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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 1권(20화)
Chapter 09 이별(2)
탓!
시온은 그대로 벽까지 밀려가 부딪쳤다. 메이슨의 방금 공격은 그 호리호리한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다.
피비비비븃―!
그와 동시.
실내 모든 공간에 와이어가 쫙 깔리며 시온의 몸을 촘촘히 덮어 버렸다. 벽에 등을 기댄 자세 그대로 고립되어 버린 것이다.
메이슨이 말했다.
“보통 사람은 무구를 갖추고 있다 해도 거기서 한 발자국만 걸으면 산산조각이 납니다.”
“그럼 나는 어떨까?”
씩 웃은 시온이 사양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팽!
와이어가 당겨지며 그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시온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분명 와이어의 강도가 엄청나고 조이는 힘은 사람의 몸을 단숨에 분쇄해 버릴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시온의 몸을 보통 사람의 강도와 똑같이 해석한다는 것은 크나큰 오판이었다.
“……칫!”
와이어를 펼치기 위해 장소를 실내로 잡았는데 유효하게 먹히지 않자 메이슨이 이를 악물었다.
툭!
시온의 몸을 조이던 와이어가 끊어졌다. 동시에 그것을 연결해 유지하던 메이슨의 몸이 휘청거렸다.
“고작 이 정도인가?”
씩 웃은 시온이 메이슨을 향해 돌진했다.
중간을 가로막는 와이어들이 그의 속도를 늦추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메이슨은 당황하지 않고 팔을 저어 사방팔방으로 와이어를 쏘아 보냈다.
파파파팍!
와이어들이 석벽에 틀어박힌다.
시온의 신속에 가까운 뒤차기가 메이슨의 복부를 노렸을 때, 그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밟고 공중으로 치솟았다. 와이어를 지지대로 삼아 마치 밧줄타기를 하듯 떠오른 것이다.
시온이 기가 막힌 듯 중얼거렸다.
“눈 튀어나오겠군.”
별채의 천장은 거의 10미터에 달했는데, 메이슨은 거의 천장 끝까지 떠올라 거미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마치 서커스를 보는 것 같았다. 이론으론 가능하지만 실전에서 사용하기엔 거의 불가능한 기술이다.
파아아아앗!
천장을 박차고 메이슨이 떨어져 내린다. 가속도가 붙어 즉사할 수도 있는 높이지만, 와이어는 그의 속도를 착실하게 죽였다.
그와 함께 떨어져 내리는 와이어의 비.
수백 가닥의 미세한 와이어들이 쏟아져 내리며 시온이 서 있는 일대를 폭격했다.
파파파파파파!
시온은 와이어의 폭격을 몸으로 막아낼 생각을 버리고 빠르게 이곳저곳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단 한 가닥만 적중하여도 뒤이어 이격 삼격이 연이어 날아올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슈우우우…….
폭격으로 인해 자욱하게 일어났던 돌먼지가 가라앉으며 마주선 두 사내의 시선이 엉겼다.
시온이 말했다.
“그 기술. 기사에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군.”
“네, 맞습니다. 저는 용병이었어요.”
“악명 높은 용병이었겠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한창 전장을 누빌 땐 저를 사신이라고 부르는 놈들도 몇 있긴 했습니다.”
“사신 메이슨이라……. 근사한 이름이군.”
“과찬이십니다.”
“그런 자가 왜 남작가의 집사를 맡은 거지?”
“왕국 변방에서 소규모 접전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포르가스 왕국의 용병으로 참전했는데, 참군 기사단에 대패하여 포로가 됐었죠. 그런 절 살려서 고용해 주신 게 메이켄 남작님이십니다.”
“단지 그것뿐인가?”
“달리 뭐가 필요합니까?”
“아니, 됐다.”
시온은 고개를 저으며 씩 웃었다. 그가 메이켄에 충성을 바치는 이유는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에게 이해 못할 적의를 보이는 점. 그리고 미리엔을 바라보는 시선. 그런 것들로 알 수 있었다.
“벌써 끝인가?”
“갑니다!”
메이슨이 장갑 낀 손으로 와이어를 고쳐 잡았다.
데에엥―!
느슨하게 풀려 있던 와이어가 일순간에 팽팽해지며 거칠은 진동음을 냈다. 그것은 동시에 실내 이곳저곳에 펼쳐져 있던 와이어들에 연동하며 순식간에 대포알 터지는 것 같은 소리로 확장되었다.
“……큭!”
시온이 귀를 틀어막았다. 귓속에서 벌 떼가 우는 듯 간질간질하더니, 고막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소리의 진동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남들에 비해 청각이 월등히 뛰어난 시온에겐 큰 데미지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훗.”
유효적절하게 먹혀든 것을 안 메이슨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시온의 약점은 다름 아닌 지나치게 뛰어난 그의 오감. 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뎅!!
재차 쏘아져 오는 충격파!
표정이 일그러진 시온이 손가락을 세워 메이슨을 가리켰다.
핑!
의아한 메이슨의 면상에 오러의 탄환이 적중했다. 눈으로 보고도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그대로 미간 사이를 얻어맞은 메이슨의 고개가 덜컥 젖혀지더니,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즉사는 아니었다. 그저 정신을 잃은 것뿐이었다.
“나만 오러를 썼으니 이 싸움은 무승부로 해두겠다.”
시온이 옷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피차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었지만 메이슨은 확실히 카론의 정석적인 공격에 비해 무척이나 위협적이고 사이했다. 시온조차도 오러를 사용하지 않으면 당해낼 수 없을 정도인 것이다.
기절한 메이슨을 가만히 보던 시온이 발걸음을 돌렸다.
오후.
점심 식사를 마친 시온이 연무장을 찾았을 땐 기사들의 검술 훈련이 한창이었다. 자신이 온 줄도 모르고 훈련에 빠져 있는 그들을 시온은 벤치에 앉아서 한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챙채앵! 챵챵챵챵!
“하아앗!”
기사단장 카론은 부단장 오리온을 포함, 세 명의 기사를 단독으로 상대하고 있었다. 대련을 하는 듯 보였는데, 카론의 무지막지한 힘에 밀린 나머지 세 명이 맥을 못 추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하하. 왜 그래! 그것밖에 못하겠나!”
신이 나서 대련용 가검을 휘둘러대는 그의 모습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거침이 없었다.
영지전이라는 대사를 치른 직후이지만, 이런 때일수록 나태하여 무뎌지지 않도록 기사들을 더욱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카론이었다.
그가 시온의 존재를 깨달은 것은 세 명의 기사가 완전히 녹다운된 다음이었다.
카론이 말했다.
“어라. 언제 왔냐? 왔으면 기척이라도 좀 내지 그래.”
“방금 왔다.”
간단히 대답한 시온은 아주 살짝 숨을 몰아쉬고 있는 카론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몸 상태는 어때.”
“간신히 몸만 풀었지.”
“그럼 지쳐서 졌다는 변명은 안 하겠군.”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냐?”
“한판 붙어 보자.”
“기꺼이!”
카론은 시온이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기운 차게 대답했다. 시온은 껴입고 있던 외투를 벗고 우두둑우두둑, 가볍게 몸을 풀었다.
기사들은 카론 단장과 그를 꺾었던 시온의 리매치가 성사되자 웅성거리면서도 모두 물러나 공간을 만들었다. 느닷없이 벌어진 대련이기는 하나 본래 연무장에서 대련이란 늘 갑작스럽게 성사되기 마련이었다.
시온이 말했다.
“오러 블레이드 없이, 육탄전으로 가지.”
“흐흐. 그래 좋아. 모두 잘 봐둬라. 오늘 이 카론 님이 지난날의 오명을 씻고 말 테니까!”
카론은 자신감이 넘쳤다.
특별히 뭔가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건 그의 습성이었다. 강한 상대와 싸울 때 위축되지 않으려 과장된 필승의 의지를 드러내는 싸움꾼 특유의 습성.
시온은 카론의 그런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좋지. 하수선공이다. 와라.”
“그 넘치는 패기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카론은 가검을 곧추 세웠다.
시온은 맨손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를 파이터라고 알고 있는 카론은 맨손으로 맞붙었을 때 시온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부우웅!!
가검이 호선을 그리며 시온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시온은 손등으로 검의 옆면을 쳐 걷어내며 카론의 복부에 주먹을 먹였다.
하지만 카론은 오러를 전개한데다 흉갑까지 입고 있었다.
텅!
쇳덩어리를 때린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별다른 충격을 입지 않은 카론이 건틀릿 낀 손으로 시온의 뺨을 후려쳤다.
고개가 돌아가고 시온이 휘청거린 순간, 카론의 팔이 시온의 어깨를 잡았다.
“방심하면, 당한다고!”
빙글―
쿵!
그대로 시온의 시야가 상하로 반전되었다.
카론이 무지막지한 힘으로 찍어 눌러 그대로 시온의 머리를 땅에다 처박은 것이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목뼈가 부러질 수도 있는 공격이었지만, 시온은 머리를 한 번 흔들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
카론이 탄성을 질렀다.
“역시 굉장해. 자넨 정말 이기는 보람이 있는 친구야!”
“이기고 나서 말해라, 그런 건.”
시온이 이죽거렸다.
확실히 카론의 공격은 묵직했고, 직전의 공격은 안면이 얼얼해지는 공격이긴 하였다. 그러나 그의 육체는 그러한 통증에 반응하여 점점 더 단단해졌다.
“한 방 먹었으니, 한 방 돌려줄 차례군.”
시온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카론이 다시 검을 세우려는 순간, 시온이 만들어 낸 신형의 아지랑이가 그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카론이 시온의 모습을 놓쳤다.
“어, 어―?”
“너는, 느려.”
시온이 하단세로 카론의 무릎 뒤를 쓸어 찼다. 카론은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었다. 땅을 디딘 그의 코앞으로 시온의 뒤꿈치가 다가와 멈췄다. 돌려차기에 이은 번개 같은 회축(뒤후리기)이었다. 만약 시온이 멈추지 않았다면 카론의 뒤에 서 있던 기사들은 질펀한 뇌수를 뒤집어썼을 것이다.
카론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하얏!”
모두가 경직된 순간, 카론이 곰 같은 기합성과 함께 시온의 발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어느 쪽도 항복이라고 말하지 않았기에 대련은 진행 중인 것이었으나, 설마 급습을 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시온이 무게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카론은 그대로 시온의 발을 잡고 멀리 벽을 향해 던져 버렸다. 치사하지만 분명 위력적인 한 수였다.
“…….”
시온은 공중에서 한 바퀴 몸을 굴려 그대로 벽을 밟았다. 그것을 지지대로 삼아 용수철처럼 튕긴 시온이 튕겨 나가며 카론의 안면을 향해 정권을 내질렀다.
이에 카론도 지지 않고 맞받았다.
뻐어어어어억!!
주먹과 주먹이 맞부딪치며 가죽부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충돌 직후 서로를 밀치며 훌쩍 물러난 두 사람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카론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불가사의한 힘이야.”
“너도 만만치 않다. 내가 아는 인간들 중 가장 힘센 사람이 바로 너다.”
“그런가? 그거 영광이군.”
씩 웃은 카론은 그대로 팔을 늘어뜨렸다.
늘어진 팔이 힘없이 덜렁거렸다. 뼈가 부러진 것이다.
반면 시온은 살짝 주먹이 욱신거릴 뿐 나머지는 멀쩡했다. 싸움의 승패는 그것으로 명명백백해졌다. 기사들이 포션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싸움에는 졌지만 카론은 활기차게 말했다.
“잠깐이면 되니까 좀 기다려 주겠어? 치료를 마치고 차라도 한 잔 하자.”
“그러지.”
고개를 끄덕인 시온이 벗어 던진 옷을 주워 걸치고 벤치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