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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아틸라 1권(4화)
1. 나는 아틸라다(3)


방 안으로 들어온 아틸라는 책상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양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한 달 동안 단백질이 풍부한 육류만을 먹었다.
육체가 처참하게 망가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육신의 주인은 좀 한심한 놈이었군. 독에 중독될 때까지 몰랐다니.”
바로 독!
언제부터였는지 루인의 육체는 조금씩 독에 중독되어 왔고, 근육이 빠지고 망가져 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우선 살과 근육을 붙이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아틸라는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해 왔다.
체내에 남아 있던 독도 문제없었다.
아틸라의 영혼이 루인의 몸에 강림했을 때, 체내에 있던 모든 독들이 거의 다 타서 사라졌다.
벼락 때문이다.
아틸라의 영혼은 벼락을 타고 루인의 육체에 강림했다. 당시 벼락을 정통으로 맞아 육신에 남아 있던 독들이 모두 타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자칫하면 목숨도 잃을 정도로 고압의 전류였지만, 아틸라가 그것을 막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루인의 육신이 벼락을 맞고 이토록 무사할 수는 없으리라.
덕택에 아틸라의 몸속에서 적들이 오랫동안 음독시킨 독들은 모두 사라졌다. 오히려 깨끗했다. 독뿐만 아니라 수많은 불순물들을 태워 버린 상태!
뿐만 아니라 새로운 능력도 얻었다.
파지직, 파직!
아틸라의 오른손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바로 뇌전의 기운!
뇌전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아틸라가 정신을 제대로 차렸을 때, 몸 안을 가득 채우는 강렬한 에너지에 깜짝 놀랐다.
본래의 육신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훨씬 능가하는 힘!
그럴 만도 했다. 아틸라의 영혼은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가둘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그런 영혼을 이끌려면 얼마나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하겠는가!
루인의 육신에 내리꽂힌 벼락은 과연 압도적인 에너지로 가득했다. 그것을 욕심낸 아틸라는 한 달 가까이 몸에 가두고 또한 다루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진기를 사용했던 것처럼 뇌기를 다룰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육신에 가득 찬 뇌기를 완전히 다루지는 못했다. 현재 아틸라가 다룰 수 있는 뇌전은 고작 십오 퍼센트.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압도적인 힘이었다.
영혼전이의 술을 쓰기 전의 힘에 비하면 약 삼십 퍼센트 되는 힘이었다.
“좋군.”
아틸라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강해진다는 점은 좋은 일이다.
아틸라는 앞으로 몸에 가득 찬 뇌기를 모두 이끌어 낼 생각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산술적이지만 로마를 두렵게 하던 힘의 두 배 가까이를 얻게 되는 일이다.
하나…….
뇌기만이 아틸라의 무기는 아니다.
아틸라의 진정한 무력(武力)은 바로 무술과 흑마법에 있었다.
로마영웅을 무력케 하던 압도적인 무력!
땅을 뒤집고 불길을 치솟게 했던 흑마법!
그 모든 것을 루인의 육신에 깃들게끔 수련한다면 아틸라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기다려라, 로마여. 내가 가겠다. 데일라, 에이시우스! 너희들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겠다!”
아틸라의 두 눈이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이내 아틸라는 들끓는 복수심을 억누르고 침착을 되찾았다.
지금부터 시작할 일이 많았다.
“바츨라브 백작가…… 그리안 제국……. 다 처음 들어 보는 이름들이다. 어쩌면 바다 건너에 로마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아틸라는 이 세상이 전혀 다른 세상임을 꿈에도 몰랐다.
그저 로마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다른 대륙에 존재한 곳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렇기에 아틸라는 복수심을 버리지 않았다.
반드시 돌아가서 복수하겠노라!
하나 복수를 위해선 일단 아틸라는 더 강해져야만 했다.
과거보다 더!
말을 타고 로마를 유린했을 때보다 더 강해야만 했다.
강했다면, 에이시우스의 계략에 휘말려 그렇게 무너졌을까?
데일라의 흑마법에 억눌려 피를 토했을까?
아틸라는 그것이 자신의 부족함에 있다고 자책했다.
하여 아틸라는 이곳에서 강해질 수 있는 것은 총동원해서 강해지고야 마리라 결심했다.
뇌전의 기운, 무술, 흑마법!
하지만 애석하게도 제약이 많았다. 지금 바츨라브 백작가의 상황 때문에 아틸라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썩었군.”
한 달 동안 상황을 대충이나마 파악한 아틸라의 짧은 소감이다.
바츨라브 백작가는 썩을 대로 썩었다.
가주는 쓰러졌고, 가주직을 이을 대공자는 사망했다. 유일한 적통 후계자인 루인은 독에 중독되어 천천히 죽어 나갔으리라. 물론 아틸라가 육신을 차지함으로써 그럴 일은 생기지 않겠지만.
권력의 중심이 무너졌다.
자연히 그 권력을 탐내는 승냥이 떼들이 몰려들었다.
각자 백작가에서 일하며 어느 정도 입지를 쌓았던 이들이 세력을 규합해 백작가를 노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틸라는 무거운 눈빛으로 책상 위를 쳐다보았다.
책상에는 두툼한 노트 한 장이 펼쳐져 있었다.
아틸라가 어찌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알겠는가.
정답은 바로 노트에 있었다.
노트는 전에 루인이 쓰던 일기장이었다. 루인의 일기를 보고 아틸라는 대충이나마 현재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틸라는 다시 한 번 루인의 일기장을 읽어 나갔다.

봄, 사월 이십 일.
형님이 굳은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평소 냉철하고 일하는 데 실수가 없으신 형님께서 그런 굳은 표정을 지으신 것이 너무 어색했다.
형님은 뭔가 이상하다고, 의심스럽다고 말하셨다.
‘백작가에 이십 년 동안 살아왔던 노(老)기사 다섯이 가문을 떠났다. 단지 고향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겠다는 이유였지만 무언가 이상해.’
나는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시냐 했다.
노기사 다섯이 동시에 떠난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그들이 말년에 다 같이 고향에서 살고 싶단 생각을 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형님께선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으셨다.
형님은 곧 내 방을 떠나셨다.
그 이후 저녁에 행정을 관리하던 가신 데이라가 사망했단 소식이 들려왔다.

봄, 사월 이십오 일.
나도 이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데이라가 죽고 백작가의 행정은 그 음흉한 늙은이, 고스가 다 맡아 움직였다. 백작가의 자금 유통이 그의 손에 의해 움직였고, 그의 허락이 없는 한 어떤 일도 진행되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됐다. 가신 한 명이 이리 권력을 쥐겠는가.
외무를 총괄하던 가신 룩스가 그를 반대했다. 하지만 실제로 고스가 해낸 일들은 다 성과가 크기 때문에 그가 행정을 총괄해야 한다는 주장이 관철되었다.
뭔가 이상했다.
아버지와 우리 가문에 충성을 바치던 사람들이 어느새 눈에 보이지 않았다. 고스의 곁에 붙은 간악한 놈들만 눈에 보였다. 그도 아니면 룩스와 붙어먹고 고스와 견제하는 자들밖에 없었다.

봄 오월 육 일.
아침부터 고열에 시달렸다. 구토를 계속했다.
오늘 수련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초여름 유월 칠 일.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믿을 수 없다. 어찌…… 그토록 정정하시던 아버지가!

초여름 유월 팔 일.
형님께서 오셨다. 일이 잘못됐다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아버지는 음모로 쓰러지신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고스와 룩스, 너희 중 누가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인가?

여름 칠월 구 일.
아버지의 병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동안 고스와 룩스의 세력은 더욱 커졌다.
끝내 가문에 상주하는 두 개의 기사단도 그들과 붙어먹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아버지, 어서 일어나십시오.

여름 팔월 십이 일.
몸이 계속해서 아프다. 단순히 몸살이라고만 생각했다. 한데 그게 아니다. 사 개월 가까이, 사―오 일을 간격으로 구토와 고열에 시달린다.
내가 수련을 게을리했음인가?

이 부분은 필체가 흐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일기를 썼으리라. 아틸라는 쓰게 웃었다.
“모자란 자식.”
독에 중독된 것도 모르고 단지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다니. 아틸라는 계속해서 다음 장을 넘겼다.

가을 시월 칠 일.
어젯밤 수련을 격하게 했더니 오늘은 상쾌하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체중이 점점 주는 느낌이다. 근육이 붙으면 모를까, 체중이 줄다니. 앞으로 먹는 양을 늘려야겠다.

가을 시월 십구 일.
형님이 다급한 얼굴로 날 찾아오며 말했다.
‘고스와 룩스만이 우리 가문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난 믿었다. 고스와 룩스만을 숙청한다면, 그러면 다시 가문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한데…… 그게 아니다. 아우야, 이 일을 어찌하면 되겠느냐. 이 일을……!’
내가 무슨 말씀이냐 물었다.
형님은 그저 날 붙잡고 우실 뿐이었다. 그토록 강했던 우리 형님이…… 마치 여인네처럼 그렇게 울부짖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을 시월 이십 일.
형님이 돌아가셨다. 믿을 수 없다.

가을 시월 이십이 일.
아아, 이 멍청한 루인아! 이 멍청한 자식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난 중독됐다.

가을 시월 이십삼 일.
형님이 나에게 서신을 남겼었다.
백작가를 떠나 우선 목숨을 구하라고. 남아 있으면 언젠가 자신처럼 될 거라고, 너만큼은 떠나서 아버지와 자신의 복수를 이뤄 달라고.
나는 간다.
황실 아카데미로 간다.
거기서 로드리게스 교수를 찾으라 한다.
그에게서…… 그에게서 현재 가문에 흐르는 암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일기는 필체가 많이 뭉그러지고 흐려져 있었다.
다급하게 글을 썼음인가. 루인은 이렇게 마지막 일기를 남기고 도망치듯 가문을 떠났으리라.
처음에 아틸라는 단지 고스와 룩스만의 권력 싸움에 의해 가주와 대공자가 희생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고스와 룩스가 아무리 영악한 너구리라고 해도, 백작가는 남부를 지배하는 철옹성! 그들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백작가의 저력은 대단하다. 뒤에서, 암중에서 저들을 조종하는 이들이 있다.’
아틸라는 단지 일기장의 내용만으로 숨겨진 사실까지 파악했다.
‘아마도 대공자는 뒤늦게 알았겠지. 자신이 싸워야 하는 자가 고스와 룩스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암흑이라는 것을.’
그래서 루인을 붙잡고 울부짖었으리라.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됨을 깨닫고, 그리고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혼자 남을 아우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두근두근.
일기장을 다 읽고 나자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분노하고 있느냐, 루인이여.’
영혼은 아틸라다. 하지만 육신은 루인이다. 심장도 루인이다. 일기장을 읽으니까 그때 루인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틸라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루인은 분노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자, 형님을 죽인 자, 그리고 자신을 중독시킨 자,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문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자들에게 복수를 원하고 있었다.
분노를 바탕으로 한 그 복수심이라는 동질성.
그것 때문에 루인의 육신이 거부감 없이 아틸라를 받아들였으리라.
아틸라도 복수를 원한다.
데일라와 로마, 에이시우스에게.
루인도 복수를 원한다.
가족과 가문을 파멸로 이끈 자들에게.
서로가 복수를 원한다.
복수는 전염된다!
아틸라의 분노와 복수심이, 루인의 터질 것 같은 복수에 대한 열망이!
서로에게 전염됐다.
‘어차피 로마로 건너가기 위해선 힘을 길러야 한다. 하지만 백작가에선 날 저지하는 인물들이 많을 터. 루인이여, 내가 대신 해 주겠다. 너의 복수를 이루어 주고 나의 복수를 하러 가겠다. 어쩌면 너의 육신을 빼앗은 미안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기다려라 루인이여, 내가 너의 복수를 이루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