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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라이프 1권(6화)
chapter 1(4)
판타지라이프를 오랫동안 해 왔던 박지민은 ‘낮은 확률’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그렇게 낮은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0.5%의 확률이라도 계속해서 10번씩 터지기도 하고 50%의 확률이라고 해도 10번 연속 실패할 수도 있다.
박지민은 절대로 확률을 믿지 않았다.
만약 식당을 차린다면?
식당을 차려서 음식을 만들었는데 100명 중 대여섯 명, 많게는 십수 명이 병원에 실려 가게 된다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해도 러시안룰렛을 하는 기분으로 맛볼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누구나 자신의 몸은 소중한 법이다.
만약 그런 일이 계속 벌어진다면 식당이 망하는 건 둘째 치고 박지민은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말 것이다.
“음식은 보류!”
요리는 자기만 먹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어지간하면 만들지 말자.’
그는 어지간하면 다른 사람 요리를 먹자고 생각했다.
판타지라이프에서야 그냥 짜증나는 효과에 불과했지만, 현실에서는 다를 수 있었다.
‘데미지를 입으면 분명 아프겠지? 그리고 저주에 걸리면 힘들고 불편할 거야. 이젠 어지간한 고통이야 고통으로 느껴지지도 않겠지만…….’
어제 끔찍한 고통을 겪은 박지민은 어지간한 고통은 고통으로 여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일부러 고통스러운 길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지 않는가?
밖을 5분만 걸어 다녀도 먹을 곳들이 널려 있는데 위험한 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어쨌든 나는 뭐든지 할 수 있게 되었군!”
박지민은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엄청나게 많아지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공부는 안 해도 된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박지민은 그것에 많은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 매력을 느낀 것이다.
본래 박지민은 공부를 싫어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전교 1, 2위를 다툴 정도로 공부에 미쳐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공부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그의 괴짜 본능 때문이었다.
청개구리 본능이라고 해도 무방한 그 본능은 중학생 때부터 공부를 많이 하는 아이들을 보고 발동한 것이다.
초등학교 때에는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없기에 그것에 매력을 느껴서 열심히 공부하여 상위권에 올랐지만, 중학교 때부터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보이자 공부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남들이 다 하는 건 하기 싫다.’
그것이 바로 박지민으로 하여금 공부를 때려치우고 판타지라이프에 미치게 만든 원흉이며 판타지라이프 최고의 괴짜로 만든 원동력인 것이다.
괴짜 본능!
그것이 지금 박지민에게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뭐부터 할까. 히히히.”
박지민은 음침한 웃음을 지었다.
chapter 2(1)
판타지라이프를 서비스 하고 있는 (주)판타지라이프 본사.
그곳에는 난리가 나고 있었다.
캐릭터 하나가 게임상에 접속된 상태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데이터 하나 남지 않은 채로!
그것이 보통 캐릭터였다면 그 유저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초보 유저라면 그냥 나 몰라라 하거나 다른 캐릭터를 키울 때 적절한 보상을 해 주면 되는 일이었고, 중수나 고수 정도의 캐릭터라면 데이터를 새로 써서 삭제되기 이전의 캐릭터와 비슷한 것을 보상해 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삭제된 캐릭터는 초보도 중수도 고수도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다.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일이야!”
판타지라이프 사장이 책상을 주먹으로 있는 힘껏 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회의실에 모여 있는 직원들은 전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
“왜 레이나시스 캐릭터가 삭제되냐고! 서버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그래!”
레이나시스.
판타지라이프 최고의 괴짜라고 불리는 캐릭터.
남들이 하는 짓은 안 하고 남들이 안 하는 짓만 골라서 한 덕분에 엄청나게 유명해진 캐릭터였다. 판타지라이프 게임을 하면서 그 캐릭터의 이름을 모르는 유저는 없었고, 게임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유저라면 한 번씩 들어 봤던 이름이었다.
판타지라이프 역시 레이나시스가 이름을 날린 덕분에 매출이 올라서 흐뭇해했었다.
그렇다. 했었다.
“이런 젠장!”
레이나시스를 제멋대로 친구 추가 해 놓고 지내던 사람들은 캐릭터가 삭제된 것에 의문을 품었고, 그것에 대하여 문의를 했었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되었다.
그냥 삭제된 캐릭터라고 하면 될 것을 이렇게 답변한 것이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삭제된 캐릭터입니다.』
비정상적인!
그 단어가 문제가 되었다.
그 답변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현재에 이르러선 인터넷 전역에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그것뿐이면 다행이었다.
『판타지라이프, 해커에게 당하다!』
『유명한 유저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삭제가 되다!』
『판타지라이프의 서버 관리, 문제가 수면 밖으로 터져 나오다!』
판타지라이프의 서버 문제에 대해서까지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고, 주식의 가격은 쭉쭉 내려가고 있었다. 거기다가 유저들도 대거 빠져나가고 있었다.
캐릭터 하나가 삭제되어 일어난 일치고는 너무 스케일이 거대했다.
레이나시스가 엄청나게 유명한 캐릭터였다는 점도 있었지만 판타지라이프의 위치를 노리던 다른 게임들의 지원 사격이 더해지니 판타지라이프 측에는 재앙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서버 관리에 대한 문제가 계속 도마에 오르고 유저들이 계속 빠져나간다면 판타지라이프가 망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말을 해 봐! 말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란 말이야!”
“사장님! 그 캐릭터를 복구해서 다시 만들어 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캐릭터의 비정상적인 삭제에 대한 보상은 아이템을 적당한 것을 주면…….”
퍽!
직원 한 명이 용기 있게 일어나서 하는 말에 사장은 분을 참지 못하고 앞에 놓여 있는 서류를 직원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누가 그걸 생각 못해?! 근데 데이터가 다 사라졌잖아! 거기다가 일반 유저도 아니고 레이나시스야! 그거 스킬이랑 타이틀은 어떻게 복구할 건데?!”
그렇다.
지금 레이나시스 캐릭터는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데이터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뿐이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캐릭터들의 경우 스킬의 데이터들이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스킬들은 대충 복구해 주고 능력치들과 아이템만 완벽하게 복구해 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판타지라이프 측에서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레이나시스는 매우 큰 문제였다.
레이나시스의 특징은 스킬과 타이틀.
레이나시스를 복구하려면 그동안 레이나시스가 게임을 하면서 해 온 행동들까지 전부 복구를 해야 한다.
판타지라이프의 제일 큰 특징.
그것은 유저의 행동패턴에 따라 스킬이 합쳐지거나 나뉘거나 하면서 그 유저에 맞게 스킬이 진화한다. 그리고 레이나시스의 경우에는 온갖 괴행으로 인해 스킬들은 끊임없이 진화해 왔고, 그것은 5년 동안 계속된 일이었다.
아예 패턴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문제였다.
행동패턴에 맞게 복구를 해야 하는데, 박지민이 하도 괴상망측하게 플레이 하는 바람에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복구를 해도 기존의 레이나시스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될 게 뻔했다. 그리고 스킬들은 진화를 멈춘 채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할 게 빤했다. 스킬의 진화에는 그동안 해 온 행동들과 시간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니까.
거기다가 타이틀도 문제였다.
타이틀 역시 행동패턴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니까. 다른 게임처럼 어떤 몬스터를 잡거나 퀘스트를 한다고 얻는 그런 타이틀이 아니었다.
타이틀은 스킬과 똑같이 유저의 행동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합쳐지고, 나뉘고,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껍데기만 달랑 남아 있고 앞으로 진화 안 한다면?
그게 복구가 된다고 해도 판타지라이프를 과연 계속 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였다.
“…….”
직원 한 명이 용기 있게 나섰다가 가장 먼저 매를 맞는 것을 본 직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흐른 후 직원 중 한 명이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저기……. 그런데 레이나시스를 키우던 유저를 찾을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하죠?”
모두들 간과하고 있던 문제였다.
레이나시스에 대한 모든 정보가 삭제되었다.
동시에 레이나시스를 키우던 유저의 정보 역시 같이 삭제가 된 것이다.
캐릭터를 완벽하게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렇다면 뭔가 다른 방법으로 보상을 해 줘야 할 텐데 유저를 찾을 방법도 없었다.
“연락을 했을 거 아냐? 5년 동안 키운 건데?”
“아뇨. 연락은 아직까지도 오지 않았는데요…….”
침묵이 감돌았다.
5년 동안 난이도 높기로 유명한 판타지라이프, 그것도 전투 계열 스킬들과 비교해서 엄청난 난이도를 가지고 있는 생활 계열 스킬들을 전 서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캐릭터가 바로 레이나시스였다.
당연히 키우는 데 엄청난 노력이 들어갔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 레이나시스 캐릭터가 접속된 상태에서 완전히 데이터가 삭제되었는데 연락이 오지 않는다?
사장은 직원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순간 정신을 놓았다.
“…….”
“…….”
하지만 이윽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찾아.”
“예?”
“찾으라고!”
사장의 눈에선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찾아야 했다.
레이나시스를 대충 복구시켜 주든 현실에서 보상을 해 주든, 어찌 되었던 간에 일단 주인을 찾아야 했다.
“아악! 빌어먹을!”
그는 회의실을 나서며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회의가 있었던 다음 날.
『유명 캐릭터의 삭제. 하지만 나 몰라라 하는 그들!』
『레이나시스! 그는 왜 말이 없는가!』
기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하며 쓴 기사들이 올라왔다.
회의실에서 했던 대화 중 일부가 기자들 귀에 들어간 것이다.
거기다가 기자들의 상상력이 더해져 사실이 부풀기까지 했다.
회사 측에서 레이나시스를 키우던 유저에게 협박을 했다는 둥, 폭력을 휘둘렀다는 둥의 기사들이 인터넷에 떠돌자 사장은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했다.
* * *
판타지라이프 본사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시간.
서울에 있는 피시방에서도 난리가 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슈베르트 스미스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호텔에서 지내다가 홈페이지가 잘 있나 확인을 하기 위해 피시방에 들렀다.
그리고 홈페이지의 상태를 보자마자 노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홈페이지에 힘들게 올려놓았던 마법진들.
그것들이 하나같이 전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백지!
마법진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어떤 죽일 놈이야!”
슈베르트의 눈에 불이 활활 타올랐다.
눈앞에 범인이 있다면 갈기갈기 찢겨지고도 남았을 분노!
슈베르트의 눈에는 백지로 변해 버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저걸 올리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슈베르트가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했던 고생!
홈페이지를 만드는 법을 찾기 위해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피시방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어물어 간신히 만들고.
거기에 그림판을 이용해서 마법진을 그리다가 손에 쥐가 나기도 했으며, 스캔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그제야 부랴부랴 그림을 그려서 스캔으로 홈페이지에 마법진을 올려놓을 수 있었다.
슈베르트가 난생처음으로 만들어 본 홈페이지!
무엇이든지 처음에는 큰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
슈베르트는 고생고생하면서 몇 시간에 걸쳐 만든 홈페이지이기에 조금 어설퍼 보이긴 할지라도 매우 애착이 갔다.
그런데 그 홈페이지가 쑥대밭이 되어 버리다니?
거기다가 그뿐이랴.
제자를 찾기 위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최초로 시험해 본 것이 슈베르트의 눈에 보이는 홈페이지였다.
‘내가 편히 쉬는 게 그렇게 맘에 안 들었나!’
슈베르트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제자 찾는 문제로 고민하는 마법사들에게 한줄기 빛이 될 아이디어였다.
늙은 몸을 편히 쉴 수 있게 할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가 망쳐졌다.
“어떤 죽일 놈이 내 앞날에 똥칠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빠드득!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