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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마스터 1(9화)
3. 시작(6)


만약의 경우에 혜은이 화를 내면서 현성에게 이것을 환불하라고 소리친다고 할지라도 어나더 라이프는 타당한 이유가 아닌 것을 대면서 환불 요청을 할 시에 웬만하면 거부를 한다.
일단은 캡슐이 누구든지 이용자를 한 번 인식하고 나면 그 사람에게 가장 최적화된 형태로 변하기 때문에 상품으로 판매하기가 힘들어진다.
예를 들자면 A라는 사람이 캡슐을 처음 사서 이용했다고 한다면 A라는 사람에게 가장 최적화된 형태로 캡슐이 설정된다. A라는 사람의 홍채와 A라는 사람이 접속할 시 가장 빠른 속도로 게임에 접속할 수 있도록 설정되는 것이다. 그렇게 기본 베이스가 그 사람에게 맞춰지고, 그 기본 베이스는 웬만하면 바꾸기 힘들도록 되어 있다.
기계가 안 좋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기계가 너무 좋아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데, 쉽게 말하자면…… 자동 로그인의 원리라고 할 수 있겠다. 한번 로그인 한 곳에 계속 로그인이 되게 만들어서 조금 더 빠르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원리.
거기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은 제헌이 쓰던 것이라 현성의 몸에 맞춤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환불이 되는 것도 아니다. 3년 동안 쓰던 중고를 어떻게 환불하겠는가? 거기다가…… 현성은 이것을 절대로 제헌에게 샀다고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럼 분명히 혜은은 이것을 판매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니 반품도 못할 테지.
현성은 씨익 웃으면서 캡슐의 뚜껑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구 보급형 모델은 가상현실 게임 접속기능밖에 없는 모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이냐? 그렇지 않다.
애초에 이 캡슐의 설계가 사람이 누워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근육이 뭉친다거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웬만한 침대보다 좋은 구조인 것이다. 거기다가 사용자가 게임을 하다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위험을 감지해서 게임 접속을 끊어 버리고 자동으로 119에 연락이 되게 하는 시스템은 모든 접속기에 기본적으로 들어 있으니, 구형에다가 보급형 모델이라고는 하지만 나쁜 것은 아니다.
현성은 천천히, 천천히 캡슐의 뚜껑을 닫았다.
지이잉―
현성이 캡슐을 닫자마자 안내음이 들리면서 캡슐 내부에 밝은 빛이 켜졌다.
[스캔을 시작합니다. 시간은 약 1분 정도 소요됩니다.]
현성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중얼거렸다.
“1분 후면 이제 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건가. 또 다른 현실이라고 불리는 가상현실 게임을…….”
그렇게 지이잉 기계 소리와 밝은 빛이 한동안 현성의 눈과 귀를 괴롭히다가 사라졌고, 그 직후 현성의 얼굴부분에 붉은 빛이 쏘아지면서 안내음이 울렸다.
[홍채 인식을 시작합니다. 1%…… 34%…… 89%…… 100%. 홍채 인식이 완료되셨습니다. 서버에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이디를 새로 만드시겠습니까?]
“당연히 만들어야지.”
[아이디는 한 사람당 3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중복되는 아이디 역시 사용 가능합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는 중복된 이름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용하실 아이디를 말씀해 주십시오. 홍채 인식으로 사용자를 판별하기 때문에 비밀번호는 말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현성은 안내음을 듣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소리쳤다.
“블랙스타!”
자신의 이름인 현성을 영어로 풀이한 이름.
검을 현(玄), 별 성(星).
블랙스타(Black Star).
[아이디를 ‘블랙스타’로 설정하셨습니다. 맞으십니까?]
“어!”
현성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어서 게임을 해야 하는데 기계는 뜸을 들이고 있다!
[게임에 접속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마지막 안내음과 함께 현성의 시야가 검게 변해 갔다.



4. 접속(1)


[새로운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온통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스함이 담겨 있는 여성의 목소리. 하지만 젊은 여인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대략 40, 50대 정도 되는 여자의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도 편안함을 주는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가 나오고 몇 초 후 검은 공간은 새하얀 섬광으로 뒤덮였다.
“읏!”
섬광으로 뒤덮인 자리에 나온 것.
그것은 거울이었다.
길이가 4m, 폭 2m의 거대한 거울.
그 거울에는 현성의 모습이 비춰져 있었다.
키 172cm.
평범한 얼굴.
이마 중간까지 오는 앞머리와 목덜미까지 간신히 닿을 정도의 길이의 뒷머리.
[얼굴과 키는 원판의 30% 이상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것을 멍하니 보고 있는 현성의 귀에 안내음이 들려왔다.
‘30%……라.’
현성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거울을 쳐다보았다.
30%.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바꿀 수 있으리라.
“눈을 좀 선량해 보이도록 만들어 주십시오.”
그 말을 꺼내자마자 현성의 약간 날카로워 보였던 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눈 하나만을 바꾸자 순박해 보이는 인상으로 바로 탈바꿈되어 버린 것이다.
시골에서 인심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농촌 총각 같은 얼굴!
현성은 그 모습을 보고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음. 좋습니다.”
[게임에서의 외모를 현재 이 외모로 설정하시겠습니까?]
“네.”
현성은 만족한 듯 웃으면서 안내음에 답했다.
[기본 싱크로율을 설정하십시오. 10%에서부터 70%까지 설정이 가능합니다. 싱크로율이란 감각을 느끼는 수치를 말하는 것으로써 싱크로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현실에서의 감각과 흡사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싱크로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게임에서 얻는 고통 역시 커지게 됩니…….]
“10%!”
현성은 단호하게 소리쳤다.
‘내가 미쳤다고 게임을 하는데 고통을 느껴?!’
10%에서부터 70%까지 설정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10%를 하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현성은 예전부터 어나더 라이프 홈페이지를 보면서 싱크로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얻는 장점에 대해서 많이 봐 왔다. 무투가가 현실에서의 실력을 거의 고스란히 가져올 수 있다는 것부터 음식의 맛이라든가 향수의 향을 느끼기는 싱크로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느니…….
하지만 현성의 입장에서는 그런 짓거리를 하는 놈들은 미친놈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게임 판타지에서 나오는 높은 싱크로율로 이득을 보는 사람? 화살이 날아오든 검을 맞든 불굴의 의지로 고통을 참고 활동을 하는 사람?
개소리다!
그런 게 있을 턱이 있나!
종이에 베이는 것조차 아픈데, 어나더 라이프에서는 불덩이가 날아다니고, 얼음덩이가 날아다니고, 칼침을 맞고, 창에 찔리고…… 이런 것은 기본이다.
얼마나 아프겠는가!
최대 70%?
말로는 쉽다.
하지만 칼에 찔리면 칼에 찔리는 고통이 느껴지고, 불에 그슬리면 뜨거운 느낌이 난다. 차가운 계곡물에 빠지면 차가운 느낌이 난다. 현실보다 좀 덜 느낀다고는 해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뭐 질식, 화상 같은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아무리 게임을 하는 데 더 편해진다고 할지라도 아픈 건 절대 질색이었다.
[싱크로율 10%로 설정하시겠습니까?]
“네!”
현성은 안내음에 크게 답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몸 전체에 퍼지는 몽롱한 기분.
[싱크로율 10%를 설정하셨습니다. 가수면 상태로 설정이 됩니다. 현실의 몸은 잠을 자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에 놓입니다.]
“흐음…….”
현성은 안내음을 듣자마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싱크로율 10%.
현실의 몸이 잠을 자는 것과 같은 것으로 설정이 된다면, 이 말인즉슨 게임을 할 때는 거의 꿈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움직일 수는 있지만 감각은 그다지 없고, 보고 만지고 먹을 수는 있지만 느낌도 그다지 나지 않는, 거의 꿈과 같은 상태.
게임을 하면서 잠도 잔다!
일석이조가 아닌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현성의 귀에 다시 안내음이 들려왔다.
[성향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이것은 게임 내의 캐릭터의 성향을 결정짓는 것으로써 성향에 따라 이동되는 나라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직후 현성의 앞에 볼펜과 종이가 나타났다.

1. 어두운 숲 속에 당신 홀로 걷고 있습니다. 적막하게 숲 속을 걷고 있던 당신의 눈앞에 저 멀리에 신전이 하나 보여 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신의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당신의 뒤에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제한 시간 : 지문을 다 읽은 후 3초.]
① 나뭇잎
② 개
③ 이성(남자 혹은 여자)
④ 귀신
⑤ 들짐승

성향 테스트라기보다는 심리 테스트에 가까운 문제.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3번을 선택했다.

2. 공원에서 아이가 빙판 위에서 놀다가 빙판이 깨져서 호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어서 구하지 않으면 아이가 사망할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제한 시간 : 지문을 다 읽은 후 3초.]
-전제조건 : 당신은 수영을 할 수 있습니다.
① 호수에 뛰어들어서 구출한다.
② 밧줄이나 밧줄 대용으로 쓸 것을 던져서 잡으라고 한다.
③ 119에 연락한 후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아이를 구하라고 한다.
④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서 아이가 물에 빠졌다고 한다.
⑤ 누군가 조치를 취할 것을 믿고 가만히 있는다.

‘……?’
당연한 물음이 아닌가.
도덕책에서나 나올 법한 희한한 문제.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3번을 선택했다.

3. 아파트 옆집에 늙은 할머니가…….

전부 희한한 문제였다.
무슨 옆집 할머니가 위험에 처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박물관에서 소름 끼치는 그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집 앞에 도착했지만 박물관에서 본 소름 끼치는 그림을 보았을 때와 같은 느낌이 났을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리 테스트 같았다.
현성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10번까지 전부 풀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10번까지 다 풀고 나자 현성의 손에 들린 볼펜은 은빛 가루가 되어서 사라져 버렸고, 안내음이 울렸다.
[성향 테스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블랙스타 님의 성향은 악(惡)입니다. 성향 테스트의 결과에 따라 어둠 속성의 나라인 프레인 왕국을 시작 지점으로 설정합니다.]
“뭐?! 악?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현성은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내질렀다.
단 하나도 악하게 보일 법한 문항을 찍은 적이 없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프레인 왕국에 있는 초보자 마을로 이동시켜 드리겠습니다. 블랙스타 님,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현성의 외침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안내음.
이윽고 현성의 몸은 밝은 빛에 휩싸인 채 사라져 갔다.
“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현성은 분개하면서 소리쳤으나 결국 말을 전부 잇지 못했다.
눈에서 섬광으로 인한 하얀 잔상이 사라지고 눈에 보이는 것.
밝은 빛이 걷히면서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등의 색들이 서서히 블랙스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윽고 밝은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완전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초록색 잎사귀가 잔뜩 있는 나무.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
바닥에 깔려 있는 돌.
짹짹거리면서 나는 새들.
활기차게 움직이는 사람들.
블랙스타는 아까 자신이 ‘악(惡)’이라는 평가 때문에 느꼈던 분노조차 잊은 채 멍하니 주변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난 후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안 아프다.
‘아…… 싱크로율 10%였지.’
블랙스타는 멍하니 계속 주변을 둘러보다가, 감격에 찬 듯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쳤다.
“이게 가상현실이구나!”
푹!
그리고 그 말을 내뱉고 정확히 3초 만에 블랙스타의 시야가 검게 변하고, 블랙스타의 귀에 안내음이 들렸다.
[사망하셨습니다. 레벨 10 이하의 초보자에게는 사망 패널티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단, 10번 사망할 시 사망 패널티가 적용되게 됩니다. [남은 횟수 : 9]]
그리고 다시 한 번 밝은 섬광과 안내음이 블랙스타의 눈과 귀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이윽고…… 다시 한 번 밝은 섬광의 잔상이 사라지고 다시 아까 보았던 풍경이 블랙스타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