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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아틸라 1권(17화)
6. 불사신 바스티안(3)


쿠웅!
벽을 밀듯이 다시 솟아오르는 아틸라!
반동력으로 아틸라는 솟구쳤다.
솟구치자마자 아틸라의 면전으로 주먹이 쏟아졌다.
“큭……!”
허공에 잔영이 일 정도로 빠른 주먹이었다. 아틸라의 입가를 비집고 답답한 신음이 터졌다. 하지만 아틸라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노인의 주먹을 모두 피해 낸 후, 오히려 카운터를 날렸다.
쿠웅!
“우하하하! 제법 실력이 있구나? 아가야!”
뇌전이 가득 담긴 주먹이 노인의 가슴에 정통으로 꽂혔다. 하지만 노인은 휘청거릴 뿐 여전히 대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노인의 가슴팍을 때린 아틸라는 잠깐 떨어져서 벽에 붙었다.
그의 표정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변해 있었다.
가슴팍을 때린 주먹의 촉감이 달랐다.
마치 생고무를 때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틸라는 대충 알 것만 같았다.
상대가 왜 자신의 뇌전에 그리 큰 충격을 받지 않았는지.
쇠사슬을 끊기 위해 쏟아부은 뇌전만 해도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벼락의 파괴력에 가깝다.
그것에 정통으로 맞으면서도 살아남은 노인!
“특이한 흑마법을 익혔구나!”
“낄낄낄낄! 어떤 검과 도가 들어오더라도 난 죽지 않는다. 모든 것을 튕겨 낼 수 있다!”
노인은 즐겁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아이야, 잘 들어라. 내 이름은 바스티안이다! 불사신 바스티안!”
노인의 정체가 밝혀졌다.
바스티안!
불사신 바스티안!
세상 모든 무기를 튕겨 내는 육체를 가진 전무후무한 살인마!
그 누구도 그를 벨 수 없다고 한다. 검으로 베어도 튕겨 나왔고, 헬버드로 내리찍어도 튕겨 나온다.
고무와 같은 반탄력을 지니게 되는 육체!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불사신 바스티안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아틸라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아틸라가 어찌 십 년 전 대륙 남부를 휘젓던 살인마 바스티안을 알겠는가?
그저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자 바스티안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과거 바스티안이란 말만 들어도 오줌을 지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바스티안이란 넉 자에 서린 사람들의 공포는 말로 다할 수 없다.
“아가야, 네가 나이가 어려서 잘 모르나 보구나. 지금이라도 어서 도망치는 것이 너한테 좋을 것이다. 난 무서운 늙은이거든?”
“주둥아리로 싸움하나?”
“이, 이놈이……!”
바스티안의 이빨이 갈렸다. 이 어린놈이 자신을 능멸한단 말인가?
바스티안은 손을 들어 올렸다.
“날 풀어 준 대가로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 줄 생각이었다만……. 안 되겠구나. 넌 가장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아까 네놈의 라이트닝마법은 꽤 따가웠거든.”
“입으로 싸우지 말자니까.”
“이 자식이 끝까지!”
아틸라는 등에 메었던 배틀액스를 꺼내 들어 양손으로 쥐었다.
상대방은 고수!
로엔 따위 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고수였다. 네크로보다는 세, 네 수 위의 존재였다.
네크로 정도의 경지라면 한 수 이상의 경지만 해도 극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아틸라의 직감이라면 바스티안은 적어도 세 수 이상의 고수였다.
최선을 다해야 했다.
아틸라의 몸이 긴장으로 달아올랐다.
그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뇌전을 몸 곳곳에 퍼지게 했다.
벽에 박힌 채 서 있던 아틸라의 주위로 강한 스파크가 튀었다.
아틸라의 눈에 바스티안이라는 점이 보였다.
한 번에 쪼갠다.
파지직, 파지지직!
아틸라의 배틀액스에 커다란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뇌전이 잔뜩 뭉친 오러가 형성되었다.
그 즉시 아틸라의 몸이 용수철처럼 솟구쳤다.
일격!
그 강대한 기운에 바스티안의 눈동자가 더없이 커졌다.
배틀액스를 보기만 해도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단지 기세뿐이다.
그 기세에 바스티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바스티안의 손이 움직였다.
촤르르륵!
처참하게 끊겨 있던 쇠사슬이 마치 뱀처럼 움직였다.
쇠사슬은 바스티안의 주위를 감쌌다.
꽈아아앙!
아틸라의 무시무시한 일격이 부딪쳤다. 무지막지한 폭음이 들렸다.
협곡이 그 파괴력에 진동했다.
울컥!
쇠사슬에 마나를 불어넣어 막아 내던 바스티안은 핏덩이를 토했다.
힘과 힘의 싸움!
뇌전의 힘을 담은 아틸라의 일격과 바스티안이 모든 마나를 쏟아부은 쇠사슬의 방어는 비등했다.
도저히 우위를 가를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아틸라는 모든 힘을 일격에 쏟아부었다.
여기서 한 번 흐트러지면 밀리는 인물은 자신이다.
아틸라의 입가가 살짝 말아 올라갔다.
이렇게 온 힘을 쏟아부은 적이 도대체 얼마 만이란 말인가!
그건 바스티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이렇게 모든 힘을 쥐어짜 내며 막아야 되는 공격은 또 얼마 만이란 말인가.
힘과 힘의 싸움은 그 누구의 승리도 말해 주지 않았다.
꽈앙!
푸아아악!
아틸라는 반대편 협곡 벽에 처박혔다.
일격에 가한 힘만큼 밀려난 것이다. 바스티안 역시 협곡에 몸이 박혀 들었다.
쿠쿠쿠쿵!
얼마나 박혀 들었을까.
어느새 작은 동굴이 완성되었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퍼졌다.
“후후, 좋아. 기대했던 것보단 훨씬 낫군.”
아틸라는 별다른 상처 없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자신의 일격이 막혔단 사실에 놀랐을 법도 한데 그는 태연했다.
오히려 호승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드디어 싸울 만한 상대를 만난 것이다.
자신의 일격을 막는 존재는 로마에도, 훈에도 없었다. 물론 지금의 일격이 과거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지만 그래도 대단한 일이다.
아틸라는 이 싸움에 점점 흥분되었다.
“제대로 붙어 보자, 노인네.”
아틸라는 배틀액스를 각각 한 손에 쥐었다.
그 엄청난 무게에 흔들릴 법도 했건만 아틸라는 마치 수백 년을 살아온 거목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크으윽…… 네놈 정체가 뭐냐?”
반대편 동굴에선 바스티안이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입가에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틸라의 일격을 막느라 적잖은 내상을 입었다.
바스티안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자신을 이렇게 몰아붙인 상대가 있던가?
십 년 전, 이곳에 자신을 가둔 제국 최강의 검수 이후로는 처음이다.
바스티안의 얼굴엔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적은 자신이 쉽게 바라볼 수 없는 상대!
“인정해 주마. 넌 단순한 애송이가 아니다.”
“나도 인정해 주지. 넌 쓸 만한 교관이 될 것이다.”
“뭐, 교관?!”
순간 바스티안의 얼굴이 휴지 조각처럼 구겨졌다.
“설마 나를 교관으로 쓸 생각으로 온 것이더냐?”
“그래, 예상보다 쓸 만한 것 같아 내가 다 뿌듯하군.”
“허…… 천하의 바스티안이…….”
바스티안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세상을 두렵게 했던 이 바스티안을 한낱 교관으로 삼겠다니, 화가 나다 못해 기가 막히다. 바스티안은 굳은 얼굴로 아틸라를 노려보았다.
아틸라과 바스티안.
그들이 서로의 기세를 극성으로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7. 어둠이 찾아올 때 야수는 깨어난다(1)


촤르르륵!
쇠사슬이 살아 있는 뱀처럼 움직였다. 바스티안을 꽁꽁 감싸고 있던 쇠사슬의 길이는 엄청났다. 끊어진 부분도 있었지만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콰콰콰쾅!
쇠사슬이 벽에 박혀 들었다.
양쪽 벽과 벽을 잇는 쇠사슬!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쇠사슬은 마치 그물같이 촘촘하게 협곡 벽을 메웠다. 충분히 협곡 위에서 싸울 만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바스티안은 쇠사슬 위를 달려 아틸라에게 쇄도했다.
우우우웅!
바스티안의 오른손에 핏빛의 기운이 어렸다.
그의 절세의 무학인 블러디 핸드(Bloody Hand)!
파지지지직!
극성에 이른다면 거산도 부순다는 블러디 핸드와 아틸라의 뇌전이 부딪쳤다.
꽝!
이번에도 역시 비등!
촤르르륵!
이번엔 쇠사슬이 다시 움직였다.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아틸라의 등을 노리는 쇠사슬!
깡!
아틸라의 배틀액스가 물 흐르듯 춤추며 연신 날아드는 쇠사슬을 쳐 냈다. 그 무거운 배틀액스를 자연스럽게 휘두르다 보니 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힘을 모조리 쥐어짜 내고 있었다.
근육이 터질 것처럼 팽팽해졌다.
쾅! 쾅! 쾅!
쇠사슬이 폭격기처럼 아틸라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아틸라는 그것들을 모조리 막아 냈다.
배틀액스를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순 빈틈투성이다.
‘하지만 뚫리지가 않아!’
바스티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 빈틈이 보인다.
그런데 뚫리지가 않는다. 빈틈을 향해 공격이 들어가는 순간, 아틸라는 아주 간단한 동작으로 빈틈을 철벽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철벽!
당당하게 두 발로 서 있는 아틸라에게서 느껴지는 철벽의 단단함!
그 순간 아틸라의 배틀액스가 쭉 뻗어지면서 휘둘렸다.
“흡!”
바스티안은 헛숨을 들이켰다. 한 번 공간을 허용하자 아틸라의 배틀액스가 미친 듯이 파고들어 왔다.
하나의 배틀액스를 피하면 반대편에서 맹렬한 기세로 다시 날아들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난무!
배틀액스 두 개를 미친 듯이 휘두르는 아틸라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후아아앙!
아틸라의 팔을 타고 배틀액스로 뇌전이 뿜어졌다.
아틸라는 일부러 뇌전을 꼬고, 또 꼬았다.
바로 뇌전에 회전력을 먹이기 위함이었다.
강력한 회전력에 배틀액스의 압도적인 파괴력이 더해지자 공간이 짓이겨질 정도였다.
피하기만 하던 바스티안이 기세를 바꿨다.
계속해서 뒤로 밀리는 이상, 이길 순 없다.
바스티안의 두 손에 핏빛 기운이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