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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아틸라 1권(9화)
3. 한 방이면 된다, 로엔(4)
“하하핫! 저거 진짜 광대가 따로 없군.”
“무식하기 짝이 없는 도끼나 사용하다니, 무슨 용병 나부랭이란 말인가?”
“흐흐. 이공자가 정말 광대놀음을 하는 거지, 뭐.”
로엔이 음침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서 몇몇의 기사들이 동조하며 크게 웃었다. 그들은 앞에서 수련하는 아틸라를 보고 있었다.
“…….”
아틸라의 오른손엔 모래주머니가 매달려 있었고, 배틀액스가 들려 있었다.
배틀액스가 허공에서부터 땅으로 내리꽂혔다.
근데…… 그것이 이상했다.
아주 천천히, 마치 세상이 느려진 것 마냥 배틀액스는 아주 천천히 직선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 괴상한 수련을 행하는 아틸라의 눈은 터질 것처럼 충혈되었고,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온몸이 떨렸다.
하지만 배틀액스를 휘두르는 팔만큼은 요지부동이었다.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일직선이라는 길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던 로그리스는 감탄을 내뱉었다.
원래 무기를 빠르게 휘두르는 일보다 저토록 느리게 움직이는 일이 수배, 아니 백배는 힘든 수련이다.
또한 저렇게 흐트러지지 않고 휘두른다는 것은 정말……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다.
로그리스는 탄력을 받았는지 옆에서 아틸라가 하는 짓을 똑같이 따라 했다.
대신 도끼가 아니라 그의 애검으로.
로그리스뿐만 아니었다. 아직 정식기사가 아닌 수련생 열 명 가까이가 그 수련을 따라 했다. 또한 로그리스와 친했던 몇몇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아틸라의 근처에선 서른 명 가까이가 아틸라를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아틸라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저들은 자신을 따라 했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다. 하지만 저들은 조금만 지치면 달리기를 포기했다. 그러나 근래에는 저들 역시 한계를 부수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달려 쓰러질 때야 달리기를 멈췄고, 다시 깨어나면 그 무식한 방법을 또 행했다.
로그리스는 느꼈다.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몇 년 가까이 정체된 실력이 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검술 실력이 아니다.
바로 체력과 마음가짐이었다.
체력이 뒷받침되니 자신감이 넘쳤고, 자연 그의 검엔 힘과 빠름이 느껴졌다. 이것이 성장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단지 아틸라를 따라 했을 뿐인데, 정체됐던 실력이 봇물 터지듯 높아만 갔다.
그건 로그리스뿐만 아니라 동료 기사 열 명과 수련기사 스무 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그들에겐 아틸라는 존경스러운 스승이나 진배없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훅…… 훅…… 훅.’
아틸라의 신경은 온통 배틀액스를 휘두르는 일에만 집중됐다. 옆에서 서른 명이 동시에 검을 휘둘러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절대적인 집중력!
그는 이 도끼질 한 방에 모든 인생을 건 것처럼 수련했다.
“흥, 병신 머저리들이 단체로 광대 짓을 하는군!”
누구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다만 무아지경에 빠진 아틸라는 꿈쩍도 않았다. 하나 로그리스는 아니었다. 그의 얼굴이 순간 새빨개졌다.
“이놈, 뭐라 했느냐!”
“허? 네깟 놈이 노려보면 어쩔 것이냐? 왜 내 앞에서 광대 짓 더 하지 않고?”
“……이 자식.”
로그리스는 입술을 굳게 닫았다.
로엔이었다. 비웃음 가득 담긴 조롱을 던지는 이, 로엔이었다. 로그리스와 그 외 동료 기사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수치였다.
자신들은 그저 수련에 힘쓸 뿐인데 광대 짓이라니.
그런 수치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나서지 못했다. 로엔은 또래에 적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사였다.
백작가의 제일 기사단인 도미니언 기사단의 최연소 수석기사이니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에 반해 로그리스와 그의 동료들은 아직 기사단에 정식 입단도 못한 풋내기일 뿐이었다.
“뭐해? 이 몸이 웃을 수 있도록 어디 더 날뛰어 보란 말이다. 이 광대 자식들아.”
“푸하하하!”
사방에서 비웃음이 들렸다. 가장 앞에 나서 행동하는 로엔을 보니 주먹이 떨렸다. 수치스럽다.
‘기사 된 자로서 이토록 수치스러운 일을 버티란 말인가?’
로그리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오른손이 검집에 도달해 있었다. 순간 차가운 기운이 연무장을 맴돌았다. 한참을 웃던 로엔 역시 표정을 굳혔다.
“한판 붙게? 그거 알지? 우리 기사들의 정식 결투에선 누가 죽어도 상관없는 거?”
순간 로그리스가 멈칫했다.
그렇다. 기사들의 대결에선 죽음이 허용된다. 오히려 명예로운 죽음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무슨 명예로운 죽음이란 말인가!
이렇게 수치를 당하고 죽는다면!
로그리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수치, 참을 수 없었다.
로그리스도 기사였다. 바츨라브 백작가의 기사!
로그리스는 검을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그 말이 사실인가, 로엔?”
그때였다.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도달했다.
그곳엔, 아틸라가 있었다.
* * *
“그 말이 사실인가, 로엔.”
순간 로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거칠기 짝이 없는 흉흉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저번의 일이 떠올랐다.
공포, 두려움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러나 이내 살심이 치솟았다. 저번의 일은 수치였다.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수치! 로엔은 이를 악물었다.
“그렇소, 이공자. 기사들 간의 결투에서 살인은 아무런 잘못도 아니오. 흐흐.”
로엔의 눈가가 살기로 번들거렸다. 기사도를 숭배하는 기사의 모습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너는 나를 모욕했다.”
“…….”
별안간에 들려오는 아틸라의 말에 연무장에 침묵이 맴돌았다.
모욕이었다.
아틸라는 백작가의 이공자다. 기사는 아틸라에게 충성을 다해야만 한다. 한데 기사가 자신의 주군을 비웃고 조롱한다는 것은 분명 모욕이었고 당장 처벌해야 할 중죄였다. 아틸라는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 다만 수련에 집중하고 있기에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다.
한데…….
갑자기 분노가 치솟았다.
아틸라는 본래 자신의 수하를 몹시도 아끼는 사람이었다. 아틸라가 비록 공포의 상징이라지만 수하들에게서 있어서만큼은 뛰어난 군왕이요, 제왕이었다.
아틸라는 그만큼 수하를 아꼈으니까.
어느새 자신을 따라 하고 한계를 부수는 로그리스와 그 외 기사들을 보며 아틸라는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저들을 키워 훈족의 공격대를 만든다면 어떨까?
저들의 검술과 마나연공법은 분명 훈족 전사들의 파괴력을 능가할 수 있었다.
아틸라는 자기도 모르게 로그리스와 동료들을 수하로 거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로그리스를 모욕하고 도발해서 죽이려고 들어?
참을 수 없었다.
아틸라는 자신이 나서기로 했다.
“사내대장부가 수련에 힘쓰는 것은 전혀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 하나 로엔 너는 그것을 비웃고 조롱했다. 이것은 나에 대한 모욕이다. 틀린가?”
“그, 그것이…….”
일순, 아틸라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로엔은 당황했다. 뿐만 아니라 그 옆에서 함께 비웃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로엔은 이내 음침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소, 그래서 결투를 원하오?”
“바로 맞았다, 로엔.”
아틸라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맺혔다.
“나 아틸라는 너의 모욕에 참을 수 없는 수치를 느꼈다. 고로 너의 목숨으로써 이 모욕을 풀겠다. 덤벼라, 로엔이여.”
“받아들이겠소, 이공자. 한데 언제부터 루인이 아니라 아틸라가 되었던 것이오?”
아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묵묵히 팔에 찬 모래주머니를 모두 풀었다.
“이익……!”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로엔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검을 꺼내 들었다.
지켜보던 아틸라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기회다.’
로엔은 나이에 비해 실력이 뛰어나다.
그런 로엔과의 싸움은 이 세계의 보통 기사들의 무위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또한 아틸라가 수련을 하며 깨달은 부분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틸라는 배틀액스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이 흉흉한 기색을 뿜었다. 순간적으로 하복부에 강력한 힘이 응집됐다. 자연에서 가장 강한 파괴력을 지닌 뇌기가 솟구쳤다. 미친 듯이 날뛰는 뇌기!
하나 아틸라는 뇌기를 직접적으로 사용할 생각은 없다.
본래 아틸라가 사용하던 방법은 근육과 세포에 진기, 그러니까 마나로 가득 차게 만들어 폭발적인 파괴력을 이끌어 내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틸라의 몸에 있는 뇌기는 평범한 진기와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폭발적인 파괴력!
뇌기는 강렬한 파괴력 때문에 세포와 근육에 흡수되지 못한다. 근육과 세포가 버텨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아틸라는 수많은 고민을 해 왔다.
루인의 육신은 아틸라가 온전히 힘을 발휘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아틸라가 쓰는 무기는 거대한 도끼!
단 일격에 적을 죽이지 못한다면 위험해지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 루인의 육신으로는 일격에 적을 죽일 만큼의 폭발적인 파괴력이 나올 수 없다.
그럼 자연 뇌기를 이용해야 할 터!
뇌기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아틸라는 수없이 고민을 거듭했다.
뇌기와 육신이 하나가 되어야만 했다.
육신 안에 뇌기가 갇혀 있는 것이 아닌 일체화(日體化)!
그때 아틸라의 머릿속에 벼락처럼 든 생각이 있었다.
‘차크라(Chakra)!’
저 먼 남쪽, 굽타(Gupta:인도)에서 올라온 한 무인.
그는 자연을 다룰 줄 알았다.
물, 불, 대지, 그리고 세상 모든 자연의 원소가 자신의 육신에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굽타에서 온 무인은 강했다.
아틸라는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승부를 내지 못했다.
이후로 아틸라는 그를 국가적인 귀빈으로 대접했고 그로부터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차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