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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아틸라 1권(20화)
8. 흑마법사 색출(2)
“던커스! 큰일 났습니다!”
쾅!
밖에 나갔던 로그리스가 황급한 표정으로 방에 들어왔다. 던커스는 그를 보며 노한 표정을 지었다.
“로그리스! 나는 지금 던커스가 아니다!”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는 것인가?”
로그리스는 호흡을 한 번 가다듬더니 침착하게 말했다.
“데이비드가(家)사람들이 왔소.”
던커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데이비드 가문 사람들이 왜 이곳을 방문해?”
“모르겠습니다. 데이비드 가문의 역공의 기사단과 홀렌 마법사가 지금 저희 백작가를 방문했습니다.”
데이비드 자작가!
바츨라브 백작가가 남부를 지배한다면, 데이비드 자작가가 남부를 지킨다는 말이 있다.
사막과의 국경에 위치한 데이비드 자작가는 잦은 전쟁 때문에 군사력이 비약적으로 강한 곳이었다.
데이비드 자작가의 역공의 기사단!
그리고 마법사 홀렌!
던커스는 홀렌의 정확한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가 여기 왔음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홀렌은 그저 평범한 일반 마법사가 아니었다.
던커스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웬 말이란 말인가.”
“지금 룩스 외무관이 접견하고 있다고 합니다.”
“……!”
던커스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변했다.
룩스!
그는 외무관!
그리고 백작가를 무너뜨리던 역도들 중에 하나!
던커스의 이빨이 갈렸다.
“룩스…… 무슨 계략을 꾸미는 것이더냐.”
“이거야, 원. 바쁘긴 바쁘군.”
마법사 헬써는 힘겨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마에 흘리는 땀을 훔치는 그는 힘들지만 즐거워 보였다.
“이로써 이론은 성립됐는데……. 흠, 이건 더 연구해 봐야겠군.”
헬써는 바로 던커스의 수제자였다. 이십 대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 줬기에 던커스가 친히 제자로 받아들였다.
또한 그 역시 흑마법사였다.
헬써는 애초에 평민 출신이다.
평민 출신인 자신이 마법을 배운다는 사실만 해도 정말 놀랍고 행운인 일이다. 흑마법, 백마법을 가릴 처지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헬써는 흑마법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흑마법사는 마계의 마족들과 계약하여 그들의 마나를 제공받는다.
보통 흑마법사의 기량과 재능으로 계약되는 마족의 등급이 결정된다.
던커스는 최상급의 마족과 계약!
그리고 그의 제자들은 대부분 하급에서 중급 마족들과 계약했다. 하지만 헬써는 달랐다. 그 역시도 스승 던커스와 같이 최상급의 마족과 계약했던 것이다.
던커스는 그의 재능을 가상하게 여겨 어여뻐했다.
하여 그를 다른 제자들을 제쳐 두고 수제자로 삼았다.
그렇다면 다른 제자들로부터 불만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의 마법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흑마법사였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 인정받는 걸 당연시했다. 흑마법사들의 사회는 철저한 실력주의사회였다. 덕택에 헬써는 스승과 사형들의 인정을 받으며 무사히 마법사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헬써는 현재 스승이 하던 흑마법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근래 던커스가 매우 바빠진 터, 연구를 헬써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연구는 필수불가결의 행동이다. 더욱이 스승이 자신에게 맡긴다는 것은 그만큼 믿고 신뢰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헬써는 기쁜 마음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어디 보자. 오우거 가죽의 부식이 얼마 정도 됐나…….”
그때였다.
“여기 있었군.”
냉막한 표정의 사내가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
연구를 하던 헬써는 곧바로 표정을 굳히며 적대했다.
여기는 던커스의 연구실.
던커스와 헬써의 사형들이 아니라면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이곳은 내성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장소였으니까.
헬써의 얼굴에 적대심이 가득했다.
“누구냐!”
“나? 저승사자.”
“이놈, 누굴 우롱하는 것이냐!”
헬써는 곧바로 지팡이를 들었다. 동시에 지팡이의 수정구 부분에서 강력한 회오리가 소용돌이쳤다.
“윈드 커터!”
바람의 칼날이 회전하면서 쏘아졌다.
“훗, 고작 이런 풍계마법으로는……. 디스펠(Dispell).”
샤아악!
“그, 그런!”
사내가 손을 한 번 휘젓자 맹렬하게 쏘아지던 바람의 칼날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헬써의 두 눈에 놀람이 가득했다.
디스펠마법!
상대의 마법을 강제로 취소시키는 마법!
자신보다 더 높은 클래스의 마법사가 아니라면 사용할 수 없었다.
그 말은 곧 사내가 헬써보다 높은 클래스의 마법사라는 사실!
이제 5서클에 도달한 헬써.
그렇다면 적어도 사내는 6서클이 된다는 말이었다.
1서클부터 3서클까지의 차이는 미미하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한 단계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정도로 극명하게 갈린다.
헬써는 입술을 깨물었다.
“파이어 밤빙(Fire Bombing)!”
불덩어리가 폭격기처럼 쏟아졌다. 강력한 열기와 동시에 파괴력이 연구실을 화마로 뒤덮였다. 헬써는 멈추지 않았다.
“인텐스 볼케이노(Intense Volcano)!”
쿠아앙!
헬써의 수정구에서 화산이 폭발하듯 화염이 폭발했다. 적은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실력자! 이렇게 된 이상 연구실을 불태워서라도 밖에 알려야 했다.
던커스가 와야만 했다. 연구실의 중요한 자료들이 문제가 아니다. 모든 걸 불태워서라도 알려야만 했다.
“후후후. 격렬하군.”
사내는 화마 속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헬써가 할 수 있던 강력한 공격마법이었으나 사내에겐 그을림 하나 없었다. 서클 하나의 차이가 이 정도였던가!
“헬써. 던커스의 수제자. 그리고…… 아직 능력을 다 보이지는 않는군.”
“도대체 너는 누구냐!”
“말했잖아. 저승사자라고.”
“이노오옴……!”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해서 막아야 될 거야. 아니면 죽어.”
냉막한 사내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사내는 곧이어 손을 휘둘렀다.
쿠아앙!
파공성이 들렸다.
그리고 커다란 불덩어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실드!”
헬써가 다급하게 방어막을 펼쳤다. 그러나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불덩어리는 도저히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방어막이 깨지고, 다시 생성해도 깨진다.
헬써의 온몸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쭈글쭈글해졌다.
“빌어먹을……!”
“이것 봐. 어서 모든 능력을 보여. 아니면 죽는다니까?”
“네놈은 대체…….”
사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그리고 흑마법을 쓰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헬써의 머릿속이 재빠르게 돌아갔다.
적은 일부러 자신의 정체를 탄로시키고자 했다. 순순히 따라 줄 수는 없으나 이대로라면 반드시 죽을 터!
던커스가 오기를 바라지만 과연 자신이 죽기 전에 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어떻게든 시간을 끌든가 끝장을 봐야 했다. 헬써는 유능했다. 덕분에 상황을 파악하고 재빨리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흑마법사임을 완전히 드러내기로 결심했다.
“그래, 보여 주마. 어둠의 마나가 깨어나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콰콰콰!
헬써의 주위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블랙 캐논(Black Canon).”
강력한 흑마법이 펼쳐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내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의 얼굴엔 미소가 걸렸다.
“역시 그 사람 말이 맞았어. 백작가의 마법사들은 모두 흑마법사라더니.”
파공성을 내며 직선으로 쏘아지던 흑마법!
사내에게 도달하는 순간,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얀 벽이 만들어지더니 마치 흡수되는 양 헬써의 흑마법이 그대로 빨려 들려가지 않는가?
“홀리 라이트닝.”
콰지지직!
그리고 성스러운 빛을 뿜어내는 뇌전이 헬써에게 작렬했다. 헬써는 다급히 방어마법을 펼쳤지만 사내의 마법에 무참하게 깨졌다.
뇌전이 그대로 헬써의 몸을 뒤흔들었다.
“크악!”
바닥에 쓰러진 헬써가 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렸다.
온몸에서 피어오르던 검은 아지랑이는 사라졌다. 하지만 몸속에 남아 있던 마나는 한 줌도 남기지 않고 모두 뇌전에 타서 사라졌다.
헬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이건, 신성마법?”
흑마법과 상극!
신성마법만이 이럴 수 있다. 헬써는 고개를 들어 보았다. 사내가 냉막하게 말했다.
“소개하지. 데이비드 자작가의 신성마법사 홀렌이다.”
* * *
“예상보다 늦었군.”
백작가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인영.
탐스럽게 자란 금발은 봉두난발되어 있었고, 입고 있던 옷은 거지꼴이었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거지의 그것이 아니었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오만함이 담겨 있었다.
아틸라!
그가 드디어 백작가에 귀환했다.
“역시 너도 몸이 정상이 아니었구나.”
“훗.”
아틸라의 뒤를 따라오는 노인이 있었다.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그에게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차고 넘쳤다.
바스티안이었다. 바스티안은 끝내 아틸라에게 굴복했다. 아틸라의 공포는 천하의 바스티안을 굴복케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한낱 노예가 되지는 않았다.
그도 자존심이 있었다. 비록 아틸라에겐 패했지만 제국을 떨게 했던 살인마 바스티안이 아닌가.
다행히 아틸라도 그런 부분에 대해선 관대했다.
강자는 인정해 줘야 했다.
바스티안은 아틸라가 인정한 몇 안 되는 강자였다.
“나라고 무적인 줄 아나.”
“낄낄낄낄. 그 괴상한 흑마법을 보면 무적과 다름없던데?”
“흑마법은 내 비장의 수다. 넌 그걸 꺼내 들게 만들 정도로 강했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라.”
“오만하군.”
바스티안은 아틸라의 칭찬에 기분이 나쁘진 않은 듯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