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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아틸라 1권(22화)
9. 너에게 맡기겠다(2)
“시작하시오.”
우우우우웅!
신성마법사들 주위로 기파가 퍼져나갔다.
하얀 섬광이 순간적으로 폭사되며 헬써를 비롯한 마법사들에게 덮쳐들었다. 순간 그들의 얼굴이 창백해져 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섬광이 그들을 조르는 듯이 감싸도 꿈쩍하지 않았다.
던커스는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았다.
저들은 전신을 낭자하는 극통을 참고 있다.
내색하지는 않더라도 극통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리라.
“크으윽…….”
그때였다.
누군가 버티지 못하고 신음성을 내뱉었다.
동시에 강렬한 마나의 파동이 요동쳤다. 던커스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홀렌은 여전히 냉막한 표정이었다.
“신성력을 더 일으켜라!”
홀렌의 외침이 천둥처럼 울렸다.
“끄……끄어억.”
한 마법사가 고통에 겨운 신음을 토했다.
던커스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한계다.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한다. 던커스의 지팡이에 강력한 마나가 응집되기 시작했다.
던커스의 시선이 홀렌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눈가가 살기로 가득 찼다.
‘일거에 모두 다!’
그때였다.
멈추어라, 던커스.
머릿속에 아틸라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순간 마나를 응집하던 던커스는 정신을 차렸다.
저벅저벅.
연무장에 발걸음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연무장은 갑작스레 숨 막힐 듯한 침묵이 흘렀다.
연무장 안으로 누군가 들어서고 있었다.
봉두난발처럼 헤쳐진 금발.
그 아래 매섭게 빛나는 흉흉한 눈빛.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칠 척의 노인.
두 사람의 등장은 갑작스레 분위기를 바꾸었다. 흑마법사 색출에 달아오르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 버리는 듯했다.
아틸라!
아틸라에게서 뿜어지는 박력이 분위기를 짓눌렀다.
저벅저벅.
아틸라는 연무장 중앙을 지났다. 그의 눈에 신성마법사들과 흑마법사들이 담겼다. 그리고 상석에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던커스가 들어왔다.
아틸라는 말없이 상석에 앉았다.
“주군…….”
던커스와 로그리스는 죽다 살아난 사람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그들이 아는 자신의 주군은 못 하는 일이 없다. 아마 이 일을 어떻게든 극복해 낼 수 있으리라, 그런 믿음에 절로 마음이 놓인 것이다.
하지만 아틸라는 그런 그들의 생각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계속하시오.”
“주…… 주군!”
“내 영지에, 나의 가문에 흑마법사가 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소. 어서 색출 작업을 계속하시오.”
“주군!”
그토록 무심할 수 있을까!
처절하게 부르짖는 던커스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전혀 아무런 감흥 없는 얼굴로 마법사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당황한 건 로그리스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룩스도 당황했다.
‘무슨 속셈인가, 이공자?’
처음 데이비드 자작 가문이 방문했을 때만 해도 경황이 없었다. 평소 외무 일을 맡아 하면서 종종 얼굴을 마주한 적은 있었지만 홀렌을 직접 본 일은 처음이었다.
홀렌은 백작가에 흑마법사들이 있다고 했다.
룩스는 그런 사실을 믿기 어려웠으나 그건 기회였다. 비록 몸을 움츠리고 있었지만 그 역시 백작가의 패권을 다투던 늙은 뱀!
그의 머리가 부산하게 돌아갔다.
이공자의 편에 든 마법사들이 흑마법사임이 밝혀진다면?
그건 엄청난 타격이다.
단 한 방에 이공자를 무너뜨릴 수 있는 비수가 될 터였다.
그래서 룩스는 홀렌을 지지했다. 홀렌이 백작가에서 활개 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작품이었다.
다른 가문의 수많은 공증인들을 부른 사람 또한 자신이었다.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이공자가 무너진다!
그것을 떠올리자 룩스는 희열을 느꼈다.
그런데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본래라면 이공자가 마법사들을 지켜야만 했다.
마법사들은 이공자의 전력 중에 팔 할을 차지한다. 로그리스를 필두로 한 기사단의 전력은 사실상 볼품없다. 정식기사의 수도 적을 뿐더러 대부분이 기사수련생이니까.
마법사들을 잃는다면 이공자의 힘은 한없이 약해진다. 그래서 어떻게든 마법사를 지키리라 예상했건만…….
“커, 크아아악!”
우우우우!
그때, 한 마법사가 괴성을 질렀다. 동시에 마법사의 주위로 검은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솟구쳤다. 마치 벌레처럼 끈적끈적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에 연무장에 모인 사람들의 두 눈이 찢어졌다.
흑마법!
대륙 전체가 치를 떠는 흑마법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끄아아악! 이노오옴!”
고통에 신음하던 흑마법사가 두 눈을 치켜떴다. 동시에 그의 주위로 어둠의 마나가 강맹하게 소용돌이쳤다.
“막아……!”
다급해진 홀렌이 소리쳤다.
하나 그의 말은 한발 늦었다. 흑마법사가 빠른 것이 아니었다.
“커…… 커어어억!”
붉은 피가 허공을 수놓았다.
가슴팍이 갈라지며 갈비뼈가 박살난 흑마법사는 원망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대로 죽었다.
“주, 주구우운!”
던커스가 충혈된 눈으로 아틸라를 부르짖었다.
어느새 아틸라의 도끼가 흑마법사의 목숨을 앗아 갔던 것이다. 던커스는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로그리스도 마찬가지였다.
‘꼬리를 자르는구나……!’
지켜보던 룩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공자를 위기에 처한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있었다. 흑마법사를 지키는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 내치는 것이다. 자신과 관련 없는 존재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룩스는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자신의 전력의 팔 할을 이리 쉽게 내친단 말인가.
아틸라는 무심한 표정이었다.
던커스의 외침도, 로그리스의 충격에 찬 눈빛도 신경 쓰지 않았다.
푸아악!
“커어억!”
또 다른 흑마법사가 버티지 못하고 어둠의 마나를 드러내자, 동시에 아틸라의 배틀액스가 허공을 갈랐다.
아틸라는 직접 흑마법사를 처단하고 있었다.
던커스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자신의 제자들이…… 자신의 주군에게 죽어 간다.
지켜 주지 못하고…….
이럴 바에야! 던커스의 두 눈에 독기에 번들거렸다.
던커스! 난 너의 주인이다!
아틸라의 목소리가 던커스를 향했다.
‘주군! 어찌…… 어찌 내 제자들을 내친단 말입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나는 백작가를 짊어 들고 가야 할 존재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당연한 이치다.
‘이것이 어찌 당연하단 말입니까.’
나를 이해하다오.
아틸라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던커스를 쳐다보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흑마법사를 하나, 하나 처단했다.
어느새 연무장에 핏물이 흥건하게 흘렀다.
지독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열 명.
열 명의 흑마법사가 원망에 찬 눈길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들의 주군이라 믿었던 아틸라에게 죽음을 맞이하며.
흑마법사 색출 작업은 끝났다.
홀렌은 열 명의 흑마법사를 모두 다 색출해 내는 큰 공적을 세웠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일어서서 박수를 치지 못했다.
억눌린 듯한 침묵.
그때 아틸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륙에서 흑마법사는 용서받을 수 없소. 주군 된 도리로서, 백작가의 주인으로서 나 스스로가 그들을 처단했소. 이자들은 천하의 역도요.”
던커스는 주먹을 쥐었다.
도저히 아틸라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지겠소. 흑마법사들의 시신은 갈기갈기 찢겨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고, 그들의 가족뿐만 아니라 일가친척을 모조리 잡아들여 참형에 처할 것이오.”
“주군!”
로그리스가 아틸라를 부르짖었다.
원통하게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들의 가족마저 어찌하는가! 이건 아니다. 로그리스는 자신의 주군을 믿었다. 그래서 흑마법사를 처단할 때도 그저 참고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니다.
“그리고! 흑마법사들을 양성해 낸 수석마법사 던커스의 작위를 박탈하고, 그의 재산을 압수할 것이며, 그의 마나를 봉인한 채 영지의 감옥에 수감하겠소.”
쿵!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고스 파벌을 숙청으로 던커스는 아틸라의 심복임이 만천하에 알려진 상황이다. 그런데 스스로 내치고 있었다.
짝짝짝짝.
누군가 박수를 쳤다. 그러자 주위에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훌륭한 결단이오. 이공자.”
타쿠스 기사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훌륭한 결단이었다.
사사로움에 치우지지 않고 공과 사를 구별한 것이 아닌가.
그것이 로그리스와 던커스 등 아틸라를 따르는 이에게 충격일지 몰라도, 이것은 공명정대하고 과감한 결단이었다.
‘이런……!’
룩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모두가 아틸라의 결단에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모두가 아틸라를 지탄해야 마땅하다. 오히려 상황이 정반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룩스는 이내 아쉬움을 털어 냈다.
마법사들은 모두 죽었다.
던커스도 내쳐졌다.
‘해냈어. 이 정도면 절반의 성공이야.’
이로써 반절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정말 과감하군, 이공자. 대단해. 많이 컸어.’
바츨라브 백작가 사람들이 모인 곳.
그곳에서 한 인영이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