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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아틸라 1권(13화)
5. 사냥꾼을 사냥하는 야수(1)
“아틸라 님,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들어와.”
루나는 조심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전에 못 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로그리스, 던커스. 그리고 아틸라.
“거기에 놓고 가.”
“예.”
루나는 코를 찡긋거리더니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방 안에서 희미하게 퍼지는 혈향이 이상해서이리라.
루나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아틸라는 조용히 차를 음미했다.
“고스 파벌 등을 모두 처리했습니다.”
“흠…….”
로그리스는 어느새 아틸라의 수족이 되었다. 또한 전과 달리 눈빛이 날카로워졌고 온몸엔 흉흉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실력이 상당히 성장했음이 눈에 보였다.
그날, 로엔을 단 일격에 처치해 버리는 모습에 로그리스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노력만으로 천재적인 재능을 이길 수 있음을 깨달았다.
로그리스에겐 있어선 깨달음을 준 스승이나 다름없었다. 그랬기에 로그리스는 그를 지지했다.
아틸라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다 한쪽에 서 있던 던커스를 보았다.
“던커스, 나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던커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아틸라가 희미하게 웃었다.
던커스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로엔을 죽이고 그는 피가 끓었다.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못할 것만 같았다. 피를 본 이상 그는 계속 피를 갈구하게 되리라.
그때 아틸라는 곧바로 고스 파벌을 처단하기로 결심했다.
고스를 단숨에 깡그리 처단시킬 방법을 강구하다 던커스를 만났다. 바로 무덤가에서 말이다. 증거를 얻기 위해 대공자의 무덤을 뒤지던 도중, 근처 무덤가에서 시체를 파내던 던커스를 만난 것이다.
던커스!
그는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다.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흑마법사!
로마에서 그랬듯, 여기에서도 흑마법은 경멸과 동시에 두려움을 받았다. 그래서 대륙 자체에서 엄격히 흑마법을 금하고 있었다.
던커스는 그 흑마법을 익히고 있던 마법사였다.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자 던커스는 곧바로 아틸라를 죽이려고 들었다.
하지만 아틸라도 흑마법사다. 로마와 훈을 통틀어 흑마법에 최강을 자부하던 데일라 다음이 바로 아틸라가 아니던가.
아틸라는 제안했다.
자신이 흑마법이 대우받는 세상을 열겠다고. 만약 제국이 그것을 막는다면 자신이 제국을 흑마법으로 멸하겠다고.
그 오만한 말을 보라!
하지만 아틸라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또한 그렇게 되리라는 강력한 믿음이 있었다. 던커스는 자신과 같은 흑마법사라는 동질감, 그것에 아틸라에게 몸을 맡겼다.
자신을 따르는 열 명의 마법사와 함께.
던커스가 자신의 편에 서자 고스를 처단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던커스는 흑마법사이기도 했지만 겉으로는 일반 마법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양한 마법을 익히고 있었다. 고스를 처단할 방법을 찾기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아틸라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늙은 너구리는 죽었고……. 이제 뱀만 남은 건가?”
“어째서 룩스를 살려 주신 것입니까?”
로그리스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파고들다 보니 사건의 전말을 점차 알아 갈 수 있었다. 대공자를 독살한 일에는 룩스도 협조했다. 로그리스는 진정 분노했다.
대공자는 기사로서 존경받아야 마땅한 인물이었다. 룩스는 대공자를 독살하는 일에 협조를 한 인물이다.
그런 룩스를 살려 준 아틸라의 행사가 로그리스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로그리스, 우리가 이번 일을 파헤치면서 느낀 게 무엇인가?”
“……그건.”
“백작가를 무너뜨리려는 건 고스와 룩스가 아니야. 그 뒤에 암약하는 세력이 따로 존재한다. 내가 잡아야 할 놈들은 그놈들이야. 룩스마저 노렸다면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숨는 것처럼 그들도 숨겠지. 그러면 다시 나타날 때까지 찾을 수 없다.”
“아……!”
“던커스가 파헤쳐 온 정보를 보면, 룩스 그놈이 유일한 소통 창구다. 그런 놈을 쉽게 죽여서야 쓰나.”
아틸라는 다시금 차를 마셨다.
어느새 찻잔엔 차가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아틸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던커스, 그곳이 어디에 있다고 했지?”
“이곳에서 멀지 않습니다. 한나절이면 도착할 거리입니다.”
“다녀오겠다.”
로그리스와 던커스는 화들짝 놀랐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지금 아틸라가 어디를 향해 가려는지. 그곳은 절대 혼자서 갈 순 없는 곳이었다.
“같이 가시지요, 아틸라 님.”
로그리스가 만류했다.
“난 충분히 강하다. 로엔과 네크로를 일격에 죽일 만큼.”
“그러나 그곳은 그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자들이 득실대는 곳입니다.”
이번엔 던커스가 만류했다.
“날 믿어라.”
아틸라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아틸라의 능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는 뇌기를 이십 퍼센트 가까이 끌어 올릴 수 있었다. 또한 로마를 부수었던 일격의 무술은, 과거에 비하면 아직은 부족하지만 뇌기가 함께한다면 그에 못지않은 파괴력을 뽐낼 수 있다.
무엇보다 비장의 한 수가 있다.
흑마법!
아직 아틸라는 흑마법을 제대로 사용한 적이 없다.
그가 마음먹고 흑마법을 사용한다면 이 세상에 아틸라를 어찌할 적은 없다.
로엔? 로엔이야 육신을 다듬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에다, 뇌기를 조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말은 마나를 사용하는 적을 순수한 근력과 무술로만 죽였다는 얘기였다.
그것도 일격에!
네크로는 조금 어려웠다. 오러를 사용한 고수였으니까.
하지만 뇌기를 뿜어 오러 비슷하게 만들자 그 역시 일격에 죽일 수 있었다. 네크로만 해도 제국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자!
아틸라의 자신감은 충분히 이유가 있었다.
“그곳은 하늘 위의 범죄자들을 가둔다는 곳, 하늘 감옥입니다.”
“내가 왜 가려는 것인 줄 아는가. 로그리스?”
“…….”
“너희들은 진실로 약하다. 네가 성장했다고 한들 아직 로엔의 실력엔 못 미친다. 급격한 성장? 우습구나. 너희들은 진실로 약해. 이대로라면 나와 함께하지 못한다. 난 너희들의 교관을 찾으려 가는 것이다.”
로그리스는 입술을 깨물고 부들부들 떨었다. 아틸라의 말은 사실이었다. 미친 듯이 노력하고 있지만 로엔의 경지, 그 이상의 경지에 오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로그리스는 그런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꼈다.
특히 고스 파벌을 처단할 때 무력감이 최고에 달했다.
자신은 별다른 일을 하지 못했다. 그건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백작가 제일 도미니언 기사단을 맞아 크게 중상을 입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은 자도 다섯에 달했다.
이 얼마나 무력한가.
아틸라의 신들린 무력!
그리고 던커스와 마법사들의 마법이 없다면 도미니언 기사단을 이기지 못했으리라.
자신들은 오히려 방해물이었다.
전투가 끝난 후 무심한 아틸라의 눈빛을 받았을 땐 로그리스는 자신의 부족한 실력이 그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 자신들은 약했다.
아틸라는 그런 로그리스를 보며 위로의 말도 던지지 않았다.
아틸라는 이들을 자신의 친위대로 육성할 계획이었다. 일당백의 훈족 최강의 전사들로 구성된 친위대!
마나연공법을 익히고 어린 시절부터 수련해 온 이들에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큰 문제점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들에겐 독기가 없었다.
상대를 죽여야만 살아날 수 있다는 독기가 부족했다. 실전 경험 역시 부족했다. 이들 중에서 전쟁을 경험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훈족은 병장기를 손에 쥘 때부터 전장에서 전사의 길을 걷는다. 늘 죽음 가까이에서 살아간다. 자연히 적을 죽이고자 하는 독기로 가득한 살인병기가 된다.
이들은 그것이 안 됐다.
실전 경험이야 자신이 차차 쌓아 주면 된다. 하나 독기란 쉽사리 생기는 것이 아니다. 무작정 검만 휘두르는 것과 독기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래서 아틸라는 교관을 붙여 줄 생각이었다.
지독한, 독기로 점철된 전사들로 다시 태어나게끔 악마 같은 교관을!
자신이 직접 이들을 가르쳐도 됐다. 하지만 아틸라는 엄연한 제왕!
그건 아틸라가 맡아야 할 일이 아니었다.
아틸라는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조용히 곱씹었다.
‘하늘 감옥.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하늘 위의 실력을 갖고 있는 최악의 범죄자들이 모이는 곳.’
그곳의 죄수 하나를 데리고 와 교관으로 삼을 셈이다.
아틸라는 단지 교관으로만 활용할 생각이 아니었다.
앞으로 수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전쟁에 앞서 많은 준비를 해야 하리라. 로그리스와 그를 필두로 한 예비 친위대는 아틸라의 얼굴이다. 까놓고 흔히 말하는 더러운 일, 음모와 암살 등의 일을 할 수는 없다.
아틸라는 그것을 교관에게 맡길 셈이었다.
던커스, 친위대, 그리고 하늘 감옥의 범죄자!
아틸라의 머릿속에서 점차 자신의 세력이 그려졌다.
아틸라는 홀연히 백작가를 떠났다.
그러나 백작가에서 아틸라가 떠난 사실을 아는 이는 로그리스와 던커스뿐이었다. 아틸라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백작가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던커스.
그가 흑마법으로 아틸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