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스페셜 라이프 1권(11화)
chapter 4(2)
하지만 울상을 짓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최한!
박지민의 차례 전에 피아노를 연주한 그였다.
그는 방 안에서 독한 양주를 병째로 마시고 있었다.
몇 병을 마셨는지 그의 발밑에는 빈 양주병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런 제길! 내가 제일 주목받았었는데……. 신문에 실리는 건 나였어야 하는데…….”
분한 마음!
질투!
최한은 취하지도 않았다.
질투심이 취기마저도 이기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그를 더더욱 분하게 한 것은 그 역시도 음악에 빠져들었다는 것이었다.
박지민이 음악을 연주할 때 최한은 넋을 잃은 채 음악에 몰두했다. 그리고 음악이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여운이 남아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더더욱 최한을 분하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덜컹.
“쯧. 아직도 그러고 있는 거냐?”
문이 열리며 중후한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최승훈.
최한의 형이었다.
그는 방 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그를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며 소리쳤다.
“언제까지 그렇게 술이나 퍼마시고 지낼 거냐!”
최승훈도 최한이 술을 마시는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사흘이 되니까 짜증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자! 박지민에 대해서 조사를 해 봤다.”
툭.
최한의 앞에 던져지는 종이뭉치.
“조사……?”
최한은 양주를 마시는 것을 멈추고 종이를 들어 천천히 읽어 보았다.
이름 : 박지민
나이 : 20
학력 : 고등학교 졸업
가족관계 : 부모는 6살에 교통사고로 사망. 6살 이후 친척과의 교류 없음.
성적은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최상위권.
중학교 입학 후부터 성적 하강,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하위권 유지.
…….
“이런 녀석이 바로 네가 패배감을 느끼고 있는 놈이다! 잘난 게 하나도 없는 놈이 바로 그놈이란 말이다!”
최승훈은 박지민을 인정사정없이 매도했다.
“너는 최고 그룹의 회사 하나를 경영할 몸이다! 그런데 그까짓 음악 나부랭이 때문에 술이나 처마시고!”
최승훈은 진심으로 화난 듯 크게 소리쳤다.
박지민을 깎아내리고 최한을 띄우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처해 있는 패배감을 없앨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한은 그의 외침을 듣는 둥 마는 둥 종이만 정신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뭐 하나 잘난 게 없는 놈이다.’
최한은 종이를 보곤 속으로 중얼거렸다.
객관적으로 봐도 주관적으로 봐도 자신보다 나은 게 없는 사람이었다.
하나 있다면 음악 정도일까?
그런 사람에게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던 말인가?
‘좋아. 하나 정도가 나보다 위라면 인정해 줄 수 있다.’
최한은 자존심이 매우 강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위에 있는 것들을 전부 치워 버려야 성미에 차는 폭군은 아니었다.
하나 정도는 자신보다 뛰어나도 봐줄 수 있었다.
최한은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할 수는 없는 법.
그는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매우 힘든 것이며 어떤 분야든 그것에만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음은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데에 투자해야 할 재능이 한 곳에 몰려 있는 사람을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다른 놈들은 50의 재능을, 나는 500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 하지만 한 곳에 가진 재능을 전부 쏟아 붓는 놈을 골고루 재능이 발달한 내가 이기긴 힘든 법.’
최한은 종이를 다 읽고 나서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질투심을 버릴 수 있었다.
‘나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는 놈이 피아노랑 노래 실력은 나보다 위로군. 모든 재능을 음악 재능에 쏟아 부은 것이 분명해. 그래, 인정해 주지. 하나 정도는 넓은 아량으로 인정해 주겠다.’
툭.
그는 종이를 집어 던지곤 최승훈을 쳐다보았다.
“형. 고마워.”
“쯧. 정신 차린 거냐?”
최승훈은 밝은 얼굴로 돌아온 최한을 보자 혀를 차면서 방 밖으로 나섰다.
‘그래도 기분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군.’
이해는 했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기분을 풀지는 않았다.
최한이 앙금을 완전히 버리기엔 박지민의 음악이 너무 대단했었기 때문이다.
‘조금 손을 봐 주지. 그걸로 원한은 완전히 잊어 주겠다. 영광으로 생각해라.’
원한.
박지민이 그의 마음속을 읽었다면 황당해했으리라.
최한은 완벽한 연주를 해서 관객들을 매료시켰고, 박지민은 스킬의 힘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매혹시켰을 뿐이었다.
서로 욕을 한 것도 아니며 싸움을 한 것도 아니고, 박지민이 최한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연주를 했을 뿐이다.
하지만 최한에게 있어선 충분히 원한이 생길 이유가 되었다.
질투를 일으켰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원한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삑삑.
“아. 여보세요. 강 사장님? 저 최한입니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 * *
박지민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는 본래 집에 야구모자를 사 놓고 거의 쓰지 않고 다녔는데, 방송 출현 이후 그것을 쓰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너무 잘 알아본다.’
박지민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방송 이후.
박지민이 밖에 조금만 돌아다녀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알아보기만 했다면 박지민이 야구모자를 쓰고 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와서 인사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때때로 사인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노래를 불러 보라거나 악기를 연주해 보라고 끈덕지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거절을 하면 화를 내며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귀찮아!’
박지민은 약간 불만족스러움을 느꼈다.
일단 많이 알려지니까 좋기는 좋았다.
음식점에 가면 음식을 더 많이 주기도 하고, 시장에서는 물건 값을 깎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귀찮았다.
박지민이 상상하지 못했던 것.
사람들의 반응!
그는 많이 알려진다 해도 수군대는 정도이거나 가끔씩 말을 걸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박지민을 발견하면 말을 걸었다.
때로는 장난도 걸었다.
요구도 거침없이 해 댔다.
‘귀찮아!’
사람들이 그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은 얼굴이 잘생기거나 예쁘면 오히려 다가오질 못했다.
자신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지민의 얼굴은 잘생긴 편이 아니었다.
아니, 얼굴도 평범한데다가 약간 음침한 인상이었다.
사람들이 박지민의 외모를 보면 자신과 비슷한, 혹은 그 아래라고 생각이 든다.
만만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박지민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박지민?”
‘아, 또냐?’
박지민이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뒤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소리가 들린 쪽으로 몸을 돌려 보니 깡패로 보이는 사람 넷이 서 있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박지민을 둥글게 포위했다.
“박지민 맞군.”
깡패 중 한 명이 박지민의 얼굴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게 됐는데, 조금만 맞자. 그리고 다리 하나만 부러져라.”
“네?”
박지민은 어이가 없어 깡패를 쳐다보았다.
돈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었다.
뭔가 협박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깔끔하게 좀 맞고 다리 하나만 부러지라니?
“그냥 얌전히 맞아라. 어설프게 막거나 반격하면 네 밥줄인 팔이랑 손가락이 다칠지도 모르니까.”
“나도 네 음악은 잘 들었지. 하지만 그래도 의뢰거든. 연주하는 데에는 지장 없게 해 줄 테니까 얌전히 당하라고.”
깡패들은 험상궂게 웃으며 박지민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의뢰?’
박지민은 깡패들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뢰라는 단어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한테 원한을 샀나? 그런 일은 벌인 적이 없는데.’
그는 하늘에 한 점 우러러 사람들과 원한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실제론 그렇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 자신이 생각하기엔 아무하고도 원한을 맺지 않은 원만한 삶이었던 것이다.
‘일단 쓰러트리고 물어보면 되겠지…….’
“얼음…….”
박지민은 마법을 사용하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그들이 위해를 가하려는 것은 확실히 기분이 나빴으나 죽이려 드는 것도 아닌데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지민이 마법을 테스트해 본 결과 인간이 맞으면 확실히 죽거나 아무리 운이 좋아도 중상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마법을 사용한다면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마법이란 것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
그것을 세상에 떠벌리고 다닌다면?
결코 박지민에게 좋은 일이 벌어지진 않을 것이다.
정부 기관에서 찾아와 포섭을 하려 하거나 한국이 강해지길 원하지 않는 나라, 단체들에 의해서 목숨의 위협을 받을 것이 뻔했다.
‘좀 맞고 다리 하나만 부러지라고 했지? 날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는 게 너희의 목숨을 살렸다.’
박지민의 마음은 차가웠다.
결코 사람을 죽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쓸데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찰칵찰칵.
박지민은 청바지의 양쪽 주머니에서 가위 두 개를 꺼냈다.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가위.
사무용 가위였다.
“뭐냐?”
“웬 가위?”
“이 새끼들아! 조심해! 가위도 날붙이야!”
박지민이 가위를 쥐고 자세를 잡자 비웃는 깡패들.
그러나 맨 처음 박지민에게 맞자고 말했던 남자는 가위를 보며 오히려 경계했다.
가위나 칼이나 날을 가지고 있는 것은 똑같았다.
가위에 베여도 피는 나고, 가위에 찔려도 상처는 나기 마련이었다.
그는 가위를 경계하며 근처를 둘러보다가 굴러다니는 각목 하나를 발견했다.
“퉤! 나를 원망하지 마라! 얌전히 당했으면 좋았을 텐데!”
후웅.
그는 각목을 빠르게 박지민에게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각목의 소리는 듣기만 해도 소름 끼쳤다.
그의 근육이 잔뜩 발달한 팔뚝으로 휘두르는 각목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퍽!
퉁.
하지만 깡패가 휘두른 각목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박지민이 가위의 면 부분으로 후려치자 각목이 튕겨져 날아간 것이다.
‘음? 손이 안 아프네?’
박지민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힘이 6배로 강해졌다고 해도 근육질의 남자가 전력으로 휘두른 각목과 가위가 부딪치면 최소한 느낌은 와야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느낌조차 없었다.
‘가위 투술의 효과인가?’
그의 생각대로 가위 투술의 효과가 맞았다.
뇌에 각인된 가위 투술은 게임에서 현실로 넘어오면서 설명 외의 효과를 보여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 박지민이 겪고 있는 것이었다.
가위 투술에는 다른 근접 무기와 비교해서 공격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가위에 공격력을 보너스로 지원해 주는 효과가 있었는데, 그것이 현실로 넘어오면서 공격력을 늘려 주기 위해 특별한 조치가 취해졌다.
마력 강화!
공격력 보너스를 위해서 가위에 저절로 마력이 씌워진 것이다. 그리고 또한 박지민의 신체 능력 역시 마력에 의하여 조금 상승된 상태였다.
하지만 마력이 많이 씌워진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았고, 눈에 확 보일 만큼 큰 효과를 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박지민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
주위가 조용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박지민을 경시하던 깡패들의 눈에 긴장이 감돌았다.
휘둘러지던 각목을 튕겨 낸다?
그것도 가위로?
‘힘이 얼마나 세길래……?’
‘저 정도 힘이면 칼이나 가위나 별 차이 없이 쑤실 수 있겠군.’
꿀꺽.
깡패들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가위를 주시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의뢰를 받고 가볍게 손봐 준다는 것이 이제는 진지한 대결이 된 것이다.
“합!”
깡패 중 한 명이 박지민에게 달려들었다.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발이 움직이는 것이 박지민을 발차기로 공격하려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나에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 가위!
“끄아아악!”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간 가위는 그의 몸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렸다.
옷의 여러 부분이 잘라져 있었고 그곳에선 피가 연신 배어 나오고 있었다.
척 봐도 겉만 살짝 상처를 입힌 게 아니라 꽤나 깊숙이 상처를 입힌 것 같았다.
‘크으으…….’
가위의 첫 희생양이 된 깡패는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신음을 삼켰다.
‘무슨 놈의 가위가…….’
그는 발차기를 해서 박지민을 차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지민의 손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이더니 몸에 따끔한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조금 있다가 고통이 오고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큭…….”
“빨리 병원에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마 계속 피가 나올걸요?”
박지민은 깡패에게 충고했다.
꽤나 깊숙하게 베었다는 느낌이 손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라 가위 투술이 출혈을 일으키는 빠른 공격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단하군. 무슨 무술이라도 배웠나 봐?”
깡패 중 한 명이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하지만 박지민은 그의 물음에 피식 웃었다.
“무술은요, 무슨. 제가 만든 거죠. 어떤 무술이 가위를 가지고 싸우겠어요?”
“네가 만들었다고?”
깡패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박지민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박지민의 말은 사실이었다.
단지 앞에 ‘게임에서’라는 단어를 뺐을 뿐이다.
전 서버 통틀어 가위 투술은 박지민만이 가지고 있는 스킬이었다.
딱히 전용 근접무기가 없었던 박지민은 몬스터가 근접하면 생산에 쓰던 도구로 근접에서 몬스터들에게 경직을 주고 발차기로 밀어내는 짓을 많이 했는데 그러면서 생겨난 것이 바로 가위 투술이었다.
가위를 들고 몬스터들과 싸움으로써 얻는 스킬.
멀쩡한 무기 놔두고 가위로 몬스터를 때리는 미친 짓거리는 그밖에 하지 않았으므로 오로지 박지민만이 가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