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제왕 아틸라 1권(6화)
2. 너구리와 기 싸움(2)


쿠웅!
“……!”
단 한 방.
한 방에 끝났다. 아틸라의 손짓 한 번에 로엔은 곤두박질쳤다.
덜덜덜덜.
쓰러진 로엔은 마치 오징어처럼 몸을 꿈틀거렸다. 경련하는 사람처럼 몸을 거칠게 떨었다. 그 모습을 고스는 놀람을 넘어선 경악으로 쳐다봤다.
“자, 이제 본론을 얘기하겠다.”
아틸라는 이전의 나른한 표정과 목소리는 버렸다.
예의 그 무심한 표정으로 차가운 말투를 내뱉었다.
꿀꺽.
고스는 마른침을 삼켰다.
눈앞에 있는 이공자는 더 이상 새끼 호랑이가 아니다.
고스는 아틸라를 보며 한 인물을 떠올렸다.
‘가주……!’
철혈정치를 펼치던 바츨라브 백작!
제국 남부를 질타하던 야수의 젊은 시절을 보는 착각에 빠졌다. 고스는 침을 삼켰다. 이상했다. 이럴 일은 없었다. 저 새끼 호랑이는 중독되어 야수는커녕 사냥개보다 용맹치 못했다.
한데…… 어째서?
독에 중독된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딴생각 말라, 고스.”
아틸라가 그의 생각이라도 읽은 것처럼 말하자 고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이공자님.”
고스는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오랫동안 백작가에서 살아온 그의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지금은 숙이고 또 숙여야 할 때라고.
“내가 원하는 것은 말이다. 우리 형님의 행방이다.”
쿵!
고스의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졌다. 그답지 않게 경악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다.
아틸라가 희미하게 웃었다.
“형님의 시체는 어디에 있나?”
“……!”
고스는 그대로 넋을 잃었다.

* * *

아틸라가 웃었다.
그가 웃을 땐 늘 세상은 피에 잠겼다. 그가 한 번 웃으면 로마의 도시 하나가 불바다에 잠겼다. 그의 웃음은 공포와 지옥의 상징이었다.
고스는 그걸 느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공자님의 시신은 현재 대대로 바츨라브가(家)의 핏줄을 묻어 온 선산에 안치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래? 확실해?”
아틸라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고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미천한 저로서는 도대체 이공자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흠, 내가 잘못 알았나 보군. 긴장하지 말아, 고스. 오늘 네가 보인 건방과 오만은 특. 별. 히. 용서해 줄 테니까.”
아틸라는 어느새 완전히 말을 놓았다. 마치 친우를 대하듯 말했지만 고스는 그걸 깨달을 틈이 없었다.
“좋아, 고스, 그동안 혼자 가문의 일을 해내느라 힘들지? 이제 앞으로 나한테 맡겨. 바츨라브 백작가의 후계자인 내가 결정해야 할 사안들이 많을 테니까.”
“그, 그것은……!”
고스가 화들짝 놀랐다. 여러 행정 및 실무를 최종으로 확인하고 결의하는 사람은 고스다. 한데 그것을 이공자에게 빼앗겨 버린다면 자신은 권력의 상당 부분을 잃는 일이다. 고스가 거절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아틸라는 희미하게 웃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웃음은 웃음이다.
하지만 저토록 차갑고 소름 끼치는 웃음이 또 있을까.
“내가 들었는데 말이지. 형님이 옛날에 사막의 독 전갈에 물렸다는군. 그래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서 산에 들어가 요양을 했다고 하더라?”
“……그,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저,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만.”
“이런, 난 자네가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스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다, 다 알고 있어!’
공포에 빠졌다. 그 누구도 모른다. 자신과 자신의 심복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다. 고스가 순간 쓰러져 있는 로엔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자신과 로엔밖에 없다.
한데 앞의 이공자가 어찌 알고 있단 말인가?
설마 로엔이……?
‘아냐, 그럴 리는 없다. 저놈이 그토록 무시하던 이공자에게 붙을 리 없지!’
금방 벌였던 짓만 해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공자에게 자신이 모르는 정보통이 있다는 것! 고스는 그것만 해도 큰 수확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이공자님. 덕택에 과중한 업무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예, 앞으로 중요한 서류들을 방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끄덕.
아틸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볼일이 없다.
무엇보다 지금 아틸라는 기분이 무척이나 안 좋았다.
쓰러져 있는 로엔을 보는 아틸라의 눈길은 무척이나 싸늘했다.
고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바닥까지 숙이면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살펴 가십시오.”
쾅!
아틸라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방에는 무서울 정도로 침묵이 가라앉았다.
털썩.
고스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온몸에 식은땀이 잔뜩 흘렀다. 공포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다 알고 있었다. 이공자는.
그 모든 것들을…….
‘룩스 따위가 위협이 아니다. 진심으로 위험한 놈은 저 자식이야. 새끼 호랑이인 줄만 알았더니, 어느새 제 형보다 더 무서운 야수가 되어 있었구나!’
고스, 그가 이 세상에서 아틸라의 무서움을 깨달은 첫 번째 인물이었다.



3. 한 방이면 된다, 로엔(1)


쾅!
방으로 들어온 아틸라는 탁자를 강하게 내려쳤다. 뇌기가 폭발하면서 탁자는 조각나 바닥에 흩뜨려졌다.
“한심하군.”
아틸라는 거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절로 이가 갈렸다. 오늘은 정말 짜증나는 날이다.
자신이 한심할 정도로 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날이니까.
탈혼안이 이리 쉽게 깨질 순 없었다.
본래 아틸라의 흑마법은 환상계열에 속해 있다. 남들에게 공포를 주어 정신을 지배하는 흑마법! 한데 로엔에게는 완벽히 통하지 않았다.
바로 그것은 마음가짐에 있었다.
상대 정신력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마구잡이로 뭉개 놓고 공포라는 감정을 확산시키는 것이 기본이다.
로엔은 아틸라에게 공포는 느꼈지만, 그것이 아틸라가 예상했던 정도의 공포는 아니었다.
파멸과 지옥을 향해 들어가는 망자의 공포!
그러나 애초에 로엔은 아틸라에게, 정확히 말하자면 루인을 두려워하는 감정이 없었다. 오히려 무시했다. 그랬기에 탈혼안에 당한 상태에도 무의식적으로 이겨 낼 수 있다는 감정이 생겼고, 그것이 끝내 탈혼안에서 벗어나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과거 아틸라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두려움의 존재였다.
그에게 공포를 느끼지 않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 아틸라는 환상 쪽의 흑마법을 익혔다. 모든 이가 자신을 두려워하니, 흑마법을 써 주면 백이면 백 다 통했다. 한데 이곳에는 자신을 두려워하는 인물이 없다.
‘흑마법이면 모두 될 줄 알았더니…….’
흑마법은 파괴적이고 강렬하다.
제대로만 익히고 통한다면 그 누가 아틸라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아틸라는 루인이었고, 과거의 그에 비해 한없이 약한 존재였다.
‘잠깐이다. 세상 모든 이들이 다시 날 두려워할 것이다.’
그렇지만 탈혼안으로 얻은 정보도 많았다.
탈혼안이 단지 상대의 혼을 빼놓는 흑마법일 뿐이겠는가?
아니다. 탈혼안의 진가는 다른 부분에 있었다.
상대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아틸라는 로엔의 기억을 일부 읽을 수 있었다. 만약 탈혼안이 극성으로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모든 기억을 다 읽었을 것이고, 로엔은 백치가 되었으리라.
다행히 일부만 읽었으니 로엔은 백치가 되지 않았다.
물론 어딘가 모자라거나 성격이 변했을 수는 있지만 말이다.
로엔의 기억을 읽어 얻은 성과는 굉장했다.
바로 고스를 나락에 빠뜨릴 만한 결정적인 정보가 있었다. 또한 고스와 룩스가 이번 사태의 핵심이 아님을 알았다.
고스는 애초에 철혈의 바츨라브 백작을 어찌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백작을 저리 만든 세력은 따로 있다.
고스도 어림짐작할 뿐, 실체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아틸라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주 오랫동안 백작가 내에서 암약해 온 거대한 세력임을!
아주 옛날부터 천천히…… 오늘의 일을 계획하고 실천해 왔으리라.
고스와 룩스는 단지 기회가 보여 변심한 것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해도 고스와 룩스를 용서할 순 없었다.
백작이 쓰러지고 하나둘 충신들이 죽거나 사라진 일은 분명 저 거대한 검은 세력이 벌인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대공자와 루인을 이리 만든 건 고스와 룩스의 파벌들이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고스와 룩스에게도 저들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어디선가 이 모든 사태를 주관하며 조종하고 있으리라.
“하여튼 간에 모두가 평범하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아틸라의 눈이 불을 뿜었다.
자신이 마음먹은 이상,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는 없다.
어쩌면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틸라는 그런 오만함이 가능한 존재였다.
“그런데…… 이건 좀 심각한 문제군.”
별안간 아틸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번에 발견한 또 다른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지금 자신이 루인의 육신을 가지고 있단 사실이다.
로엔이 검을 뽑으려 했을 때, 예상대로였다면 검을 막고 순식간에 명치와 얼굴을 최소한 세 번 빠르게 가격했어야만 했다.
아틸라는 분명히 머릿속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반응했다.
하지만 몸이 따라 주지는 못했다.
평소 루인이 수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지만, 독으로 피폐해졌던 신체였다. 다행히 순간적으로 뇌기를 끌어 올려서 로엔을 막고 가격할 수 있었다.
벼락은 빠르다.
압도적으로 빠르다. 그 빠름이 손에 깃드니 무시무시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이곳은, 솔직히 말해 로마와 훈보다 무력이 발전했다.
아틸라가 놀란 점은 바로 진기, 그러니까 이곳에서의 마나에 대한 부분이었다.
훈과 로마에서는 진기를 몸속에 가두는 법이 개발되지 않았다. 그저 오랫동안 싸움에 익숙해진 전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자연에 있던 일부 진기를 끌어다 싸울 뿐이다.
그러나 아틸라는 알았다.
자신의 몸에 진기를 가득 담고 그것을 강하게 만드는 법을.
그것 하나만으로 아틸라는 훈 제국의 최강자가 될 수 있었다.
‘놀랍다. 이곳 기사들은 마나연공법이라는 것을 익히고 있구나!’
이미 진기, 아니 마나를 몸에 담고 그것을 수련시키는 방법이 개발되고 발전되어 왔던 것이다.
훈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로마에서도 적수가 없었다. 영웅 에이시우스? 그도 아틸라에겐 별 볼 일 없었다.
그가 최강이었으니까.
‘이 비루먹은 육신을 강하게 채찍질해야 돼!’
전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욕구가 치솟았다. 이 세상엔 호적수가 많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경지를 넘어선 존재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백작가를 집어삼키려는 저 거대한 세력에는 그런 이들이 분명 있으리라.
흥분으로 가슴이 뛰었다.
수련해야 했다. 육체를 강하게 단련시켜야만 했다. 또한 몸속에 담겨 있는 뇌기를 백퍼센트 끌어 올릴 수 있게끔 무언가 방도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틸라는 과거보다 더 강해질 수 있으리라!
‘강해져 돌아가마! 데일라여, 에이시우스여!’
아틸라.
그가 뜻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