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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라이프 1권(7화)
chapter 2(2)


하지만 슈베르트만 이를 갈고 있는 건 아니었다.
박지민, 판타지라이프, 슈베르트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 원흉인 이지승 역시 이를 갈고 있었던 것이다.
“내 바이러스 어디 갔어!”
쾅!
이지승은 키보드를 부술 기세로 벽면에 집어 던졌다.
그 바이러스는 이지승에게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슈베르트가 홈페이지를 생각하는 마음과 이지승이 바이러스를 생각하는 마음에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지승이 난생처음 시도해 본 새로운 타입의 바이러스였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바이러스를 결합한 신개념의 바이러스!
이지승은 바이러스를 인터넷에 풀어 놓고 그것의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하루 동안이나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그 바이러스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지승은 처음에 세계 어디에도 정부 관련 사이트들이 다운되었다는 이야기가 없자 바이러스가 세계를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함정을 깔고 있나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점점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공격을 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흔적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곳곳을 밤을 새워 가며 뒤졌지만 바이러스가 깔아 놓은 함정들만 보일 뿐 바이러스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가 그뿐이랴?
정부 사이트에는 아예 접근한 것 같지도 않았다.
증발!
바이러스가 증발해 버린 것이다.
“아아악!”
물가 때문에 화풀이로 보냈던 바이러스가 도리어 지금 이지승에게 화를 얹어 주고 있었다.
지금 이지승은 고혈압으로 당장 억 하면서 뒷목을 잡고 쓰러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냐고!”
이지승의 눈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어떤 죽일 놈이 내 바이러스를 증발시켰는지 모르겠지만!”
꽈아악.
이지승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 그는 이지승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해커 수라였다.
“나와 원한을 맺으면 평생 발 뻗고 못 잔다는 걸 똑똑히 알려 주마!”


chapter 3(1)


“이야호! 거의 다 됐다!”
박지민은 집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금 그의 앞에는 멋들어진 디자인의 옷들이 있었다.
어지간한 명품보다도 품질이 좋아 보이는 옷들.
그것들은 전부 그가 천의 목소리를 이용해서 만든 것들이었다.
박지민은 힘을 온전히 다 사용하기 위해 훈련을 함과 동시에 생활 스킬을 파고들면서 여러 가지 아이템을 만들곤 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 중 하나가 바로 그의 눈앞에 쌓여 있는 옷들이었다.
“아. 힘들었다.”
박지민은 힘들었다고 말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괴물 같은 수치의 손재주는 천의 목소리에서도 어김없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보통 의상을 만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 절차가 있었다. 그리고 여러 도구들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렇지 않고선 제대로 된 옷을 만들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483이라는 괴물 같은 수치의 손재주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입을 만한 디자인을 찾기 위해서 백화점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들을 머릿속에 잘 떠올려 보고 집에 와서 생활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재료?
옷감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이 발달했기 때문에 그냥 주문만 하면 됐던 것이다.
돈?
그것은 부모님이 남겨 주신 유산으로 해결이 되었다.
옷감이 있는 이상 옷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른 도구 따위 필요 없이 가위와 바늘, 실만 있으면 옷 한 벌이 뚝딱 하고 나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천의 목소리를 사용하며 옷을 만들기를 이틀. 그 결과가 바로 그의 눈앞에 쌓여 있는 옷들이었다.
양복, 티셔츠, 청바지, 점퍼, 신발, 목도리, 모자 등.
수십 벌의 옷들이었다.
이틀 동안 49벌.
혼자서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숫자였다.
게다가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괴물 같은 수치의 손재주는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공장에서 나오는 것 이상으로 정교한 것들이 완성되었다.
“후후후.”
박지민은 그것들을 쳐다보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원거리 공격 내성, 근접 공격 내성, 마법 공격 내성, 능력치 증가 등등. 옷들마다 골고루 붙었다.’
그가 만든 옷들에는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부 특별한 능력치가 붙어 있었다. 게임에서의 장비 아이템처럼 방어력이 붙은 것은 물론이고 천의 목소리와 장인의 혼의 효과로 인하여 능력치 증가가 랜덤하게 붙었다.
거기다가 원거리 공격 내성을 가진 옷이 6벌, 근접 공격 내성을 가진 옷이 8벌이나 되었다.
‘흐흐. 공격 내성 효과는 의외로 잘 안 나오는 건데, 꽤 잘 나왔네.’
그는 음침하게 웃었다.
‘근데 마법 공격 내성은 필요 없는데.’
박지민은 마법 공격 내성 효과가 붙은 옷들을 떠올리며 툴툴거렸다.
판타지라이프 내에서는 마법 공격 내성이 매우 쓸모 있는 옵션이었다. 판타지라이프의 몬스터들을 보면 100레벨 대에 가끔 마법을 쓰는 녀석들이 보이고, 200레벨 대에는 대부분이 마법을 쓰는 것을 볼 수 있으며, 300레벨 이상에서는 토 나올 정도로 강력한 마법들을 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몬스터들이 물리 공격보다 마법 공격이 데미지가 더 강한 것을 감안하자면 마법 공격 내성이 다른 공격 내성보다도 더 필요한 옵션이었다.
하지만 현실엔 몬스터가 없었다.
마법을 쓰는 존재가 있어야 마법 공격 내성도 빛을 발하는 법!
총을 쏘고 미사일을 날리는 세상이 아니던가.
‘현실에서 마법 공격이 있긴 한가?’
박지민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얼마 전 TV에서 방영했던 드라마를 생각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로 기를 사용하는 무인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였는데, 부적을 그려 주술을 사용하는 장면들도 있었다.
‘진짜 그런 게 있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뭐, 실제로 있다 쳐도 마법 공격 내성은 필요가 없지.’
아이템 효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이 쓰이는가’였다.
특정 능력치를 40을 올려 주든 50을 올려 주든 그 능력치가 사용하는 능력치가 아니라면 장식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원거리 공격 내성 효과가 잔뜩 붙어 있어도 원거리 공격을 자주 맞는 게 아니라면 쓸모가 없는 법!
박지민은 가장 필요한 공격 내성 효과를 근접 공격 내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총을 생각하면 원거리 공격 내성이겠지만 대한민국은 총을 못 들고 다니지. 가장 필요한 건 근접 공격 내성이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제발 근접 공격 내성이나 힘, 손재주 능력치 증가 옵션이 나와 다오.’
“능력치 창.”
타이틀을 클릭하자 주르륵 나오는 목록들!
그는 지금 현재 자신이 장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 최고의 장인 ―
생활 계열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
당신의 능력에 경의를 표하며 최고의 칭호를 내립니다.
전투 계열 스킬 - 1
생활 계열 스킬 + 1
생산 계열 스킬 성공 확률 +5%∼10%
창조 계열 스킬 성공 시 조금 더 좋은 능력치가 나옵니다.
잡기 계열 스킬 효과 + 5∼10%
― 전 서버에서 한 명만 가질 수 있는 타이틀입니다.
― 전 서버 중 최고 수준의 생활 스킬을 가진 유저에게만 지급되는 타이틀입니다.
― 타이틀 보유자가 최고 수준의 생활 스킬을 가진 유저가 아니게 될 경우 타이틀이 삭제되고 새롭게 최고 수준으로 오른 유저에게 타이틀이 생성됩니다.

“후우.”
생활 계열 스킬에 보너스를 주는 타이틀!
그가 앞으로 할 작업엔 꼭 필요한 것이었다.
박지민은 눈앞의 옷들을 하나하나 들어 올리면서 중얼거렸다.
“채집.”
[실패하셨습니다.]
펑.
“아오! 젠장!”
작은 폭발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서 방을 어지럽힌 옷!
방금 전까지 옷이었던 것은 찢어진 천 쪼가리들로 변해서 방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아, 젠장! 왜 채집은 생산이 아닌 거야!”
박지민은 판타지라이프를 하면서 말했던 불평을 현실에서도 소리쳤다.
채집.
그것은 잡기 계열에 들어가는 스킬이었다.
잡기라는 것은 생산과 창조에 들어가지 못하는 생활 스킬들을 뜻했는데, 판타지라이프에서 생산과 창조의 기준이란 간단했다.
생산은 기존 데이터에 있는 것을 만드는 것.
창조는 기존 데이터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것.
판타지라이프에서는 한 번 이상 게임에서 출현한 것을 그대로 데이터에 기록해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 스킬의 경험치를 올리기 위해선 데이터에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을 만들어야만 했다.
물론 완전히 새로운 것만 써서 스킬을 올려야 한다면 게임의 난이도가 엄청나게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 캐릭터 기준으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을 하도록 했다.
그래도 일정 수치 이상 올리면 올리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미 출현했던 것들을 다 사용해서 올린 후에는 새로운 것들을 직접 만들어야 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들을 잘 만드는 사람들조차도 토가 나올 정도의 수련치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 계열 스킬들 중에서도 천대받기 일쑤였던 것이 바로 창조 계열이었다.
하지만 박지민은 사람들이 관심을 안 보이자 오히려 그쪽에 파고들었고, 그리고 그의 특이한 플레이로 인해 당시 익히고 있었던 창조 계열 스킬이었던 작곡, 설계가 생산 스킬과 합쳐지게 되었다.
금속 다루기, 식물 다루기, 음유시인의 길, 천의 목소리, 마법 요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들은 생산과 창조 계열 둘 다 들어가 있어서 보너스 역시 더블로 받았다.
하지만 채집은 박지민이 게임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변형이 없었고 잡기 계열에 들어가 있는 덕분에 그의 타이틀로 인한 성공률 증가 보너스를 받지 못 했었다.
거기다가 성공률도 낮아서 재료를 추출하려는 것이 터지는 것은 부지기수에다가 더 이상 채집을 시도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받기가 일쑤.
그때마다 박지민이 항상 소리치던 말은 똑같았다.

『왜 채집이 생산이 아니냐고!』

그래서 고객센터에 보내 보기도 했었다.

『왜 채집이 생산이 아닙니까?』

그러자 채집이 생산이 아닌 이유에 대해 3페이지 분량으로 설명이 왔다. 그것도 매우 논리정연하게.
그것을 본 박지민은 역시 3페이지 분량으로 그에 대한 반박을 보냈었다.
그렇게 3페이지 분량의 말싸움이 일어나길 몇 차례.
결국 먼저 포기한 것은 박지민이었다.
오랫동안 고객들과의 말싸움으로 단련된 그들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졌습니다. 채집 확률이나 올려 주십시오.』

하지만 그것도 거절.
하지만 채집 확률은 그도 포기할 수 없었다.
하루에 수백 번 실패하고 나면 열이 뻗쳐서 잠을 못 이룬 것이 몇 번이던가?

『생산 계열 스킬보다 채집의 확률이 훨씬 더 낮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판타지라이프 측에서는 정상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하지만 그들이 박지민의 눈앞에 있는 풍경을 보고도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썅! 이게 정상이라고? 지금 나랑 장난해?”
그는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소리를 질렀다.
박지민의 앞에는 수십 벌의 옷이 쌓여 있었다.
그렇다.
쌓여 있었다.
과거형이다.
방 안에는 정신병자가 와서 옷들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난도질하고 뿌려 놓은 것처럼 찢어진 옷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실뭉치의 형태로 뭉쳐 있는 것은 달랑 넷.
“49벌 중 성공한 게 넷이라고?”
어이가 없었다.
박지민이 이틀간 만든 옷이 49벌이었다.
그런데 그게 5분도 안 돼서 4벌을 제외하고 전부 쓰레기로 변해 버렸다.
그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판타지라이프에서야 많이 겪어 봤지만, 현실에서 겪어 보니 뭔가 다른 느낌이었던 것이다.
게임에서야 재료 모아서 뚝딱 만들고 뚝딱 채집해서 특별한 능력이 부여된 재료를 얻는 게 일상화되어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직접 가위질을 하고 바느질을 해서 만든 옷들이 순식간에 천으로 만든 옷이 아니라 천으로 만든 쓰레기로 변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짜증을 불러일으키기에 매우 충분했다.
이틀 동안이나 시간을 내서 만든 것들이라면 더더욱!
‘판타지라이프 본사로 가서 깽판 한번 쳐 봐? 채집 성공률 좀 늘리라고?’
판타지라이프에 레이나시스 캐릭터가 있을 시절에조차 하지 않았던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기서 패치를 한다고 해도 가지고 있는 채집의 효과가 증가하는 것도 아닌데 쓸데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뭐. 레이나시스 캐릭터도 사라졌겠다, 이제 거기랑 연관될 일도 없겠지.’
박지민은 레이나시스 캐릭터의 능력을 얻고 며칠 후 게임에 다시 접속해 보았었다.
그리고 깔끔하게 지워져 있던 캐릭터를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었지만 그는 판타지라이프 본사에 그 어떠한 항의도 하지 않았다.
“게임 캐릭터 능력이 나한테 왔는데 항의를 왜 해?”
라고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판타지라이프 측에 어떤 말을 한 것도 아니어서 판타지라이프는 박지민을 찾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쏟고 있었다.
이기적인 성격의 박지민은 자기 자신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그 무관심이 판타지라이프 측으로 하여금 그를 찾아 헤매게 만들고 있었다.
박지민이 방 안을 정리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