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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아틸라 1권(21화)
8. 흑마법사 색출(3)


사실 아틸라는 더 일찍 백작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지 못한 이유는 바스티안을 굴복시키고 나서 심력 소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틸라는 바스티안뿐만 아니라 두 명을 더 데리고 나왔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현재 능력을 초월한 힘을 썼다.
근육이 모조리 찢어지고 뇌신경이 끊기고 몸조차 가눌 수 없는 빈사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틸라에겐 흑마법이 있었다.
바로 흡혈의 술!
사람들이 보양을 한다고 왜 짐승의 피를 먹는가?
짐승의 피에는 강렬한 생명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피를 마신다면 효과는 미비하다. 피에 담긴 생명력을 아주 일부만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틸라의 흡혈의 술은 달랐다.
피에 담겨 있는 생명력을 모조리 흡수할 수 있었다.
하늘 감옥 근처에 있던 짐승들의 씨가 말랐다.
아틸라가 회복을 위해 모조리 잡아들였기 때문이다.
‘바스티안의 싸움으로 인해 한 단계 진보했다.’
아틸라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우선 뇌전에 있었다.
몸에 담겨 있던 뇌전의 삼십 퍼센트 가까이 끌어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것 역시 체력을 기르는 것처럼 싸우면서 한계가 부서지다 보니 그 그릇이 더욱 넓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결을 쪼갤 수 있다는 사실!
지금껏 아틸라는 일격의 파괴력에만 의존했다.
그의 파괴력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로마 영웅 에이시우스도 별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자신의 파괴력을 막아 내는 존재를 만났다. 그리고 앞으로 일격을 막아 낼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 바스티안을 하늘 감옥에 가둔 인물만 생각해도 그렇지 않은가.
하나 극강의 파괴력이 실린 일격을 결에다 작렬시킨다면 말이 달라진다.
세상의 그 어떤 것이 아틸라의 일격을 막겠는가!
이로써 아틸라는 실력이 진보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부분만큼은 과거 아틸라가 가진 능력보다 훨씬 뛰어난 부분이었다.
이번 하늘 감옥의 여정은 상당히 이득이 많았다.
“잠깐.”
백작가로 부지런히 걷던 아틸라가 걸음을 멈췄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영주성 외곽은 농노들이 많아서 조금은 암울한 분위기였다. 그나마 풍족한 백작가의 사정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서 이곳만큼 살 만한 곳이 없다.
영주성 인근, 저택 근처는 늘 삶의 활력이 넘쳤다.
한데…….
이상했다.
상인들은 가게를 닫고 나오지 않고 있었다. 거리에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치안대만이 부지런히 순찰하고 있었다.
을씨년스런 분위기였다.
“허. 내가 없는 십 년 동안 바츨라브 백작가가 망했나?”
“망했지.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망한 것은 바츨라브 가문이다. 영지 전체가 이리되지는 않았었다.
아틸라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자신이 없는 사이 변고가 생겼다.
“내가 너무 안일했군.”
아틸라는 표정을 굳혔다. 의아한 표정의 바스티안이 뭐라 묻기도 전에 아틸라는 벌써 백작가로 들어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쾅!
던커스는 책상을 강하게 쳤다.
상황이 이리 악화일로에 빠질 줄은 몰랐다.
갑작스런 데이비드 자작 가문의 방문.
그리고 이어진 흑마법사 색출 작업!
색출 작업에 앞장선 홀렌을 떠올린 던커스의 이빨이 갈렸다.
“홀렌……!”
홀렌은 신성마법사였다.
본래 신성마법사라는 존재는 없었다. 한데 몇 십 년 전부터 신관들이 신성력을 이용해 마법을 흉내 내어 마물들을 처치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본래 신관은 기도와 헌신, 믿음으로 신성력을 얻는다.
그리고 그 신성력으로 환자들을 치유하거나 종교를 전도한다. 그런데 그 신성력으로 마물을 퇴치하는 신관들이 생겼다. 갈수록 그들의 능력은 발전되고 개선되었다.
이후로 그들을 신성마법사라고 불렀다.
마나가 아닌 신성력이 중심이 된 마법사!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성마법사는 어엿한 하나의 계층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신관도, 마법사도 아닌 중간의 그들은 사막의 야만족들과의 전쟁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사막의 잔혹하고 엽기적인 주술!
신력을 제외한 초자연적인 것들을 부정하는 신성력과는 상극이다.
자연 신성마법사들의 능력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홀렌은 그런 점에서 데이비드 자작가에 상주하고 있는 마법사였다. 데이비드 자작가가 위치한 국경에선 사막의 부족들과 크고 작은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홀렌이 갑작스레 백작가를 방문했다.
그리고는 흑마법사 색출을 천명했다.
던커스를 포함한 열한 명의 마법사가 모조리 수사 대상이었다.
보통은 타 가문이 백작가의 행사에 간섭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일은 전혀 별개의 일이었다.
흑마법사는 대륙 전체의 공적!
만약 흑마법사의 흔적이 발견된다면 권력, 힘, 재력은 모두 휴지 조각이 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바츨라브 백작가의 명성은 지금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오히려 백작가에 누가 될지도 모른다.
백작가의 마법사들이 알고 보니 흑마법사들이더라!
세상의 호사가들이 이 이야기를 떠벌릴 것이고, 백작가는 비난을 면치 못하리라.
아틸라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런 일이 터져 던커스는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 던커스 역시 조사를 받고 있다.
자연히 이공자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없었다.
최고 권력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수사를 어찌할 방도가 없다.
“내일까지 방도를 찾아야 해.”
내일 백작가의 모든 사람들이 모인다.
데이비드 자작가의 사람들도 모인다. 뿐만 아니라 타 영지에서 온 공증인들 역시 모인다. 그 자리에서 모든 전말이 밝혀지리라.
홀렌은 모든 이가 모인 곳에서 진실을 밝힐 예정이었다.
던커스는 알면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것이 당연한 절차고, 법도였으니까.
그리고…….
날이 밝았다.



9. 너에게 맡기겠다(1)


“백작가의 마법사들이 흑마법사라니, 난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홀렌.”
“타쿠스 경, 그건 사실입니다. 던커스의 수제자가 흑마법사임을 제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니 더 이상의 의심은 필요가 없을 겁니다.”
홀렌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타쿠스의 말을 받았다.
타쿠스.
역공의 기사단의 기사단장.
평소 기사도를 부르짖으며 ‘만인의 기사’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인품이나 능력 면에서 모두 뛰어난 기사였다.
홀렌은 일부러 이곳에 타쿠스를 데려왔다.
데이비드 자작가에는 뛰어난 기사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타쿠스를 데려온 이유는 분명했다.
타쿠스는 본래 공명정대하고 인격적으로 아주 훌륭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타쿠스가 백작가의 마법사들이 흑마법사임을 두 눈으로 보고 인정하고, 그리고 분개한다면……!
모든 일은 일사천리다.
‘정말 그 사람의 말이 맞았어. 바츨라브 백작가의 마법사들이 흑마법사라니.’
이건 충격적인 사실이다.
남부를 지배하는 철옹성의 가문.
그곳의 마법사들이 흑마법사들이다!
지금껏 조사한 바에 의하면 흑마법사임이 틀림이 없다.
심지어 헬써가 흑마법을 써 대는 꼴을 직접 보지 않았던가.
‘이젠 데이비드 자작가에서 머무르지 않아도 되겠군.’
홀렌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
흑마법사를 색출하여 제거하는 일은 엄청난 공적이다.
비단 제국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가 엄지를 치켜세워 줄 만한 공이다.
이로써 홀렌은 데이비드 자작가를 떠나 중앙 정계로 갈 수도 있다.
배경이 없어 6서클이라는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 황실마법단에 들지 못함을 한탄스럽게 여긴 지 수십 년이다.
드디어 황실로 갈 수 있다.
마법사들 최대의 명예라 할 수 있는 황실마법단으로!
홀렌은 흥분되는 가슴을 부여잡고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수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장소가 이곳밖에 없었다.
“이곳에 모이신 귀빈들께 감사드립니다.”
홀렌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이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일단 바츨라브 백작가의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또한 데이비드 자작 가문의 역공의 기사단의 핵심인물들이 앉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타 가문에서 온 공증인들도 한없이 많았다.
흑마법사가 이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저는 믿기 힘든 사실을 접했습니다. 대 바츨라브 백작가의 마법사가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말이죠.”
쿵!
“어찌 증명할 것이오, 홀렌!”
로그리스가 책상을 치며 일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에 향했다.
“증명은 이제부터 시작할 겁니다. 로그리스 경.”
홀렌은 당황하지 않고 받아쳤다. 그렇다. 지금 이 자리가 흑마법사들을 색출하고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던가.
로그리스는 분개했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던커스와 마법사들이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하지만 한배를 탄 입장이었다. 한 주군을 섬기는 동료였다. 힘이 없어, 능력이 부족해 백작가가 물어 뜯김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로그리스에게는 강함에 대한 열망이 컸다.
흑마법은 파괴의 상징!
그것으로 가문을 지킬 수만 있다면 무엇을 가리겠는가!
“용의자들은 모두 중앙으로 나와 주십시오.”
던커스를 제외한 열 명의 마법사가 머뭇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들은 낙담한 표정이었다. 던커스는 죽을 길을 향해 걸어 나가는 제자들을 보며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어찌해야 하는가!
던커스는 이번 수사에서 제외되었다. 조사한 결과 던커스가 흑마법사로 의심되는 낌새는 전혀 나오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던커스의 위치는 공고했다. 바츨라브 백작가의 최강의 마법사!
동시에 그는 황실 아카데미 수석 졸업의 명예를 갖고 있었다. 그를 의심할 여지는 부족했다. 하나 던커스의 제자들은 달랐다. 조사하면 할수록 그들이 흑마법을 익혔다는 증거가 튀어나왔다.
현재 드러난 정황을 보건대, 열 명의 마법사들이 흑마법사임은 분명했다.
“신성마법사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백색의 로브를 입은 신성마법사 열 명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들의 뒤로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신성마법사들의 신성력의 증표였다.
그들은 홀렌을 따르는 신성마법사였다. 흑마법사 색출에 그들만큼의 적임자가 없다.
신성마법사가 걸어 나오자 헬써를 포함한 마법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던커스도 마찬가지였다. 신성마법사들이 일제히 신성력으로 그들을 공격한다면 몸속에 도사리고 있는 검은 마나가 몸부림친다.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된다.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말이다.
“모두들 준비하시오.”
홀렌의 무뚝뚝한 음성은 마치 사형선고를 내리는 사자(使者)의 목소리 같았다.
‘참아라. 모두 참아!’
던커스의 메시지마법이 그들에게 전해졌다.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참을 수밖에 없다.
신성력이 몸을 모조리 갉아먹더라도 참아야 했다. 몸속에 꿈틀거리는 검은 마나를 억누르고 참아야 했다. 그 방법밖에 없었다.
하나 지독한 고통이 따른다.
신성력이 몸에 작렬하는 순간 생살을 뜨거운 불로 태우는 극악의 고통이 따른다.
던커스는 울분을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