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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혼을 팔았다 1권(20화)
6. 발단(5)


한 남자가 차지한 방의 내부는 어둑하다.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모니터의 불빛에 비쳐지는 모습은 난장판이 따로 없다. 정돈되지 않은 사물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퀴퀴하고, 고약한 냄새가 난다.
“하하! 그래, 이거야. 이거!”
화면에 집중하던 남자는 환호하며 양손을 흔들었다. 면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얼굴은 추레하나, 몸은 잘 관리했는지 근육이 불거져 있다. 단점이라면 근육에 어울리지 않게 튀어나온 뱃살이다.
신 나서 양손을 휘젓던 그는 동영상의 재생이 끝나자,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재차 재생한다. 인터넷에 올라온, 개인이 촬영한 동영상이었다.
시간은 길지 않았다. 대략 오 분. 하지만 그 내용은 충격적이다.
사람인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 없는 시커먼 형상이 한 여자를 잡고 있다. 화질이 좋지 않아 여자의 연령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볼 수 없다. 하지만 남자에게 그 여자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흐흐.”
웃음을 흘리며 다음에 나올 장면을 기대한다.
촬영자의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몰려서 웅성대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놀라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다.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여자와 검은 형상이 뭔가 대화를 나누는 듯 보였다. 하지만 주변의 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잠시 뒤, 그것의 몸에서 칼날 같은 것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왔다.
뭐라 칭하기 어려운 흉기가 인간의 몸을 간단히 관통한다. 피가 흘러나오고, 화면이 어지러워졌다. 비명과 구토하는 소리, 경찰을 부르는 소리, 구급대를 부르는 소리, 살려 달라는 목소리가 어지럽게 떠들어 댄다.
“그래, 그래.”
아비규환의 혼돈을 즐기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봤던, 하이라이트를 기대하며 희열에 젖을 준비를 한다.
영상 속의 괴물이 몸을 활짝 펼친다. 그와 함께 튀어나온 것들이 뼈와 살을 저민다. 한순간 인간의 형체가 사라지며 피와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기절하는 사람, 도망가는 사람, 구토하는 사람, 몸에 닿은 파편과 피에 자지러지며 몸서리치는 사람 등등 각양각색의 행태들 사이로, 괴물이 오연히 서 있다.
“이거야, 최고다! 히힉!”
남자가 새삼 흥분하며 몸을 떨었다.
몇 번을 보고, 또 보아도 전율이 인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어쩜 저렇게 무자비하지? 어떻게 저런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걸까?
화면 속 괴물은 누군가를 바라보다가, 허공에 손짓해서 보이지 않는 뭔가를 먹는 시늉을 한다. 하지만 남자는 저것이 어떤 것을 먹었으리라 생각했다.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을 먹었을 거다.
곧 괴물이 그림자에 스며들어 사라지고, 악다구니의 소란 중에 주차장의 참경이 가까워진다. 촬영자의 걸음 때문인지, 방해물이 없음에도 화면은 쉼 없이 흔들렸다.
흥건한 핏물, 뼛조각과 박살 난 머리, 내장, 각종 장기가 흉측하게 늘어진 광경은 일반인이 보았다면, 즉시 토악질할 만큼 지독하다. 곧 화면이 어지럽게 흔들리다가 주차장의 천장이 찍힌다. 가까이서 우웩, 구역질 소리와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얼마지 않아,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영상이 끝났다.
밑으로는 무수한 댓글이 달려 있었다. 저게 그 연쇄살인마냐, 사람이 아니라 악마다, 종말이 다가왔다, 적그리스도다, 북한의 소행이다, 미국의 신종병기다 등등 갖가지 추론과 끔찍하고 두렵다는 정상적인 내용. 별거 아니다, 더 자세히 찍었어야지, 최고다 등등의 허세나 정신병이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댓글들도 무수히 늘어섰다.
영상을 다 보고, 가늘게 한숨을 내쉰 남자는 구부정하게 굽은 허릴 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지러운 바닥을 발로 치우며 일어설 공간을 확보하곤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렇게였나?”
등을 활처럼 굽히며 끙 하고 힘을 줘 보기도 하고, 몸을 활짝 펴며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결국 포기했는지 모니터를 바라본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어떻게 한 거야?”
영상을 다시 한 번 재생하며 궁리한다. 여자가 찢겨지는 광경에 도달해 일시 정지시킨 그의 눈이 열망에 젖었다.
저 힘을 가지고 싶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마음껏 인간을 찢고 죽이고 싶어. 퍽 치면 억 하고 죽어 버리는 나약한 생물이 아니라, 저런 대단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그러다가 영상을 재생한다. 화면이 돌아가고, 괴물이 뭔가를 먹는 장면에서 다시 멈춘다. 그것을 보며 골몰하던 그는 손뼉을 쳤다.
“그래, 그랬던 거야! 그런 거구나!”
사내가 신 나서 팔짝팔짝 뛰어 대며 히죽히죽 웃는다.
방법을 알 것 같았다. 저 시커먼 게 시체에서 나온 뭔가를 먹었다. 그렇다면 그게 필요한 거란 말이다. 왜 필요하냐면 저 힘을 쓰기 위해 필요한 거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꼭 필요한 거니까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도 저걸 먹으면 똑같아지겠지?”
남이 본다면 정신병자나 다름없는 소리였지만, 그는 진심으로 믿는 표정이었다. 어긋난 믿음과 광기로 번들거리는 두 눈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의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저게 뭐지?”
비로소 불가시의 무언가를 어찌 볼 것인가 생각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였다.
“죽이다 보면 나오겠지.”
논리적이진 않지만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 남자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버리고, 거실로 나갔다. 알몸으로 거실을 돌아다니다가 구석에 아무렇게나 버려 둔 작업복을 입는다. 배관공들이 입는 복장으로 갈아입고, 면장갑을 낀 그는 이어 뭔가를 찾는다고 부산을 떨었다. 결국 찾아낸 것은 연장이 들어 있는 가방이다.
망치, 멍키, 스패너, 드라이버 등등의 공구들이 들어 있다. 어째서인지 희미한 피 냄새가 난다. 연장통을 뒤적이다가 밑에 깔린 면을 뒤집자 두 자루의 칼이 나온다. 하나는 흔히 말하는 회칼처럼 늘씬하게 빠졌고, 또 하나는 고기칼이라고도 부르는 네모지고 무거운 물건이다.
파르스름하니 서슬 퍼란 칼날에서 흉험한 기운이 느껴진다. 어디서 주워 온 수건으로 정성 들여 닦으면서 남자가 히죽 웃는다.
“좋아, 잘 잤니? 오늘도 일하러 갈 시간이다.”
칼에게 말을 걸던 그는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공구가방 밑바닥에 칼을 놓고는 위장용 판으로 덮었다. 그 위에 공구들을 넣은 남자는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갈 것처럼 하다가 아차 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끔찍한 악취가 새어 나왔지만,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잘 있었어? 조금 춥겠지만 기다려. 친구를 데려올 거니까.”
살아 있는 사람에게 하듯 말하다가 과장되게 코를 움켜쥔다.
“냄새가 심한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화장실 문을 닫고, 집 안을 돌아다니며 뭔가를 또 찾는다. 분사식 탈취제를 찾아내 화장실로 달려가더니 문을 열자마자 마구 뿌렸다.
“이제 좀 괜찮네.”
고개를 까딱거리며 이만하면 되었다는 듯 행동하던 그는 어두운 화장실 안쪽에 작별을 고했다.
“나중에 보자.”
문이 닫히기 직전, 희미한 빛에 드러난 내부의 색이 검붉다. 그 사이로 잘려진 사람의 팔이 보였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으며 문을 닫았다.
그가 공구가방을 챙기며 손목시계를 살핀다. 오후 열시 반을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오늘은 어떤 물고기가 걸릴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밖으로 나서는 남자의 모습은, 늦은 밤 연락받고 나서는 수리공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수고했어요.”
“예, 안녕히 계세요.”
늦은 시각, 가게 문을 닫는 주인에게 인사하는 정순은 기분이 좋았다. 요즘 날이 저물면 손님이 뚝 끊겨서 식당 주인 눈치가 보였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늦은 시간까지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덕분에 고되기는 했어도 추가수당까지 받았다.
일당으로 받아든 파란 지폐를 만지작거리다 지갑에 넣은 그녀가 바쁘게 걸음을 옮긴다. 곧 있으면 버스가 끊길 시간이다. 집까지 먼 거리는 아니었다만, 어수선한 시기기에 일부러 늦게까지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이걸로 상실이 신발이나 사 줄까?”
그녀가 품에 넣은 지갑의 두둑함을 만끽하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근래에 들어서 정순은 누구만 만나면 아들자랑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학교도 가지 않고, 방 안에 틀어박혀서 게임만 하던 애가 자청해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더니, 많이 밝아졌다. 일을 마치고 귀가하면 달려 나와 반기고, 힘드셨다며 여기저기 주물러준다. 게임하느라 엄마가 와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이제는 게임도 안 하고 공부에도 열심이다. 키도 쑥쑥 크고, 얼굴도 훤해져서 가끔은 내 배로 낳은 자식이 맞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솔직히 전까진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남편을 잃고, 여자 혼자 아들을 키우며 어찌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 남의 집 일을 도우러 가서 주인에게 치이고, 손님에게 치이는 박복한 신세에 눈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고 일했다. 가끔은 사별한 남편이, 공부에 관심 없는 아들이 야속했다. 다 버리고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은 생각도 아예 없던 건 아니었지만, 애써 그런 생각들을 버리고 죽어라 일만 했다.
언젠가는 상실이가 알아주겠지. 언젠가는 철이 들겠지. 그래서 돌아가신 아빠에게 부끄럽지 않게, 무시하던 사람들에게 여봐란 듯이 번듯하게 살아갈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살았다. 남들이 보기엔 모자라지만, 정순에게 아들은 유일한 희망이요, 빛이었다. 그리고 결국에, 아들이 철들었다 생각했다.
“상실이 아빠.”
정순은 지갑을 열어 남편의 사진을 바라봤다. 사진 속의 남자는 유치원을 다니던 아들이 자라, 고등학생이 되도록 주름 하나 늘지 않은 젊은 모습 그대로다. 여인이 남편과 눈을 마주하며 흐릿하게 웃었다.
“우리 애, 잘 크고 있어. 지켜보고 있지? 이제 다 커서 장가 보내도 될 거 같아. 아주, 여자애들이 바글바글 들러붙을 정도로 잘생겨졌다구. 당신보다 훨씬 훤칠하다니까?”
사진 속 남편과 이야기하며 훌쩍 숨을 들이쉰다. 어느새 눈시울이 뜨겁다.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공부도 열심이야. 엄마 꼭 호강시켜 주겠대. 대견하지? 우리 상실이. 당신도 봤으면 좋았을 건데…….”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숨을 멈춘다. 입술을 깨물었다. 더 말하면 주책없이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아,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걸음까지 멈추고, 어두운 골목에서 홀로 사진을 바라보던 그녀는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
“……그니까 당신도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줘. 우리 애, 엇나가지 않게.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쭉 보고 있어야 돼. 알았지?”
거기까지 말하고, 지갑을 접어 품에 넣는다. 이제 아들에게 가야 할 시간이다.
정류장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뒤로 소리 없이 인영이 따라붙었다.
섬뜩하게 웃고 있는 남자였다. 나이가 서른이 갓 넘었을 것으로 보이는 사내는 수리공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차를 타고 거리를 누비며, 남자는 사방을 훑었다. 어디 적당한 사람이 없나 유심히 살펴봤다. 요즘은 밤길을 다니는 사람이 적어서 표적 찾기도 힘들었다. 대신에 경찰들은 수를 셀 수도 없이 쫙 깔렸으니, 그들의 감시를 피해 다니는 것도 일이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들어간 골목에서 늦은 시각까지 영업을 하고 있는 음식점을 보았다. 보통 열 시도 되기 전에 문을 닫는 다른 집들과는 달리, 열한 시가 되어 가는 시각임에도 불이 켜져 있다. 반면 인접한 다른 건물들은 모조리 불이 꺼졌다.
오늘은 여기다.
슬며시 미소 지으며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운다. 음식점의 내부에는 사람이 없었다. 근래에 이십사 시 영업하는 가게는 없으니, 조만간에 마무리하고 나올 것이다.
남자는 가까운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숨어들었다. 이곳에서 정류장까지 통하는 거리는 대략 십 분 정도. 차를 타고 가거나 다른 곳으로 향하는 사람이라면 오지 않겠지만, 식당 일을 하는 이들 중 누군가는 이 길로 오게 되어 있다. 되도록 한 명만 오길 바라며 인근의 건물을 살폈지만, 창문은 단단히 닫혔다. 오가는 인적도 없었다.
연쇄살인마의 악명 덕분이다. 그에 무임승차하는 입장인 남자로선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이제 여럿이 아닌, 한 사람만 지나가길 바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