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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혼을 팔았다 1권(5화)
2. 등교(2)


앞장선 담임교사가 향한 곳은 상담실이었다. 교무실 근처에 만들어 둔 공간으로, 자연히 상실은 다른 교사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힘들겠지만, 열심히 해 보렴.”
따돌림받는 아이란 말이 돌았기에 교사들이 제법 친절히 말해 주었다. 그에 상실은 밝게 웃으며 알겠다고 인사했다. 그 모습이 정말 아무 일도 없던 것 같았기에, 위로를 한답시고 말 걸었던 교사들은 저 아이가 다른 이유로 무단결석을 했던 것이 아니었나, 갸웃거렸다.
“앉아라.”
자리를 권하며 맞은편에 앉은 담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있는 소년을 보며 내심 한숨지었다. 그도 괴롭힘이 있음은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분위기나 눈치로 미루어 짐작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안다고 하더라도 그가 나설 수는 없었다. 요즘 애들은 영악하고 고집이 세서, 선생이 뭐라고 해 봤자 잘 들어먹지도 않았다. 착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학교에는 그리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배움은 학원이나 과외로 옮겨 가 버렸고, 그나마 있던 교권도 체벌 금지로 무너져 버렸다. 사실, 체벌 금지 이전부터 무너져 있었다. 학부모가 학교로 달려와 선생의 따귀를 올려붙이던 시절부터.
하여 그는 지켜보면서 상실이 스스로 이겨 내기를 바랐었다. 아이들의 일은 어지간하면 아이들끼리 해결해야지, 어른이 나서 봤자 겉으로만 알겠습니다. 하고 돌아서선 그대로 행동했다. 아직 학기 초이니 심해 봐야 얼마나 더 심하겠냐는 안이한 생각도 있었다. 상실이 무단결석하기 전까지는.
이후에 어떻게 해결해 보려 했지만, 아이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모조리 벌점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명확한 주동자도 알 수 없었다. 그제야 자신을 질책했지만 이미 떠난 배였다. 상실이 학교로 나오지 않는 동안 그의 어머니께 전화도 해 보고, 따로 만나서 이야기도 해 보았지만 상실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오늘 갑작스레 상실이 등교했다.
기회는 지금이었다. 지금이라도 아이들의 문제를 바로잡아야만 한다.
“학교는 잘 나왔다. 힘든 결정이었지?”
“아뇨, 그냥 오고 싶어서 왔어요.”
상실은 태연하게 말했다. 이 자리에 불려 온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앞에 앉은 담임에게선 맛있는 냄새는커녕, 유별난 냄새도 나지 않는다. 지금껏 대화도 많이 나눈 적이 없던 상대인데, 맛도 없어 보이니 흥미가 생길 리 없다.
담임은 상실의 말을 오해했다. 너무 괴롭힘을 당해서 숨긴다고 판단했다. 하여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너를 도와주겠노라고.
“내게는 숨기지 않아도 된다. 따돌림받고 있었지? 애들이 무서워서 그렇다면 선생님이 도와주마. 나를 믿어 다오, 상실아.”
“선생님이 무슨 말씀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어머님과도 이야기 해 봤는데. 네 학교생활에 대해 걱정이 많으시다. 앞으로 걱정 끼쳐 드리지 않아야지 않겠어?”
“저도 엄마랑 얘기 했는데요.”
그 말에 담임이 귀 기울였다.
“괜찮아요. 아무 일 없었어요. 그냥 나오기 싫어서 안 나왔던 거고, 오늘부터 나오고 싶어서 나온 거예요.”
“너…….”
아니라고만 하는 상실을 답답해하며 담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래도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더 잡고 있어 봐야 말하지 않을 것이라 직감한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럼 앞으로 학교는 계속 나올 게냐?”
“예. 졸업은 해야죠. 공부도 해야 하고요.”
그는 조금이나마 안도했다. 말은 안 하더라도 강하게 마음먹은 모양이라 생각했다. 당분간은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니 지켜보고자 마음먹었다.
“그래, 앞으로 만약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든 찾아오고.”
“네.”
“가 봐라. 수업받아야지.”
“예, 안녕히 계세요.”
인사하며 나온 상실은 문을 닫으며 고개를 저었다. 귀찮은 남자였다. 그놈의 관심은 좀 일찍 가져 줬으면 좋았겠다만, 이제는 필요 없었다. 오히려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면 했다. 앞으로 겁 모르고 덤벼드는 애송이들을 손봐줘야 하는데,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귀찮아지지 않겠는가.
교실로 돌아온 소년은 이미 수업하고 있는 교사에게 인사하며 자리로 갔다. 뭘 하고 왔는지 아는 눈치였기에 그녀도 수업을 계속했다. 상실이 책을 펼쳐 수업을 들어 보려 했지만, 들어오는 내용은 없었다. 죄다 못 알아먹을 소리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틀렸다고 판단한 그는 학급의 인원들 중 공부를 잘한다는 몇 명을 훑었다.
공부가 안 되면, 잘하는 놈에게 배우면 되겠지.
희생자를 물색하던 사이, 종이 울렸다. 선생이 나가자 교실에 긴장감이 흐른다. 지원이 패거리들과 함께 상실의 자리로 몰려왔다. 다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봤다. 과연 상실의 반항이 성공리에 끝날 것인가, 짓밟혀 무너질 것인가.
대부분은 금세 꼬리를 말 것이라 여겼지만, 관심 없는 척 곁눈질하는 정훈은 묘한 기대를 가졌다. 어쩐지 지원과 패거리가 밀릴 것 같았다. 아까 상실이 보여 준 시선과 분위기는 이전과 극명히 달랐다.
“고개가 빳빳해졌더라, 너.”
지원이 이전과 달리 성난 얼굴로 말했다.
“어디서 깔짝 운동 좀 배워 왔냐?”
“이 새끼가, 오랜만에 보니까 만만해 보이나, 눈 안 깔아?”
“간뎅이가 부었냐?”
함께 온 소년들이 위협했지만, 안타깝게도 상실에겐 전혀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에게 이들은 강아지만도 못했다. 병아리가 몰려들어 짹짹댄다고 두려워할 사람이 없듯, 상실도 그랬다. 인간 따위가 몇 백이 몰려온대도 두렵지 않았다. 군대가 온대도 상대해 멸절시킬 자신이 있었다. 악마가 준 힘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걱정되는 것이라곤, 잘못 쳐서 죽어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미안하다.”
그 말에 달아오르던 분위기가 식었다. 다들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이어질 괴롭힘을 기다리거나 자기 할 일로 돌아갔다. 정훈도 실망했다. 아까 잘못 봤던 거라 생각하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지원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씩 웃었다.
“그럼 꿇어.”
상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원과 패거리는 그가 무릎 꿇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상실은 무릎을 꿇는 대신 한 걸음 나서 말했다.
“죽이진 않을게.”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 지원의 표정이 구겨졌다.
상실은 지원을 보기 전엔 그에게서도 맛있는 냄새가 나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막상 만나니 생각보다 못했다. 어제 먹은 남자가 닭이라면 지원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에 불과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맛있어질 여지도 있긴 하다. 하지만 당장 먹기에는 나빴다. 어차피 학교에서 잡아먹을 생각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나중에 찾아가 먹을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해서 빨리 끝내기로 했다.
심약한 사람이나 괴롭히는 여물지 못한 힘이 얼마나 볼품없는지만 느끼게 해 주면 될 일이었다. 물론 죽이거나 심한 부상을 입혀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가 학교로 불려 오실 테니까. 없는 살림에 치료비라도 대게 됐다간 집 밖으로 나앉아야 할지도 몰랐다. 정 죽이고 싶다면 학교가 끝나고 나서. 아무도 그가 그랬다는 걸 모르게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
“이 병신새끼가!”
지원이 분노함과 동시에 상실은 그의 얼굴을 잡았다. 사전에 아무런 자세도 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안면을 한 손에 쥐어 들어 올렸다.
“어? 으어?”
힘들이지도 않고, 덩치만은 성인과 비슷한 소년을 들자, 지원의 패거리들이 놀라 물러섰다. 곳곳에서 헛바람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지원만이 안면을 잡은 손을 풀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상실의 힘은 그의 힘으로 풀 수 없었다.
지원의 머리를 잡은 상실은 충동을 느꼈다. 이대로 머리를 쥐어 터트리면 어떻게 될까? 두개골이 부서지고, 뼈와 뇌가 곤죽이 되어 떨어지면 볼만하겠지?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하고 싶어졌다. 그간 당해 왔던 기억이 한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비록 나약한 인간이었을 시절의 일이었지만 지금도 충분히 불쾌했다. 죽이고 싶어졌다. 이 겁 없는 애송이를.
상실은 금방 결정을 내렸다. 죽이기로.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음에. 주변에 아무도 없고, 홀로 있을 때, 조용한 곳으로 끌고 가서 자근자근 다져서 죽여야지.
죄송하다고 비명을 지르고,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걸 무시하며 인간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공포를, 비명을, 고통을 주겠다. 네가 나에게 주었던 그 이상의 절망을 네게 주겠다. 그리고 무참히 다져진 시체를 그대로 둘 것이다. 자식을 잘못 키운 대가를, 자식의 방종을 방치한 대가를 어미와 아비에게 줄 것이다.
복수를 상상하며 부르르 몸을 떨던 그는 인형 던지듯 지원을 위로 던졌다. 인간의 몸이 비현실적으로 떠올라 추락한다. 그것을 가볍게 밀어 찼다. 내장이 파열하면 큰일 나니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밀어냈다.
지원의 몸이 단번에 창가까지 날아갔다. 벽에 등을 부딪치며 고통 섞인 비명을 지른 그는 간신히 정신을 차려 상실을 바라봤다. 경악과 공포심이 드러난 눈가에 아픔으로 인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
복수하겠다는 독기도, 당장에 일어나 덤벼드는 무모함도 없는 한심한 몰골에 상실은 문득, 계획이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영혼을 바쳐 새 생명과 악마의 힘을 얻었다. 그런데 그 힘을 고작 이딴 애송이에게 쓴다고? 과연 그럴 가치가 있나?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흔적도 없이 짓이길 수 있는 벌레에 불과한데? 먹지도 못할 벌레에게 힘을 써서 뭘 하지?
김이 빠진 그는 양손을 뻗어 바짝 얼어 있던 지원의 패거리를 밀어 버렸다. 저항도 못하고 몇 미터나 나가떨어진 그들은 겁먹어 일어나지도 못했다.
“제자리로 꺼져.”
그제야 쓰러진 둘이 쭈뼛쭈뼛 일어났다. 상실의 눈치를 보던 그들은 조심스레 지원을 부축해 자리로 돌아갔다. 지원은 등이 저린 것 외에 움직임에 지장은 없었지만 정신적 충격을 받았는지 멍하니 손길을 따랐다.
그를 향해 시선이 쏟아진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혼재된 눈들. 저들은 모두가 가해자이자 방관자였던 이들이다. 상실은 반 전체가 역겨웠다. 동시에 아무 가치 없었다. 이전까지 벌레 보듯 바라보던 놈들이 갑자기 호의를 보여 봤자 내어 줄 건 없다.
의자에 앉으며 그가 모두를 훑자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거둔다. 그렇지만 대부분 힐끔힐끔 쳐다보고, 수군거렸다. 몇몇은 노골적으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왔다. 후자는 소녀들이었다. 상실은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눈 치워.”
그가 으르렁거리자 그제야 훔쳐보던 시선들도 거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눈길은 여전했다. 호기심이 어린 눈의 소녀들.
그러고 보면 전부터 그랬다. 남자가 보기에 함부로 대해선 안 될 것 같은 남자에게도 여자들은 잘도 악쓰고 덤벼들었다. 그 호기심인지 적대감인지 모를 것이 중단되는 시점은 위협과 폭력이 자신에게 돌아온 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관심은 없어지지 않았다. 호기심도 적대감도 증오라 불릴 만한 감정이 되어 타오르기가 태반이었다.
상실은 고개를 내저었다. 여자란 알 수 없다. 인간이 아니게 된 지금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양이 늑대에게 관심을 보이는 꼴이라니, 호기심의 대가로 찾아올 파멸이 보이지 않는 걸까?
그들에 대한 신경을 접으며 소년은 책을 꺼냈다. 종이 울렸다.

상실이 벌인 일에 대한 소문은 쉬는 시간을 거치면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왕따가 학교에 나오지 않고 무술을 수련했다느니, 어디 이종격투 도장에서 키우고 있다느니 하는 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장이었다.
교실의 먹이사슬 밑바닥에 있던 놈이 단숨에 최고 자리까지 치고 올라갔다는 사실은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소문을 들은 녀석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상실의 반을 찾아왔다. 그를 힐끔 살피면서 아는 친구에게 조용히 물었다. 대부분의 대화가 그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정작 소년의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친분이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으니까.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던 아이들도 그와 눈을 마주치면 오금을 펴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감히 마주 볼 수도 없는 어떤 것을 조금이나마 느낀 모양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그랬다면 상실로서도 조금은 편해질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눈치 있는 녀석들은 소수였다. 대부분은 뭔가 있다고만 생각했지, 그 속에 숨어 있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
직접 본 아이들이 신 나서 떠드는 말에 소문은 더욱 빨리 퍼져 나갔고, 그 여파는 점심시간에 돌아왔다.
다들 밥 먹느라 바쁜 시간. 급식을 먹거나, 도시락을 싸 오거나, 매점으로 달려가 인파와 전쟁을 치르며 사 먹는 학생들의 사이에서 상실은 멀찍이 떨어졌다.
남들이 먹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식욕이 돋을 법도 했지만, 그들이 먹는 음식들은 취향이 아니었다. 엄마가 해 준 밥이라면 나중에 토하는 한이 있더라도 꾸역꾸역 삼켰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니 냄새도 맡기 싫었다.
하여 상실은 밖으로 나가 천천히 학교를 둘러봤다.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나지 않나 은근히 기대하면서. 일 학년 교실이 있는 층에선 설익은 냄새만 가득했다. 이 학년 교실이 있는 층에서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먹고자 한다면 먹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내키지는 않는다. 가릴 것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배고프지도 않았다. 삼 학년이 있는 층에서는 오히려 식욕이 떨어지는 냄새가 났다. 반절은 점심시간임에도 사락사락 책을 넘기고 있었고, 아닌 이들도 내심 불안한 마음으로 놀고 있었다. 정확히는 노는 척에 가까웠다.
수능에 찌들어 입맛 떨어지는 냄새만 나기에 상실은 실망하며 운동장으로 나갔다만,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학교란 곳은 덜 자란 병아리만 키우는지 죄다 솜털만 보송보송해서 삐약삐약 울고 있었다.
문득 학교가 굉장히 싫어지는 느낌에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있는데, 멀리서 누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숨을 추스른 소년이 주저하며 다가왔다. 상실이 아는 얼굴이었다. 당연히 친한 것은 아니고, 같은 학급의 학생이다.
“저기, 상실아.”
상실은 대답 대신 계속 말하란 듯 바라보았다. 그것이 숨 막혔는지 소년이 심호흡하며 말했다.
“형들이 너 뒤편 수돗가로 오라는데…….”
그에 상실은 즉시 일어났다. 이번엔 먹음직한 인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