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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라이프 1권(15화)
chapter 5(2)


호현은 40대의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자 MC였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호현의 음악방송은 시청률이 모두의 음악파티처럼 높은 편은 아니지만 고정 시청자들이 많은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토크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프로그램이었기에 박지민이 나간다면 한층 더 유명해지고 호현의 음악방송의 시청률도 높아질 것이 분명했다.
김혁승은 박지민이 승낙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박지민은 그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솔직히 그 프로그램은 내키지 않네요.”
―네?
그가 출연을 거절한 이유는 간단했다.
생방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이나 자신이 한 말들이 편집되어서 사라지고 일부만 방송에 나간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이유가 뭔가요?
“그냥 그 방송은 생방송이 아니라서 그래요.”
―예?
김혁승 PD는 전화를 하다 말고 어이가 없어 말을 잃었다.
생방송이 아니니까 싫다니?
녹화방송이 아니라 싫다는 사람은 여럿 봤어도 생방송이 아니라 싫다는 사람은 맹세코 박지민이 처음이었다.
작은 실수도 엄청난 일로 번질 수 있는 생방송은 많은 사람들이 긴장을 하기 마련이었다.
출연자, MC는 물론이고 스태프들마저 긴장하며 진행하는 것이 바로 생방송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게 아니니까 싫다니?
‘생방송이 아니라 싫어? 긴장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나?’
김혁승은 당연한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그게 맞는 답이라는 것을 알면 김혁승은 깜짝 놀라리라.
박지민에겐 긴장이란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애초에 정신 상태가 일반인과 다르지 않던가?
보통 사람이 긴장하고도 남을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에겐 긴장 끄트머리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신이 눈앞에 나타나서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해야 그제야 긴장을 할 사람이 바로 박지민이었다.
―어쨌든 생방송이 아니면 싫으시다 그건가요? 왜 녹화방송은 싫으신 거죠?
“편집되잖아요.”
―편집은 당연한 겁니다. 심위에 걸리지 않게 하기도 하고, 실수들을 편집하기도 하고…….
“네. 그게 싫어요. 물론 그렇게 편집해서 좋은 모습만 보여 준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나쁜 모습, 좋은 모습을 다 합친 게 인간입니다. 인간 그 자체를 보여 주고 싶습니다.”
말은 청산유수였다.
혀에 기름을 칠한 듯했다.
김혁승 PD는 박지민의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생방송은 위험이 너무 큰데.’
―녹화방송은 정말 안 됩니까?
그는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하지만 박지민은 단호했다.
“네. 안 됩니다!”
―생방송이면 되는 겁니까?
“네. 생방송이면 됩니다. 생방송이면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추후에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김혁승은 전화를 끊고 한숨을 쉬었다.
생방송이어야 한다니.
조금 더 설득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해 봤자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집이 엄청나지.’
그는 모두의 음악파티 대기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죽어도 양복만 입겠다고 난리를 치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양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턱시도를 눈앞까지 가져와서 입으라고 사정사정 해도 듣지 않았던 모습이 떠오르며 김혁승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그뿐인가?
본래 박지민이 방송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피아노 때문이었다. 그리고 방송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지 노래까지 부른다고는 하지 않았었다.
물론 피아노만 쳐야 된다는 것은 계약서에 없었지만 만약 일이 잘못되었으면 김혁승은 모가지가 위험했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노래가 더해진 연주가 대단했고, 그것이 엄청난 이슈를 불러일으켰기에 치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지 박지민이 했던 일 자체는 엄청 위험한 일이었다.
“폭탄.”
김혁승은 박지민의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조금만 잘못 다루면 펑 터져 버리는 폭탄.
박지민과 폭탄은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언제 터질지도 모른다.
거기다가 고집이 강한데다가 다루기도 힘들었다.
‘그런 사람이 생방송을 출연? 과연 괜찮을까?’
그는 고민을 거듭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본대로 진행할 것 같지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긴장하거나 버벅거리며 대본대로 진행하지 못하거나 대본 그대로 진행하곤 했다. 그리고 방송에 좀 익숙한 사람들은 애드리브를 치는 정도였다.
하지만 박지민의 경우는?
‘대본, 대본이라…….’
대본대로 진행하기는커녕 대본과 반대로 진행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거기다가 말발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모르겠고…….’
말발이 되지 않는 사람이 대본대로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
방송사고의 지름길이었다.
‘그 폭탄을 어떻게 해야 한다…….’
이미 김혁승의 머리에선 박지민과 폭탄은 동급이나 다름없었다.
“후…….”
김혁승은 자신에게 박지민과의 통화를 부탁했던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김 PD. 통화는 잘 됐어?
“통화는 잘 했지. 조건이 이상해서 문제지.”
―왜? 출연료를 엄청 요구하기라도 했어? 얼마나 요구했길래 그래? 어지간하면 다 들어준다니까?
김혁승은 그 말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출연료를 많이 요구했다면 그나마 나았을지도 모른다.
“생방송.”
―응?
“생방송 아니면 안 한대.”
―뭐라고?
김혁승의 말을 들은 상대방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녹화방송은 싫고 생방송이면 좋다고 하더군. 생방송이면 한다고 말하더라고…….”
―생방송이 좋다고?
김혁승이 밟았던 전철 그대로 그도 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김혁승은 약간 침묵한 후에 박지민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박지민이 고집이 세다는 것.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
잘못하면 펑 터져서 엄청난 일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것.
대본에 따를지 의문이라는 것까지.
―알았어. 일단 위에 말해 보지…….
“알았다. 힘내라.”
김혁승은 그의 말에 힘이 빠져 있는 것을 느끼곤 응원의 말을 해 주었다.
뚝.
전화 통화가 끝나자 김혁승과 통화했던 PD는 고뇌하기 시작했다.

* * *

며칠 후.
“허허허.”
RBS 방송국의 호현의 음악방송 대기실에서 박지민은 허탈한 듯 웃었다.
자신이 말하긴 했지만 진짜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난 다른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할 줄 알았는데.’
박지민이 생각한 것은 고작 그 정도였다.
일이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한 것이다.
발단은 박지민에게 또다시 걸려온 김혁승의 전화였다.

『생방송이면 출연한다고 하셨죠? 박지민 씨가 나간다고 한다면 다음 주 수요일에 방송하는 호현의 음악방송을 생방송으로 진행할 의향이 있습니다.』

‘녹화방송을 생방송으로 바꾸다니, 제정신이야?’
김혁승 PD로부터 박지민의 제안을 들은 PD는 위에다가 그것들을 말했고, 얼마 안 가 그런 결정이 나온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노래를 딱 한 곡 부르고 세계에 이름을 떨치게 된 사람이 바로 박지민 아닌가?
박지민이 한 번 출연하고 난 다음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모두의 음악파티는 잠시 동안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거기다가 그의 음악이 인터넷을 통해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가면서 방송국은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방송국 입장에선 그가 출연한다고 하면 박지민 특집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방송할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생방송을 하면 나올 생각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호현의 음악방송을 박지민이 나올 때만 생방송으로 하는 것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프로그램의 MC 호현이 생방송으로 진행할 생각이 있냐는 것이었지만 호현은 박지민에 대한 관심도 높았고, 생방송을 여러 번 해 본 경험도 있기 때문에 흔쾌히 허락했다.
방청객이야 시간이 바뀐다고 해도 얼마든지 모을 수 있었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박지민은 자기가 출연한다면 녹화방송을 생방송으로 바꾼다는 이야기에 살짝 황당하기는 했지만 생방송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높은 출연료도 마음에 들었기에 바로 출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 대기실에서 출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조금 있으면 방송이군.”
방송 시작까지 5분 정도 남아 있었다.
박지민은 느긋하게 대기실에서 앉아 방송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박지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 느긋하지 않았다.
아니, 느긋할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이었다.
박지민은 지금 평소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하나를 더하지도 않았고 하나를 빼지도 않은 평소 그대로의 모습!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친 차림이 전부였다.
‘왜 옷을 가져다 줘도 안 입냐고!’
‘가벼운 메이크업은 해야 될 거 아냐! 아니 메이크업은 그렇다 쳐도 왜 머리를 정리하는 것까지 거부하는데!’
그들은 박지민이 지금 모습 그대로 나가면 일어날 일을 머리에 떠올리며 발을 동동 굴렸다.
박지민이 처음 대기실에 왔을 때,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릴 옷들을 가져왔다.
김혁승에게 박지민의 성격을 똑똑히 들은 PD는 그가 이상한 차림으로 올까 걱정되어서 미리 옷들을 준비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박지민은 거부했다.
그들이 기를 쓰고 옷을 입히려 했으나 그 모습이 오히려 박지민에게 더 반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에게 가벼운 메이크업을 해 주고 그의 머리를 정리해 주려 했으나 그것마저 거부당했다.
얼굴이 엄청 잘생긴 것도 아니고 피부가 엄청 좋은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배짱이란 말인가?
자신이 무슨 조물주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만든 평생에 한두 번 나올까 말까 한 역작이란 말인가?
물론 조물주가 발로 대충 뭉개서 만든 얼굴은 아니고, 손으로 만든 것 같은 얼굴이긴 했다.
하지만 저런 배짱은 가져선 안 되는 얼굴인 것이다.
그들은 어이가 없어서 메이크업을 받으라고 몇 번이나 말했으나 박지민은 그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것이 여러 번.
결국 그들은 박지민이 평소 모습 그대로 나가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사정해도 안 되고 화를 내도 안 된다.
돌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 안 통하는 동물을 상대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말을 해도 들어 처먹지 않았다.
스타일리스트란 직업을 때려치우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 사람까지 생겼다.
“방송 시작입니다. 나갈 준비 하세…… 엥?”
시간이 되자 스태프 한 명이 박지민에게 나올 준비를 하라고 대기실에 들어왔다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그를 보곤 깜짝 놀랐다.
그는 스타일리스트들을 노려보았으나 스타일리스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는 뜻이었다.
“이게 무슨…….”
스태프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박지민의 모습을 보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방송사고!
그의 머릿속에는 네 글자의 단어가 대문짝만 한 크기로 떠올랐다.
“왜 그러세요? 가죠.”
“주, 준비는…….”
“준비가 또 뭐가 필요합니까? 뭐 더 가져갈 거라도 있나요?”
“허…….”
스태프는 뻔뻔한 박지민의 태도에 다시 한 번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는 없었다.
녹화방송도 아니고 생방송이었다.
등장을 늦출 수도 없었다.
방송 시작 전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무리였다. 시작 전이라면 광고를 조금 더 내보내서 약간 늦게 시작하고 그사이에 갈아입히는 방법이 있긴 했다.
하지만 현재는 방송 중!
‘생방송을 그렇게 요구했다던데…….’
스태프는 생방송 시작부터 대형 사고를 치는 박지민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박지민 씨. 가죠…….”
스태프는 힘없는 목소리로 박지민을 안내했다.
안내 받으며 걸어가고 있는 박지민의 얼굴에는 뜻 모를 미소가 어려 있었다.
“……자. 오늘은 아주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한 번의 출연 후에 악몽의 연주자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분을 모셨는데요. 여러분들도 그분의 곡은 들어 보셨죠?”
박지민과 스태프가 방송 무대로 가까이 가자 호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지민을 소개하는 말이 나오는 걸로 봐서 그가 나가야 할 시간이 촌각에 다다른 것 같았다.
스태프는 박지민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맙소사…….’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모습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자. 악몽의 연주자, 박지민 씨를 소개합니다!”
“들어가세요.”
박지민이 등장할 차례가 되었다.
박지민은 천천히 방송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차례차례 헉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