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나는 영혼을 팔았다 1권(8화)
3. 외출(2)


상실은 다시 손을 뻗어 남자의 팔을 잡았다. 으드득 근육과 뼈가 파열되는 소리가 나며 몸뚱이에서 팔이 뽑혀 나왔다.
“살려, 살려 줘. 흐악, 아악!”
“자기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형헌의 비명에 채 마르지도 않은 몸으로 나온 여인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에 서린 감정은 경악과 공포.
“끼야아아악!”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상실은 여자를 신경도 쓰지 않고, 남자를 해체하는 데 집중했다.
팔이 모두 사라지고, 두 다리가 사라졌다. 경련과 비명도 잦아들었다. 과다하게 손실된 혈액 때문에 창백해진 안색으로 남자가 헐떡였다. 더는 비명이 나오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상실은 아쉬워하며, 팔을 휘둘렀다. 머리통이 박살 났다.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경련을 일으키는 시체에서 귀곡성과 함께 혼이 빠져나온다. 그것을 잡아 더는 들어 주지 않고 한 입에 삼켜 버렸다. 맛이 어떨까 궁금해 기다릴 수 없었다. 과연 그 맛은 과연 훌륭했다. 어제 먹은 것보다 더욱.
배 속이 요동치는 것을 즐기며 돌아보니, 여자는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은 뒤였다. 소년은, 실신한 여자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사라졌다. 바닥을 뒤덮은 피 웅덩이가 빠르게 여인에게까지 범위를 넓혀 갔다.

포만감에 젖은 그는 건물을 빠져나와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그림자의 형상이 움직이기야 편했지만, 햇빛이 더욱 곤혹스럽게 느껴진 때문이었다.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오락실을 발견했다. 인간이었을 때, 그에게 친구란 오락기밖에 없었다. 변해 버린 지금도 오락에 대한 관심은 남아 있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었다만, 공부에 대한 관심보다는 많았다.
내부로 들어가니 아까 봤던 신영과 그 일당들이 저마다 기계 앞에 앉아 있었다. 그중에서 신영은 눈치 없는 소녀와 함께 틀린 그림 찾기를 하고 있었다. 별 관심이 없는지 불성실하게 응한다.
“빨랑 찾아보라고! 시간 없잖아.”
소녀가 꺅꺅거리자 신영은 투덜거리며 대충, 화면에서 눈에 띄는 곳을 연필 모양의 기기로 눌렀다. 거슬리는 소리가 나며 엑스 자가 그려졌다.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아, 씨발!”
“뭐, 이년아. 하기 싫댔잖아.”
“그럼 가만이나 있던가!”
더 줄어든 시간 때문에 그녀는 신영에게 시선도 못 돌리고 욕을 주워섬겨 댔다.
상실은 그들을 무시하며 자주 하던 오락기 앞으로 향했다. 학생으로서 그의 주요 업무가 MMORPG였다면, 취미는 오락실의 대전 격투 게임이었다. 현실에선 나약할지 몰라도, 패턴만 파악하면 화면 속의 분신은 누구보다 강했다.
누군가 기계와 열심히 싸우고 있는 맞은편에 앉아 동전을 넣었다. 그에게 있는 천 원 중 오백 원을 써 버렸지만 상관은 없었다. 여차하면 오락실 안쪽의 관리실에서 좀 가져오면 될 일이었다.
캐릭터를 고르고, 느긋한 마음으로 스틱과 버튼을 눌러 봤다. 손은 옛날과 마찬가지로 익숙하게 움직였다. 아니, 그보다 더 정확하게 움직였다.
대전이 시작되었다. 상실은 건조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손을 움직였다.
그의 전술은 심리전과 허를 찌르는 공격, 적의 약점을 집요하게 노려서 이어지는 연계기였다. 흔히 말하는 얍삽이다.
상대는 견제에 휘말려 쩔쩔매다가 허를 찌르는 하단공격에 맥을 못 췄다. 그러다 상단을 기습적으로 치고, 다시 상단을 치는 척하다가 하단. 위아래를 번갈아 찔러 오는 공격에 라이프 바는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상대의 캐릭터가 바닥에 누웠고, 이어진 판도 마찬가지였다.
“씨발.”
어째 들어 본 목소리 같다 생각하며 기계와 대전을 하던 상실은 화면이 멈추며, 대전 상대가 들어옴을 알리는 문구를 봤다. 아까와 똑같은 캐릭터였다. 전술도 똑같았다. 그는 또 무자비한 얍삽이로 무너트렸다.
“으아, 아오!”
졌다는 사실보다, 야비한 공격에 당했음이 화가 났는지 상대는 줄기차게 도전했지만 그때마다 처참하게 깨져 나갔다. 상실의 승수가 두 자리에 도달하자 욕과 함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상대가 벌떡 일어나 기계 너머로 그를 노려봤다.
“어떤…….”
눈을 마주친 상대가 그대로 굳었다. 역시나 신영의 일당 중 하나였다.
멀뚱히 바라보고 있자, 그는 올라왔던 그대로 스르륵 가라앉았다.
“야, 튀자.”
그 소년이 옆의 누군가에게 소곤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시하고 게임이나 하려던 상실은 문득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영 시들해진 게임보다 훨씬 영양가 있을 것 같았다.
“이리 와 봐.”
그들이 도망치기도 전에 등 뒤로 돌아간 상실이 손짓했다. 그를 알아봤던 소년과 모르고 있던 소년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
“안 잡아먹을 테니, 이리 오라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소년들은 주춤주춤 일어섰다.
“왜, 왜.”
“늬들 이 근처 자주 돌아다니지?”
소년이 무슨 수작인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런데?”
“길 좀 안내해 줘야겠다.”
“내가? 왜, 딴 애들도 있는데…….”
“한 명만 있으면 돼.”
소년이 당혹해하며 뒤를 돌아봤지만, 친구들은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아니면 어색한 표정으로 입만 웃고 있거나. 더 뒤쪽에 틀린 그림 찾기를 하고 있던 신영은 오락기 뒤에 숨어서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네가 좋겠다.”
상실이 확언하자, 다른 학생들은 내심 안도했다. 놀러 나왔다가 저 얼굴을 본 것만으로 충분히 재수 없었다. 그에게 끌려다니는 건 사양이다.
“따라와.”
상실이 먼저 나갔고,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따라 나가며 소년이 구원의 시선을 보냈지만, 함께 따라갈 의향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도살장으로 향하는 가축처럼 끌려 나간 친구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신영이 후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염병, 재수도 없지.”
한 번 졌다고 오금도 못 펴는 자신이 한심했다. 워낙에 괴물이니, 덤빌 엄두도 나지 않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어쩐지 무섭다는 느낌이다. 처음 볼 때는 몰랐는데, 아까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는 굉장히 스산한 느낌을 받았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기분이었는데, 굳이 표현한다면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같았다. 잡아먹힌다니. 신영은 자신이 너무 쫄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도 표현만 안 했지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느낀 감정은 초식동물이 포식자에게서 느끼는 공포감과 닮아 있었다.
“괜찮을까?”
학교에서는 만만하게 보다가, 뒤늦게야 뭔지 모를 위기감을 겪은 눈치 없는 소녀가 물었다. 그에 신영은 두 명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 으쓱였다.
“잡아먹진 않겠지.”

상실에게 끌려 나온 소년은 맹수와 함께 걷는 심정이었다. 언제 자신을 덮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왜 그에게서 이런 공포감을 느끼게 된 건지 의혹이 공존했다.
“어, 어디로 가려고?”
“질 나쁜 놈들이 모이는 장소.”
상실이 단서를 덧붙였다.
“너보다 더 질 나쁜 놈들이어야 해.”
그 말에 장성한이란 이름의 소년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인근 학교들을 평정하려는 건가 생각도 해 봤지만, 오늘 하교 때까지 자신들이 깨졌다는 소문이 돌지 않은 걸로 봐서는 그런 걸 원할 놈은 아니었다.
어쨌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에 성한은 앞장섰다. 대신 앞서 걸으면서도 쉼 없이 뒤를 살폈다. 상실의 앞을 걷자니, 누가 칼을 목에 겨눈 것처럼 불안했다.
“근데, 아직 별로 없을 건데?”
“안내나 해.”
괜히 말을 꺼냈다가 면박만 받은 그는, 에라 모르겠단 심정으로 걸음을 빨리했다. 어차피 학교가 같은 한, 도망갈 수도 없으니 빨리 안내하고 벗어나려는 속셈이었다.
성한과 상실은 불량한 아이들이 모이는 장소를 하나씩 돌았다. 당구장도 있었고, 피시방, 행인의 눈이 닿지 않는 골목 구석, 공터, 어떤 건물의 옥상 등등의 장소를 돌아다녔지만 상실은 영 마음에 차지 않는 눈치였다.
사람이 없는 곳도 있고, 있는 장소도 있었지만 모두가 기준에 미달이다. 신영보다 나은 놈도 몇 보였다만, 역시 애들은 어른에 비해 별 볼 일 없었다. 오히려 지나가다가 본 성인 중에 입맛에 맞는 자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번화가의 구석진 건물 사이의 공간에 도착한 그는 드디어 취향에 맞는 식량을 발견했다.
사복 차림의 아이들 몇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누군가 다가오자 시선을 주던 그들은 상대가 같은 학생임을 알아보자 긴장을 풀었다.
“웬일이냐?”
짧게 깎은 머리에 스크래치 넣은 소년이 아는 척했다. 성한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그냥.”
“한 대 줄까? 근데, 뒤에 있는 놈은 뭐야? 씨다바리?”
“아, 아니. 후배야, 후배.”
성한이 상실을 곁눈질하며 답했다. 발작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얌전히 있었다. 속도 모르고 상대가 가래침을 뱉으며 히죽거렸다.
“오오, 자라는 새싹? 근데, 애새끼가 좀 부실해 보인다.”
“그, 그래?”
“너 좀 이상하다? 아까부터 눈이나 굴리고 있고. 문제 있냐?”
“없어, 없어.”
상실은 계속 눈치 살피는 성한은 안중에도 없이 이곳의 인원들의 냄새를 맡는 데 주력했다. 다른 놈들은 그저 그랬는데, 구석에 말없이 쪼그려 앉아 담배 피는 녀석은 괜찮았다. 몇 년 만 더 놔두면 훌륭히 썩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이 씨파 새끼들아.”
어디서 잔뜩 힘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몸에 딱 붙는 상의에, 위는 통이 넓고,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바지를 입은 남자가 보였다.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다가오자, 소년들이 일제히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버리며 허리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허이구, 진짜 형님들이 들으시면 칼 맞을 소리하고 자빠졌네. 너 이 새끼들, 나 엿 먹일라 그러냐?”
“아닙니다, 형님.”
말과는 달리, 싫지 않은 기색으로 우쭐거리며 담배를 입에 문다. 턱을 치켜드는 그에게 근처에 있던 소년이 잽싸게 라이터를 켰다.
“후우.”
연기를 뿜으며 남자는 새카만 후배들을 바라보았다. 그도 몇 년 전까지는 이들처럼 고개 숙이며 폭력배들에게 인사하던 몸이다. 그리고 지금은 폭력배가 되었다.
가장 밑바닥이고, 이리저리 치이고 심부름하느라 별로 가진 건 없었지만, 거리를 돌아다닐 때 사람들이 피하는 것이나, 조직의 위세를 등에 업은 것, 이렇게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대접을 받을 땐 기분이 괜찮았다.
“오래 어슬렁거리지 말고, 딴 데로 가라. 형님들 눈에 보이면 골로 가는 수가 있어.”
“말씀 감사합니다, 형님.”
꼬박꼬박 형님 소릴 붙이는 소년들이 귀여웠는지 씨익 웃어 준 남자는 휘적휘적 가던 걸음을 계속했다.
“살펴 가십쇼!”
소년들이 그가 사라질 때까지 직각으로 허릴 숙였다. 성한도 그 틈에 섞여 인사했다.
“봤냐? 조직에 들어가더니 완전 쩔어.”
“간지 작살이다. 조폭 되면 돈도 많이 벌겠지?”
폭력배가 사라지자 떠들어 대는 소년들 사이에서, 성한은 상실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그가 있던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굉장히 수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다지 알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무서운 후배의 마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는 즉시 집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늘은 일진이 사나우니, 더 돌아다니다간 무슨 험한 꼴을 볼지 몰랐다. 다만, 그전에 할 일이 있다.
“의리 없는 개새끼들아!”
성한은 신영에게 전화를 걸어 욕부터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