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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마스터 1(13화)
5. 전직(2)


“……뭐지…….”
경비병은 아까 자신이 했던 기이한 행동을 생각하면서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블랙스타는 경비병이 뒤에서 뭐라고 중얼거리든 말든 경비병이 알려 준 건물을 향해서 계속 걸어갔다.
얼마만큼 걸어갔을까, 블랙스타의 눈앞에 낡아 보이는 건물 하나가 들어왔다.
“더럽게 낡았네.”
블랙스타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건물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갈색의 목조 건물.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만 같다.
후우 하고 살짝 불면 저 멀리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집.
“그다지 좋지 않은 느낌이 나는데…….”
블랙스타는 뭔가 건물을 보면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무언가 좋지 않은, 한자로 표현하면 사이한 기운이 잔뜩 풍기는 건물.
들어가기가 꺼려진다.
하지만…… 들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철컥.
삐꺼억…….
“안녕하십니까.”
블랙스타는 결심을 굳히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온통 보이는 것은 어둠.
‘분명 게임 내에서는 한낮인데……?’
블랙스타는 더 하우스라는 공포 플래쉬 게임을 떠올리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완벽한 어둠.
정말로 완벽한 어둠이다.
웬만한 공포영화에서 등장하는 어두운 집 같은 것과는 비교가 되지를 않는다.
저건 정말로 완벽한 어둠인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
끼이익―
블랙스타가 긴장하고 있을 때 열린 문이 저절로 삐꺽대는 소리와 함께 닫혔고, 이윽고 건물 안은 정말 칠흑과 같은 어둠으로 바뀌었다.
“전직하러 오셨습니까?”
하아…….
“억!”
그렇게 초긴장 상태인 블랙스타는 귓가에 숨결과 함께 사람 목소리가 들리자 기겁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전직하러 오셨습니까?”
하지만 블랙스타가 놀라든 말든 할 말만 하는 남자.
“네? 네…….”
블랙스타의 작아지는 목소리.
블랙스타가 대답하자마자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
“문과입니까, 이과입니까?”
“문관데요.”
“외국어는 영어만?”
“네? 네.”
블랙스타는 아까의 놀람 때문에 넋이 나간 채로 조용히 대답했다.
쾅!
“으아아아악!”
그리고 그 대답을 하자마자 바닥이 사라지면서 중력의 법칙을 받아서 떨어지게 되었다.

***

“오빠! 캡슐 어디 있어?! 오빠가 예전에 쓰던 캡슐 어디 있냐고!”
현성이 감격 어린 첫 가상현실 게임을 접하고 있을 때, 으리으리한 대저택에서는 잘생긴 남자와 귀여운 여자아이는 말싸움이 한창이었다.
제헌과 민의 전투!
제헌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면서 외국인이 모르겠다는 뜻으로 ‘으흥?’이라는 말과 함께 쓰는 제스처를 연발하면서 똑같은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고, 민은 손에 들고 있는 수학의 정석으로 눈앞에 있는 남자, 오빠를 찍어 버릴까 말까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면서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오빠가 약속했잖아! 새로운 캡슐 얻으면 전에 쓰던 캡슐 나 준다고!”
민은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고인 채 제헌에게 억울하다는 듯 크게 소리쳤고, 그런 동생에게 약간의 동정심이라도 드는 듯 제헌은 약간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어쩌겠냐. 내 절친한 친구, 현성이가 가상현실 게임을 너무나도 하고 싶어하길래 싸게 줘 버린 것을. 너도 알지 않냐. 나 김제헌 하면 딱 떠오르는 베프(BF=Best Friend) 박현성을 말이야. 그 녀석은 내 소중한 친구다. 그 녀석이 너무 딱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애가 수능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을 텐데 그건 치유해야 하지 않겠니? 너는 그냥 그저 팔자려니 하고 수능공부나 열심히 해라. 중3이 무슨 게임질이야. 공부나 하지.”
“이……이이익! 개 같은 오빠 새끼야!”
휘익!
결국 여자아이는 남자의 말에 분을 참지 못하고 수학의 정석을 스핀까지 걸어서 집어던졌다.
하지만 오빠는 우습다는 듯 가볍게 피하고는 피식 웃음을 흘리면서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여자아이는 자신의 혼신의 공격이 빗나가자 분한지 크게 소리쳤다.
“이 개 같은 오빠 새끼야! 그거 나 준다며! 새로 캡슐 사고 막 자랑하면서! 그렇게 자랑하면서 쓰던 거 준다면서!”
마치 초등학생이 앙탈을 부리는 듯한 모습.
주저앉아서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소리치는 모습이 불쌍하다 못해 짜증까지 유발했다. 하지만 오빠는 그런 여동생을 보고도 아무런 불쌍한 감정이 들지 않는지 그냥 피식 웃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놈, 게임하는 게 게임하는 게 아닐걸?”
제헌의 나지막한 중얼거림.
하지만 그 말에는 뼈가 담겨 있었다.
현성의 성격상 분명히 성향 테스트에서 악(惡)으로 걸릴 것이다.
그리고 이동되는 초보자 마을은 프레인 왕국 혹은 암흑 제국 둘 중 하나. 하지만 암흑 제국은 거의 로또급 확률로 걸리는 것이니, 평소에 행운이라는 것이 0을 넘어서서 -로 치닫고 있을 정도로 운빨이 더럽게 없는 현성의 경우에는 분명히 프레인 왕국이 걸릴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 출현해도 될 정도로 운이 없는 놈이 바로 현성이었으니까.
프레인 왕국에 걸리면?
게임 끝.
초보자 PK단이 자리 잡고 있는 그 빌어먹을 왕국에 걸리면 일단 정상적으로 게임을 할 생각은 갖다 버리는 것이 좋다.
그 녀석들은 일단 신규 유저라고 생각되면 무조건 공격하고 보는 녀석들.
최소한 현성은 그 녀석들한테 3번 정도 사망을 한 다음에 게임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하고는 못 사는 현성의 성격으로 보아하니 분명히 그 녀석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현성이 할 만한 직업은 살인자 계열의 직업일 것이다. 집요하게 복수를 하는 현성이 녀석은 분명히 살인자 상태에서 한 번 죽이고, 그다음 그 녀석들이 일반 상태일 때도 죽이고……. 그렇게 자신이 겪었던 그 짜증을 그대로 겪게 하려고 무한 PK를 할 것이다.
현실에서도 사악함이 극에 달해 있는 녀석이었는데, 가상현실이라면…… 뭐 뻔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성이 할 만한 직업은?
동서남북 전부에서 대기를 타면서 신규 유저가 지나가면 기습질을 하는 초보자 PK단이 있는데 어떻게 몬스터 사냥을 할까? 그게 아니라고 해도 초보자들을 죽이면서 레벨업을 할 수는 없다.
레벨 1에서 레벨 10까지 초보자들을 죽여서 레벨업을 하려면 수백 명을 죽인 엄청난 살인마여야 하는데, PK 랭킹 1위인 검은학살자와 PK 랭킹 2위인 레스 이후에 그런 전설을 이룩한 놈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렇다고 흑마법사도 불가능.
흑마법사는 레벨 제한이 없지만 혼자서 전직 퀘스트를 수행하려면 적어도 레벨 15에다가 평균 이상의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전직 퀘스트를 절대로 수행할 수 없다.
물론 예외는 있다. 현실에서도 엄청난 무술의 고수이거나 알고 보니 판타지 세계에서 차원이동해서 온 마법사 출신 인간이라면 레벨 1때 전직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어나더 라이프에서는 공격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최대한 흡사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전투 센스도 많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현성은 싸움도 못하는 놈이었고, 차원이동은 소설 안에서만 등장하는 경우이니까 현실은 시궁창. 그러므로 패스.
레벨 제한이 10 이상인 것들과 흑마법사는 제외.
연금술사도 레벨업을 해서 스텟 포인트를 올려야 전직을 할 수 있다. 레벨업을 해서 스텟 포인트를 올리지 않는다면 현질을 해서 스텟 포인트를 올려 주는 아이템을 착용해야 하는데, 현성의 성격상 절대 현질을 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길을 가다가 엄청 좋은 아이템을 주워서 그것을 착용했더니 바로 연금술사로 전직이 가능할 정도로 능력치를 올려 주더라, 라는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날 리도 없었고.
그러므로 제외.
그렇다면 남는 건 단 하나.
탐구자뿐이다.
극악의 직업 탐구자.
공부로 싸우는 직업.
하지만 수능 공부를 나름 열심히 했고, 의외로 노력파인 현성이라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 직업……이긴 하지만.
마법은 쓸 수 있지만 마법사보다 약하고.
근접 공격 스킬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근접 공격 직업보다 약하고.
버프는 있으나 마나.
활 같은 것은 아예 쓰지도 못하고.
진정한 의미의 잡캐!
“흐흐흐흐…….”
제헌이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현성의 웃음과 비교해도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은 사악함이 잔뜩 묻어 있는 웃음!
역시 끼리끼리 논다는 말은 맞는 말이었다!
옛사람들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현성만큼 사악하지는 않지만 제헌도 상당히 사악한 녀석이었다.
원래는 착한 녀석이었지만 현성에게 물들어서 사악하게 된 케이스.
오랫동안 현성의 곁에 있으면서 진정한 사악함이 무엇인지 깨달으며 살아왔다.
현성의 곁에서는 사악함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악한 포스를 풀풀 풍겼다.
그리고…… 그 사악함은 가족에게는 최대가 된다.
“뭘 그렇게 음침하게 웃어?! 뭘 잘했다고!”
휘잉―!
공기를 가르는 발차기!
스치기만 해도 뼈와 살이 분리될 것만 같은 엄청난 소리!
하지만 제헌은 눈을 감고 살짝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그 발차기를 피해 버렸다.
휘잉―!
다시 한 번 날아오는 민의 발차기.
하지만 역시 제헌은 가볍게 그것을 피해 버렸다.
“피하지 마!”
휘잉―! 휘잉―!
발차기를 날린 다음에 책으로 휘두르는 연속 공격!
그러나 제헌은 그것 역시 가볍게 피해 버렸다.
“본좌는 관대하다. 너에게 네 번의 기회를 주지. 네 번의 공격 중 단 한 번이라도 내 몸에 스치는 공격이 있다면 너의 승리다.”
거기다가 피하면서 농담까지 날리는 여유까지.
“맞아! 맞으라고! 친구 앞에서는 그렇게 내숭을 떨더니 왜 나한텐 안 그래?!”
휘잉―!
휘잉―! 휘잉―!
왼쪽으로 발차기를 하는 척하다가 오른쪽으로 발차기를 날리고 책을 횡으로 한 번 휘두른 다음에 4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책을 휘두르는 공격!
페이크과 적절하게 섞여 있는 연속공격.
하지만 역시 제헌은 가볍게 피해 버렸다.
“동생아. 잘 있어라!”
그리고 슬슬 불리해진다 싶으니까 바로 등을 돌리고 뛰는 비겁함!
“야 이 오빠 새끼야!”
현성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아 보인다.
역시 친구 사이…….

***

“여기가, 여기가 어디야! 으아아악!”
제헌이 현실에서 중얼거린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현성, 아니 블랙스타는 머리를 감싸 쥐며 미친 듯이 절규했다.

―in서울이 아니라면 너의 미래는 없다!
―나 여기서 공부에 뼈를 묻으리라!
―대한민국 주입식 교육 만세!

블랙스타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피로 쓴 현수막들!
그리고 그곳에 쓰인 글자들은 전부 소름이 끼치는 문구들이었다!
블랙스타는 미칠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주변 벽들과 바닥, 천장까지 전부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았다.

―살려 주세요…….
―나 나가고 싶어……!
―이곳에서 나가고 싶을 뿐이고!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엄마∼!
―내 이곳에서 나간다면 더러운 운영자들부터 조지리라!

아니나 다를까, 벽면, 천장, 바닥, 구석구석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피로 쓴 글자들. 글씨체가 제각기 다른 것을 보아 전부 다른 사람이 쓴 것이다.
“여기가 어디야! 여기가 어디냐고! 아아아악!”

―Hello, student. Welcome to hell.

머리를 감싸 쥐고 미칠 듯이 소리치는 블랙스타.
그의 바로 위에는 큼지막하게 피로 글씨가 쓰여 있었다.
공포물, 그 자체!
이것이 공포물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 공포물이란 말인가!
B급?
A급?
아니다. 그딴 조잡한 공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공포.
대한민국의 학생의 고3 시절 트라우마를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공포!
그렇게 절규하는 블랙스타의 귀에 안내음이 들려왔다.
[‘필통’을 획득하셨습니다.]
[‘공부의 길’을 획득하셨습니다.]
[‘랜덤 과자상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학생증’을 획득하셨습니다.]
연달아서 울리는 안내음은 블랙스타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