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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혼을 팔았다 1권(6화)
2. 등교(3)


학교 뒤편에는 오래된 창고가 있었다. 예전에는 음악실로 사용했었다고 하는데, 본관을 증축하고 그 옆에 큰 건물을 지으면서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창고로 용도 변경되었다. 전 음악실이자 현 창고인 건물의 뒤엔 이제는 쓰지 않는 오래된 수돗가가 있다. 물도 나오지 않고, 시멘트를 부어 만든 그것은 물때와 먼지가 쌓여 검회색으로 지저분했다.
본관과도 거리가 멀고, 갈 이유도 없기에 그곳은 자연히 품행이 나쁜 학생들의 모임 터가 되었다. 간혹 담배 피는 놈들을 잡으러 순찰 도는 선생도 있었지만, 보초도 세워 놓았기에 잡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상실을 안내한 동갑의 소년은 그보다 한두 살 많은 선배들에게 당도하고서야 긴장하며 말했다.
“데, 데려왔어요. 가도 되나요?”
“어, 그래. 잘했어. 가 봐.”
반삭머리에 키 큰 남학생이 어색하게 담배 연기를 뱉으며 손짓했다. 소년은 반색하며 꾸벅 인사했다.
“안녕히 계세요.”
“오냐.”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나는 아이에게 킬킬 웃어 준 그의 시선이 상실에게 향했다. 눈매가 제법 매서웠다. 곁에서 담배 피던 소녀가 상실을 힐끗 보며 남학생에게 물었다.
“얘가 걔야?”
그녀의 눈에 상실은 전혀 세 보이지 않았다. 몸은 말라서 힘이라곤 없어 보였고, 키도 크지 않았다. 자신이 싸워도 이길 것 같았다.
“내가 일 학년 꼬마들 얼굴을 어떻게 다 알아, 이년아.”
“아, 씨발. 그따위로 부르지 말랬지?”
“씨발이고 지랄이고. 야.”
그가 담배를 발치에 던져 비틀어 밟았다.
“네가 상실이냐?”
분위기 잡으며 말하는 그를 보며 상실은 내심 흡족해졌다. 학교에서 본 중 제일 먹음직한 녀석이었다. 물론 어제의 식사보다야 떨어지지만, 워낙 입맛 떨어지는 인간들을 많이 봐서 이 정도면 감지덕지다. 그 외에도 이 자리에 있는 열여섯 명의 인원들 중 셋은 먹을 만해 보였다. 나중에 학교에서 배가 고파지면 도시락 까먹듯 하나씩 잡아먹으면 될 거란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맞아.”
“맞아? 이 쌍놈의 새끼가. 내가 니 친구냐?”
무리의 대장인 오신영이 욕설을 하며 분노하자, 주변에 있던 남학생들이 앞으로 나섰다. 도망갈 길부터 막는 모습이 기어오르면 린치하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운동 좀 한 놈들도 끼어 있고, 신체 조건이 좋은 놈들도 있었다만 그래 봤자 인간이다. 그것도 덜 자란. 아무것도 모르는 여학생들은 당연히 상실이 두들겨 맞겠거니 생각하며 담배를 입에 물고 구경하고 있었다.
“빨리 끝내자.”
음식들과 실랑이 벌이기도 귀찮았던 상실은 어쩌고저쩌고 말을 내뱉기도 전에 먼저 움직였다.
앞으로 다가서서 손을 뻗는다. 신영이 반사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소년에겐 굼뜨기 그지없는 속도다. 그대로 교복의 옷깃을 잡아 목을 졸랐다. 숨통이 턱 막힌 신영이 상실을 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전에 상실이 배를 때렸다. 센 타격은 아니었다만 숨이 막힌 상태에서 두들겨 맞으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비명도 못 지르고 버르적거리는 사이, 다른 녀석들이 달려왔다.
“씨방새가!”
어디서 배워 왔는지 저마다 나름대로의 자세를 취하며 달려들었지만 상실에겐 가소로운 몸짓일 뿐이었다. 사마귀가 곤충들 사이에선 왕 노릇을 할지 몰라도, 사람에겐 대적할 수도 없는 것처럼.
딱히 어떻게 상대할 것도 없이, 손에 쥔 신영을 휘두르고 왼손으로 밀치고 걷어차 버리자 모두 나동그라졌다. 손도 못 대고 나가떨어진 그들에게 질식해 눈이 돌아가려는 신영을 던져 준 상실이 물었다.
“더 할래?”
아무도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다음부턴 내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알았지?”
“그, 그래.”
개중 누군가 답하자 상실은 자리를 벗어났다. 뒤를 잠깐 돌아보니 실신 지경의 신영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숨넘어갈 듯 헐떡이는 호흡이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그, 그 새끼는?”
정신 차린 신영이 제일 먼저 물어본 건 상실이었다. 그를 흔들던 남학생 중 하나가 고개를 내저었다.
“말도 마, 그 새끼 괴물이야. 쪽도 못쓰고 죄다 나가떨어졌어.”
“아, 씨발.”
벌렁 누운 그대로 신영은 한숨처럼 욕했다. 상반신을 일으켜 졸렸던 목을 만지자 졸린 자국이 선명하다. 듣기론 집안이 가난하다니까 이걸로 진단서를 끊어서 윽박질러 볼까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겨우 이딴 걸로 제대로 된 진단서가 나올 리 없었다.
“야, 어디 부러진 녀석 없냐?”
이대로 넘어가기엔 억울했기에 물었지만 다들 고개를 내저을 뿐이다. 넘어지며 생긴 찰과상이야 있었지만, 다들 일격도 견디지 못하고 나동그라졌기에 멍도 들지 않았다. 어른에게 떠밀린 애처럼 나가떨어졌을 뿐이었으니까.
“후으. 담배 좀 줘 봐.”
그가 손을 벌리며 말하자 누군가 담배를 꺼내 들었다. 불을 붙여 연기를 빨아들였지만 억울함이 가시질 않는지 머리를 벅벅 긁는다.
“쪽팔려서 어따 말할 수도 없고. 으아, 젠장!”
십육 대 일로 싸웠는데 손도 못 대고, 상처랄 것도 남지 않았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자신에게, 그것도 일이 아니라 십육에 속해서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던 그는 연기와 함께 한숨을 토했다.
“가만히 놔둘 거야?”
구경하고 있던 여학생들 중 눈치 없는 애가 묻자, 신영은 버럭 화냈다.
“아까 뭘 보고 있던 거야, 멍청한 년아!”
“깜짝이야. 아니면 아니지, 왜 소리 지르고 지랄이야!”
앙칼진 목소리에 머리가 아픈지 이마에 손을 올린 그는 다시 연기를 흡입했다.
“다른 새끼들은 우리가 그 새끼 부른 거 모르지?”
“아까 그 일 학년 빼고.”
상실을 불러오려 심부름시켰던 후배를 떠올린 그는 눈썹을 구겼다.
“그 새끼한텐 닥치고 있으라고 윽박질러. 아, 근데, 방금 그놈 말이야.”
“어, 상실인가 하는 놈?”
“하, 상실. 진짜 어이상실이다, 정말.”
허탈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여간 그 자식, 어디 가서 떠벌리고 그럴 거 같진 않지?”
“몰라, 씨발. 내가 어떻게 알아.”
“그 새끼 친구 없다며. 떠벌릴 놈도 없을 거 아냐!”
“그야, 그렇긴 그렇지.”
“그럼 오늘 일이 어디 퍼지진 않겠지? 그치?”
불안한 듯 거듭 묻는 그에게 다른 학생들이 주저하며 끄덕였다. 다들 내심 말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럼 이제, 우리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르는 거다. 알았지?”
“어, 응.”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일동이 고개를 주억댔다. 친구들을 확인한 신영은 마지막으로 눈치 없는 소녀에게 말했다.
“너 말이야, 너. 어디 가서 입도 벙끗하지 마.”
“아, 씨발!”

운동장엔 먹은 점심을 소화시키려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골대를 사이에 두고, 공을 쫓아다니며 기를 쓰는 소년들의 사이에 상실은 없었다. 그를 알아본 체육교사의 배려로 스탠드에 앉아 있게 된 탓이다. 본래의 그는 체력도 나쁘고, 운동에도 잘 끼지 못했었기에 취해진 조치였다. 상실로서도 불만은 없었다. 운동하는 데 끼어들어 봤자 개미들이 툭탁거리는 데 끼어든 꼴과 다르지 않았으니.
한쪽에선 여자아이들과 섞여 농구나 피구를 하는 무리도 보였고, 체육선생의 눈을 피해 어디론가 숨어든 아이들도 있었다. 개중에는 점심시간 때, 심부름꾼으로 찾아왔던 아이가 아까 봤던 남학생에게 불려 가는 모습도 있었지만 무시했다.
슬슬 배가 고파 오기 시작하고, 맛있는 냄새라곤 찾기도 힘든 학교에 붙들려 있음이 짜증나려하는데, 계속 그를 힐끗힐끗 쳐다보던 소녀들 중 하나가 다가왔다.
장지현이란 이름의, 예쁘장한 얼굴에 몸도 늘씬해서 인기가 좋은 아이였다. 발육도 그 나이 대치곤 괜찮았다. 살짝 떨어진 곳에 앉은 그녀가 고개를 모로 돌려 상실의 얼굴을 뜯어본다.
“너 대단하더라?”
상실은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상관없는 건지, 자신이 있는 건지 생글생글 웃으며 답이 오지 않는 질문을 계속했다.
“안 나오는 동안 뭐했어?”
“어디서 운동 했니? 막 애들이 날아가던데.”
“여드름은 어떻게 없앤 거야? 가는 피부과 있으면 좀 알려 주라.”
“수업 잘 따라올 수 있어? 계속 들은 나도 어렵던데.”
질리지도 않고 이어지는 질문에 무시로 일관하던 상실이 드디어 고개를 돌렸다. 무심한 눈길이나마 돌리는 데 성공했단 사실에 소녀는 쾌재를 불렀다. 전에야 나약하고, 얼굴도 지저분해서 관심도 없었지만 지금은 엄청나게 달라진 상실의 모습에 관심이 생기고 있었다. 관심 탓인지 평소라면 재수 없다고 생각했을 무시도, 어쩐지 멋있어 보였다.
그녀를 향해 창백한 입술이 벌어졌다.
“꺼져.”
“어? 응? 뭐라고?”
상상도 못했던 말에 그녀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지현은 반에서 자신이 제일 예쁘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전교에서 꼽아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자신이 있었다. 몸매는 어떤가. 아직 어려서 가슴은 조금 작지만, 늘씬하고 비율이 좋아서 남자애들이 어떻게든 대화 한 번 해 보려고 안달이었다. 사귀어 달라는 유치한 편지도 여러 장 받았던 몸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과 상관없이 상실은 독설을 토해 냈다.
“눈치가 없더라니, 귀도 먹었냐? 꺼지라고.”
소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어이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너, 너, 너…….”
머릿속으로 감히, 감히 라는 단어만 떠올랐다. 아무리 얼굴이 멀끔해졌더라도, 힘이 세졌더라도 상실은 왕따나 당하던 남자애였다. 얼굴도 변변치 않았고, 몸이 좋은 것도,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과분할 정도로 예뻤다. 그런 자신이 호의를 보이는데, 감히 거절해? 너 따위가? 감히 이상실 따위가?
어처구니가 없고, 억울해서 눈물까지 핑 돌았다. 지현이 벌떡 일어났다.
“너무하잖아!”
빽 외치자 주변의 시선이 몰려들었지만 소녀는 다른 아이들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뭐가?”
상실이 퉁명스레 말했다.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어?”
“네가 내 뭔데?”
“뭐라고?”
소년의 말을 소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남자아이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은 적은 결단코 없었다.
상실은 새카만 눈동자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
“네가 뭐라도 되냐? 네가 나에게 뭘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야?”
가뜩이나 배도 고파 오는데, 맛도 없어 보이는 계집애가 꺅꺅거리자 매우 거슬렸다.
“네가 나랑 아는 사이던가? 아니면 뭘 준 적 있나? 대화 한 번 나눈 적 있었어?”
“아, 아니.”
물론 그런 적은 없었다.
“하, 하지만…….”
“그러니까 꺼지라고.”
상실은 지현에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돌렸다.
“친교 따위 나눌 생각도 없으니까.”
그에게 있어 인간이란 음식에 불과했다. 그중에서 지현은 맛도 없고, 약해 빠져서 비명도 오래 못 지를 계집애다.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우정이나, 이성으로서의 사랑 따위 생길 리 만무하다.
예전이라면 황송해서 말도 제대로 못했겠지만, 영혼을 넘긴 순간부터 자신에게 그런 것이 생길 일이 없어졌음은 알고 있었다. 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일었던 성욕도 일지 않았다. 굳이 일어난다면 첫 식사를 하던 때 느꼈던 식욕과 섞였다고 봄이 옳았다. 그에게 있어 여자의 가치라곤, 앞으로 먹을 음식의 생산자라는 가치 외엔 존재치 않았다.
엄마는 제외다. 상실에게 엄마는 엄마지, 여자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