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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혼을 팔았다 1권(13화)
5. 한 달(2)


―경찰은 단독범행이라 결론을 내리고, 용의자가 덩치 큰 괴력의 소유자거나 맹수일 것이라 발표했습니다. 당국은 최선을 다해 범인 체포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며, 인근의 주민들에게 인적이 드문 장소로 가거나, 야행을 자제해 주시고, 창문과 현관문을 철저히 단속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집값 또 떨어지겠네.”
뉴스를 보고 있던 엄마의 말에 지현은 고개를 내저었다. 사람이 죽고, 살인마가 돌아다닌다는데, 그것보다 집값 떨어지는 걸 걱정하다니. 새삼 대단하시다고 생각하며 가방을 들쳐 멨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응, 조심하고.”
“네. 아빠, 먼저 갈게요.”
“어, 그래.”
밖으로 나온 소녀는 가벼운 걸음으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마침 해당 번호의 차량이 왔기에 곧바로 탑승했다. 여전히 버스는 사람으로 만원이다. 앉을 자리는커녕, 잡을 손잡이도 부족했다.
버스에서도 들리는 이야기는 살인사건에 대한 것이 주를 이뤘다. 라디오에서도 이번 연쇄살인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말세다, 말세.”
근처의 또래로 보이는 남학생의 말에 픽 웃으면서도 지현은 내심 동감했다. 수십이나 되는 사람을 죽인 살인마라니. 그것도 짐승처럼 찢어 죽였단다. 인터넷에서도 누군가 촬영한 살해 현장 동영상이나 사진을 쉽사리 찾을 수 있었다. 호기심에 봤다가 토악질한 뒤로 다시 찾아보진 않았지만.
영단어 수첩을 꺼내 암기하는 사이,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르르 빠져나가는 학생들과 함께 내린 그녀는 느긋하게 교문으로 향했다.
“너 이 짜식아. 누가 바지를 이렇게 줄이래. 응?”
“아니, 그게 아니고요.”
“아니긴 뭐가 아냐? 너 저기 서 있어.”
“아으, 선생님.”
“안 가? 안 가냐?”
학생주임과 바지의 통을 바짝 줄인 남학생의 실랑이를 보고 있던 그녀는 풋 웃었다. 그녀를 아는 모양인지, 교문 옆에 서서 꿍얼대던 남학생이 헤벌쭉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별로 아는 척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소녀는 매몰차게 지나쳤다.
교실에 들어서자 떠들거나 공부하고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좋은 아침이다.”
“안녕.”
친구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자리로 향한다. 요즘 반의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 상실이 다시 학교로 나온 날부터 한동안은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었다. 교실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에 호흡에 지장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상실을 어려워하는 것이야 여전했지만,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으면 나서지도 않았기에, 그 주변에만 사람이 없을 뿐이었다.
본래 왕따였던 상실을 대신해서 괴롭힘 당할 뻔한 아이도 있었는데, 그 역시 얼마 가지 못했다. 괴롭히는 아이들을 나서서 말린 건 아니었다. 상실이 한 일이라곤, 괴롭힘이 벌어지면 가해자들을 유심히 바라본 것밖에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가학적인 놀이를 관둬 버렸다. 지현이 나중에 물어보니 그 친구가 이리 말했다.
왠지 자신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것 같았다고.
소름이 끼쳐서 그 뒤론 아예 손을 떼 버렸다는 말까지 들은 지현은 그럴 수도 있겠거니, 납득했다. 상실의 눈은 확실히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같은 또래가 아니라,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른과 같은. 아니면 사람이 아닌 어떤 것처럼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주변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남달랐다. 그것이 처음엔 부담스레 느껴졌지만 이제는 다르다.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있는 상실을 보고 있던 지현은 후읍 숨을 들이켜곤 최대한 단정한 걸음으로 다가섰다.
“안녕?”
화사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소년이 힐끗 보더니 손을 들어 까닥였다.
“어, 그래.”
무성의한 인사라 볼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지현은 기분이 좋아졌다. 이나마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건, 전교에서도 그녀가 유일했으니까. 왠지 특별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실제로도 특별했다. 상실과 함께 있게 된 뒤로는 귀찮은 떨거지들의 애정공세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까.
상실을 아는 학생이라면 누구도 그녀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학기 초에는 건방지다며 시비를 걸던 여선배들도 발길이 끊어졌다. 어쩌다 마주치면 자기가 먼저 피해 가게 되니, 이젠 통쾌하기까지 하다.
모두가 상실에 대한 소문 덕분이다. 학교 우두머리인 오신영을 이미 때려눕혔다느니, 오신영이 자기가 챙기는 후배라고 선언했다느니 하는 말도 돌았다. 이는 지현에게 잘 보이려고 나섰다가 꼬리를 내렸던 윤성주가 일 학년에게 당했다는 오명을 덮으려고 괴물이라 퍼트리고 다닌 일이 주효했다.
덕분에 상실은 학교의 전설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다. 상급생들도 그가 있으면 슬슬 피해 갈 정도였다. 중간에 손 좀 봐 주겠다며 끌고 갔던 이 학년들이 상실의 모습이 먼발치에 보이기라도 하면 도망가게 된 뒤론 감히 아무도 덤벼들지 못하게 되었다.
“모르는 거 있어?”
사근사근 묻자, 상실이 풀던 문제까지만 끝마치고 다른 페이지를 펼쳐 내놨다.
“이거 말이야,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아, 그거?”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지현의 모습은 이제 어색함이 없었다. 차근차근 풀이하는 모양새가 학원 선생으로 취직해도 될 정도다. 이 모두는 머리에 든 게 없던 상실을 가르치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했던 결과였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복습도 되고, 이해력의 폭도 넓어져 학업에도 도움이 되었다. 상실도 아예 머리가 없는 건 아니었는지, 영어와 수학을 제외한 과목은 꽤 많이 따라오게 되었다. 문제집 세 권을 다 끝낸 정도는 아니었지만 반수 정도의 과목은 현재 진도를 많이 따라잡은 상태였다.
공부를 가르치면서도 소녀는 힐끔힐끔 소년의 얼굴을 훔쳐봤다. 단순히 싸움 잘하고, 분위기가 특이한 것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관심이었다.
근래에 와서 지현은 상실에 대한 관심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아졌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특별취급받는 이유도 있었지만 공부에 열심이라는 사실도 컸다. 하지만 그보다도 큰 이유가 있었다. 잘생겨졌기 때문이다.
첫 날에는 예전보다 깔끔해졌다 뿐, 그저 그런 얼굴과 몸매였는데, 이후로 조금씩 외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미묘하게 달랐다.
본래의 특징은 그대로였는데, 키가 쑥쑥 자라고 몸에도 적당한 근육이 자리 잡았다. 그러더니 머리도 어쩐지 작아진 느낌에 이목구비도 보다 뚜렷해진 지금은 어딘가의 모델이라 해도 믿을 정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남자애들이야 갑자기 자라는 경우가 있다곤 하지만, 이건 거의 허물을 벗는 수준이다. 한 달 만에 사람이 뒤바뀌어 버린 셈이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매일 봐서는 모를 정도였기에, 지현을 비롯한 학생들은 얼마간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많이 바뀐 것 같지 않느냐고 말을 꺼낸 뒤에야 깨달았다.
그 뒤로는 상실을 대하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에는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었다면, 지금은 가까이 가고 싶은 당신 정도의 취급이었다.
남을 무시하는 행동이나 짤막한 언행도 무섭지만 재수 없는 것에서 어쩐지 멋있다는 것으로 여론이 넘어갔다. 대부분 여학생들의 의견이었다. 반면 남학생들은 더 재수 없다고 호박씨를 깠다.
그로 인해 접근하려는 여학생들이 생겨났지만, 상실은 여전히 사람 무시하는 언행으로 그 모두를 쳐냈다. 전이나 지금이나 가까이 두는 사람은 지현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질투를 한 몸에 받게 되었지만 그녀는 그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현재의 상실은 지현의 이상형이나 다름 아니었다. 아니, 이상형 그 이상이다.
괴로운 학교생활을 극복하고, 강해져서 학교의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되었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밑바닥인 성적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서 성적을 올리고 있었으며, 외모도 뛰어나다. 거기에 성격이 까칠해 다른 여자들은 말도 제대로 못 걸지만 자신만은 예외다. 완벽했다.
소녀의 환상과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는 최고의 대상이었다. 이제 공부만 더 잘하게 되어 명문대에 함께 들어가기만 하면 무결점의 남자가 될 거라 생각한 지현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열과 성을 다해 상실을 가르쳤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넌 내 남자야.
설명을 듣던 상실은 점점 몸을 밀착해 오는 지현을 힐끗 보다가 다시 집중했다. 정말이지 공부는 싫었지만 친절히 가르쳐 주는 상대가 있으니 할 만했다. 성취욕도 조금은 생길 정도다. 수업도 이젠 제법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다른 여자애들과 지현의 엮여 보려는 수작이 훤히 보이는 건 귀찮았다. 변화된 외모가 원인임을 매우 잘 알았지만, 그렇다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유호상에게 일억이 든 대포통장과 비밀번호를 받아 낸 그는 이 돈을 어떻게 엄마에게 전해 줄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사회경험이 없는 그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이라곤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핑계로 한 달에 백만 원씩 드리는 것뿐이었다.
엄마야 온종일 밖에서 일하다가 저녁이나 되면 돌아오시니 그 시간에 공부를 하건, 일을 하건 알 도리가 없기에 알리바이는 확실하다. 워낙 없는 살림이기에 한 달에 백만 원씩 수입이 늘어나면 살림도 좀 펴질 거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상실은 엄마가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호강하며 살길 바랐다. 그러자면 합당한 사유로 돈을 벌어야 했는데, 아직 학생인 신분답게도 연예인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가수나 연기자 같은 것이라면 거기에 맞춰서 끌려다녀야 하고, 노래나 연기도 자신이 없었기에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하여 자신의 생각에 시간도 많이 나면서도 수입이 괜찮게 들어올 것을 떠올리니 모델이 떠올랐다. 그런 것이라면 나이 제한도 없는 셈이니 괜찮을 것 같았다.
하여 신체의 개조를 시작했다. 엄마가 못 알아보면 안 되었기에 매일 조금씩 외형을 바꿔 나갔다. 주요한 특징을 유지하며 차츰차츰 변화한 결과, 오늘에 와서는 이 변화를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빨리 키가 자란 감이 있었지만, 다들 그러려니 납득한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는 인터넷에 누군가 자신을 몰래 찍은 사진도 올라오고 있었다. 모델 포스니, 훈남이니 하며 조회수가 오르고, 댓글이 달리는 꼴을 보자니, 오디션 같은 것을 할 필요도 없이 누군가 접선해 올 듯싶었다. 확실하진 않았지만 현직 연예인들을 보면 로드캐스팅으로 데뷔했다는 말도 있었으니까 자신도 그러지 않을까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