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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혼을 팔았다 1권(22화)
6. 발단(7)
“으음.”
아직 깨어나진 않으셨는지, 이후론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는 잠시 고민했다. 저 인간을 다져 놓는 게 먼저인가, 엄마를 다른 곳에 모셔 두는 게 우선인가.
엄마를 집으로 모시기엔, 타오르는 분노를 참기 어렵다. 정신이 끓어오르는 노여움에 세상이 붉게 보일 지경이다. 게다가 그냥 지나치기에는 저 미친놈에게서 너무나 맛있는 냄새가 났다. 이미 오늘의 식사는 끝마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혹적이다. 아파서 신음하는 소리마저 천상의 음악으로 들릴 지경이다. 저런 것을 두고 어찌 그냥 갈 수 있겠는가. 원한과 식욕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만찬을 두고?
하지만 당장에 저 남자를 죽일 순 없다. 분명 결심했다. 지극한 고통과 공포를 주겠노라고. 단숨에 죽일 순 없다. 시간을 들여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이란 고통은 모두 선사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속에 담아 두고 있는 것을 모조리 풀어냈다간 도중에 엄마가 깨어날 것이다.
엄마는 평범한 아줌마다. 깨어났더니, 썩어 가는 시체와 함께 화장실에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면 기절하시겠지. 밖에서 정체 모를 그림자가 사람을 해체하고 있는 걸 보면 평생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실 거다.
소년은 그런 상황을 원치 않았다. 자신은 인간이 아니지만, 엄마에겐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주고 싶었다. 좋은 것만은 보여 주고, 드리고 싶었다.
고민이 다소 길어지자,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기이한 시선을 보냈다. 마치 부모에게 맞은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눈빛이었다.
그를 보며 소년은 결론을 내렸다. 일단 엄마를 모셔다 둔다. 그리고 이놈과 길고 긴 밤을 지새울 것이다. 거실의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 한 시도 되지 않았다.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금은 시간을 주지.”
그림자의 입가에 흉기와 같은 이가 달린 입이 생겨나 웃는다. 섬뜩한 웃음에, 바닥에 쓰러진 남자조차 잠시나마 얼어붙는다.
그래, 시간을 주마. 아주 잠깐, 살아 있음을 만끽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두려워할 시간을 주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갈 수야 없지.
“그러니까, 아무 데도 가지 마.”
소년이 주먹을 휘둘렀다. 가차 없이 남자의 왼 발목을 짓이겼다.
“끄앗!”
성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진다. 일순 눈에 흰자위가 보이며 바르르 떨더니, 격렬하게 몸을 뒤틀며 악을 질러 댔다.
“아아, 아악! 캬아아!”
눈물까지 흘리며 발광하는 남자를 보며 소년은 흡족하게 웃었다. 아프다고 울부짖는 영혼의 비명이 감미롭다. 맛있다. 맛있어. 너는 재수 없는 놈이지만, 그 울음만큼은 최고로구나.
감탄하며 이번엔 오른 발목을 잡았다. 하나의 다리라도 남아 있다면 도망갈 수도 있다. 그렇게 놔둘 순 없지. 너는 어디도 못 가. 내가 말했잖아? 너는 여기서 죽게 될 거라고.
“히익! 놔, 놔. 놔아아!”
고통을 감내하며 남은 다리를 휘젓지만 어림없다. 인간의 힘은 굉장히 미약해서, 저항이라 하기에도 우스울 뿐이다.
“울어라, 더 울어.”
손아귀에 천천히 힘을 더한다. 커다란 공업기계와 같이, 압도적인 힘으로 서서히 옥죄인다. 살갗이 짓눌리고, 뼈에 금이 간다. 남자의 비명이 온 집 안에 가득했지만, 소년은 뼈가 부스러지는 소릴 들을 수 있었다.
비명과 악다구닐 쏟아 내던 남자는 이젠 울부짖는다. 눈을 까뒤집고, 두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고, 찢으며 발악한다. 이 모두가 상실에겐 만찬이다. 비명도 이럴진대, 그 혼은 어떨까? 인간을 벗어난 괴물을 추종하던, 미친 영혼은 과연 무슨 맛일까?
한편으로, 그는 이 남자가 고마웠다. 정말 고마웠다. 엄마를 납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자를 만날 수 있었을까. 얼마나 찾아 헤맨 뒤에야 찾을 수 있었을까.
“캬학!”
기쁜 나머지 과해진 힘에 기어코 나머지 발목마저 으스러졌다. 입에서 거품을 토하며 경련을 일으키는 사내의 모습은 처절했지만, 그는 기절할 수도 없다. 그가 기절하기 전에, 상실이 발을 들어 올렸다.
팔도 망가트려야 해. 다리가 없으면 기어서 도망갈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팔도 못쓰게 해주겠어. 아무 곳도 갈 수 없어. 손도 발도 쓰지 못하는 벌레 같은 몸뚱이로 기다려라. 내가 오기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해, 너는.
남자의 손목을 짓밟는다. 쿵 하고 건물 전체가 떠는 것처럼 진동이 일었다. 온 집 안이 바르르 떨며 주방에서 접시나 컵 따위가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윽, 흐으, 흐히이…….”
이젠 비명 지를 힘도 없는지, 괴이한 숨소리만 흘러나왔지만 상관없었다. 고통에 면역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통각에 무뎌지면, 그것을 뛰어넘는 고통을 선사하면 그만이다.
손톱을 세운다. 검은 손가락에서 칼날 같은 것들이 솟아났다. 그것으로 남은 손목을 해체한다. 피부를 벗기고, 붉은 근육을 정성들여 잘라 낸다. 노오란 힘줄을 툭 건드리자, 고무줄처럼 안으로 말려들어 간다. 드디어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키햐앗! 하, 하지 마! 흐윽, 하지 마, 제발. 왜, 왜 내게, 이러는, 이러는 거야. 우린 분명 닮아 있는데에! 왜!”
애처롭고도 처절하게 사정하는 그를, 소년이 비웃었다.
“왜라니. 여기서 왜가 왜 나오지? 네가 내 흉내를 냈던 건 왜였나? 왜 나를 따라했어, 왜? 어째서?”
남자가 답하려 했지만 그는 들을 생각이 없었다. 손톱으로 남은 근육을 파헤친다. 대답 대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소년은 커다란 입으로 웃었다. 어째서 내가 음식 따위와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지? 너는 그저 기다리다 먹히면 그뿐이야.
“이유는 없어. 너는 미쳤기에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었겠지. 아닌가? 상관없어. 뭐가 어쨌건, 나는 너를 먹을 거니까. 거기에 왜라는 이유가 필요 없음은 알겠지?”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기괴하게 갈라진 음성으로 말한다.
“나는 네게 고통을 주고 싶으니까 주는 거다. 너를 먹어야 하기에 죽일 거고. 아무런 이유가 필요 없지. 나는 사람을 먹는 괴물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뼈를 절단한다. 예리한 손톱이 두부 자르듯 단번에 양단했다.
“으아아아악!”
소년은 흥이 올랐다. 멈추기 싫었다. 더 괴롭히고 더욱 비명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만. 잠깐 미뤄 둘 때다. 엄마가 깨면 안 되지. 엄마에게 이런 걸 보시게 할 순 없어. 집으로 갈 시간이다.
“곧, 다시 보자. 기대해도 좋아.”
움직이지도 못하는 미치광이에게 작별하며, 소년은 엄마를 품에 안았다. 다행히 아직 깨지 않으셨다. 이제는 퇴근길을 따라붙어야겠다는 생각하며 창문을 열었다.
고층 아파트의 밖은 새카만 바다와 같았다. 검은 하늘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바닥엔 간간이 가로등과 차량의 빛이 보일 뿐이다.
상실은 엄마를 품에 안은 채로 몸을 날렸다. 자살이 아닐까 생각될 모습이었지만, 그는 유유히 어둠을 밟으며 허공을 내달렸다.
집으로 가던 소년이 잠깐 뒤돌아보니, 방금 나온 아파트 전체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깨어난 인간들이 놀라 떠드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흐으, 흐윽. 개새끼. 크흑. 염병할! 끄흐읍.”
홀로 남은 남자는 아파서 연신 신음을 흘리면서도, 쉬지 않고 욕을 주워섬겼다. 진짜 아프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파 본 적이 없을 만큼 아팠다.
손목과 발목이 부러진 것만으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움직이지 않아도 기절할 것처럼 아프건만,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시도하면, 죽을 것 같이 아팠다. 문제는 움직이지 않는다면 정말 죽는다는 거다.
“씨발.”
아까의 무시무시했던 그림자를 떠올리며 아득바득 이를 갈았다. 영웅이고 뭐고, 놈은 괴물이었다. 그것도 항거할 수 없는 힘을 지닌 괴물. 흔한 말로, 악마라고 부르면 딱 이다. 하지만, 정말 악마라면 왜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악마라면 도와줘야지! 개자식. 힘만 있다면 죽여 버릴 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힘으로 그 괴물을 죽일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놈이 돌아오기 전에 어디론가 도망쳐야 했다.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 했지만, 움직이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뭉개지고 잘려 나간 상처가 아프다.
“좆 같은 새끼.”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던 그는 결국 포기해 버렸다. 생각해 보면 이제 살아도 부질없는 삶이다.
한때 그의 꿈은 마누라와 함께 귀여운 자식을 키우며 오순도순 소박하게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식은 생기지 않았다. 누구에게 문제가 있던 건지 모르겠다. 그에 더해 경기가 악화되며 일감이 줄어들었다. 엎친 데 덮쳐서, 마누라는 돈을 빼돌리고 바람을 피우다 죽어 버렸다. 아니, 죽여 버렸던가?
남자는 아픈 와중에도 고개를 갸웃했다. 마누라는 도대체가 죽은 건지, 살아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시체가 되어서 화장실에 처박아 뒀는데, 밤이고 낮이고 지가 내키면 나타나서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몇 번인가 연장을 휘둘러 죽였었다. 죽였었나? 시체를 또 치우진 않았으니 허깨비를 본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생각하니, 시체를 치웠던 것 같기도 하다. 하긴 뭐, 죽은 년이 다시 나와 봤자, 중요한가?
밖이 시끄럽다. 복도에 나온 사람들이 웅성이며 떠들고 있었다. 남자는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짓이겨진 왼팔의 손목을 보곤 납득했다. 모르긴 몰라도, 건물 전체가 울렸을 거다.
사지에서 전해지는 지독한 통증에, 남자는 그 괴물이 왜 아직도 안 오는지를 생각하며 투덜거렸다. 정작 온다면 아프고 무서워서 벌벌 떨 것 같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방치되어 있는 것보단 빨리 죽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아쉬운 게 있다면 사람을 몇 죽이지 못했던 것밖에 없다. 사람을 해체하던 일을 떠올린 그는 잠시나마 기뻐 헐떡이다가 의문을 가졌다. 왜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게 된 거지?
곧, 별거 없는 결론에 도달했다. 괴물의 말마따나 그냥 좋으니까 죽인 거다. 왜 좋아졌는가 생각해 봤지만 그건 모르겠다. 이유야 어쨌건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다. 거창한 이유도 필요 없고, 어차피 망가진 인생. 내키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소란스런 밖과는 달리, 시계와 냉장고 따위가 움직이는 소리만 남은 실내에 방치되어 있던 그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곤 흠칫했다. 그 감각이다. 괴물이 나타났을 때와 흡사한,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눈알만 데굴데굴 굴려서 위치를 찾으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집 안 한구석을 무의식중에 집중했다. 뭔가 그곳에 있었다.
가만히 주시하던 그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림자 같은 것이 일렁이고 있었다. 집 안 가득한 어둠보다 더 검고, 기분 나쁜 그것은 확실한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음에도 혐오감이 들었다.
께륵.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울었다. 남자로선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아까의 놈과 비슷했지만, 다르다. 크기도 더 작고, 형상도 인간의 그림자가 아니다. 짐승과 비슷하다.
날렵한 네 다리로 땅을 딛고, 꼬리로 짐작 되는 길쭉한 것이 늘어져 있다. 머리통은 개 따위의 짐승과 닮은 형상이다.
끼륵끼르륵.
울음을 토하며 그것이 남자에게 다가왔다. 크기는 작았지만, 위험하다는 느낌은 다를 게 없었다. 또다시 본능이 경고했다. 이건 위험하다. 피하라고 외쳤지만, 남자는 스스로의 본능을 비웃었다.
아까도 한참 늦어서야 말하더니만, 이번에도 똑같다. 마누라부터 시작해서, 내 몸까지. 뭐 하나 인생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이미 코앞에 있는데, 이제 알려 주면 뭘 어쩌란 거냐. 어깨로 꿈틀꿈틀 기어서 도망이라도 가?
그는 왠지 평온한 마음으로 그림자를 관찰했다. 이런 게 해탈이 아닐까 싶었다. 어차피 죽은 거니, 그림자가 이놈저놈 나뉘는지, 아닌지도 상관없다.
“크흐으, 왔냐, 개새꺄.”
아픈 와중에 힘들여 입을 열더니, 스스로 생각해도 웃긴지 키득거리다가 잔뜩 인상 쓴다. 웃어서 생기는 떨림만으로도 아프다. 빨리 죽고 싶었다. 되도록이면 빠르게.
게르륵크륵크륵.
가까이 다가온 그림자의 움직임이 잠시 멎었다. 바르르 전신을 떨던 그것에게서 듣기 거북한 음성이 들려왔다.
“계, 약을, 하자. 힘, 을 주겠다.”
“뭐?”
괴물이 다시 말했다.
“영혼을, 다오. 힘, 을 주마.”
괴물의 목소리가 웅웅 울려 퍼진다. 동굴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음성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섬뜩한 느낌에 남자는 잠시 주저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빠르게 결론을 내린다.
그래, 이 개자식아. 계약이건 뭐건 맺자. 맺자고. 어차피 뒈질 몸인데, 뭔들 못 하겠어. 맘대로 해 봐.
“줘.”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아파서 길게는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는지, 괴물이 웃었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시커먼 형상 같았지만, 그는 괴물이 웃었다고 생각했다.
“계약, 은 이뤄, 졌다.”
괴물의 형상이 확장된다. 주변에서 흐르던 섬뜩한 분위기가 도를 더해 갔다. 수상쩍은 분위기에, 남자가 마른침을 삼켰다.
괴물이 말했다.
“네, 영과 육.”
그림자가 남자를 덮친다. 온 시야가 새카맣게 뒤덮인다. 그의 귓전에 괴물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모두 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