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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아틸라 1권(18화)
7. 어둠이 찾아올 때 야수는 깨어난다(2)


꽝꽝꽝!
블러디 핸드와 뇌전을 머금은 배틀액스가 연신 부딪쳤다.
부딪칠 때마다 바스티안의 속은 진탕되는 느낌이었다.
뇌전이 몸속으로 들어와 장기들을 헤집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이 고무와 같은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작렬되는 뇌전을 버텨 내기란 힘든 일이다.
차라리 화려한 초식을 펼치면서 자신을 몰아붙인다면 속 편하겠다.
아틸라는 정말 극히 단순무식한 공격 패턴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 단순함에 담긴 파괴력은 실로 경악할 만한 수준이라서, 오히려 알면서도 어떻게 대응할 수가 없었다.
죽을 맛이다.
‘빈틈!’
바스티안은 빈틈을 보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곧바로 블러디 핸드를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동시에 빈틈을 향해 오른손이 쇄도해 들어갔다.
꽈앙!
“큭!”
다시 한 번 막혔다. 어느새 아틸라는 배틀액스의 경로를 바꾸어 빈틈을 철저하게 메꾸었다.
하나 바스티안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른손이 막히는 순간, 왼손이 벼락처럼 얼굴을 후려쳤다.
꽝!
다시 한 번 막혔다.
아틸라는 마치 모든 움직임을 예상하는 듯했다.
원래 그에게 빈틈이란 건 없었다.
빈틈이 생기는 순간 그것들은 모두 철벽이 된다.
“크으으으!”
다시 한 번 힘 싸움이 시작됐다.
블러디 핸드와 배틀액스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이런 힘 싸움에서 한 번 밀리면 계속 공격을 당할 수 있다. 그래서 둘 다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텼다.
스윽!
순간 아틸라가 버티던 힘을 뺐다.
자연 무게중심이 쏠려 있던 바스티안이 흔들렸다.
아틸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퍼억!
아틸라의 발차기가 그대로 바스티안의 옆구리에 작렬했다.
뇌전이 응축된 강력한 발차기!
무게중심을 잃었던 바스티안은 격한 신음을 내뱉고는 쇠사슬 밑으로 추락했다.
“이노오옴!”
아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하다.
그 아래로 하염없이 추락하는 바스티안!
그의 성난 외침만이 메아리쳤다.
아틸라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여기서 추락한다면 뼈도 추리지 못하리라.
하지만…….
“여기서 죽을 정도의 노인네는 아니다.”
아틸라는 기다렸다.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슈우우우웅!
협곡 밑에서 갑자기 폭발적인 기세가 치솟았다. 마치 돌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강렬하기 짝이 없었다.
아틸라가 눈을 빛냈다.
“왔다!”
푸아앙!
아틸라가 배틀액스를 허공을 향해 쪼개듯 내려쳤다.
“큭!”
순간적으로 어깨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배틀액스는 치솟던 무언가 부딪쳤다.
그것은…….
“검?”
검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아틸라는 그것을 단번에 쳐 냈다. 하지만 한 개가 아니었다.
슈수수숙!
셋, 다섯, 아니 수십 개의 검이 일제히 치솟았다.
아래가 위험하다!
아틸라는 땅을 박차고 치솟았다.
그가 뛰어오르자 무섭게 밑에서 날카로운 기세의 검이 솟았다.
“천하의 바스티안이 무서운 점이 무엇인지 아느냐?”
바스티안은 멀쩡한 모습으로 쇠사슬 위에 안착했다.
그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몸이 질기다는 거?”
“낄낄낄낄, 불사신이란 별명처럼 난 웬만한 무기로 베어도 죽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 큰 내 장점이지. 하지만 난 그전에 검을 쓴다.”
바스티안은 손에 검을 쥐었다.
“수십 개의 검을 짊어 들고 다니면서 미친 듯이 싸웠다. 낮과 밤이 바뀌어도 쉬지 않고 싸운 적도 있다. 그러다가 검이 부러지면 다시 검을 꺼내 싸운다. 부러지면 다시 꺼내고, 그렇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검이 부서질 때까지 난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바스티안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것은 하나의 광기였다.
싸움에 빠진 자의 광기!
그도 처음에는 순수하게 검을 휘두르던 기사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순간 자신도 모르게 첫 살인을 했다.
그때의 흥분이란!
바스티안은 그때부터 싸움에 미쳤다. 서로 죽고 죽이는 그런 싸움에 미쳤다. 싸우다가 검이 부러지면 부러진 검 조각으로도 싸웠다.
바스티안은 쉬지 않고 싸우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검 수십 자루를 한 번에 들고 다녔고, 늘 강자에게 도전해 싸웠다.
그러다 보니 그는 자기도 모르게 깨달을 수 있었다.
여타 기사들처럼 검 한 자루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수십 자루를 단번에 다룰 수 있는 악마적인 기술을 깨달은 것이다!
“체술도 내 특기긴 하지만, 검술에 비하면 손색이 많지.”
“말이 많군.”
“낄낄낄! 그렇게 오만하게 서 있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닥치고 덤벼.”
아틸라는 흔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바스티안의 블러디 핸드도 대단했다. 또한 근접해서 주먹과 발을 휘두르는 실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아틸라가 파악했던 바스티안의 강함에 비해 손색이 있었다. 그래서 예상하고 있지 않았던가?
바스티안이 모든 힘을 드러내지는 않았다고 말이다.
“그동안 이곳은 수많은 간수들이 배정되어 왔다. 하지만 모두들 버티지 못했다. 이곳엔 나와 같은 흉악한 놈들만 바글대니까. 여기 온 간수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저 벼랑으로 떨어졌지. 그 수가 수십이 된다. 당연히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검들도 수십 자루가 되지.”
검을 어디서 구했는지 드디어 의문이 깨졌다.
절벽 아래도 떨어진 바스티안은 거기서 수십 자루의 검을 주웠다.
전화위복이다.
아틸라의 공격에 벼랑 끝으로 떨어졌지만, 거기서 바스티안은 상황을 역전할 자신의 무기를 되찾았다.
“입 다물고 덤비라니까?”
아틸라는 바스티안을 도발했다. 하지만 바스티안은 이전처럼 도발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만큼 여유를 되찾음이리라.
바스티안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섬광처럼 쏘아졌다.
아틸라는 똑바로 보았다.
섬광 속에 번뜩이는 검 끝을!
세상 모든 것들을 뚫어 버릴 수 있을 듯한 송곳 같은 예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지고 있었다.
아틸라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쳐 내느냐, 피하느냐?
생각하는 데 0.01초!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결과를 도출해 내는 데 0.03초!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지는 데 0.02초!
고작 0.06초 만에 아틸라의 배틀액스가 찔러 오던 검을 바닥을 향해 내려쳤다.
깡!
바스티안의 검이 그대로 끊어졌다. 아틸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왼손에 있던 배틀액스를 횡으로 휘둘렀다.
깡!
바스티안은 곧바로 새로운 검을 손에 쥐었다.
극히 빠른 속도였다.
그랬기에 그가 수십 자루의 검을 동시에 다룰 수 있다 했다. 검이 부러지고 다시 검을 잡을 때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때가 바로 가장 위험한 때다.
하지만 바스티안은 그것을 극도에 달한 스피드로 상쇄시켰다.
깡깡깡!
곳곳에서 검이 날아왔다.
바스티안의 검을 상대하는 일만 해도 힘든데, 아래, 뒤, 머리 위에서 날아오는 모든 검들을 파악하고 막아 내기란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아틸라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바스티안은 멈추지 않고 몰아쳤다.
폭풍 같았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검에 블러디 핸드를 접목시켰다.
묵중한 압력이 휘두를 때마다 아틸라를 덮쳤다.
바스티안은 싸움에 있어선 천재였다.
굳이 말하자면 그는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였다.
싸움에서 여러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면 그만큼 유리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세상이 왜 한때 바스티안을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대로라면 바스티안이 이긴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바스티안은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목처럼 굳건했던 아틸라는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까지 모든 공격을 막고 있다는 사실만 해도 놀라울 정도다. 세상 어떤 이가 사방팔방에서 쇄도해 들어오는 검들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놀랄 정도의 반사 신경과 침착함, 그리고 끝내 무너지지 않는 무게중심에 바스티안은 혀를 내둘렀다.
시간은 흘렀다.
해가 지고 석양이 드리워졌다.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던 바스티안의 얼굴에 땀이 비처럼 흘렀다.
‘이, 지, 지독한 놈……!’
바스티안은 소름이 끼쳤다.
벌써 몇 시간째란 말인가!
지치지도 않는단 말인가. 바스티안은 구멍 난 독에 물을 퍼붓는 듯한 느낌이었다. 쉬지 않고 모든 공격을 다 퍼붓고 있음에도 아틸라는 흔들리긴 했으나 쓰러지진 않았다.
미친 듯한 싸움을 좋아하는 바스티안도 질렸다.
철벽이었다.
공격할 때는 그토록 무서운 야수가 따로 없더니, 방어에만 치중하니 도저히 뚫을 수 없다.
또한 지치지 않는 경이적인 체력!
아틸라가 무식하게 해 왔던 체력 훈련이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수도 없이 자신의 한계를 부수고 또 부순 사람이 아틸라다.
그의 체력은 경이적일 정도다. 순수 체력만 해도 그렇다. 거기에 뇌전을 이용하여 억지로 버틴다면 언제 쓰러지겠는가?
아틸라는 여전히 침착한 얼굴로 쇄도해 들어오는 검을 쳐 냈다.
바스티안이 공격의 궤를 달리하기도 했다.
변초를 수도 없이 섞어 공격도 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아틸라의 육신엔 상처 하나 생기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가 어두워질수록 더욱 그렇다.
오히려 갈수록 더 철벽같았다.
세상 모든 것을 막아 낸다는 전설의 방패 같았다.
“이놈! 이제 끝내 주마!”
바스티안이 한층 더 기세를 끌어 올렸다. 남은 기운을 모조리 쥐어짜 검에 블러디 핸드를 극성으로 일으켰다.
강맹한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아틸라는 예의 침착한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건 내가 할 말 같은데.”
“뭣이……?”
“남아 있는 검이 얼마나 있나?”
“……!”
바스티안의 얼굴이 급속도로 경직됐다.
그는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수많은 검들이 산산조각 나서 아래로 추락하거나 쇠사슬에 대충 엉켜 있었다.
남은 검은 몇 자루 되지 않는다.
바스티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가 이곳에 갇히게 될 때, 그는 제국 최강의 검수를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오히려 싸움의 주도권을 가져갔다.
하지만 적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막아섰다.
모든 공격을 막고, 또 막았다.
그리고 끝내.
바스티안이 모든 무기를 잃었을 때, 그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그의 약점이었다. 바스티안은 무기를 아끼지 않는다. 그저 모든 공격을 다 퍼붓는다. 무기가 고갈되는 순간 그는 자신의 장점을 하나 잃게 된다.
아틸라는 그걸 바로 깨달았다.
바스티안은 멀티태스킹이란 자신의 능력을 백분 활용할 줄 알았다. 수십의 검을 동시에 움직이며 적의 허점을 노린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모든 걸 파괴하는 아틸라과는 정반대였다.
멀티태스킹은 분명 위험한 악마의 재능이다.
하지만 그것에 의지하다가 쓸모가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
지금 바스티안의 상황이 그렇다.
온전한 검은 몇 자루 없다. 멀티태스킹이 소용없다는 사실이다.
‘설마 이걸 노리고……!’
바스티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껏 이걸 노리고 버티고 있었단 말인가. 바스티안은 다시 한 번 뼈아픈 실책을 하고야 말았다. 제국 최강의 검수에게 받았던 교훈을 십 년이 지난 지금 잊어버렸던 것이다.
바스티안은 이를 악물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의 모든 능력을 극대화시키면서 짧은 시간에 끝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