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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라이프 1권(9화)
chapter 3(3)
“좋습니다! 만나서 계약서를 쓰죠!”
―알겠습니다. 만나는 위치는…….
“제가 사는 곳이 서울의…….”
박지민은 자신이 사는 곳 근처에 있는 카페를 말해 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내 꿈이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다!’
꿈!
박지민은 그것이 이루어지려 하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박지민의 꿈은 간단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을 최고의 나라로 만드는 것?
애국심은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꼭 자신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일을 할 사람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이기적이라면서 손가락질할 생각이었지만 박지민의 뇌에는 그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최고의 기업을 일궈 내는 것?
그럴 생각 또한 전혀 없었다.
박지민이 돈을 좋아하긴 했다.
그리고 구두쇠이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돈을 굴리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돈을 버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평생 검소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건 아니었고 어느 정도 돈을 가지고 살아가나 엄청나게 많은 돈까지는 필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권력은?
그것 역시 박지민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약간은 탐이 났지만 꼭 얻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권력을 잡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살아갈 사람이 바로 박지민이었다.
박지민의 꿈은 그런 것이 아니라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짓을 하면서 평생 걱정 없이 사는 것!
박지민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다운 꿈이라고 할 꿈이었다.
뚝.
“흐흐흐…….”
박지민은 통화를 끊고 음침하게 웃었다.
그의 꿈에는 적당한 유명세는 필수였다.
세계 전체를 쩌렁쩌렁 울릴 정도는 아니어도 되었다.
위인전이나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유명세는 오히려 박지민이 사양하는 것이었다.
적당한 유명세.
박지민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오랫동안 괴짜로 불리며 유명했던 박지민은 적당한 유명세는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들이 자신을 알아준다는 것이 매우 기분 좋은 것임을 역시 알고 있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명성!
박지민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박지민은 음침하게 미소를 지으며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고 밖으로 나섰다.
끼이이.
비명을 지르며 닫히는 현관문.
들뜬 마음으로 밖으로 나가는 박지민은 알 수 없었다.
삶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 * *
8월 14일.
모두의 음악파티를 촬영하는 오페라홀에는 사람이 가득 와 있었다.
좌석 전부 매진!
30∼60대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이기에 자리가 꽉 차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갈 준비를 하느라 많은 연주자들과 가수들, 성악가들과 방송 관계자들은 무대 뒤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생방송이기에 사소한 실수라도 일어나면 방송사고로 일어나기 때문에 철저하게 점검하고 또 점검하는 것이다.
방송 관계자들은 방송 기기들을 점검하기를 반복하며 이상이 있는지 찾아보고 있었고, 무대에서 곧 공연할 사람들은 애써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아예 화장실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고 있거나 바람을 쐬고 있기도 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눈에 띄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잘생긴 외모.
184cm의 키.
마치 소설에서 그리는 주인공을 현실에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미남이었다.
그의 이름은 최한.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회사를 말하라고 하면 제일 먼저 말하는 최고 그룹의 차남이었다.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재주들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안하무인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걸로 유명하기도 했다.
그는 유명한 외국의 피아니스트들에게 전수받아 어지간한 피아니스트를 뺨치는 연주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뽐내고자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있었다.
‘모두들 나의 피아노를 듣고 놀라게 되리라!’
최한은 피아노 연주 후 감동에 젖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속으로 웃었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외국의 유명한 연주자들도 극찬했던 실력이었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라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최고 그룹을 이어받기를 원해서 그것은 거절했었지만, 그래도 실력이 있으면 뽐내고 싶은 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그래서 최한은 방송국에 연락을 했고, 최고 그룹의 힘 때문에 일사천리로 모두의 음악파티 출연이 결정되었다.
최한은 지금의 상황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다들 나를 빛내 줄 조연이 되거라! 후후후.’
그의 시선에 긴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최한의 눈에는 그들이 전부 그를 위로 올려 주기 위한 발판으로 보였다.
군계일학이라 했던가!
닭의 한가운데에 학이 있다면 빛나는 법이었다.
최한은 긴장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불만족스러운 것이 딱 하나 있었다.
최한은 긴장은 어디다 버리고 온 건지 자기 집처럼 편안히 있는 남자를 쳐다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저놈은 뭐지?’
최한이 쳐다보고 있는 남자.
170 정도의 키.
비쩍 마른 몸.
그리고 잘생겼다고 말하기엔 뭣한 얼굴.
심지어 진한 다크서클까지 있었다.
분장실에서 가벼운 메이크업을 해 주는데 그것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거기다가 다른 사람들은 턱시도를 잘 차려 입고 있는 데 반해 그가 입고 있는 것은 싸구려 양복이었다. 그나마도 넥타이는 삐뚤어져 있었고 양복 재킷은 단추가 전부 열려 있었다.
거기다가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기까지 했다.
옆에 소주병 하나만 있으면 밤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술 취한 샐러리맨이나 다름없었다.
‘저놈은 여기가 무슨 안방인 줄 아나?’
최한은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최한이 보고 있는 남자.
그는 바로 박지민이었다.
‘후후후. 내 차례는 거의 끝이었던가?’
박지민은 최한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속으로 웃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명성을 얻게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잔뜩 들떠 있었다.
긴장?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박지민은 자신의 스킬을 믿었다.
음유시인의 길!
박지민이 인터넷 방송국에 연주를 하면서 깨닫게 된 숨겨진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완벽하게 만드는 효과였다.
음악을 연주하다 보면 박자를 놓치거나 잘못 연주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피나는 연습에 의하여 그 횟수가 점점 줄어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박지민의 음유시인의 길은 그런 것을 커버해 주었다.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박자를 놓친다면 그것이 음악의 일부분이 되도록.
잘못 연주한다면 그것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처음부터 그렇게 연주하려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것이 음유시인의 길의 숨겨진 효과였던 것이다.
실제로 박지민이 자신이 직접 만든 곡이나 즉흥곡이 아닌 많이 알려진 음악을 연주할 때 잘못 연주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연주를 듣고 있는 동안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연주가 끝난 후에야 그런 것이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것은 박지민이 알지 못했던, 그리고 얼마 전에야 알아챌 수 있었던 매혹의 또 다른 효과였다.
음유시인의 길을 가지고 있는 한 박지민은 음악에 관련해선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혼자서 치트(Cheat)를 쓰고 있는 것이다.
박지민이 히죽히죽 웃고 있는 사이 그의 차례는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연주자들과 성악가, 가수들이 자신의 차례를 마치며 속속들이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 차례가 끝날 때마다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
그리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들어오는 사람들.
차례를 기다리던 최한은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자 일어서서 옷매무새를 잘 다듬고 거울을 보며 머리 스타일을 확인했다.
짝짝짝.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박수 소리.
그는 자신의 차례가 다가왔음을 깨닫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나가기 전에 히죽히죽 웃고 있는 박지민을 쳐다보았다.
‘저놈도 피아노였던가? 쯧. 내 연주 이후에 친다는 것에 대해 하늘을 원망해라.’
그는 박지민에게 비웃음을 날리고 무대에 서서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피아노로 다가가 앉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띠링.
건반 위에서 가볍게 춤추는 손가락.
이윽고 아름다운 선율이 홀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침을 삼키는 것조차 음악에 방해되는 듯 그의 음악을 집중해서 들었다.
음악은 잔잔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홀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얼마 후 멈추는 최한의 손가락.
와아아!
짝짝짝짝!
최한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터지는 함성과 박수!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연주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아름다운 연주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최한은 그들의 환호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사라졌다.
최한은 무대 뒤로 와도 꺼지지 않는 환호성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앞서 연주했던 사람들보다도 훨씬 대단한 환호성이었던 것이다.
‘좋아! 역시 난 대단해!’
천재적인 재능!
그리고 최고의 연주자들의 가르침!
그 두 가지가 합쳐져 만들어진 결과는 최한이 상상한 바로 그대로였다.
그는 자신의 대단함이 신문에 실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임을 생각하고 만족스러워했다.
‘그나저나 저놈은 정말 불쌍하군.’
최한은 박지민을 쳐다보았다.
박지민은 최한의 연주 후에 사람들이 했던 박수와 환호를 듣고도 전혀 긴장하고 있지 않았다.
‘자포자기했나 보군.’
최한은 그 태도를 자기 마음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미소 지으며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자신의 차례가 끝났으니 그냥 가도 된다.
하지만 자신의 차례 이후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해서 그대로 앉아 버린 것이다.
최한이 앉자 그의 다음 차례였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약해 보이는 인상의 그 남자는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방금 전 최한이 연주했던 음악과 그것을 듣고 보인 사람들의 반응 때문인지 얼굴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그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채 무대로 나섰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피아노를 연주했다.
띠리링.
건반 위를 노니는 손가락.
이윽고 연주는 끝났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다음에 보통 음식을 먹으면 어떨까?
지금 남자의 연주에 대한 사람들의 답이 그러했다.
짝짝.
매우 작은 박수 소리였다.
마지못해서 그냥 치는 박수.
대단한 연주를 들은 후 잘하는 연주를 들으니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자의 연주에 대한 반응은 지금까지 무대에 나갔던 사람들 중 제일 적었다.
남자 다음에 무대에 나간 사람은 그나마 나았다.
그는 성악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음에 나간 사람은 얼굴이 흙빛이 된 채 무대에 나가고, 축 처진 어깨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이었다.
최한의 다음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은 박지민을 포함해서 세 명.
둘의 실력은 결코 낮지 않았다.
하지만 최한이 대단한 연주를 했기에 상대적으로 그들의 연주가 빛이 바랬고, 사람들의 반응이 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윽고 박지민의 차례가 다가왔다.
“흠흠.”
박지민은 옷매무새를 대충 가다듬었다.
무대에 나가기 전 철저하게 점검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대조되는 행동이었다.
‘웃기는 놈이군.’
최한은 박지민의 행동에 피식 웃었다.
괴짜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지민의 행동은 그가 괴짜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같이 철저하게 옷을 신경 쓰자 그는 묘한 반발심이 생겨 더 무신경해지고 만 것이었다.
박지민은 만족스런 얼굴로 무대로 향했다.
‘묘하게 신경이 쓰였지. 어디 얼마나 잘하나 봐 주마.’
최한은 박지민의 등을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박지민이 사람들의 반응에 실망해서 들어오면 비웃음이나 날려 주고 기분 좋게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최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지민은 무대에 올라서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하지만 앞서 나왔던 사람들이 정중히 인사한 데에 비해 그의 인사는 뭔가 대충대충 한다는 느낌이었다.
“뭐지?”
“왜 옷이…….”
사람들은 박지민의 옷을 보며 수군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모두의 음악파티에 나왔던 사람들은 남자는 턱시도를 여자는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하지만 박지민은 그냥 양복이었다.
그나마도 바쁘게 출근하는 회사원이 입은 것 같았다.
넥타이조차 없었고, 와이셔츠는 위의 단추 세 개가 풀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