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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혼을 팔았다 1권(24화)
7. 조짐(2)


―죽여, 죽여! 그래, 죽이라고!
계약자의 혼이 불쑥 고개를 내밀며 닦달한다. 발작처럼 소리 지르고, 미친 듯이 웃는 등 제멋대로였지만, 지금은 거슬리지 않았다. 괴물도 지금은 그와 동감이었다.
몸을 날린다. 제일 가까이 있는 녀석의 뒤통수를 노린다. 다른 두 놈이 눈을 크게 뜬다. 괴물은 가차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콰직.
두개골이 박살 난다. 아무리 나약한 육신이라도, 그가 깃들어 있는 이상 여타 인간들과는 격이 다르다. 뼈 따위는 일격에 분쇄한다. 비틀거리며 머리 잃은 시체가 쓰러지는 것을 넘어, 인접한 다른 먹이의 가슴으로 관수를 뻗는다.
손끝이 칼날처럼 피부를 찢고, 갈빗대를 바순다. 힘차게 맥동하던 심장이 폭발하듯 터지는 감각을 즐기며 괴물은 즉각 몸을 돌렸다. 하나 남은 인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드는 것을 감상하며, 손을 뻗었다. 뭐라 비명을 지르려는 것 같았지만, 왼손으로 목울대를 낚아챘다. 성대가 뜯겨 나가며 피가 쏟아졌다.
아직 죽지 않은 어린 인간이 본능적으로 목을 움켜쥐며 가르륵 이상한 소리를 냈다. 두 눈에는 불신과 공포가 어려 있었다. 피로 물든 주먹으로 안면을 후려갈긴다.
“끄륵.”
안면이 함몰되며 마지막 먹이가 벌렁 자빠진다. 경련을 일으키며 펄떡대는 몸뚱이를 내려 보면서, 괴물이 손에 묻은 피를 핥았다.
죽은 껍데기에서 튀어나온 혼백들이 구슬프게 울어 댄다.
―왜 날 죽였어! 왜! 어째서!
원독 가득한 외침이었지만, 그에게는 식욕을 돋우는 전채에 불과하다. 손을 뻗어 세 개의 영혼을 잡는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꽉 잡고, 하나하나 음미하듯 씹어 삼켰다.
계약자가 신 나서 날뛰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서 와라, 어린 것들아, 환영한다, 환영해! 비명을 지르는 혼백들 사이에서 신 나서 떠들어 대는 걸 무시하며, 괴물은 마지막 혼까지 잡아먹었다.
그러곤 널브러진 시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부족했다. 영혼을 먹어 본신의 굶주림을 해소되었지만, 이 비루한 육신의 굶주림은 아직 해갈되지 않았다.
쩌억 입을 벌린다. 입가가 찢어질 듯 늘어났다. 인간이라기보단 맹수와 유사하리만치 크게 입을 벌린 그가 시체를 한 입 베어 문다.
아드득 뼈가 씹혀 으스러지는 소리를 즐기며 느긋하게 시체를 뜯어먹는다. 만찬을 탐닉하며, 괴물은 고개를 들어 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태양의 위세가 한창이다. 시간이 더 지나야 했다. 빛이 저물어 세상이 어둠에 잠기려면 더 시간이 지나야 한다.
먹다 보면 밤이 오겠지. 그럼 밑으로 가야겠다. 그것이 찾지 못하도록 더 멀리, 남으로 내려가야지. 꼭꼭 숨어서 힘을 키우자.
괴물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햇살이 따사로운 칠월의 첫 날이다. 푸른 잎사귀가 무성해지고, 열매가 익고, 곡식이 영글어가는 시기. 연인들은 좋은 곳으로 놀러 다녔고, 집에선 에어컨이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수영장과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따스한 밤거리는 가벼운 옷을 입은 여자들과 그들을 찾아 몰려드는 남자들의 음주가무로 흥청거려야 할 때다. 그랬어야 했다.
“염병할!”
라이온파의 두목, 백태환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책상을 쾅쾅 내려쳤다. 분명 지금은 술장사가 호황을 누려야 할 시기였다. 클럽이니, 나이트클럽이니 할 것 없이, 술과 이성이 있는 곳이라면 달아오른 인간 군상들이 몰려들어 지갑을 열어야 할 때였지만, 그가 관할하고 있는 구역의 수입은 시원찮았다.
연쇄살인마가 날뛰면서 매상이 뚝 떨어졌다. 살인마가 무서워서 사람이 나다니질 않으니, 돈이 들어올 리 없다. 게다가 그 개자식 때문에 온 거리에 경찰이 쫙 깔렸다. 퇴폐업소에 대한 감시까지 겸하는 바람에 지금껏 장사해 온 어느 시기보다 힘들다. 뒤를 봐주던 경찰들마저 지금은 얌전히 몸 사리고 있으란 말뿐이었다. 높은 분들께 부탁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하는 수 없이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늘리고, 사채를 쓴 인간들을 쥐어짜서 수익을 올리려 발악해 봤지만,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오늘이 왔다. 정체 모를 괴물에게 상납금을 바쳐야 할 날이.
전처럼 장사가 잘 되었다면 오억이라고 못 줄 건 없었다. 자신의 몫으로 떨어지는 대부분을 바쳐야 했기에 배가 아팠겠지만 죽는 것 보단 낫지 않은가. 처참하게 찢겨 죽은 호상을 떠올리며 태환은 몸을 떨었다. 거기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요즘 살인마로 인해 신경이 날카로운 경찰과 움츠린 고객들 때문에 장사가 죽을 쑤고 있었다. 수익이 오억을 넘기긴커녕, 총 매출이 오억을 넘기 힘든 사정이었지만, 그 괴물은 전혀 알아주지 않을 거다. 오히려 신 나서 자신을 찢어발기고, 다른 놈을 갈취하겠지.
상납일이 다가올수록 압박감에 몸을 떨다가 며칠 전에는 숨겨 두었던 금괴를 팔아 치워야 했다. 마련한 돈을 대포통장에 입금하며, 잔금을 확인한 그는 푼돈을 제외한 대부분의 금액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보곤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큰돈이 새어 나갔으면 추적해서 약점을 잡아 볼 시도라도 했겠지만, 백만 원도 되지 않는 현찰을 추적할 방도란 없었다. 도무지 이놈이 돈을 요구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다. 거액을 요구했다면 뭐가 되었건 흥청망청 써 버리는 게 정상이 아닌가.
또 얼마 전에는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하나 봤다. 호상이 죽던 날 함께 있던 동생들 중 하나였는데, 파랗게 질려서 와 가지곤 스마트폰을 내밀기에 보다가, 그 역시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놈이었다. 자신에게 상납금을 요구하고, 호상을 찢어 죽였던 그놈. 그 시커먼 괴물이 백주대낮의 주차장에서 사람을 찢어 죽이는 화면이 고스란히 나왔다.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혹시나 놈이 연쇄살인마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사람이 풍선처럼 터지는 광경을 보니, 자신이 터지는 것처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악몽을 꿨다. 주로 돈이 모자라다며 찾아온 괴물에게 난자당하는 내용이다. 매번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니,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살이 쭉쭉 빠진다.
“으흐으.”
한숨을 내쉬며 훌쭉해진 볼을 만진다. 까슬까슬한 수염이 손에 걸렸다.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 괴물. 세간에는 연쇄살인마라고 불리는 놈은 어제까지도 누군가를 찢어 놓았다. 당연히 앞으로도 장사는 안 될 거다.
이번은 어떻게 돈을 마련했지만, 다음 달은? 또 그 다음 달은 어찌해야 할지 감당이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간 줄어드는 수입에 피를 말리며 가진 자산을 처분해야 할 판이다.
경찰에게 제보하고, 보호를 요청해 볼까 생각도 해 봤지만, 바로 폐기처분했다. 호상이 죽던 날, 자신을 포함한 조직원 열 명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보기만 했다. 괴기스럽고 끔찍한 광경에 모두가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했다. 그중 몇 명은 이미 어디론가 도망가서 연락이 끊어진 상황. 경찰이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재산을 처분하고 도망갈까 생각도 해 봤지만, 이 역시 별로다. 도대체 어디로 도망간단 말인가? 언제, 어디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출현하는 괴물을 상대로는 어느 곳이라도 안심할 수 없었다. 설령 외국으로 도주하더라도 평생을 두려워하며 살 것이 눈에 훤하다. 몸을 짓누르는 공포감은 죽는 날이 되어서야 내려놓을 수 있겠지.
거기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지역이 늘어났다. 얼마 전부터는 살인마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는 뉴스도 나왔다. 대중없이 하루에 몇 명이건 잡아 죽이는 살육의 길은 멀리 남쪽 부산까지 이어졌다. 차라리 아예 가 버렸다면 그로서도 안도했겠지만, 일대에선 아직도 매일 한두 명씩 사람이 죽어 나갔다.
경찰은 모방범죄라 결론을 내렸고, 대대적인 인원을 동원하여 검거에 힘썼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인근에서는 도망치듯 이사 가는 사람들로 인해 뉴스에 나올 지경이 되었고, 땅값은 얼어붙은 술장사와 함께 곤두박질치고 있는 실정이다.
“수를 내야해. 수를…….”
태환이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만지작거린다. 쉬지 않고 다리를 떠는 모습은 강박증 환자와 같다.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되건, 자신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 가득했다. 경찰이고, 다른 조직이고 나발이고, 당장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내가 죽게 생겼는데 다른 놈들의 사정 따위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죽고 싶지 않아.”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던 그의 눈에 결단의 빛이 어린다. 태환이 전화기를 들어 메마른 음성으로 말했다.
“옆 동네, 오룡파 구역 접수해야겠다. 작전 짜라.”
관할구역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다면 다른 곳을 접수하면 된다. 누가 죽을지도, 경찰이 나서서 조직이 박살 날 수도 있지만, 찢겨 죽는 것보다야 낫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게 훤히 보이는데, 그렇다면 발악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그에게 있어 인생은 도박이다. 특히나 폭력배로서의 삶은 더하다. 한 끝만 잘못해도 나락으로 추락하기 십상. 전이라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안주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판돈은 하나뿐인 목숨.
가진 패가 개털이건, 장땡이건 걸어야 했다. 남은 건 살거나, 혹은 죽거나.

학교의 구석진 장소에서 그림자를 통해 나타난 상실은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내부의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다. 공부와는 담을 쌓던 학생들까지 문제집이나 필기노트를 훑으며 학업에 여념이 없다. 다만 그런 이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함이 피어나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던 이들도 더욱 열을 올려 공부하는 모습은 수능이 코앞에 닥친 삼 학년들을 보는 것 같았지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왔어?”
책을 탐독하며 중얼중얼 암기하던 지현이 뒤늦게 소년을 발견했다. 고개를 까딱이며 그 역시 책을 꺼내 들었다.
“열심히 했지?”
열심히 했냐는 말이 열과 성을 다했냐는 말이라면 상실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잠을 잘 필요가 없는 몸이니만큼, 밤을 새워서 공부해 왔던 것에 이어서, 지현이 추려 준 것까지 벼락치기로 몇 번이나 복습한 몸이다. 이 교실에 있는 누구도 그보다 많은 시간을 학업에 몰두하진 못한다. 그는 대답 대신 필기노트를 펼쳤다.
지현으로서도 상실이 꼬박꼬박 답해 주는 걸 기대하진 않았기에 자신의 필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이번 시험의 결과에 앞으로도 상실과 공부를 하느냐, 학원으로 끌려가느냐가 달려 있다. 전날에는 잠도 두 시간밖에 못 잤다. 다크서클이 굉장히 짙었지만, 오늘만은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
둘을 포함한 반 전체가 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벼락치기에 여념이 없을 때, 기어코 담임이 들어왔다.
“공부는 할 만큼 했겠지? 이제 자리 옮길 시간이다. 짝수 번호는 남아서 자리 옮기고, 홀수 번호는 이 학년 교실로 올라가.”
그에 아이들이 후다닥 가방에 책을 옮겼다. 상실을 포함한 반절은 교실에 남아 번호순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고, 지현이 포함된 나머지는 가방을 들고 이 학년 교실로 줄서서 나간다.
상실은 시험에 맞춰 자리를 찾아가자마자 책을 펼쳤다. 이제는 노트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달달 외울 정도였지만 봐야 했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 급격히 오른 성적표를 보며 엄마가 기뻐할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 정성은 당연하다.
잠깐 시간이 지나자 삼 학년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그들 역시 들어서자마자 자리를 찾아가 책을 꺼내 들기 바쁘다. 개중에는 오신영도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상실을 발견하고는 흠칫하더니, 혹시나 눈에 띌까 조용히 자리를 찾아간다. 상실은 이미 그를 발견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저런 것보다 한 줄이라도 더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교실의 내부는 일 학년 한 줄, 삼 학년 한 줄씩 번갈아가며 총 여섯 줄로 구성되었다. 모두가 커닝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꽤나 실효성 있는 방안이었지만 상실에게만은 효과가 없는 방도이기도 했다.
상대가 얼마나 떨어져 있건, 시야에 들어오거나 인지하기만 하면 대상의 그림자를 통해 손을 뻗을 수도, 볼 수도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커닝 따위 얼마든 가능하다. 다만 소년은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뒤로는 단 일 분의 수면시간도 갖지 않으며 학업에 몰두했다. 지현의 충고에 따라서 전체적인 수준을 끌어올렸고, 시험범위가 지정된 뒤부터는 해당 범위를 하루에도 몇 번씩 훑으며 암기했다.
대단히 지겨운 과정이었으나, 다른 것에 흥미를 느끼거나, 졸음이 오거나, 공복을 느끼는 등의 인간적인 욕구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그로선 먹이를 찾고, 엄마에게 할애하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나 시험범위 한정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다만, 단순 암기만으로 끝나지 않는 수학의 경우는 예외다. 이것만은 시간이 많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 또한 아예 자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책 집어넣어라.”
감독으로 들어온 교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종이 울린다. 그가 시험지를 나눠 줬다. 답안지 작성용 카드까지 나눠 준 그는 커닝하지 말라는 요지의 말을 남기고, 교실을 순찰했다.
시험지를 펼친 상실이 엷게 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