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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라이프 1권(24화)
chapter 8(3)
정림은 매우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 눈이 돌아가면 보이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장난기 많고 조금 과격하기만 하지만, 눈이 돌아가면…….
‘아수라가 따로 없지.’
몇 년 전 정림이 머리끝까지 화가 난 적이 있었다.
자신의 누나가 일본에게 포섭된 가문의 배신자에게 상처를 입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듣고 눈이 홱 돌아서 가문의 배신자는 반으로 쪼개 버리고 한 달 동안 눈에 불을 켠 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일본의 마수가 닿은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다.
그렇게 죽인 숫자가 40명이 조금 넘었을 때 그제야 화가 풀렸었다.
‘그보다 더 전에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현재 27세인 정림이 15세이던 때에 자신이 익힌 무공에 대해 자부심이 넘쳐흘러 이씨 가문의 무공을 무시하며 이씨 가문의 차남 이성준에게 시비를 건 적이 있었다.
시비에 넘어간 이성준은 정림이랑 싸우게 되었고, 정림의 귀신같은 도끼술에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하지만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는 말처럼 차남은 지자마자 집안에 홀라당 일러바쳤고 이씨 가문의 고수가 나타나서 정림을 혼내 주었다.
자신이 싸움에서 지자 어른을 불러와 보복을 행한 이성준 때문에 화가 난 정림은 학교까지 빼먹고 그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었다.
자신이 질 것을 뻔히 아는데 싸울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성준은 정림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하지만 정림의 시비는 욱하게 만드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고 이성준은 그것을 참다못해 결국 또 어른을 불러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정림을 혼내 주었던 자는 또다시 정림을 혼내 주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갔으나, 다시 한 번 어른을 불러서 보복을 행하자 정림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고 말았다.
이성이 마비된 정림은 이씨 가문 본가의 문을 부숴 버리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에 이르렀다.
『이성준 나오라 그래! 이 성을 바꿔 버릴 놈! 당장 안 나와?!』
‘그날에는 고수들한테 흠씬 얻어터졌지. 그다음 날에 또 찾아갔을 때는 다리가 부러졌지.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팔이 부러졌고…….’
눈이 돌아간 정림은 대단했다.
다리 한쪽이 부러지면 목발을 짚고 가서 소리쳤고, 다리 두 쪽이 부러지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소리를 질렀다.
팔이 부러지자 아예 최명진에게 부탁해서 이씨 가문 본가 앞에다가 놔 달라고 부탁을 하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성준 나와! 안 나와?!』
심지어 나중에는 자신이 욕을 소리치는 것을 녹음해서 카세트 플레이어 수십 대를 이용해 엄청나게 시끄럽게 만들기까지 했다.
물론 이씨 가문도 협박을 하긴 했었다.
『계속 이런 짓을 하면 무사치 못할 거다! 네가 이씨 가문을 모독하고도 살아 있는 건 정씨 가문이라서 그런 거다!』
『뭐? 이 처죽일 새끼가? 죽여, 임마! 어디 정씨 가문과 이씨 가문 전면전 한번 해 보자!』
생명의 위협을 가하면 전쟁으로 위협한다.
배를 짼다고 하면 배를 째라고 배를 내밀기까지 한다.
협박이 안 되자 차분히 대화로 풀어 보려고 했다.
『이래 봤자 무슨 소용이냐. 시비를 먼저 건 네가 잘못이 아니냐.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없었던 일로 할 테니 가 다오.』
『닥쳐! 이성준 불러! 내 머리통이 부서지지 않는 한 그놈의 사과를 받아야겠어! 이성준, 야 이 치사한 놈아! 당장 안 나오냐!』
결국 이씨 가문은 손을 들고 말았다.
팔다리를 부러뜨려도, 죽기 직전까지 패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이씨 가문과 이성준을 욕하는데 방법이 있을까?
‘결국 이성준이랑 이씨 가문 사람들에게 사과를 받았지…….’
그 이후로 이씨 가문의 사람들은 정림을 거머리, 자라 등으로 빗대어 말하기에 이르렀다.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다는 뜻이 담긴 별명이었다.
그는 정림을 보면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데리고 가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그는 최대한 부드럽게 그에게 말했다.
“자네도 궁금한가 보구만?”
“그렇지 뭐. 나보다 어린 주제에 궁술의 고수라니. 흐흐. 대단하지 않냐?”
“음. 자네의 그 마음은 이해하네. 하지만 최씨 가문의 이름으로 그와 만나려는 거라네. 이해해 주길 바라네.”
“야. 우리가 남이냐?”
“하하. 물론 우리는 친구지.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만나게 해 줄 터이니 오늘은 접어 주게.”
최명진은 부드러운 말로 정림이 박지민을 만나는 곳에 따라간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약간 삐친 태도로 툴툴거리고 있긴 했지만 수긍은 한 것 같았다.
“최씨 가문의 일이라니 어쩔 수 없지. 야, 근데 너 설마 내 성격 때문에 거절한 건 아니겠지?”
움찔.
“아닐세. 날 어떻게 보고! 자네를 면식 없는 사람의 집에서 분노도 자제 못할 사람으로 본다고 생각하나!”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화내는 최명진.
그 모습에 정림은 약간 찝찝하기는 했지만 애써 수긍했다.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시연아. 가자꾸나. 오해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곤 하나 우리가 문제 제공을 하였으니 우리가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느니라.”
“저도 그리 생각하나…….”
최명진은 최시연이 왜 우물쭈물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쿡.
“얌마. 그거 아냐, 그거.”
보다 못한 정림이 끼어들었다.
“그거?”
“이거 말이야, 이거.”
최명진은 검지와 엄지를 붙인 것을 보고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군. 사과를 하는 입장이고, 우리가 집에 찾아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것이지. 사과를 하러 온 객이니만큼 그만큼의 성의가 필요한 법이었어!”
“그렇사옵니다. 무엇을 가져갈지…….”
최명진은 별다른 고민 없이 말했다.
“활을 쓴다고 했던가? 우리 집에 귀한 활이 하나 있지 않느냐?”
“오, 오라버니. 그것은…….”
최씨 가문은 오랜 전통을 가진 가문이었다.
그런 만큼 여러 가지 귀한 물건을 받기도 하고 얻기도 했는데, 최명진이 방금 언급한 활 역시 그것들 중 하나였다.
강한 내구도와 대단한 기품을 가지고 있는 활이었지만 최씨 가문에 궁술이 없어서 그동안 썩혀 왔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총 때문에 장식물이 된 비운의 활이기도 했다.
“어차피 우리야 장식품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다르지 않느냐. 활도 우리 말고 그에게 가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장식품 신세보다는 자신의 원래 목적인 무기로 사용되는 것이 좋을 것 같지 않느냐?”
“그러하겠습니다.”
그들은 박지민이 활을 받고 흡족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박지민에게 금속 다루기와 식물 다루기 스킬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스킬로 뚝딱거리기만 하면 높은 내구도의 활이 나오는데 좋아할 리가 있을까?
활을 준다고 해도 최씨 집안처럼 장식품이나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인벤토리에 쑤셔 박히는 것 이상의 대우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 뻔했다.
chapter 9(1)
“실험은 잘 되고 있나?”
“잘 되기는!”
미국 모처에 위치해 있는 초능력 개발 연구소.
평범한 기업으로 위장되어 있으나 실제론 초능력에 소질 있는 사람들을 이용해 생체 실험을 함으로써 초능력을 인위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시키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를 하는, 극히 비인도적인 곳.
그 시설의 지하 복도에서 연구원 두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명은 덩치 큰 흑인이었고, 한 명은 뚱뚱한 백인이었다.
그 둘은 각자 자신이 담당했던 실험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었다.
“네가 담당하고 있던 실험체가 A223451이던가? 그 염동력자?”
“쯧. 자기 것 외에 관심 없는 것은 여전하다니까. 염동력자가 아니라 영능력자라고.”
“아! 그랬지 참. 어쨌든 걔는 어떻게 된 거야?”
“정신력이 약하더라고. 그래서 어제 정신이 부서진 상태야. 왜 물어보는데?”
“예쁘장하게 생겼잖냐. 조작된 기억을 심어 주기 전에 내가…… 흐흐흐.”
“너 아랫도리 계속 그렇게 무분별하게 놀리다간 큰일 나는 수가 있어.”
그들은 실험에 사용되는 초능력자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고 있었다.
실험 도구.
노예.
그들에게는 잡혀 온 초능력자들이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나저나 왜 오라고 방송한 거야. 짜증나게.”
“아. 듣기론 T67821에게 특별한 실험을 한다고 하더라고.”
“T67821? 아아. 난 또 누구라고. 그 인터넷 관련 초능력을 가진 여자애 말하는 거야? 그저께 들어왔던가?”
“이번에는 똑바로 기억하고 있군. 그래, 맞아.”
“소장이 귀중한 초능력이라면서 아주 애지중지하지 않았어?”
“킥킥킥. 지 자식한테보다 더 극진하게 대하더라. 그거 생각하면 웃겨 죽겠다니까.”
뚱뚱한 백인은 박장대소하며 웃었고, 그 때문에 옷을 터트릴 것만 같은 살들이 출렁였다.
“귀중한 초능력으로 실험이라……. 기대되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 아, 다 왔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작은 방 하나가 나타났다.
다만 보통의 방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옆의 방을 볼 수 있도록 한쪽의 면이 유리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리는 특수한 방법을 이용해서 만든 유리로서 강한 염동력자가 온 힘을 쏟아 내도 부술 수 없는 엄청난 강도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볼 수 있지만, 한쪽에서는 검은색으로 보이게 하도록 처리가 끝난 유리였다.
“빨리 좀 올 것이지! 너희 때문에 실험이 늦어졌잖아!”
“미안미안. 우리가 마지막일 줄은 몰랐지.”
뚱뚱한 백인이 넉살 좋게 변명하자 그에게 면박을 줬던 연구원은 더 이상 쏘아붙일 생각이 없는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옆의 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유리로 훤히 보이는 옆의 방에는 15세 정도의 서양 여성이 의자에 묶인 채 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방 안의 온갖 기기들과 연결된 전선이 가득 붙어 있었고, 심지어 그 전선은 그녀의 뇌에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라? 저거 위험하지 않아? 뇌에 직접 연결이라니. 저러다가 뇌가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래.”
“내가 알 게 뭐야. 이번 실험은 소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는 거라고.”
“쩝. 그래도 그렇지……. 아까운 실험체를 한 번만 쓰고 버리려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소녀를 지켜보고 있을 때, 소녀의 앞에 앉아 있던 연구소장은 자신의 책상 앞에 놓여진 노트북을 펼쳤다. 그러곤 책상에 올려져 있던 마이크를 이용해서 실험을 구경하는 연구원들에게 말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잘 들리나?
―네. 잘 들립니다.
연구소장은 귀에 꽂아 놓은 이어폰으로 마이크가 잘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자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지금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하고 있다. 너희들은 지금 이 순간, 나의 위업의 증인이 되어 줄 것이다.
소녀는 연구소장의 말에 불길함을 느끼고 몸을 덜덜 떨었다.
―자질구레하게 설명을 하고 싶기는 하지만……. 너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실험 결과를 보고 싶어서 좀이 쑤시고 있는 상황이니까, 설명은 생략하고 실험을 시작하도록 하지!
연구소장은 비릿하게 웃으며 노트북을 조작했다.
파지지직!
“으거거걱!”
그 순간 소녀에게 연결된 수많은 기기들이 소녀의 몸에 경련이 일어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몸에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링거들이 의문의 약물들을 차례대로 몸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으거걱!”
소녀는 몸을 경련시키며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었다. 하지만 연구소장은 소녀가 괴로워하든 말든 즐거운 표정으로 소녀를 보고 있었다.
지금 연구소장이 소녀에게 하는 실험은 소녀의 초능력을 이용한 실험이었다.
실험체 T67821라는 명칭을 가진 소녀는 인터넷에 자신의 정신을 집어넣어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 짧은 것이 단점이었는데, 연구소장은 지금 그녀의 초능력을 발동시켜 그녀의 정신을 강제적으로 인터넷 안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끼기긱!”
하지만 뇌는 섬세한 것.
특히 초능력자의 초능력은 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히 다뤄야 하는 것이었다.
강제적으로 능력을 발동시키자 뇌에 부하가 가고 그 고통에 소녀는 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아 몸을 떨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연구소장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뇌를 일시적으로나마 강화시켜 부하로 인해 망가지는 것을 대비하는 약물들을 잔뜩 투여했기 때문이다. 소녀에게 투여한 것들의 가격을 따져 보면 1억3천만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고가의 약물들을!
“흠. 뭐가 문제인 거지?”
연구소장은 인터넷에 정신을 집어넣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 불만인 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때, 변화가 일어났다.
띵.
소녀와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들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콘들이 멋대로 움직이고, 인터넷이 멋대로 켜졌으며 메모장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들이 써지고 그림판에는 낙서가 가득 그려지기 시작했다.
“오오!”
연구소장은 그 모습에 환호를 내질렀다.
“오!”
그리고 밖에서 보고 있는 연구원들 역시 탄성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