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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라이프 1권(18화)
chapter 6(2)
시간이 지난 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리라.
이 저주받을 집에 발을 디디는 게 아니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당연히 그 사실을 몰랐다.
그렇기에 최시연의 뒤를 따라가면서 집을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림처럼 펼쳐진 정원과 아름다운 풍경들.
그것들이 그의 마음을 매혹시킨 것이다.
“다 왔사옵니다.”
“아. 이곳입니까? 엉?”
다 왔다는 곳을 확인하자마자 지어지는 어이없는 표정.
하지만 그것은 결코 박지민이 특이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최시연과 박지민의 앞에 있는 풍경은 충분히 그럴 만했다.
“이게 무슨 개수작이야?”
어찌나 당황했는지 시종일관 존댓말을 하던 박지민의 입에서 반말이 튀어나왔다.
자신을 다치게 하려는 조폭에게조차 끝까지 존댓말을 하던 그의 입에서 반말이 나온 것이다.
지금 둘의 앞에는 살기등등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공터.
중간중간에 수련용으로 만든 듯한 나무토막들의 모습은 이곳이 연무장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거기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청년들은 물론이고 중년, 노인까지 칼을 찬 채 서 있었다.
거기다가 아예 그들의 앞에 나와 있는 중년은 칼을 뽑은 채 서 있었다.
거기까지도 어찌어찌 이해할 수 있었다.
연무장이 아니던가.
진검을 들고 수련하든 목검을 들고 수련하든 그것은 박지민이 알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칼을 뽑아 든 중년의 시선과 칼이 특정인을 향해 있다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그리고 그 특정인은 영광스럽게도 박지민이었다.
“헐.”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최악의 경우라 할지라도 조폭, 사이비 종교의 사람들, 다단계, 사기꾼 등을 생각했을 뿐이었다.
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칼을, 그것도 식칼이나 단검도 아니고 장검을 들고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박 도령의 이야기를 했더니 어르신들이…….”
최시연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칼을 뽑아 든 중년인이 추상같이 소리쳤다.
“이놈! 감히 사술(邪術)을 사용하여 사람을 현혹시키다니! 어디의 놈이냐!”
박지민은 그 말에 순식간에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다.
사술이 무엇을 말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사술은 사악한 술법을 말하는 거겠지? 그리고 현혹시킨다고?’
박지민은 등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게 살기인가?’
중년인의 말과 그의 몸에서 풍겨지는 살기, 그리고 반짝이는 칼날.
‘날 죽이려 하는구나!’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이런 상황이 된 것에는 분명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안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중년인이 진짜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 하나였다.
박지민은 번개같이 움직였다.
단, 중년인을 향해 달려든 것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최시연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와락!
“큭!”
그는 최시연의 몸을 뒤에서 껴안고 팔로 그녀의 목을 감쌌다.
“꺅!”
이런 상황을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던 그녀는 놀라 비명을 질렀다.
“결혼 안 한 아녀자에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소리치는 그녀는 객관적으로 매우 사랑스러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철벽의 여자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철저하고 선을 딱딱 긋는 평소의 모습과 정반대되는 모습이 많은 남자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물론 거기엔 박지민은 껴 있지 않았다.
“멈추세요! 그렇지 않으면 이 여자의 목숨은 없습니다!”
“놈! 명색이 남자라는 것이 양갓집 규수를 인질로 잡을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중년인의 외침에도 박지민은 한 점 부끄럼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은 내가 불리하니까 다음에 싸웁시다.”
“뭣이?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중년인은 추상같이 소리치며 그에게 달려가 검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박지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최시연의 몸을 검 앞에 가져다 대었다.
“허억!”
중년인은 대경실색하며 검을 비틀었다.
“감히!”
“여기는 여러분들의 홈그라운드잖아요. 제가 너무 불리하거든요. 다음에 다른 데서 싸우죠.”
말은 그렇게 하지만 박지민의 눈에도 살기가 가득했다.
조폭들이 다리를 부러뜨린다는 말을 듣고 여러 조폭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그들이 운영하는 나이트클럽을 쑥대밭으로 만든데다가 가위로 여럿을 난도질하고 결국은 두목의 다리를 부러뜨린 것이 박지민이었다.
그는 결코 지금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인질을 잡은 것은 일단 이 자리에서 빠져나가기 위함이었다.
그의 힘은 강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맨몸으로 검과 맞대고 싶지는 않았다. 생명력이 6배든 힘이 6배든 일단 그의 몸은 보통 사람과 똑같이 통증을 느끼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애초에 근접전은 그가 싸우는 방법도 아니었다.
죽이기 위한 싸움을 하는 이상 그는 결코 근접전을 할 생각이 없었다.
‘이곳에서 빠져나가서 활로 저격하면 된다.’
말이 궁술이었지 박지민의 궁술은 다른 궁술과는 차원이 달랐다.
좋은 활만 있다면 힘과 손재주로 어마어마한 사정거리와 거의 100%에 육박하는 명중률을 가지게 된다.
거기다가 백발백중을 사용하면 완전히 100%가 되어 버리게 되니 사실상 그의 화살을 피할 방법은 없다고 보면 되었다.
물론 지금 활을 꺼내서 공격해도 되긴 했지만, 활을 꺼내려면 인벤토리에서 꺼내게 될 것이 뻔했다.
허공에 일그러짐이 생기고 거기서 뭔가를 꺼내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적에게 정보를 많이 줄 필요는 없지.’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정보를 줄 필요는 없었다.
그는 그냥 빠져나가기만 하면 저격이 가능한데 굳이 꺼낼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 상황에서 농담이라니! 내가 우습게 보이더냐!”
“에이. 그런 게 아닙니다. 나중에 싸우자 이거죠.”
장난스러운 내용이었지만 말투에는 살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투는 점점 딱딱해지고 있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차가운 마음이 발동해서 그를 냉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박지민은 중년인을 노려보았다.
‘마법을 쓰면 간단하겠지만…….’
박지민은 마법을 쓸 생각이 없었다.
지금은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마법을 쓰는 게 알려지면 좋을 게 없었다.
다 죽여 버리면 문제가 해결되긴 하겠지만 그러면 너무 번거로웠다. 다 못 죽일 확률도 너무 컸다. 그리고 CCTV 같은 것으로 찍히고 있을 가능성도 높았다.
‘다른 속성 마법들이 사라지지만 않았어도…….’
박지민은 아쉬움을 느꼈다.
쓴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마법만 있었어도 주저 없이 마법을 썼을 것이다.
레이나시스가 가지고 있던 불 계열 마법 중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
화염 폭풍.
그것만 있었다면 박지민이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 연무장은 잿더미만 남을 것이 분명했을 테지만, 불행하게도 그에겐 그 스킬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에게 있는 것은 얼음 계열 마법.
주변이 다 얼어붙고 얼음 조각이 꽃 모양처럼 사방에 피어나는 게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지 않는가?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불 계열 마법은?
가스 폭발도 있고, 폭발물도 있으며, 우연한 화재가 일어났는데 폭발성 물질이 있어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쓴다고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얼음 계열.
그가 원하는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쯧. 재미있는 장면이기는 하다마는 이제는 되었다. 시연아. 빠져나오거라.”
최시연은 난생처음 외간 남자의 품에 안겨 당황하고 있다가 그의 말을 듣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네. 할아버님.”
퍼억!
최시연이 말을 끝내자마자 박지민의 몸은 허공에 붕 떴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여성용 호신무공 중 하나인 ‘튕겨 내기’를 사용한 것이다.
비록 남자만이 익힐 수 있는 최씨 가문 전통 무공에 비하면 좀 떨어지는 무공이었지만 그래도 기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튕겨 내는 기술이기에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
쿠당탕.
그리고 구석에 있는 물건들을 어지르며 바닥에 떨어진 박지민.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최시연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뒤에 물러나 있던 노인이 험상궂게 소리친 것이다.
“네놈의 심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 이러한 자리를 마련하였다. 심성이 바르다면 사술을 익혔다 할지라도 환영해 마땅하나, 심성이 사악한 것을 보니 결코 가만히 놔둬선 안 되겠구나!”
외침과 동시에 중년인과 노인의 칼에서 솟구치는 짙은 빛.
“어엉?”
박지민은 자신이 위기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짧은 순간 내렸던 최적의 판단.
그것은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가 심성을 시험하기 위한 자리였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잘못이었다.
‘위험하다!’
박지민은 중년인과 노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란 빛을 보며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가 꼬임을 받고 이곳에 오게 만든 기, 무공이란 단어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생명력과 힘만 믿고 달려들기엔 위험해 보였다.
‘어떻게 하지?’
아까는 그냥 심성을 시험하러 나온 사람들이 이제는 진짜 적이 되었다.
적진의 소굴.
사방의 적.
거기다가 인질마저 없었다.
거기다가 뒤에는 담벼락이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활을 꺼내거나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응? 담벼락?’
그는 순간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에 눈을 크게 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는 괴력이 있었다.
담벼락 정도는 언제든지 때려 부술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생각해 보니 담벼락 정도는 얼마든지 넘을 수 있었다.
‘괜히 인질을 잡고 있었네? 내가 너무 멍청했군.’
그는 자신을 질책했다.
그는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만 있었을 뿐 활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박지민은 돌아가자마자 자신이 얻게 된 능력치와 스킬들을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었다.
박지민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중년인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제가 북망산행 특급 열차 티켓을 끊어 드리겠습니다.”
얼음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말투였다.
거기다가 말투에서 묻어 나오는 살기!
노인의 입으로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말을 들은 마당에 거리낄 것도 없었다.
박지민의 머릿속에서 노인의 말은 서로 적대관계가 되겠다는 선포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졌다.
평소에 장난스러운 말투를 사용하던 박지민의 말투는 이제 완전히 딱딱해져 있었다. 또한 마음 역시 더 이상 차가워질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얼어붙게 되었다.
차가운 마음!
39레벨 얼음 계열 마법 패시브 스킬인 그것이 이름대로 박지민의 마음을 차갑게 만든 것이다.
차가운 마음의 효과는 조폭들을 다치게 할 때는 그냥 거부감을 없애는 정도에서 끝냈지만 생명의 위협과 함께 살기를 품게 되자 마음을 냉철하게 만들고 잔혹하게 성격을 바꿔 버렸다.
하지만 박지민은 상황의 급박함 때문에 자신의 변화를 몰랐다.
“합!”
박지민은 번개같이 움직여서 담벼락을 향해 발을 휘둘렀다.
콰앙!
보기에는 그냥 발차기였으나 담벼락은 굉음을 내며 부서져 버렸다.
“쇠?”
하지만 완전히 부술 수는 없었다.
그냥 돌로 만든 것처럼 보였던 담벼락 안에는 두터운 쇠로 만든 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꽤나 두꺼워 보였다.
“합금판을 돌 벽 안에 넣어 놨지! 네놈은 결코 이곳에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사술을 익혔는지 낱낱이 말하게 될 것이다!”
중년인은 바람 같은 속도로 그에게 뛰어와 검을 휘두르려 했다.
쾅!
하지만 박지민은 냉철한 이성으로 최적의 판단을 했다.
부서진 돌조각들을 중년인을 향해 발로 찬 것이다.
박지민의 힘이 더해져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돌조각은 평범한 사람이 몸에 맞으면 뼈가 으스러지고 피를 토할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거기다가 솜씨의 공능이 더해졌다.
본능적으로 최적의 목표 지점에 맞도록 차진 돌은 그냥 발로 찬 것이 아닌, 하나의 기술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촤악!
일검!
하지만 그러한 돌조각도 중년인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중년인이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매서운 속도로 머리로 향하던 돌조각은 두부가 반으로 잘리듯 반 토막이 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중년인이 돌조각을 베는 그 찰나의 틈!
‘뛰어넘는다!’
박지민은 담벼락을 부수고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재빠르게 판단했다.
탓.
한 번의 도약.
강화된 그의 신체는 최씨 가문의 담벼락 정도는 한 번에 뛰어넘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빠르게 움직여 거리로 몸을 숨겼다.
그 행동이 어찌나 바람 같은지 최씨 가문의 사람들은 쫓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술만 익힌 줄 알았는데 무예도 익힌 것 같군요. 패도적인 것을 보아…….”
“허. 패도적인 무예와 사술이라……. 일본 아니면 중국 쪽의 것을 배운 아해인가. 쯧.”
패도적인 무예!
강력한 박지민의 능력치와 최대한 단순하고 빠르게 몸을 움직인 것이 무술을 익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쫓을까요?”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되었네. 어차피 금방 행적을 알게 될 터이니. 헛되이 힘을 빼지 말고 저 아해를 잡을 준비나 하게. 그리고 도망친 것을 보아하니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은 모양일세.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을 것이야.”
노인의 눈에 살기가 넘실댔다.
작은 오해.
그것이 박지민의 인생을 꼬이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