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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아틸라 1권(15화)
5. 사냥꾼을 사냥하는 야수(3)


칠호는 숲을 내달렸다.
숲은 나무와 풀이 우거져서 움직임에 제한이 많았다.
하나 칠호는 바람을 달린다. 땅을 걷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걷는다.
칠호의 눈에 주위 풍경이 휙휙 빠르게 지나갔다.
‘목표가 당황했다.’
발자국의 깊이가 우선 얕아졌다. 뒤꿈치는 바닥에 스치기만 했다. 발자국 간의 거리가 짧아졌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단 사실이다.
이젠 사냥이다.
사냥감을 잡기 위해 사냥꾼들이 숲을 가로지르고 있다. 다섯의 사냥꾼이 하나의 짐승을 잡기 위해 그물망을 짜고 있었다.
‘저기 있군!’
칠호는 희미하게 보이는 인영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빠르게 질주하고 있는 이공자의 모습이 보였다.
‘괜히 불구로 만들려고 하면 도망칠 수 있다. 곧바로 죽인다.’
칠호는 멍청하지 않았다.
괜히 여유를 부려서 살려 놓고 불구로만 만들려 하지 않았다. 상대는 자신들의 추적을 알아차리고 유인하여 지켜보기까지 했던 인물이다.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칠호의 생각은 훌륭했다.
‘단 한 칼!’
칠호가 바람이고, 바람이 칠호 그 자체다. 마치 자연에서 부는 바람처럼 칠호는 아틸라에게 접근했다.
그 순간까지 아틸라는 모르는 듯했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칠호는 그때 알아차려야만 했다.
상대는 먼 거리서 추적해 오는 자신들을 알아차린 뛰어난 기감의 소유자.
한데 이렇게 가까이 접근하는 동안 깨닫지 못한다?
칠호는 바람이 되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다.
피융!
칠호의 단검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바람의 기운이 서린 단검은 무서운 속도로 아틸라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
칠호는 그때서야 이상함을 깨달았다.
단검은 아틸라의 목을 꿰뚫고 바닥에 꽂혔다. 피도 흘리지 않았다. 구멍도 나지 않았다. 단지 달리던 자리에 멈추어 선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마……?”
사라져 간다.
눈앞에 있는 아틸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다.
마치 환상처럼.
“헛것을 봤나 봐?”
“……!”
귀에 꽂히는 사신의 목소리.
어쌔신 칠호, 그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칠호?!”
사방으로 퍼져 아틸라의 흔적을 쫓던 다른 어쌔신들이 우뚝 멈춰 섰다.
끊겼다.
심령을 통해 연결되던 칠호와의 교감이 끊겼다.
그것이 무엇을 말함인가?
“칠호……!”
삼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들은 사냥꾼이었다. 사냥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사냥꾼이 죽어서는 안 됐다.
삼호는 칠호의 흔적을 쫓아 달렸다.
그리고 이내…….
“으음……!”
삼호의 입술을 비집고 답답한 신음이 토해졌다.
이 얼마나 참혹한 모습인가!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일직선으로 갈라져 있는 반쪽의 시체가 보였다.
칠호였다.
삼호는 시신에 다가가 부릅떠진 눈을 감겨 줬다.
공포, 그리고 경악의 표정.
도대체 어떻게 죽었을까?
“일격이다.”
시신의 흔적을 살핀 결과 단 일격에 죽였다.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한 방에 갈랐다.
무시무시한 괴력에 절단력이었다. 소름이 끼쳤다.
마치 장작 패듯 너무 간단하게 쪼개 버린 것이 아닌가.
‘로엔도 일격에 죽였다고 들었다. 일격에 혼신의 힘을 싣는 기술인가. 아니면 너무 압도적인 실력 차가 난단 말인가?’
삼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전자라면 다행이었다. 그 일격을 피하거나 어떻게든 막아 낸다면 충분히 역공을 통해 쉽게 제거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후자라면 어렵게 된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다.
‘칠호가 정면승부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뒤를 노렸을 터인데…….’
삼호는 생각했다.
자신이 칠호가 되는 공상을 시작했다. 자신이라면 어땠을까?
우선 그 흔적을 찾아 뒤쫓고…….
그때였다.
삼호의 심령이 통째로 흔들렸다.
‘팔호……!’
팔호와의 교감이 끊겼다.
삼호의 얼굴이 더없이 딱딱해졌다.
칠호, 팔호가 연이어 죽었다!
이번 임무의 책임자인 삼호의 얼굴이 다급해졌다.
위급 상황이다!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고수를 죽일 때 어쌔신이 다친 적은 있어도 이렇게 두 명이 연이어 죽은 적은 처음이었다.
삼호의 몸이 바람을 타고 빠르게 움직였다.
팔호의 흔적을 쫓았다.
여기서 삼호가 놓친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분명 칠호와 팔호가 무언가를 쫓던 흔적은 있다.
하지만 쫓기는 무언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칠호와 팔호만의 흔적만이 있었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쫓고 있었던 것일까?
칠호와 팔호의 죽음에 충격받은 삼호는 그 점을 간과한 채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삼호는 현기증이 도는 것을 느꼈다.
칠호와 똑같이 처참한 모습의 팔호!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무언가 적힌 종이 한 장이 펄럭이는 것뿐.

살아서 아무도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

“사냥꾼을 사냥하는 야수란 말인가…….”
사냥꾼들이 사냥하려는 사냥감은 한낱 짐승이 아니었다.
야수였다.
우리는 사냥당하고 있다. 최고의 사냥꾼들이 저 포악한 야수에게 한 명, 한 명 사냥당하고 있었다. 삼호는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흩어져서 쫓아서는 안 될 야수다.
야수는 애초에 저걸 바라고 이 모든 일을 행했던 것이다.
일부러 유인했던 것도.
감시하는 흔적을 남긴 것도 애초에 계획되었던 일이리라.
삼호의 몸이 공포에 떨렸다.
그리고 그 시각.
심령으로 연결되던 오호와 구호의 교감이 모두 끊겼다.
삼호.
그는 혼자 남았다.



6. 불사신 바스티안(1)


졸졸졸.
수심이 얕은 강, 아니 하천이라 부를 만한 곳에서 아틸라는 멈춰 섰다. 온몸에 뒤집어쓴 피를 씻기 위해서였다.
“후우, 머리가 어지럽군.”
옷을 입고 그대로 하천에 들어간 아틸라는 뜨거워진 육체를 차가운 물에 식혔다. 차가운 물로 씻자 어지러움이 많이 가셨다.
흑마법의 부작용이 뒤늦게 찾아왔다.
아틸라의 흑마법은 환상을 펼친다. 즉, 사람의 정신력을 이용하는 흑마법이다. 무리하게 사용했다가는 정신력이 고갈되면서 뇌가 급격하게 가열되어 뇌신경이 끊긴다.
아틸라는 방금 전 흑마법을 너무 무리하게 펼쳤다.
물론 과거의 아틸라였다면 전혀 부담 없을 정도였지만, 아직 루인의 육체로는 그 정도만 해도 무리였다.
“후후후. 드디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가.”
아틸라의 입가가 뒤틀렸다.
자신을 노릴 인물이야 뻔했다. 룩스 아니면 그들일 테니까.
아틸라는 탈혼안의 힘을 발휘했다.
한 어쌔신의 기억을 모조리 읽어 냈다.
하지만 어쌔신은 그들의 거대한 집단 중 하위 중의 하위 조직에 불과했다. 어쌔신이 알고 있는 정보도 별로 없었다. 단지 그들이 어느 정도의 세력을 가진 존재들인지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다.
오리무중이었던 그들의 실체에 한 발 다가갔으니까.
아틸라는 어쌔신들의 추적을 흑마법을 통해 알아냈다.
암동(暗同).
주위의 어둠을 자신과 일체화시키는 흑마법.
이것은 아틸라가 익힌 흑마법 중 특이한 흑마법이었다.
아틸라는 평소에 늘 암동을 사용했다. 환상마법처럼 정신력을 고갈시키는 마법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과 어둠을 하나로 일체화시키는 마법이었다.
세상 곳곳엔 어둠이 존재한다.
낮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어둠이 있다. 그늘진 곳, 땅 밑바닥…….
평소처럼 암동을 펼친 채로 움직이던 아틸라의 기감에 이상한 것이 걸렸다.
바로 바람의 움직임이 너무나 은밀했다는 점이다. 바람은 어둠 속도 자유롭게 움직인다. 자연히 어둠과 교감하는 아틸라는 바람이 자신을 쫓는 것처럼 움직이는 부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틸라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누군가 자신을 쫓는다고.
그래서 아틸라는 곧바로 그들을 유인했다. 그리고 함정을 팠다. 주위에서 맴돌아서 그들을 하나하나 흩어지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물론 모두 모여 있는 상태에도 아틸라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어쌔신, 살수였다.
암습을 한다면 아틸라도 버텨 낼 재간이 없다.
하지만 정면승부라면 네크로도 일격엔 죽인 아틸라로서는 그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서로 흩어지게 한 이유는 바로 공포에 있었다.
한 명, 한 명 공포에 빠뜨리게 하려는 속셈!
흩어진 동료들이 한 명, 한 명씩 죽어 간다면 남은 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아틸라는 그 점을 파고들었다.
공포에 빠진 어쌔신들은 환상에 휩쓸렸다.
자신들이 아틸라를 뒤쫓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실제로 아틸라는 단지 지켜보기만 하면서 오히려 어쌔신들의 뒤를 쫓았었다. 공포에 빠진 이상 그들이 아틸라의 흑마법을 이겨 내기란 어려웠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탈혼안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로엔에게 얻었던 교훈 때문에, 그는 적들을 철저하게 공포에 빠뜨린 후에야 탈혼안을 사용했던 것이다.
덕택에 아틸라는 검은 세력의 정체에 한발 나아갈 수 있었다.
‘또 다른 소득도 있었고.’
아틸라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맺혔다.
피곤하긴 했으나 만족스런 결과다.
이윽고 아틸라는 다시 걸음을 계속했다. 한시라도 빨리 하늘 감옥에 가야 했다. 모습을 감춘 채 드러나지 않았던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인 이상 백작가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빨리 백작가로 돌아가야 했다.
자신이야 그들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백작가는 그들을 막지 못한다.
던커스라면 어느 정도 버틸지 모르지만, 로그리스를 필두로 한 기사들은 처참하게 무너질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떠올리자 아틸라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어서 교관을 붙여야겠다. 최고의 교관을.’
아틸라의 눈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