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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혼을 팔았다 1권(4화)
2. 등교(1)
아침이 되었다. 출근하는 엄마를 배웅한 상실은 아침을 먹은 분량의 밥과 반찬을 변기에 처리해 버리고, 학교로 갈 시간만을 기다렸다. 선물을 풀기 전의 아이처럼 기대하며 시간을 보내던 소년은 여덟 시가 좀 넘은 시점에 가방을 챙겼다.
등굣길은 전쟁과 같았다. 출근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뒤섞인 버스는 콩나물시루였고, 당연히 앉을 자리 찾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상실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집을 나선 그는 불쾌한 볕을 피해 그림자에 숨어들었다. 볕을 받는다고 약해지거나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불쾌했다. 오물에서 뒹구는 것처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림자에 녹아든 그는 빠르게 그림자와 그림자의 사이를 뛰어넘었다. 아무도 시커먼 뭔가가 휙휙 지나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뭐가 지나갔나, 돌아볼 때쯤엔 상실의 위치는 한참이나 멀어진 후다.
버스를 타도 삼십 분은 걸렸을 거리를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주파한 그는 학교의 구석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기대감 어린 가벼운 걸음으로 교실을 찾아가는 동안 복도에서 그를 알아본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쟤가 걔야? 육 반의 왕따?”
“학교 안 나온 지도 한 달이 넘었다며?”
“선생들도 포기한 눈치던데.”
“그런데, 왜 나왔대?”
“그러게. 근데, 기분 좋아 보이네?”
“몰라, 내가 알 게 뭐야.”
작게 소곤대는 수다들을 들었지만 소년은 개의치 않았다. 뭘 알겠는가. 저 어리고 나약한 것들이. 이전의 자신이었다면 벌써부터 주눅이 들었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저런 미숙한 인간과 자신은 달랐다. 아니, 모든 인간보다 우월하다.
교실 문을 열며 그가 등장하자 모두가 놀란 시선이다. 당황과 의아함이 섞인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며, 소년은 당당히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교실 구석에 위치한, 절대 햇볕이 닿지 않는 자리였다.
책상에 앉으니, 낙서가 보였다.
죽어라, 병신. 비겁한 새끼. 평생 그렇게 살아라. 찐따. 여드름 괴물. 찌질이 상실, 여기 살다 사라짐.
욕설과 함께 상실을 여드름 가득한 얼굴에 마르고 배만 나오게 그린 그림도 있었다. 소년은 그것을 보며 픽 웃었다. 아주 좋은 기분이었다. 그에게 학교란 이런 곳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두가 적. 누구와 친교를 맺을 이유도, 필요도, 방법도 없는 감옥 같은 장소.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누구에게 감옥이 될지는 차후 알게 되겠지.
오랜만에 등교한 그로 인해 교실 전체가 술렁였다. 어떻게 대할지 감이 안 잡힌 때문이었다. 이전에야 반 전체에서 무시하고 따돌려도 무방한 호구였지만, 지금은 한 달이 넘게 등교거부하다 나온 몸이다. 잘못 건드렸다가 선생님께 불려 가면 고약한 꼴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아, 병신 하나 오면 온 거지. 왜 이렇게 시끄럽냐. 연예인이야?”
누군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작은 웃음이 퍼졌다. 어쨌거나 그들에게 바뀐 것은 없었다. 이전처럼 무시하면 될 일이다. 익숙해지면 또다시 괴롭히고 따돌리면 그만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만만하니까, 장난삼아, 같이 있기 싫으니까, 말리다가 같이 따돌림당하기 싫으니까, 괴롭히고 싶으니까.
모두가 장난이란 한 마디, 신경 쓰지도 않았다는 말로 설명 가능한 이유였다. 가끔 누가 괴롭힘 때문에 죽었다는 기사도 났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에 관심 없었다. 설령 그런 기사를 보더라도 설마 죽을까 생각했다. 상실에 대한 감상은 더했다. 그들이 보기에 이상실이란 인간은 자살할 용기도 없는 팔푼이다.
사실 용기와 자살은 전혀 상관없다. 자살은 용감히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못 견뎌 도망치는 자의 최종 선택지다. 상처 받는 것이 두려운 자의 극단적인 자기애의 발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까진 몰랐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자기만 아니면 아무래도 됐다.
교실에 번져 가는 조롱 섞인 웃음에 상실은 처음 말한 대상을 바라봤다. 장난기 많아 보이는 소년이다. 나서고 주목받기 좋아하는 성격에, 힘 있는 녀석과 어울려, 그 힘이 자기 힘인 양 과시하기를 즐긴다.
성정훈이란 이름의 소년은 자신의 말에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즐기며, 자신을 향한 상실의 시선을 부라린 눈으로 마주 바라봤다.
네까짓 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그간 보아 온 상실을 떠올려 보면, 어떻게 대해도 상관없는 멍청이다. 욕하고, 괴롭혀도 그저 바닥만 바라보는 찌질이였다. 눈만 부라려도 조용히 눈 돌리는 겁쟁이였다. 그런데 저 겁쟁이가 감히 시선을 마주했다. 눈도 돌리지 않고, 입가엔 묘한 미소까지 띠며 계속 눈을 마주쳤다.
자신을 무시했단 생각에 발끈하려던 정훈은 다음 순간, 소름이 돋았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무섭다. 새카만 눈으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상실이 두려워졌다. 금방이라도 풀려날, 헐거운 목줄에 묶여 사납게 짖어 대는 개와 마주한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무서웠다. 경험한 적 없는, 이를테면 맹수 앞에 홀로 선 느낌이었다.
바짝 얼어 있던 소년은 갑자기 목덜미에 느껴지는 차가운 손길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으헉!”
벌떡 일어나는 그에게 시선이 몰렸다. 황급히 뒤를 돌아봤지만, 뒷자리에 앉은 녀석은 자고 있었다. 연기가 아니라 진짜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옆에 앉은 소년이 뭐가 어쨌냐는 표정으로 힐끔 보더니, 문제집으로 시선을 옮겼다.
당혹해하며 자리에 앉은 그는 힐끔 상실을 바라봤다. 상실은 더 이상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다.
조심스레 관찰하던 그는 상실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여드름이 더는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뿐 아니었다. 뭔가 달랐다. 이전까지의 만만한 분위기가 아니라, 가까이하기 꺼려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시선을 느낀 상실이 고개 돌리자, 정훈은 급히 책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시는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상실은 자신을 훔쳐보던 정훈에게 힐끗 시선을 주었다. 급하게 고개 돌려 책을 보는 척하고 있었지만, 떨리는 몸을 감출 수는 없었다. 방금 정훈의 그림자를 통해 목을 쓰다듬어 주길 잘했다 여기며, 조용히 웃는다.
그의 시선이 반 전체를 훑었다. 아쉽게도, 이곳엔 먹을 만한 먹이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조금 가능성이 보이는 냄새도 있었지만 아직 덜 익었다. 더 검고, 부패한 인간의 향기가 필요하다. 어제 먹은 아저씨가 거의 다 소화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은 공복이 오지 않았지만 학교가 끝날 즈음이면 배가 고프리라.
정훈과 무관하게, 반의 학생들 대부분은 상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뭔가 다르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지만 크게 관심도 없었기에 파고들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놀거나 공부할 뿐이다.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심심했기에, 상실은 교과서를 꺼내 봤다. 그리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가 얻은 힘은 아무래도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게임만 해 온 탓에 내용을 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학이라 그런가 생각하며 국어책도 꺼내 봤지만 재미없었다.
엄마에게 공부하겠다고 괜한 말을 한 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공부를 잘하길 바라시진 않았지만, 성적이 오른다면 응당 기뻐하실 거다. 하지만 역시 공부는 정이 가지 않았다.
왜 공부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자신은 인간과 격이 다른 존재가 되었다. 하고자 한다면 그깟 돈쯤 언제라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엄마가 기뻐할까? 어디서 난 돈이냐며 다그치시지 않을까?
‘공부 못해도 좋으니, 건강하게 자라다오.’ 다들 많이 들어 본 말이다. 보통은 부모님이 아니라, 티브이나 다른 곳에서 본 말이었지만, 상실은 실제 자주 들은 말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고, 운동에도 관심이 없었기에 정순은 다 포기하고, 구김살 없이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하고 바랐다. 그렇지만 부모가 되어서 자식이 잘되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식이 자랑스러워지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상실은 인상을 썼다. 엄마를 호강시켜 드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공부를 하건 운동을 하건 돈이 생기려면 최소한 몇 년은 걸릴 거다. 지금이라면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현역 선수보다 월등한 성적을 거둘 자신이 있었다. 인간을 아득히 벗어난 육체는 한계에 갇혀 아등바등하는 자들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 그에게 엄마는 무엇보다 소중했다. 먹지 않더라도, 곁에만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그리고 당장 돈을 훔쳐 올 힘이 있는데, 누군가에게 얽매여서 돈을 받기도 싫었다.
방도를 찾아야 했다. 표면적으로나마 합당히 돈이 생기는 방도를.
고민하고 있는데, 교실 문이 열리며 세 명의 소년이 들어왔다. 시간은 아홉 시에 가까웠다. 지각을 한 탓에 벌을 받았는지, 땀이 줄줄 흐른다.
“아후, 죽는 줄 알았네.”
“학주, 오늘따라 더 지랄이야.”
“허리 아파.”
투덜거리며 자리를 찾아가던 그들 중 하나가 상실을 발견했다. 반가운 표정이 된 그가 책상에 가방만 던져 놓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야, 인제 나왔냐?”
친한 사이처럼 웃으며 다가온 소년은 다름 아닌, 중학교를 졸업하고도 따라붙은 악연이다. 새 생활을 꿈꾸던 상실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자살까지 몰아간 원흉. 박지원.
상실에게 지원은 두려운 존재였다. 웃으며 장난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그것은 모두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러한 행동 탓에 다른 녀석들도 쉽게 그를 괴롭혔다. 고등학생이 된 뒤로, 모든 괴롭힘과 무관심의 배후에는 사실상 그가 있었으며, 중학생 때부터 길들여진 상실은 반항도 못했다. 그랬었다. 어제까지는.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지원은 어린애일 뿐이다. 강아지와 같았다. 어제 봤던 아저씨와 마주친다면 눈을 내리깔고 피해 갈 애송이에 불과했다.
상실은 슬며시 웃었다. 겨우 이런 꼬마를 그렇게나 무서워했다니. 몽땅 거짓말 같았다. 사실 이전의 자신이라도 악을 쓰며 덤볐다면 이기진 못해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못했던 것은 나약하고도 나약한 심성 탓이었다. 몇 년에 걸쳐서 비굴하게 길들여진 탓이었다.
“오랜만이야.”
손을 들어 여유롭게 인사하는 그를 보며, 지원은 눈썹을 찡그렸다. 이놈이 뭘 잘못 먹었나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가 짐짓 놀란 것처럼 상실의 얼굴을 가리켰다.
“너 쉬는 동안 박피라도 했냐? 얼굴이 뽀얘졌다?”
“아니, 그냥 없어지더라고.”
“그래? 하긴, 네 집구석에 피부과 갈 돈이 있기나 하냐.”
웃는 낯으로 빈정거리던 지원이 기습적으로 팔을 휘둘러 상실의 뒤통수를 노렸다. 한참이나 학교를 나오지 않아 조금은 긴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나 꼴같잖게 당당한 척이라니. 전처럼 무릎 꿇려 비웃어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손은 헛되이 허공을 가른다. 슬쩍 고개를 틀어 피하자, 지원이 확 인상을 구겼다.
“어쭈, 피해? 뒈지고 싶냐?”
상실은 활짝 웃었다. 바라던 바다.
“해 봐.”
교실 전원의 시선이 몰려든 그 순간,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마흔 즈음의 교사가 들어서며 지원을 보곤 호통쳤다.
“박지원, 뭐하는 짓이야!”
“아, 아뇨. 상실이가 오랜만에 나와서 얘기 좀.”
“상실이? 이상실?”
교사가 놀라 바라보니, 과연 상실이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일어나 꾸벅 인사하는 소년에게 그가 물었다.
“너 언제 온 거냐?”
“오늘 아침에요.”
“아니, 학생주임 그 양반이 네가 온 것도 알리지 않았단 말이야?”
교문을 통하지 않았기에 알 리가 없는 학생주임을 언급하던 그는 상실에게 손짓했다.
“너는 나랑 얘기 좀 하자. 나머지는 수업 시작할 때까지 자습하고 있어라.”
담임이 밖으로 나가자, 상실도 따라 일어섰다. 아이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봤다. 방금 전의 행동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 사이에 지원을 필두로 한 곱지 못한 눈초리와, 정훈의 두려움 섞인 시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상실은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즐거워지리라 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