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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아틸라 1권(16화)
6. 불사신 바스티안(2)
―끄아아아!
―나……어 줘!
귀곡성인가?
하늘 감옥 인근에 도착한 아틸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연이어서 끔찍한 메아리가 귀에 꽂혔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협곡이 구름을 끼고 버티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정말 대단한 절경이었지만 아틸라의 눈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귀곡성을 연상케 하는 끔찍한 비명과 신음이 연이어 메아리쳐 왔다.
하늘 감옥.
말 그대로 하늘에 존재한 감옥이다. 저 협곡의 끝에 죄수들이 갇혀 있겠지. 이곳엔 간수도 없다. 지키는 사람 하나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이곳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
제국을 떨게 했던 흉악한 범죄자들만이 가득한 이곳을 누가 들어가랴!
아틸라는 거침없이 하늘 감옥으로 발을 내디뎠다.
협곡 안으로 들어서자 그 위엄이 더 크게 느껴진다.
어찌 이런 자연이 있을까.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가파른 협곡은 구름 위에 존재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들려오는 귀곡성들!
―끄아아아아……!
―풀어 줘……!
―개자식드아아아!
절로 소름이 끼치는 소리였다. 마치 지옥에나 온 듯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아틸라는 별 감흥 없는 표정으로 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허리에 착용했던 손도끼 두 개를 꺼내 들어 그대로 벽에 꽂았다.
푹! 푹!
아틸라의 팔근육이 꿈틀거렸다.
손도끼를 박아 넣을 때마다 후두둑 떨어지는 돌가루! 아틸라는 멈추지 않고 협곡을 올랐다.
“흡, 흡.”
얼마나 올랐을까.
구름이 어느덧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때였다.
“어이, 아가야.”
아틸라는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숨을 고르고는 위를 바라보았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봉두난발한 노인이 히죽 웃으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쇠사슬에 칭칭 감긴 채 벽에 박혀 있는 주제에 그의 얼굴은 퍽 편안해 보였다.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대단하구나. 너 새로 온 간수는 아니지?”
“그렇다.”
“고놈 혓바닥이 반 토막이 났나. 크흠, 간수가 아니라면 다행이지. 지금까지 온 간수들은 모두 저기 까마귀밥들이 됐으니까, 낄낄낄낄!”
노인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아틸라는 예의 그 무심한 표정으로 노인의 근처까지 올랐다. 노인과 어느 정도 눈을 마주칠 위치에 서자 아틸라는 발을 그대로 벽에 박아 넣었다.
푸욱! 푹!
“호오! 제법 힘 좀 쓰는구나.”
“원래 주둥아리가 그렇게 쉬지 않고 움직이나?”
“뭐? 푸하하핫! 이 어린놈 좀 보세, 감히 이 몸을 몰라보고……!”
“알 필요도 없지. 이딴 곳에 갇혀 있는 불쌍한 범죄자일 뿐이지.”
그 말에 노인네의 눈빛이 달라졌다. 웃고 있던 눈이 아니었다. 흉흉한 기색이 눈에 담겼다. 상당한 살기였다.
아틸라는 살짝 놀랐다.
노인의 눈빛이 생각보다 강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틸라가 누군가.
천하의 아틸라가 고작 눈빛에 겁을 집어먹을 일은 없었다.
“이 노인네가 어따 대고 눈을 부라려?”
“뭐, 뭣이?!”
“시끄럽다.”
아틸라는 별말 하지 않고 다시 위로 향해 올라갔다. 그러자 다급해진 건 노인이었다. 정말 오랜 만에 하늘 감옥을 찾아온 사람이기에 말을 걸었을 뿐인데 완전히 말려들었다.
무엇보다 노인은 아틸라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아, 아가야! 어디를 가느냐!”
“시끄러운 노인네 피하려고.”
“올라가지 말고 내려와! 이것 좀 풀어 줘!”
“이곳에서 나가고 싶나?”
올라가던 아틸라가 오만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 보았다.
노인은 눈을 황급하게 깜빡였다. 목이 묶여 있어서 고개를 끄덕일 수도 없었다.
아틸라는 희미하게 웃더니 천천히 노인의 곁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서 본 노인의 얼굴은 흉악했다.
얼마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는지 피골이 상접했다.
하지만 눈에서 뿜어져는 흉흉한 기색과 내재되어 있는 살기, 그리고 파괴력은 상당했다. 또한 독기도 품고 있었다.
이 자리에 묶여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 저 독기를 잃지 않았다.
아틸라는 충분히 교관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실력이야 이곳에 갇힌 범죄자니까 별다른 언급이 필요하지 않을 터!
아틸라는 노인의 쇠사슬을 손으로 붙잡았다.
그는 발을 벽에 박아 철저하게 몸을 고정시켰다.
“힘으로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노인이 말했다.
힘으로 끊어지는 쇠사슬이었으면 아무리 몸을 관통하여 벽에 박혀 있다고 해도 충분히 풀고 나갈 수 있었으리라.
노인뿐 아니라 이곳에 수용된 다른 범죄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쇠사슬은 결코 힘으로 끊어지지 않는다.
아틸라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쇠사슬을 움켜쥔 그의 근육이 터질 것처럼 팽팽해졌다.
부르르!
하지만 쇠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기가 생긴 아틸라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부릅떠진 두 눈에서 흉흉한 기색이 터져 나왔다.
무리하게 쇠사슬을 끊으려는 아틸라의 모습을 비웃으려던 노인은 이내 비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틸라의 안광이 너무나 흉흉했기 때문이다.
스으으으!
아틸라의 몸에서 열기가 치솟았다.
뇌전이 온몸을 감쌌다.
심장이 강하게 펌프질하면서 뇌전이 폭발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손을 타고 뇌전이 뿜어졌다.
쇠사슬에 그대로 뇌전이 작렬했다.
“으, 으아아악! 이 미친놈아!”
노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쇠만큼 전기가 잘 통하는 물질이 또 있으랴!
뇌전의 강력한 힘이 그대로 노인의 몸을 강타했다.
폭발적이었다.
살이 타는 노릿한 냄새가 역하게 뿜어졌다.
차르르르!
쇠사슬의 표면에 쌓인 녹이 모두 타서 떨어져 나갔다.
쇠사슬이 거칠게 진동했다. 양팔과 다리, 그리고 복부에 쇠사슬이 박힌 노인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온몸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이, 이 미친놈!’
노인은 욕을 뱉었다. 온몸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뇌전이 몸에 작렬하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일반인이었으면 당장 죽었을 것이다.
노인이기에 지금껏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노인은 한계를 느꼈다.
정말로 죽음의 문턱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이 미친놈, 날 죽이려고 하고 있어!’
아틸라는 멈추지 않았다.
쇠사슬에 뇌전이 더 강하게 작렬했다.
거센 파도가 몸부림치듯 때리고, 또 때렸다.
뇌전이 작렬될 때마다 노인의 몸이 잘게 경련했다.
머리카락이 온통 타 버렸다. 걸치고 있던 누더기도 흔적조차 사라졌다. 온몸의 체모는 모두 타서 사라졌다. 피부가 뿌글거리며 익어 갔다.
하지만 아틸라는 노인의 상태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는 오로지 쇠사슬에 집중할 뿐이다.
감히 쇠사슬 주제에 자신을 버텨 내?
아틸라의 자존심 문제였다. 최근 과거의 힘을 차츰 되찾아 가는 아틸라는 고작 이런 쇠사슬을 끊어 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부순다!’
아틸라의 눈가가 번뜩였다.
쇠사슬의 진동이 갈수록 강해졌다. 사슬의 연결 고리 부분이 차츰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촤라라락!
쇠사슬이 아틸라의 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모조리 끊어졌다.
그 희열도 잠깐!
아틸라의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노인의 발이 날아오고 있었다.
‘빠르다!’
아틸라는 무척이나 빠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위험을 느꼈다.
지금은 협곡 벽에 억지로 붙어 있는 와중이었다.
운신의 폭이 무척이나 제한적이었다.
‘피할 수 없다!’
아틸라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피할 수 없으면 막아야 했다. 아틸라는 팔을 X 자로 교차시키며 뇌전의 기운을 한데 모았다.
푸악!
“큭……!”
아틸라의 입가에서 신음이 토해졌다.
뇌전을 한껏 끌어 올렸지만 발차기에 실린 힘은 대단했다. 아틸라의 몸이 단박에 절벽 밑으로 나가떨어졌다.
“푸하하하하하! 드디어 자유다! 자유!”
저 위에서 노인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아틸라는 눈을 부릅떴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애초에 예상했던 바였다.
저 정도로 독기를 담고 있는 노인이 순순히 나온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다만 몸에 침투한 뇌기로 인해 운신이 힘들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아틸라가 피하기 힘든 공격을 했다. 그렇다면 노인의 실력이 아틸라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얘기였다.
아틸라의 얼굴에 욕심이 생겼다.
한없이 낭떠러지 끝으로 추락하던 아틸라는 벽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