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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라이프 1권(17화)
chapter 5(4)


방금 연주한 곡도 그가 판타지라이프에서 연주하고 다녔던 곡 중 하나였다. 하지만 좋은 곡 수준이었던 그 곡은 박지민이 연주하자 매혹의 효과로 인해 엄청난 곡이 되어 버렸다.
“대단하군요. 작곡까지 하시다니. 아, 그러면 저번에 연주하셨던 악몽도 직접 작곡하신 건가요?”
“네. 물론 노래는 즉흥적으로 부른 겁니다.”
박지민은 사실대로 말했다.
그가 저번에 노래했던 것은 다른 사람과 똑같기 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애초에 가사가 없던 곡에 연주를 하며 가사를 붙였던 것이다.
박지민이 가사를 떠올리는 것은 쉬웠다.
곡의 이름은 악몽.
게임 폐인인 박지민이 악몽 하면 떠올리는 것은?
고레벨 몬스터 서큐버스였다.
상태 이상 악몽을 일으키는 몬스터.
그는 서큐버스를 생각하면서 그 자리에서 가사를 붙였다.
박지민이 그런 일을 한 것은 괴짜 본능도 한몫 했지만 음유시인의 길의 효과에 대한 자신감도 큰 역할을 했다.
어떤 노래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하는 음유시인의 길의 매혹 효과!
그것이 바로 박지민으로 하여금 즉흥적으로 가사를 붙이는 시도를 하도록 만든 것이다.
“대한민국에 천재가 나타났네요. 하하하.”
“천재라뇨. 과찬입니다.”
과찬이 맞았다.
박지민이 음악 쪽에 재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천재로 불릴 정도까진 아니었다. 단지 음유시인의 길 스킬로 인해 엄청난 천재로 보일 뿐이었다.
박지민과 호현은 다시 토크를 시작했다.
방청객들은 그런 박지민을 대단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전부 똑같았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음…….”
박지민이 다가가서 질문했던 방청객.
한복을 입고 있는 소녀는 다른 방청객들처럼 대단하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박지민을 향해 보내는 시선은 다른 방청객들과는 좀 달랐다.


chapter 6(1)


박지민이 호현의 음악방송에 출연한 지 하루의 시간이 지났다.
호현의 의도대로 인터넷에선 난리가 나고 있었다.

『타락한 교사들, 이대로 괜찮은가?』
『악몽의 연주자 박지민의 충격 고백!』

박지민으로 하여금 원한을 품게 만든 선생들은 기자들이 1차로 난도질했고 2차로는 네티즌들이 사정없이 난도질하고 있었다.
박지민이 입에 담았던 선생들은 물론이고 찔리는 게 있던 선생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박지민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선생들의 번호를 남김없이 기억하고 있는 박지민은 그들의 전화를 전부 무시했다.
걸려 오는 그 순간 그냥 핸드폰을 열었다 닫아 버린 것이다.
그것이 세 번, 네 번 반복되자 선생들도 전화를 거는 것을 포기하고 문자 세례를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지민은 문자마저도 오는 순간 지워 버리길 반복했다.
‘타협 따윈 없다.’
쉽게 용서할 생각이라면 아직까지 원한을 품고 있을 리도 없었다.
이기적이고 속 좁은 사람이 바로 박지민이 아니던가?
거기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원한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니 용서 따위는 티끌만큼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음악도 반응이 괜찮군.’
선생들에 대한 것만 떠들썩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연주한 보이지 않는 발걸음도 평이 매우 좋았다.
실제로 어젯밤에 음악을 들은 사람들 대부분이 공포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인상을 남겼으니 평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각종 음악 사이트에 박지민이 연주한 곡 두 개가 1, 2위를 다투고 있는 상황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좋아. 매우 좋구나!’
박지민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곧 얼굴이 와락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어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어제 생방송이 끝난 후.
호현과 PD, 스태프들이 술자리를 하자고 꼬셨지만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가 택시를 잡아타서 집으로 가려는 순간 한복을 입은 소녀가 박지민에게 다가와서 쪽지 하나를 주었다.
박지민은 별다른 생각 없이 쪽지를 펼쳤는데 그곳에는 놀라운 말이 적혀 있었다.

도령의 연주에서 기가 느껴졌사옵니다.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주는 기가 말이옵니다. 저와 대화를 나누고 싶으시면 연락해 주시옵소서. XXX―XXXX―XXXX.

어찌 보면 그냥 사이비 무당이 지껄이는 말 같았다.
하지만 박지민은 그냥 웃어넘길 수 없었다.
목소리에서 기가 느껴진다는 말,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주는 기라는 말이 신경 쓰이는 것이다.
“아오! 신경 쓰여!”
박지민은 그녀가 쓴 말 때문에 신경 쓰여 미칠 것 같았다.
그는 음유시인의 길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음유시인의 길 스킬이 가지고 있는 효과는 매혹.
그것을 느낀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상한 말투를 생각하면 사이비 무당 같기도 했다.
“그냥 걸자.”
박지민은 핸드폰의 자판을 거침없이 눌렀다.
어차피 고민해 봤자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일단 전화를 걸어서 대화를 하면서 파악할 생각이었다.
―여보세요.
“아. 박지민입니다. 어제 쪽지 주셨죠?”
―아. 박 도령입니까? 반갑사옵니다.
‘아, 저 말투는 정말 적응 안 되네.’
박지민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옛날 여자를 현대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어제 그쪽이 쪽지에 적으신 기라는 것에 대해 궁금해서 전화 드렸습니다만.”
박지민은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상대방이 그냥 사기꾼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느꼈는지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고민했다.
―소녀의 이름은 최시연이라 하옵니다.
“아, 그래요. 최시연 씨. 그래서 기인지 뭔지를 느끼셨다고 하셨는데…….”
소녀가 자기소개를 하는데도 관심이 없었다.
박지민의 관심사는 오로지 기였다.
지금 상황은 제3자가 본다면 상당히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최시연은 매우 아름다웠다.
호현의 음악방송에서 박지민의 눈에 최시연이 가장 먼저 들어왔던 이유도 그녀가 혼자 한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눈부신 외모 때문이었다.
그 증거로 인터넷에서는 최시연을 두고 한복여신이니 뭐니 떠들어 대면서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 미녀가 쪽지에 전화번호까지 적어 주었고, 지금은 자기 스스로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보통 남자라면 좋아서 입이 귀까지 걸릴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지민은 그녀의 외모나 그녀의 신상정보 따위는 머리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기(氣).
그것 하나만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도령이 피아노를 연주할 때 도령 주변의 기가 소리를 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사옵니다. 무언가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신 것 같은데, 혹여 음공(音功)을 익히셨사옵니까?
음공?
박지민은 익숙하지 않은 단어에 어리둥절했다.
“음공이 뭡니까?”
―음공이란 무공의 일종으로……. 아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였으니 직접 만나는 것이 어떠시옵니까?
미녀가 먼저 번호를 주고, 먼저 자기소개를 하고, 이제는 먼저 만나자고 말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로서는 별로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약간 불길한 느낌도 들었다.
본능이 가면 좋지 않을 거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나요? 솔직히 내키지 않는데…….”
―어이하여 그러시옵니까?
“여자랑 만나는 건 좀 그런데…….”
박지민은 솔직했다.
여자는 꺼려져서 싫다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최시연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남녀칠세부동석 말씀이시옵니까? 걱정은 거두시지요. 본가의 어르신들 역시 자리를 같이하실 것이옵니다.
“본가의 어르신?”
박지민의 머리에는 사극에서 나오는 거대한 기와집이 떠올랐다.
―오시겠사옵니까?
“뭐, 까짓거 가죠.”
박지민은 흔쾌히 대답했다.
호기심이 불길함을 눌러 버린 것이다.
본능을 누른 이성의 승리!
어차피 전화를 건 시점에서 그는 반쯤 기대를 걸고 있던 상황이었다.
집에 찾아가 주는 것 정도는 별로 문제 될 것도 없었다.
거기다가 만약 찾아간 곳이 사기꾼 소굴이나 조폭 소굴, 사이비 종교 집단이라 할지라도 문제 되지 않았다.
박지민의 능력이 보통이던가?
그냥 무식하게 힘을 다 써서 주먹질만 하면 수십 명을 죽일 수 있는 것이 바로 박지민이 아니던가.
―알겠사옵니다. 언제 찾아오실 생각이옵니까?
박지민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오늘 가죠 뭐. 시간 되지요?”
―물론이옵니다. 어르신들께서 박 도령을 보기를 오매불망 원하고 있는지라 오늘 오신다 하여도 폐가 되지 않을 것이옵니다.
‘뭐 이렇게 말을 어렵게 하냐……. 그냥 어른들이 나 보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 거지.’
박지민은 그녀가 한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훗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본능을 따랐다면 인생이 꼬이진 않았을 거라고.

* * *

“이야…….”
박지민은 눈앞의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하철을 타고 근처에 내리고, 거기서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런데 상상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박지민은 대궐 같다는 말의 참뜻을 오늘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정말 대궐이 따로 없었다.
박지민의 눈앞에는 기와집이 있었다.
그런데 그냥 기와집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넓은 기와집이었다.
담장이 얼마나 넓은지 담장을 따라 한 바퀴 뛰면 하루치 운동은 다 할 것 같았다.
“이야. 이런 게 우리나라에도 있었구나.”
그는 빠른 시간 동안 발전을 거듭하면서 거대한 전통 가옥은커녕 그냥 전통 가옥조차 찾아보기 힘들게 된 한국에 이런 거대한 기와집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거대한 전통 가옥은 다른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지금 그의 눈앞에 떡하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박지민은 대문 앞에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담장 이곳저곳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고, 대문에도 역시 감시카메라가 있었다.
“오. 초인종이네?”
박지민은 비디오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누르자 곧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박지민이라고 합니다. 최시연이라는 분이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만.”
―알겠습니다.
뚝.
그 말을 끝으로 비디오폰은 꺼졌다.
박지민은 혹시 대문이 열릴까 기대하고 밀어 보았다.
덜컹.
하지만 박지민의 힘에 의해 잠깐 움찔할 뿐 단단히 잠겨 있었다.
‘부수고 들어가 버려?’
박지민의 힘이라면 나무로 만든 대문 따위는 주먹질 한 방에 부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괜찮네?’
박지민은 떠올린 생각이 상당히 매혹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손님!
이 얼마나 멋진 어감이란 말인가.
“흐음…….”
그는 탐욕스런 시선으로 대문을 쳐다보았다.
탐욕스런 시선의 이면에는 파괴 욕구가 넘실대고 있었다.
‘아니 잠깐. 부수면 수리비는 내가 내야 되잖아?’
그러다 문득 스쳐 지나간 생각에 그 욕망은 순식간에 사그라지고 말았다.
수리비.
현실의 벽은 높았다.
욕망이 뛰어넘을 수 없을 정도로.
박지민은 얌전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굳게 닫힌 문은 너는 속은 거라고 무언으로 속삭이고 있었다.
‘가라는 건가?’
박지민은 아무도 오지 않자 그것을 무언의 축객령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분이 매우 나빠졌다.
하지만 그는 대문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을 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나자 가기가 더더욱 싫어진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대문을 때려 부수고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대문으로 다가가서 그것을 쓰다듬었다.
“단단하네.”
단단했다.
괜히 대문으로 쓰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부술 수 있었다.
“오늘로 너의 생은 마감하게 될 것이다.”
그는 마치 대문이 생명체인 것처럼 말하며 대문을 향해 주먹질을 하려고 했다.
끼이이.
그 순간 문이 열리지만 않았어도 그는 틀림없이 대문을 부숴 버렸으리라.
“안녕하시옵니까?”
문이 서서히 열리며 최시연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제와는 달리 이번엔 밝은 빛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부 얼굴을 붉힌 채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만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증거였다.
하지만 박지민은 심드렁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오신 건가요?”
“가옥이 너무 큰지라 오는 데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또한 이리 빨리 도착하실 줄 몰라 외관을 꾸미는 데도 시간이 지체된지라…….”
박지민은 그녀가 정중하게 사과하자 살짝 솟아오른 분노를 버렸다. 속이 좁긴 하지만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담아 둘 정도로 엄청 소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안내해 드리겠사옵니다.”
“네.”
드디어 박지민은 적당히 유명해져서 고생 안 하고 편히 산다는 꿈이 산산조각 나고 그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