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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혼을 팔았다 1권(3화)
1. 계약(3)
달칵.
그가 잠깐 손을 뗀 사이, 또 조명이 꺼졌다.
“누구야, 나와!”
두려움을 떨쳐 내려 바락 악쓴 그는 온 집 안을 훑으며 뒷걸음질 쳤다. 무섭다, 그토록 익숙하던 집이 너무나 무서웠다. 뭔지도 모를 것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한데 어디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키득키득 웃는, 다 자라지 않은 듯한 소년의 웃음소리. 밑에서 들리는 소리다.
홱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는 자신의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려던 석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그림자의 색이 진하다.
빛이 옅은 실내에서 생겨나는 흐릿한 게 아니라, 한 여름 땡볕에서나 볼 수 있는 검정색이었다.
저도 모르게 그림자와 멀어지려 뒷걸음질 쳤지만, 당연하게도 그림자는 그를 따라왔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허억.”
괴기스런 상황에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그에게 그림자가 불쑥 머리를 디밀었다.
“아저씨, 재밌네.”
석은 그림자가 웃었다고 생각했다. 그림자가 손을 들었다.
“더 놀고 싶은데, 배가 고파서 안 되겠어. 그러니까, 아저씨.”
검은 손 끝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난다. 그림자의 형상이 입체감을 가졌다.
그것이 말했다.
“울어 줘.”
손톱이 떨어졌다.
석의 왼 다리가 잘려 나갔다.
핏물이 흐른다.
아프다.
죽도록 아프다.
“아, 아아아.”
하지만 그는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끔찍한 공포감에 통각조차 마비된 것 같았다.
같은 소리만 반복하며 덜덜 떠는 그에게 또 웃어 준 그림자가 잘려 나간 다리를 손톱으로 푹 찍어 얼굴로 가져갔다.
피 냄새가 난다. 먹음직한 인간의 몸뚱이에 붙어 있던 일부. 하지만 이젠 잘려 나간 살덩이에 불과했다. 그림자는 그것에 흥미를 잃었다.
그보다 공포에 겨워 떨고 있는 남자에게 관심이 간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격렬히 발산되는 부정적이고도 강렬한 감정은 그것에게 있어, 훌륭한 식사였다.
석에게서 풍겨 오는 공포와 고통을 음미하던 그림자가 비명도 못 지르고 떨고 있는 남자를 내려 봤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좀 더 듣고 싶었다.
고통에 겨워, 공포에 질려 발버둥 치고, 울부짖는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아저씨, 울어 봐. 더 크게. 더, 더, 더 크게.”
대답도 듣지 않고 손톱을 긋는다. 남은 다리마저 떨어지고, 그림자가 주먹을 내려쳤다. 살덩이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뭉그러졌다.
남자는 여전히 비명도 못 지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풍겨 오는 향기는 여전히 맛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왜 이런 것을 지금에 와서야 맛보게 된 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미약하게 흘리는 신음만으론 감질나 못 견디겠다.
그림자가, 소년이, 상실이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더는 참을 수가 없다. 다 먹어야겠다. 자잘한 파편에 불과한 감정 따위, 필요 없다.
그 근원을, 이 인간의 정수를 먹어야겠다.
“우아, 으아아악!”
그제야 석이 비명을 질렀다. 상실에겐 이 처절한 비명조차도 감미로웠다. 울음마저도 훌륭한 만찬이다. 먹는 게 아깝다. 동시에 먹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입이 쩍 벌어진다.
인간쯤 한 입에 삼킬 수 있을 크기로 벌어진 입안에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한가득하다. 상실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는 남자를 한입에 물었다.
“으아, 아악, 아아악, 캬아아앗!”
연신 비명이 터진다.
몸이 으깨진다.
뼈가 으스러졌다.
배가 찢겨진다.
내장이 흘러나왔다.
곧 비명도 잦아들었다.
아득아득 남자를 씹던 소년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 시체를 퉤, 뱉어 냈다. 넝마나 다름없어진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의 목적은 이딴 게 아니다. 울부짖는 목소리는 즐거웠다만, 정작 원하는 건 따로 있다.
―으아아아아.
비명이 들린다. 인간의 청력으론 들을 수 없는, 영적인 울음이 온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고통 받고, 공포에 질려 저승으로 가지도 못하고, 원독에 가득 찬 절규를 토해 내는 그것은 희끄무레한 덩어리였다.
원혼, 영혼. 그것이 이 덩어리의 이름이다.
껍데기에 불과한 몸뚱이와 함께 자라 온 인간의 정수. 모든 인간은 영혼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살아생전 윤석이란 이름을 사용했던 원혼은 특별했다. 이건 악의에 물들어 시커멓게 부패한 타락자의 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특별했다. 그렇기에 식욕이 자극된다. 그렇기에 먹을 수 있다. 오직 이것만이 소년의 갈증을 해갈할 수 있었다.
“하아.”
상실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즉각 손을 뻗어 혼을 한 손에 낚아챘다. 흩어져 도망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손아귀에 들어온 혼은 절대로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칼날 같은 이빨로 원혼을 베어 문다.
울부짖는다. 안개와 같은 형상은 꿈틀거리며 발악했다. 하찮은 반항을 무시하며, 소년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진정으로 맛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 뚫린 구멍까지 메울 듯한 충족감이 전신에 가득하다. 부패한 영혼의 곡소리가 내부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친다. 역시나 혼이 발산하는 감정의 부스러기 따위완 비교도 할 수 없다.
남은 원혼을 통째로 삼켰다. 배 속에서 절망에 빠진 통곡이 들려왔다. 기분 좋은 포만감을 만끽하며, 더는 볼일이 없는 방에서 빠져나갔다.
내부에 남은 것이라곤, 적막과 피비린내. 끔찍하게 뭉그러진 시체뿐이다.
“엄마 왔다.”
고단한 하루 일을 끝마치고, 김정순은 현관문을 열었다. 집 안은 어둑했다. 여전히 닫힌 아들의 방문을 보며 그녀는 한숨 쉬었다. 아들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며 저녁을 차리려 하는데, 방문이 열렸다.
“다녀오셨어요.”
밖으로 나온 상실이 인사하며 활짝 웃었다. 갑작스런 일에 정순은 반가우면서도 이상했다. 아들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 본 사이 여드름이 가득하던 얼굴도 깨끗해졌다. 키도 조금 큰 것 같았다.
“어이구, 내 새끼.”
오랜만에 보는 아들의 모습에 이리저리 어루만지던 그녀는 손에 닿는 냉기에 놀랐다. 아들의 뺨이 차가웠다. 황급히 손을 만지자, 손도 차갑다. 창백한 낯이 마음에 걸린다. 어디 아픈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어디 아파?”
“아니, 안 아파. 나 멀쩡해.”
양팔로 있지도 않은 알통을 만들며 과장되게 행동하는 상실을 보던 정순은 넘어가기로 했다. 어쨌건 아들이 몇 주 만에 얼굴을 비쳤단 사실이 중요했다.
“밥 먹자.”
그녀는 웃으며 저녁상을 차렸다. 특별할 것도 없는 식사였지만 아들은 잘도 먹었다. 방문을 잠그고 틀어박히기 전까지 깨작대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하는데, 아들이 어깨를 주물렀다. 차가운 손이지만 정순은 떼어 낼 수 없었다. 상실이 먼저 안마를 해 준 일은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번 어디가 아프니 주물러 달라고 해야 마지못해 하던 아이였다.
“이 녀석, 뭐가 또 필요하니?”
어깨 너머로 묻자, 상실이 고개 저었다.
“엄마, 나 내일부터 학교 나갈게.”
“어?”
설거지 하던 손을 멈춘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문을 걸어 잠근 아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도, 울면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할 뿐이었다. 화도 내 보고, 달래도 봤지만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었다. 결국 포기하고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학교에 나가겠다니.
“가도 괜찮겠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억지로 가려는 게 아닌가 싶어 물었다. 아들은 전혀 아니란 듯 고개 저었다.
“학교는 가야지. 공부도 해야 하고. 그리고 말이야.”
상실이 정말 기대된다는 듯 웃었다.
“애들이 보고 싶어졌거든.”
“그래?”
기대도 안 했던 아들의 밝은 반응에 그녀는 반색했다. 일하느라 쌓였던 시름이 싹 사라진 기분이다. 아들이 조금은 철 들은 것이라 생각한 정순이 웃으며 물었다.
“용돈 줄까? 친구들이랑 놀려면 필요하지 않아?”
없는 살림이었지만 자신이 좀 더 고생하면 아들에게 용돈 한 번 못 줄 건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기념할 만한 날 아닌가. 그러나 상실은 다시 고개 저었다.
“괜찮아.”
그가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정순은 설거지를 하느라 그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애들한테 전화 왔어. 그동안 괴롭힌 게 미안하다고, 자기들이 먼저 잘해 주겠대.”
“그러니? 잘됐구나, 정말 잘됐어.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네에.”
엄마의 말에 얌전히 끄덕이며 상실은 얼마간 어깨를 주무르다 화장실로 갔다. 설거지를 마저 끝낸 정순은 방금 상실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분명 오늘 아들의 행동은 좋은 일이었지만 이상하다. 매일 보던 철없는 아이가 아니라, 조금 더 성숙해진 것 같기도 하고, 낯선 다른 사람 같기도 했다.
상실이 들어간 화장실문을 바라보던 그녀는 티브이를 틀었다. 좋아하는 연속극이 시작할 시간이다. 가만히 브라운관을 보던 정순이 손을 들어 어깨를 만졌다.
아들이 주물렀던 자리가 서늘했다.
화장실로 들어간 상실은 변기에 대고 입을 벌렸다. 구역질 소리도 없이, 방금 먹은 저녁이 고스란히 쏟아졌다. 밥과 반찬이 소화도 되지 않은 형상으로 가라앉은 것을 본 그는 손잡이를 눌러, 물을 내렸다.
엄마가 주는 것이니 맛있는 척 먹기는 했지만, 맛있진 않았다. 아니, 맛없었다. 도저히 먹어 소화시킬 만한 것이 아니다.
물살에 떠밀려 사라져 가는 저녁 식사의 흔적을 보며 그는 낮에 먹었던 아저씨를 떠올렸다. 정말 맛있었다. 태어나 처음 먹어 보는 진미였다. 지금껏 사람이 그렇게 맛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왜 먹지 않았는지 이상할 정도였지만, 이전이라면 먹으라고 줘도 먹지 못했을 것임은 알 수 있었다.
스스로를 악마라 말한 남자가 준 힘 탓이다. 이미 자신이 인간이 아닌, 다른 뭔가가 되어 버렸음을 소년은 잘 알았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힘을 어찌 써야 하는지, 어떤 힘을 쓸 수 있는지, 뭘 먹어야 하는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아저씨를 먹은 뒤로는 공복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매우 맛있기는 했지만, 배가 고프지 않으니 더는 뭘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엄마에게선 맛있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만약 엄마에게서도 그런 냄새가 났다면 배가 고플 때, 참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참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최소한 엄마에게서 식욕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걔들은 어떤 냄새가 날까?”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을 떠올린 소년은 기대감 어린 얼굴로 미소했다. 그들에게서도 맛있는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상실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엄마가 티브이를 보고 있자, 소년은 쪼르르 곁에 앉아 함께 시청했다. 뭔지 모르는 내용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엄마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엄마에게서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홀로 있을 땐, 느낄 수 없었던. 그러나 낮의 식사에선 느낄 수 있었던 만족감과 비슷했다.
“엄마.”
“왜?”
“사랑해.”
“얘는.”
정순이 별소리 다 한다는 듯 픽 웃었다. 상실이 다시 말했다.
“엄마.”
“왜에?”
“내가 꼭 호강시켜 줄게.”
“어느 세월에?”
“이 담에.”
정순이 미소했다.
“그래, 꼭 호강시켜 줘야 한다?”
“응.”
상실은 엄마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