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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마스터 1(23화)
8. 이동(3)
<낡은 나무막대기>
레벨 제한 : 4
종류 : 무기
물리 공격력 : 10
마법 공격력 : 40
설명 : 낡아빠진 길쭉한 나무막대기다. 오랜 세월 동안 햇빛과 달빛을 받음으로써 약간의 마력을 띠게 된 것 같다.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 아이템. 사람들은 이런 아이템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잡템.
쓸데없는 아이템!
그냥 상점에 갖다 팔거나 인벤토리가 아깝다면 그냥 땅바닥에 버리는 아이템인 것이다.
하지만 블랙스타로써는 상당히 쓸 만한 아이템이다. 현재 블랙스타의 레벨은 7.
블랙스타가 가지고 있는 책의 마법 공격력은 레벨×6으로 되어 있다. 즉, 7×6.
마법 데미지는 42.
레벨이 낮은 무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격력은 떨어진다. 블랙스타가 현재 끼고 있는 무기가 공격력이 낮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팡이는 블랙스타가 끼고 있는 무기보다 공격력이 낮았으니까.
하지만 이 무기는 블랙스타에겐 귀한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한 번 쓰고 버릴 보물밖에 되지 않지만.
“직업 제한이 없네……. 흐흐흐흐…….”
블랙스타는 음침하게 웃었다.
그렇다.
레벨 10 이상의 무기들은 대부분 직업 제한이라는 것이 붙어 있다.
검, 단검, 플레일, 해머 등등의 근접 무기 같은 경우에는 직업 제한이 없는 것도 꽤 많기는 한데 마법 무기나 장거리 무기 같은 경우에는 거의 99.9% 직업 제한이 붙어 있다.
하지만 레벨 제한이 붙어 있지 않은 마법 무기라면?
사람들은 대부분 마법 무기를 들고 다니면서 마법을 쓰는 사람을 마법사 계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마법사가 아니면 스태프를 들고 다닐 직업은 성직자 계열 직업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 스태프를 들고 다니면서 파티에 끼고, 마법을 쓰고 다닌다면?
당연히 마법사로 여길 것이 아닌가!
파티에 가입할 때 비공개 모드로 해 놓는다면 직업, 레벨, 아이디가 공개되지 않는다.
게임 초창기 때에는 특이한 클래스라든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비공개로 설정을 했지만 요즈음은 사냥을 할 때 비공개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별히 뭐 친분을 쌓을 것도 아닌데 왜 아이디를 공개해야 함?’, ‘혹시 파티에서 뒤치기 당할지도 모르는데 내 레벨을 왜 공개해야 함? 레벨이 다른 사람보다 낮거나 높으면 내가 1타가 될 거 아님?’ 등등의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주로 비공개로 한다.
물론 머더러가 아니냐 의심도 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NPC들에게 찾아가서 피 냄새가 나지 않는 걸로 자신이 머더러가 아님을 증명하면 되니까 그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일부러 파티 정보를 비공개로 설정해 놓는 사람을 보면 의심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게 바로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직업 스킬이라면 어떨까?
직업 스킬 중에 파티 설정이 무조건 비공개로 되는 스킬이 있다면 비공개로 설정을 하고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있다.
그 말인즉, 파티 설정을 일부러 비공개로 설정한 사람보다 덜 경계한다는 소리다. 직업 역시 비공개가 되니까 지팡이를 하나 들고 복습으로 저장해 놓은 마법들을 열심히 사용하면서, 그리고 주문을 외우는 척하면서 문제를 풀어서 마법을 사용한다면 마법사로 인식되리라.
마법은 주문을 대충 지어 내서 하면 그만이다.
실제 마법주문의 경우에는 필수 단어가 들어간 문장만 만들면 된다.
1서클의 경우에는 5개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을 한 개에서 세 개 정도 중얼거린다. 빠르게 주문을 외우면 발동되지 않는 패널티도 있으니, 최대한 천천히, 천천히 길쭉한 주문을 외우는 척을 하면서 재빨리 문제를 풀면 되는 것이다.
문제의 답은 글로 쓰거나 주문 안에 섞어 놓으면 된다.
공격력만 빼면 다른 마법사들과 똑같이 위장할 수 있다.
하지만 얼굴이 드러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한데…….
블랙스타는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의심을 주지 않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블랙스타는 손가락을 딱 하고 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검은색 야구모자.
하얀색 마스크.
그것까지 쓰면 완벽한 살인마 & 강도의 모습이 아닌가!
이 게임에서는 코스프레라고 하면서 별 기괴한 모습을 하고 다니는 놈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마나 강도를 코스프레 한 것이라고 대충 둘러대면 사람들은 아∼ 특이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갈 것이다. 물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때는 마스크나 모자를 살짝 벗어서 보여 주면 된다.
‘흐흐흐흐…….’
블랙스타는 킬킬킬 웃으면서 계속해서 오솔길을 따라서 걸어갔다.
9. 활동(1)
“안녕하십니까, 수고 많으십니다. 하하하.”
블랙스타는 일반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에게 넉살좋은 얼굴로 꾸벅 인사하면서 말했다.
경비병은 그냥 인사도 안 하고 휙 지나쳐 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블랙스타의 반응에 기분이 좋은 듯 험험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블랙스타에게 말했다.
“자네는 어디 마을에서 왔나?”
블랙스타는 경비병의 말을 듣고 하하하 웃으면서 자신이 걸어온 오솔길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어기 오솔길을 따라서 나오는 초보자 마을에서 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이곳에 오는 이방인이라서 몇 번 길을 잃기도 하고, 몬스터가 덮치기도 하고…… 하하하……. 고생을 좀 많이 했었죠. 돈이라도 있으면 다른 사람들을 고용해서 안전하게 올 수 있었을 텐데 돈도 없고…….”
약간 피곤한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은 센스!
경비병은 블랙스타의 말을 듣고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
“쯧쯧…… 그랬구만. 자네, 돈이 정 궁하다 싶으면 나를 찾아오게나. 내 이름은 카일이라네. 잔심부름 같은 일은 많이 줄 수 있네. 요즘 초소에 잔심부름을 할 사람이 필요하거든. 조금 힘들기는 하겠지만 상당히 짭짤한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걸세.”
툭툭.
경비병은 블랙스타에게 힘내라는 듯이 어깨를 툭툭 치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블랙스타도 경비병의 미소에 화답하듯이 순박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시 한 번 꾸벅 인사를 하고는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흐흐흐흐…….’
그리고 경비병이 보이지 않는 각도가 되자마자 싹 바뀌는 얼굴.
경비병과 친해지면 절대 손해라는 것은 없었다.
경비병 같은 경우에는 성문을 지키거나 마을을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수상한 사람들을 잡는데, 그 때문에 현상금이 걸린 놈들을 잡아서 족칠 때에는 참 편해질 수 있다.
흉악범이 어디 있는지 경비병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이게 편리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블랙스타는 미소를 지으면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안에 보이는 수많은 유저들과 수많은 NPC들.
‘드디어 도착이다. 드디어 제대로 된 게임을 할 수 있는 건가.’
블랙스타는 게임에 처음 접속해서 풍경을 보았을 때의 그 표정을 지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얼굴 가득 담겨 있는 감격…….
초보자 마을에서는 연속 PK 때문에 제대로 된 게임을 즐기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진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잔뜩 묻어 있는 얼굴.
툭.
“눈 똑바로 뜨고 다녀, 이 새끼야!”
그리고…… 그렇게 감격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블랙스타를 툭 치고 지나가면서 욕설을 내뱉는 여자 하나.
블랙스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여자는 콧방귀를 뀌면서 블랙스타에게 소리쳤다.
“흥, 길 한복판에서 그따구로 있었으면서 뭐 할 말 있어?”
안하무인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어울리는 여자의 태도.
여자는 그렇게 한참을 블랙스타에게 욕을 쏟아 붓더니, 이제 볼일이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려서 사람들이 많은 인파 속으로 사라지려고 했다.
턱!
“어디 가?”
하지만 그 순간 여자의 팔을 붙잡는 블랙스타의 손!
여자는 찡그린 표정으로 블랙스타에게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하지만 블랙스타의 표정은 영하 16도의 남극에서 부는 눈보라 같았다.
“니 인벤토리 안에 있는 돈들은 주고 가야지. 힘들면 훔친 돈만 주든가. 못해?”
여자는 블랙스타의 말을 듣고 움찔하더니, 호기롭게 소리쳤다.
“이 새끼야! 뭔 개소리야?!”
하지만 블랙스타는 여자의 욕설을 듣고도 표정 변화가 하나도 없었다.
“네가 돈을 훔치지 않았다는 증거 딱 다섯 개만 대 봐. 그럼 보내 줄게.”
여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블랙스타를 쳐다보았다.
“알았어. 세 가지만 대 봐.”
“이런 미……!”
여자는 계속되는 블랙스타의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무언가를 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블랙스타는 무언가 말하려는 여자의 말을 뚝 끊고 말했다.
“타당해야 돼. 타당해야 돼.”
여자는 짜증이 잔뜩 묻어 있는 얼굴로 소리쳤다.
“무슨 헛소리야?! 갑자기 사람 팔을 붙잡더니 돈 내놓으라고 하고! 네가 강도야?!”
블랙스타는 그런 여자의 반응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너무나도 많이 쓰여서 이제는 ‘소매치기의 정석’으로 불리는 수법을 써 놓고도 당당하다.
툭 부딪친 다음에 다짜고짜 욕설을 날린다. 그렇게 쉬지도 않고 욕설을 날리고는 상대방이 흥분을 하는 것 같으면 같이 맞붙거나 혹은 슬쩍 물러나서 도망을 간다.
당한 사람은 욕설을 듣고 당황하거나 흥분하게 되기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할 때 즈음이면 이미 돈은 깡그리 털리고 없는 상태.
이 수법은 TV에 심심할 때마다 나온 소매치기의 수법이다.
“소매치기야. 누구 돈을 훔치려고 수작이야? 돈 내놔.”
블랙스타는 여자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뭔 헛소리야!”
여자는 얼굴에 철판을 몇 겹을 깔고는 블랙스타에게 대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블랙스타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동네 사람들! 여기 모여 보소! 여기 소매치기가 있습니다!”
마치 사자후를 방불케 하는 외침!
지나가던 사람들, 다른 일을 하던 사람들 전부가 블랙스타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블랙스타는 여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 여자가 소매치기입니다! 내 돈을 훔쳤으면서도 안 훔쳤다고 지금 발뺌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 갓 도착한 이방인의 피 같은 전 재산을 전부 훔쳐 놓고는 양심이 하나도 찔리지 않는 듯 큰소리를 뻥뻥 치는 이 태도! 이 여자는 양심이 없거나 썩어 문드러졌음이 틀림없습니다!”
“뭐, 뭐?!”
여자는 블랙스타가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을 끈 다음 자신을 소매치기로 확정한 후 몰아가자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왜 소매치기야! 나는 소매치기가 아니야! 어디서 누명을 씌우고 있어!”
블랙스타는 여자의 반응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여자의 반응, 초짜에게서만 나오는 반응이었다.
만약 블랙스타가 여자였다면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치한이 지금 나를 소매치기로 몰아가고 있다, 라고.
사람들의 인식으로는 치한이 소매치기보다 훨씬 나쁜 범죄. 여자가 블랙스타보고 치한이라고 소리쳤다면 빠져나갈 구멍이 생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자는 그저 부인하는 데 그쳤을 뿐, 블랙스타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하지는 않았다.
‘내가 이겼군.’
블랙스타는 사람들을 빙 둘러보고는 여자를 손가락질했다.
“도둑놈이 자기더러 도둑놈이라고 하는 거 봤습니까!”
블랙스타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여자를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이봐, 네가 훔친 돈 벌써 동료에게 넘겼지?”
“아니라고!”
여자는 블랙스타를 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블랙스타는 씨익 웃었다.
“동료에겐 넘기지 않았다는 소리군. 아직 가지고 있다, 그거냐? 결국 도둑질은 했다는 소리네.”
순간 여자는 멍한 얼굴로 블랙스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곤 있는 힘껏 소리쳤다.
“난 안 훔쳤어! 안 훔쳤다고! 몸수색이라도 해야 내 결백이 증명되겠어?!”
블랙스타는 여자의 당당한 태도에 피식 웃었다.
“네 몸 수색은 할 것 없고, 돈주머니나 내놓으시지.”
“흥! 내 돈주머니? 봐 봐! 봐 보라고!”
여자는 당당하게 인벤토리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들고 블랙스타에게 보여 주었다. 돈주머니 안에는 금화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렇게 당당한 걸 보니 소매치기가 아닌가 본데?”
“저 남자가 오해한 것 같구만.”
블랙스타와 여자의 싸움을 보고 있던 구경꾼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여자의 태도가 너무 당당하자 소매치기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