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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혼을 팔았다 1권(23화)
7. 조짐(1)
소년은 종일 언짢은 기색이었다. 곁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던 지현도 덩달아 걱정스러워졌다. 평소와 다름없이 공부도 하고, 질문도 해 왔다만, 피부에 와 닿는 분위기는 그게 아니다. 그 증거로, 교실은 떠드는 소리가 드물었다. 다들 상실의 눈치를 살피며, 다른 반으로 원정을 가서야 맘 놓고 떠들었다.
“무슨 일 있어?”
“아니.”
소년이 덤덤하게 고개 저었지만, 소녀는 아닌 게 아님을 진작 알고 있었다. 공부를 하긴 했지만, 어제까지처럼 열성을 다함이 아니다. 공부를 하다 말고, 뭔가에 골몰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캐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지현은 참아야 했다. 자신이 끼어들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닌 것 같았다. 대신에 화제를 돌리려 시도했다.
“저기, 뉴스 봤어? 연쇄살인마 집을 발견했다던데.”
딴에는 남자애들이 흥미로울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남자애들뿐만 아니라, 그 뉴스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화제다. 아침 뉴스시간에 모든 방송사에서 앞다투어 보도했다.
발 빠른 방송사에서는 아예 살인마로 추정되는 용의자에 대한 것을 세세하게 조사해서 특집 방송을 할 정도였다.
지현도 등교 전에 그 뉴스를 보다가 나왔다.
용의자는 삼십 대 중반의 남자였다. 고아원에서 자랐고, 막힌 하수도를 뚫거나, 보일러의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다. 가족으론 결혼한 지 칠 년이 된 아내가 하나 있었다.
―얼마나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새벽에 나가서 오밤중에 돌아오고, 매일 그랬다니까. 부인도 끔찍이 아껴서 바람피운다는 소리도 없었어. 얼마 전에는 마누라 여행을 보내 줬다고 해서, 정말 좋은 사람이다 생각했었는데…….
뉴스에 나온 주민과의 인터뷰를 떠올린 소녀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뉴스의 보도에서 나온 말에 의하면, 여행을 떠났다던 부인은 화장실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화장실에는 부인을 제외하고도 다섯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으며, 모든 시체는 신원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난자당하고, 부패한 상태로, 어떻게 사람이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 말할 정도였다.
경찰은 용의자의 신원이 파악되었으니, 조속히 검거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자들이 인터넷에 떠도는 주차장 살인사건에 대해 언급하며, 그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느냐 물었지만, 경찰의 대변인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답하지 않았다.
이미 인터넷에는 용의자의 얼굴과 신상정보가 떠돌아다녔고, 출처가 불확실한 추측성 기사들이 난립했다.
“그 사람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하던데.”
살인마의 정체가 밝혀진 건 다행한 일이었다. 지현의 부모님도 곧 잡힐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자신들이 사는 아파트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지현은 불안했다.
용의자가 사는 건물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는데, 용의자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송에서도 감시카메라에 찍힌 영상은 아무 데도 없었다고 말하며, 용의자가 어떤 수단으로 집에서 탈출했는지 경찰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살인마가 어디에 숨어서 표적을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 아닌가? 어쩌면 매우 가까운 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어두운 길에 숨어서 자신을 노려보는 살인마를 떠올린 소녀가 몸서리쳤다. 그녀는 속으로 최대한 빨리 잡혔으면 하고 바랐다.
“그렇지.”
뒤늦게 소년이 끄덕이자, 소녀는 자신의 말이 통했다고 생각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실은 굉장히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녀는 자신이 말을 잘못한 건가 고심했지만, 소년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풀이 죽은 지현은 다시 공부하는 척, 상실의 눈치를 살폈다.
살인마에 관한 뉴스는 상실도 봤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엄마는 호들갑을 떨며 출근하셨고, 딱히 막을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던 그로선 어쩔 수가 없었다. 엄마의 하루벌이에 의존하는 상황이니 학생에 불과한 그가 말해 봤자 단순한 걱정으로 넘길 것이 뻔했다.
그는 밤중의 기억을 떠올렸다.
엄마를 집에 모셔 놓고, 돌아간 곳에서 먹이의 흔적은 아무 데도 없었다. 사지가 분질러진 이상, 인간이라면 절대 도망갈 수 없었음에도 그 미친놈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경찰이 도착하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아끼고, 아껴 먹을 음식을 빼앗겼단 사실에 노해서 온 사방을 돌아다녔지만 어디서도 그자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대신 다른 냄새가 났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맛있을 것 같으면서도 거리낌이 드는 괴이한 냄새였다. 그 뒤를 추적해 보았지만, 역시나 발견할 수 없었다. 흔적은 띄엄띄엄 이어졌고, 향의 농도 역시 지금까지 맡아 온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옅었다.
그 냄새의 주인이 먹이를 가로챘음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찾아내기는 힘들었다. 어찌어찌 밤새도록 추적했지만, 미약한 향이나마 나던 것은 날이 밝아오자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누구냐.”
정체불명의 상대를 떠올리며 소년이 중얼거렸다. 곁에 있던 지현이 궁금한 눈치지만, 신경 써 줄 여유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대상에게 먹이를 빼앗겼단 사실에 공부가 손에 잡히질 않았다. 온종일 미친놈과 냄새의 주인에 관한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더불어 사라져 버린 먹이가 엄마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거슬렸다. 놈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살아 있다면 직접 숨통을 끊고, 죽었다면 시체라도 확인해야 껄끄러운 감정이 내려가겠지.
기필코 찾아내겠다고 다짐하며, 소년은 불쾌함의 또 다른 원인을 떠올렸다.
언제부턴가 위화감이 들었다. 자신을 제외한 세상은 바뀐 게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지만 계속해서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든다. 정확히 뭐가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달라졌음은 확실했다.
말하자면 세상에 구멍이 뚫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언제고 하늘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균열이 사방을 가득 메워 가고 있다는 불길함이 끊이지 않는다.
이 감각을 인지한 것은 어제. 미치광이가 사라져 버린 직후다. 언젠가 세상이 흔들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길함에, 소년은 멀리 창가를 통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태양은 황금색 빛을 뿌리고 있었다. 걱정 말라는 듯, 건재함을 과시하는 하늘을 보면서도, 어째선지 답답한 감각은 가시질 않는다.
“아, 으, 아?”
폐건물의 지하에서, 한 남자가 과장스럽게 입을 움직였다. 목소리를 시험하는지 이런저런 소리를 내다가 몸을 이곳저곳 움직여도 본다.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지 인상을 찌푸린다. 표정이 묘하게 어색하다.
“불편해.”
양팔을 크게 돌려 보고, 고개를 좌우로 꺾어 본 남자는 입구에서 들어오는 빛을 노려본다. 그러다가 조심스레 다가가 손을 뻗었다. 밝은 태양광이 손에 닿자, 창백한 피부가 서서히 벗겨졌다. 고통스러운지 즉시 손을 빼내자, 순식간에 피부가 복구되었다.
“약해, 약해.”
어색한 어조로 투덜거리는 그의 얼굴은 상실에게서 도망쳤던 자와 같았다. 이목구비가 같은 사람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을 만큼 같았다. 하지만 분위기와 눈빛이 다르다.
그에게선 사람이 아니라, 먹이를 찾는 맹수와 흡사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주변의 공기는 팽팽하게 당겨져서, 언제라도 사방으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선 또한 가라앉아 있었다. 번들거리는 광기가 가득하던 이전과는 달리, 새까만 눈동자는 깊게 가라앉아, 무엇이든 차갑게 관조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족스럽지 않아.”
또다시 스스로의 몸을 보며 불평한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불편해 보였다. 일일이 의식해서 움직이는 듯 어느 한 부위에 집중해 움직이면, 다른 부위는 일절 움직이지 않았다.
“배고파.”
무심하게 배를 내려 보며 말한 그는 이딴 몸뚱이는 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계약을 맺고, 죽어 가던 남자의 영혼과 육신을 집어삼킨 순간부터, 이 비루한 육신에서 벗어날 수 없어졌다.
“제기랄.”
집어삼킨 영혼의 기억 속 단어를 떠올려 읊조린다.
그는 자신이 뭔지를 몰랐다. 그와 같은 종에게 있어, 스스로의 정체성이란 아무 가치가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다. 중요한 건 식욕과 힘.
먹고, 먹고, 또 먹어서 힘을 축적하고, 더 큰 것을 먹어 더더욱 큰 것을 집어삼킨다. 그 다음에는 더 큰 것, 또 더욱 큰 것. 삼키고, 삼키고, 삼킨다.
인간의 입장에서 평하자면 무의미할지 모르지만, 괴물에게 있어 그것은 지상 과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먹을 수 없다. 태양이 떠오른 지금, 괴물의 힘은 극도로 약화되어 있었다. 이대로는 먹이를 구하기는커녕,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안 돼.”
괴물은 인간의 기억을 통해 뭔가를 봤다. 시커멓고 커다란 그림자. 본질은 자신과 같았지만, 동시에 달랐다. 그리고 자신이 뒤집어 쓴 껍데기를 증오하고 있었다.
―왜? 어째서?
먹어 치웠던 인간의 혼이 불쑥 외쳤다. 그것은 실로 억울하다는 듯,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괴물에게 외쳤다.
“닥쳐.”
괴물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의견을 피력하려는 혼을 강제로 속 깊은 곳에 밀어 넣는다. 아직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한, 나약하나 먹음직했던 혼백은 그의 윽박지름에 떠밀려 심상 밑으로 가라앉았다.
괴물은 궁리했다. 정말 어째서 그것이 노해 있었을까. 기억 속의 그림자와 인간의 접점이라곤 늙은 여자뿐이다. 그렇다면 그 여자를 잡아 옴이 문제가 되었단 말이다.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왜? 그 인간이 뭐라고? 다른 것들과 다른 점이 있었나? 아니면 점찍어 두었던 먹이? 괴물이 고개를 내저었다. 늙은 인간에게선 남다른 점도, 맛있는 느낌도 들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정말 왜?
의아함은 곧 호기심으로, 호기심은 집착으로 바뀌어 갔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그 먹이에게 있다. 그게 뭘까? 뭐기에 기묘한 동족이 화를 냈을까? 고민 끝에 결론이 내려졌다.
먹는다. 잡아먹어 보면 알겠지. 무슨 힘이 있는지는 몰라도 살아 있다면 뼈까지 씹어 먹어서 뭐가 그리도 특별한지 알아야겠다.
하지만, 그러자면 힘이 필요하다. 먹지 않았다면, 분명 그것이 지키고 있을 거다. 따돌리거나 힘으로 압도해 쫓아낼 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 지금의 나는 그것에 비한다면 너무도 나약하다. 발각된다면 얼마 가지도 못해 찢겨져 잡아먹히겠지. 힘을 키워야 한다. 그 전까지 그것의 손을 피해 있어야 했다.
“우와, 이딴 데가 다 있냐.”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괴물이 모서리를 돌아, 몸을 숨겼다. 냄새가 났다. 조금은 맛있는 냄새다. 기대에 들떠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니, 어린 인간 몇이 건들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짱박히기 딱 이네. 왜 여길 생각 못했지?”
개중 하나가 실실 웃으며 품에 손을 넣는다. 다른 인간들도 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네모난 종이 갑. 담배다. 저마다 하나씩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신 나서 떠든다.
“여기면 학교랑도 가깝고, 들킬 일도 없겠다?”
“그치? 내가 존나 돌아다니다가 딱 발견했다 아니냐. 여기 공사하다가 부도나서 누가 들어오지도 않아. 나중에 술도 가져와도 되고.”
“계집애들 데려와서 놀아도 되겠어.”
하나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하자, 다른 녀석들도 실실 웃는다. 괴물도 웃었다. 제 발로 먹이가 걸어 들어오다니. 재수가 좋다. 덜 익은 느낌도 들었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먹어서 힘을 키워야 했다.
“근데, 여기 좀 서늘하지 않냐? 바깥보다 추운 거 같은데.”
연기를 뱉으며 하나가 말하자 나머지도 끄덕였다.
“에어컨 틀었나 보지.”
“좆까, 병신아.”
킬킬거리는 세 명의 어린 인간을 보던 괴물은 입맛을 다셨다. 셋이나 된다. 다 먹을 수 있을까? 흔적이 남으면 그게 쫓아올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놓치면 더 골치 아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