거다.”
이제 현성은 가상현실 게임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