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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라이프 1권(16화)
chapter 5(3)
일단 맨 처음 소리를 낸 것은 스태프들이었다.
그다음은 호현이었다.
맨 마지막이 방청객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에 하나같이 똑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방송사고!
박지민은 그들이 무슨 반응을 보이든 관심을 두지 않고 마이크를 켜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박지민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박지민 씨. 여기 앉으시죠.”
MC로서 여러 가지 해프닝을 겪었던 호현은 처음 겪는 일에 순간 넋을 잃었다가 박지민의 말에 제정신을 차렸다.
“박지민 씨. 의상이 참 멋지시네요.”
호현은 ‘왜 의상을 그렇게 입고 나왔느냐’라는 말을 돌려서 말했다.
박지민은 호현의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네. 평상시 입고 나오는 옷 그대로 입고 나왔습니다.”
호현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늦게 도착하셨나 봐요. 갈아입을 시간이 없으셨나 보네요.”
“아닙니다. 도착이야 오래전에 했었죠. 그냥 일부러 이렇게 입고 나온 겁니다.”
‘이런 미친!’
박지민의 말을 들은 PD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방송사고!
방송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박지민이 계속 일을 터트렸다.
일부러 평상복을 입고 나온데다가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호현이 변명이 될 만한 것을 말해 주었는데 그걸 왜 거부를 한단 말인가?
그냥 그렇다고 말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던가!
그제야 PD는 김혁승이 박지민을 폭탄이라고 한 것을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폭탄? 아니. 저건 걸어 다니는 위험물질이다.’
폭탄은 그나마 터지기 전에는 피해라도 안 주지 않던가?
PD가 보기에 박지민은 존재만으로 피해를 주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입고 온 데에는 이유가 있나요?”
“물론 있습니다.”
박지민은 키보드를 이용한 말싸움으로 단련된 말발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제가 생방송을 요구한 것을 알고 계시죠?”
“아. 물론입니다. 그래서 좀 특이하신 분이구나 했었죠.”
“제가 생방송을 요구한 이유는 진실함을 위해서였습니다. 녹화방송을 한다면 혹시 모를 방송사고를 대비할 수 있겠죠. 확실히 안전합니다. 하지만 저는 안전함을 버리고 생방송을 요구했어요. 왜 그랬을 것 같나요?”
“음. 글쎄요?”
호현은 궁금한 듯 박지민을 쳐다보았다.
“생방송엔 진실함이 있지요. 저는 제 진실함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 자신을 그대로 보여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지금 제 모습은 꾸밈없는 모습이죠. 그리고 방송 내내 가식도 꾸밈도 없는 저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꾸밈없는 모습이라. 기대할게요.”
짝짝짝.
‘휴. 살았다.’
PD는 박지민이 상황을 대충 수습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렀다.
아직 방송이 시작된 지 5분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현의 음악방송은 1시간 동안 방송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저 미친놈이 제발 체계적으로 미쳤기를 빈다.’
하지만 PD의 조마조마한 마음과는 달리 프로그램은 꽤나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언제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음. 글쎄요. 음악이야 옛날부터 좋아했죠. 그래서 옛날에 피아노를 배우기도 했어요. 초등학교 때 참 열심히 쳤었죠.”
“그때도 피아노를 잘 치셨나요?”
“하하. 아뇨. 그때는 잘 치지 못 했죠. 제가 그땐 성격이 좀 급해서 다른 사람보다 곡을 빨리 치기도 했었어요. 그것 때문에 일어난 일이 있는데…….”
방송 시작에 일어난 일을 제외하면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가 일어나기는커녕 너무 잘 돌아가고 있었다.
박지민은 긴장은 하나도 하지 않고 예능을 몇 번 해 본 사람처럼 능수능란하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과거 있었던 일들을 재미있게 말하기도 하고 과장된 몸집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말발도 좋아서 사람들이 그의 말에 집중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거기다가 원래 거짓말이란 것과 거리가 멀게 살아온 그였기에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진솔함이 묻어 나왔다.
‘휴…….’
PD는 프로그램이 문제없이 돌아가자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박지민 씨의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대본에 적혀 있는 질문.
하지만 그것이 불러일으킬 대답을 호현도, 스태프도, 방청객도, 시청자도 예상하지 못했다.
“개판이었습니다.”
“네? 개판이요?”
박지민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초등학교 때에는 고아라고 왕따당하고, 선생들한테 고아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혼나기도 했었어요.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 이름이…….”
박지민의 입에서 초등학교 이름과 당시 담임이었던 선생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차마 어떻게 제지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튀어나온 것이다.
“고생하셨군요.”
“물론입니다. 초등학교 때 얼마나 서러웠는지 몰라요.”
뒤늦게 호현이 나서서 박지민의 말을 끊었지만 이미 초등학교 이름과 선생의 이름이 그대로 흘러나온 후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흘러나온 선생의 이름을 세 명으로 끝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악! 저 미친놈!’
PD는 박지민의 얼굴에 서려 있는 미소를 보고 결코 실수로 한 게 아님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말은 나왔고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거기다가 생방송이라서 그대로 전국에 나가기까지 했다.
수습하기엔 늦은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 고생이 참 많으셨군요. 다른…….”
“물론입니다. 그분들이 촌지도 요구하고, 제가 따돌림당하는 걸 일부러 조장하기도 하고, 제가 고아라면서 욕도 하고 그랬습니다.”
호현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다시 한 번 폭탄을 터트려 버린 것이다.
‘어버버버.’
PD는 넋이 나갈 것 같았다.
‘흐흐흐. 감히 나에게 전화를 걸어? 거기다가 뭐? 잘해 줬다고?’
하지만 PD와는 달리 박지민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겉이나 속이나 전부 다.
방금 그가 말한 선생들은 그에게 전화를 걸었던 초등학교 선생들이었다.
속이 좁았던 그는 어릴 적에 겪었던 억울한 일들을 그대로 품고 살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원한은 점점 커졌다. 그리고 그 커진 원한을 지금 생방송에서 쏟아 낸 것이다.
케이블 방송에서 나와도 난리가 날 사실들인데 지상파 방송에서 흘러나왔다.
이제 박지민에게 나쁜 추억을 안겨 준 초등학교 때 선생들은 매장당하게 될 것이었다.
박지민은 만족스러워했다.
다만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화를 걸지 않았던 다른 선생들은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지민의 의도대로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은 경악했다.
악몽의 연주자 박지민이 나오는 방송이라고 해서 그것을 보던 사람들은 박지민이 한 말들에 깜짝 놀랐다.
생방송이라서 무슨 사고가 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조차 놀라게 할 일이었던 것이다.
박지민이 선생에 대해서 말한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았지만 나올 만한 것은 다 나왔다.
부당 체벌, 고아 차별, 촌지, 따돌림 조장.
기자들은 기삿거리가 나왔다 희희낙락하며 인터넷에 기사를 올리기 시작했고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분통을 터트리며 인터넷을 뒤져 박지민이 말했던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선생들을 아는 사람들은 박지민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고, 본인들은 기겁을 하며 기절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난리를 피우건 말건 프로그램은 계속 진행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대본대로 질문했다가 일이 터지는 것을 본 호현은 질문 하나에도 조심하며 입을 열었고 그의 의도대로 박지민은 아까처럼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진행시켰다.
‘크흑. 반이나 남았어.’
PD는 시계를 보곤 절망했다.
그가 느끼기에 시간이 4시간은 지난 것 같았는데 겨우 30분이 지난 것이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터라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자. 여러분.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박지민 씨의 음악을 들어 보겠습니다.”
PD의 긴장감이 극에 달해 있는 그때, 호현은 예정대로 박지민에게 음악을 요청했다. 그리고 박지민은 그의 요구대로 피아노로 다가가 앉았다.
‘후…….’
그 모습을 본 PD는 긴장을 풀었다.
연주 중에는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서 연주를 시작하길 속으로 빌었다.
자신이 완전히 긴장을 풀 수 있도록.
“흠…….”
하지만 PD의 바람과는 달리 박지민은 피아노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고민하다가 호현에게 물었다.
“뭘 연주해야 되나요?”
“예? 아. 연주하고 싶은 걸 연주하시면 됩니다.”
“음. 제가 묻는 건 그런 게 아니라…….”
박지민은 호현을 쳐다보던 시선을 방청객들을 향해 돌렸다.
그러곤 다짜고짜 방청객을 향해 걸어갔다.
‘억!’
이게 무슨 돌발행동이란 말인가!
PD는 기겁했다.
박지민은 방청객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목표로 삼은 것은 여자였다.
작은 체구의 여자였는데 특이하게 한복을 입고 있었다.
거기다가 긴 머리를 끄트머리만 단정하게 땋아 몸 앞쪽으로 넘긴 채 앉아 있었다.
그는 마이크를 그녀에게 가져다 대며 물었다.
“무슨 분위기의 음악이 좋으신가요?”
“소녀 말씀이십니까?”
“네. 어떤 분위기의 곡을 원하시는지 말해 보세요.”
여자는 조금 고민하더니 말했다.
“늦은 밤이고 하니 사람들이 잠들기 쉽게 편안한 곡이 좋지 않겠사옵니까?”
박지민은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피아노로 돌아가 앉았다.
그러곤 마이크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자. 여러분. 쉽게 잠들 수 없게 해 드리죠.”
그 말 한마디에 호현의 음악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전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의견을 물어보는 행동을 했으니 당연히 요청대로 연주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행동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았다.
띠링.
박지민의 손가락이 가볍게 움직이며 연주의 시작을 알렸다.
띠딩.
박지민의 손가락이 건반을 튕기기 시작했다.
매우 일정한 간격으로.
그 소리는 마치 시계 같았다.
그리고 시계 같은 소리와 함께 박지민의 연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박지민의 연주는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전에 연주한 악몽은 무거웠지만 몽환적인 분위기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지독히도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박지민의 노래는 없었다.
연주만 있었을 뿐.
하지만 연주만 함에도 불구하고 저번에 노래를 불렀을 때처럼 사람들은 박지민의 음악에 매료되었다.
무거운 분위기.
마치 새벽을 그대로 음악으로 옮겨 놓은 듯한 그 느낌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싹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피아노로 치는 시곗소리는 새벽에 집에 혼자 남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중반에 이르자 사람들을 오싹하게 만드는 시곗소리는 사라졌다.
대신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작고 무거운 소리.
끝이 조금 긴…….
마치 발자국 같은 소리였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아주 작게, 그리고 점점 커지더니 무거운 분위기를 더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곧 발자국 소리는 멈추고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내던 연주 역시 잠시 멈추었다.
관객들은 갑자기 연주가 멈추자 의아한 눈으로 박지민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박지민은 아주 잠깐 동안 멈추었을 뿐 곧 손가락을 움직여 연주했다.
띵띵띵.
짧은 연주.
띵띵띵.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문을 노크하는 손이 떠올랐다.
한두 명도 아니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 전부.
띵띵띵.
점점 소리는 커져 갔다.
그리고 박지민의 연주가 잠시 동안 멈추고…….
쾅쾅쾅.
박지민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이며 소리를 냈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박지민은 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를 몇 차례 내더니 이윽고 다시 무거운 분위기의 곡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었다.
그리고 후반에 이르자 발자국 소리를 다시 한 번 자아냈다.
처음에는 크게. 그리고 점점 작게.
그리고 무거운 분위기의 곡이 계속 이어지고 곧 곡이 끝날 때가 되었다.
박지민은 건반 위의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이번엔 단순한 발자국 소리가 아니었다.
뛰어오는 듯한 소리였다.
음악을 듣던 사람들의 소름이 쫙 돋았다.
그리고 뛰어오는 소리가 뚝 그치고 연주는 끝이 났다.
연주가 끝나자 촬영장에 감도는 침묵.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일제히 박지민을 향해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
토크 때 박지민을 속으로 엄청나게 욕하던 PD마저도 음악을 듣고 박수를 칠 정도였다.
‘소름이 돋았어! 엄청나군!’
박지민이 한 연주가 자아낸 어두운 분위기.
PD는 완벽하게 연주에 매료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쌓아 왔던 박지민에 대한 원한이 연주 한 번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박지민의 연주에 매혹된 것은 PD만이 아니었다.
방청객, 시청자들 전부 다 매혹된 것이다.
호현 역시 박지민을 향해 소리쳤다.
“대단하군요! 제목이 뭔가요?”
박지민은 씨익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보이지 않는 발걸음.”
“직접 만드신 건가요?”
“물론입니다. 제가 작곡한 겁니다.”
박지민은 게임을 하면서 여러 곡을 작곡했었다.
몇 번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작곡에 재능이 있었는지 꽤 많은 곡들을 만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