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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린 1(22화)
8. 주노 자작과의 영지전(5)
이튿날 제라린은 앨버트와 안토니에게 상비군 300명과 징집병 전체를 데리고 영지로 복귀를 명했다.
그리고 영지에 도착 즉시 징집병들은 바로 해체를 해서 연기되었던 축제 준비를 하도록 시켰다.
그리고는 나머지 기사들과 기병들 그리고 상비군 100명을 이끌고 주노 영주성으로 향했다.
물론 포로가 된 주노 자작과 그의 기사들도 무장을 해제한 채로 제라린군의 감시를 받으면서 같이 이동했다.
약 이틀이 걸려서 도착한 주노 영주성.
주노 영주성은 글라토스 영주성과 규모가 비슷한 돌로 만들어진 영주성이었다.
게다가 중간 중간 나무로 만들어진 방책이 보강되어 있는 요새 같은 영주성이었다.
그런 영주성을 보면서 제라린은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주노 자작을 붙잡아서 공성전을 하지 않아서 무척 다행이었다. 여기를 함락시킬려면 피해가 컸을 것이야.’
주노 영지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주노 영주성에서 걸어서 이틀을 남쪽으로 내려가면 바닷가가 있고 작은 어촌 서너 개가 있어 어업에 종사하는 영지민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지민들은 기존의 제라린의 영지민들과 같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음… 여기에도 제대로 된 항구가 없군. 역시나 아센 강 하구에 있는 라르고 백작의 라르고 시티같은 항구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군. 영지가 발전하려면 거기를 장악해야 하는데…….’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하던 제라린은 곧 영지 현황을 파악했다.
영지민은 대략 십일만 명이었고, 추수를 막 끝낸 시점이어서 창고가 무척 풍성했다. 세금을 막 거둔 시점이어서 금고에도 이천오백 골드가량의 금화가 쌓여 있었다.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제라린은 우선 주노 자작에 대한 처리부터 먼저 했다.
주노 자작과 그를 따르기를 원하는 기사들, 그리고 종자들 중 현재 살아남은 기사들의 자식들은 물론 제라린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기사들의 자식들도 모두 주노 자작과 같이 보내 버렸다.
주노 자작은 그들은 이끌고 중부로 향했다.
그리고 55%의 세율을 50%로 낮추어서 영지민들이 자신의 지배를 환영하게 만들었고 자신이 명한 축제를 주노 영지에서도 같이 즐기도록 명했다.
이런 제반 행정 조치를 마친 제라린은 바로 전투에 대한 사후 처리를 시작했다.
먼저 자신이 이끌던 기사단, 기병대, 중장보병대 중에 전사자와 부상자들에게 충분한 돈을 내려서 위로하고 주노 자작의 상비군 중에서도 전사자에 한해서 약간의 위로금을 내렸다.
그리고 살아남은 약 700여 명의 주노의 상비군 중에서 젊고 강한 200명만을 가려 뽑고는 나머지는 전원 방위군의 주력으로 돌렸다.
이들 방위군은 약간의 기간병과 함께 주로 징집병으로 영지의 방어를 담당하는 게 제라린의 계획이었다.
징집병들은 보통의 영지민들로 열흘에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방위군에게 훈련을 받고 영지의 보초를 서게 되었다.
징집병은 당연히 무보수였고 방위군의 주력으로 돌려진 상비군들은 예전과 같이 1실버 50쿠퍼의 임금을 받았다.
제라린의 정예 상비군으로 뽑힌 200명은 다른 상비군 병사와 같이 2실버 50쿠퍼를 받게 되어서 무척이나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사후 처리를 마친 제라린은 병력을 이끌고 글라토스 영주성으로 향했다.
영지 곳곳에 영지전으로 중지되었던 축제를 준비하는 활기찬 기운이 느껴졌다.
9. 인재 영입의 시작(1)
글라토스 영주성에 도착한 제라린을 맞이한 건 의외의 인물들로 약 30명가량의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떠버리 홉킨스’ 일행에 대한 제라린 대우를 소문으로 듣고 자신들도 그런 부수입을 얻기 위해서 모여든 인물들이었다.
오자마자 그들의 접견 신청을 듣고 그들을 업무실로 불러서 얘기를 듣던 제라린이 내심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이것들이 정말 미쳤나? 저런 말도 안 되는걸 떠들면서 나한테 인정을 받기를 원하다니… 휴, 아무래도 저번에 그 홉킨스, 파라무센, 디라일르를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나? 평판이 떨어지더라고 그냥 두들겨 패서 보냈어야 했나? 괜히 그때 하사한 돈이 아깝군.’
제라린이 아까운 돈 때문에 내심 이빨을 갈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고풍스러운 옷을 입고 멋진 턱수염을 기른 학자들이 모두들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하하하, 영주님. 저번에 여기를 방문했던 홉킨스 학자도 뛰어난 학자이지만 여기 계신 루아노 학자님이야말로 정말 뛰어난 대학자이십니다. 이분께서는 천체 관측뿐만 아니라 우리 마이센 대륙의 기원도 밝혀내신 분입니다.”
한 학자의 칭찬을 받은 루아노란 자가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영주님. 우리의 세계는 바로 물과 불로 이루어져 있지요. 이런 물과 불이 우리 사람과 이 세상을 이루는 최소 단위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주님. 루아노 대학자님은 이런 원리를 수학적으로 풀어내신 분입니다.”
사실 루아노는 수학적으로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고 또 그가 세상에 발표한 수학도 너무 자기중심적인 수식으로 되어 있어서 아직 학자들의 세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영주들이 그러듯이 제라린도 그들이 증명했다는 수학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에 대해서 단지 경탄만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말을 듣던 제라린은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세상의 기원이 물과 불로 되어 있다고? 그리고 그걸 수학적으로 증명했다고? 참나 어이가 없군. 수학식을 한 번 보자고 그래 볼까? 아무리 내가 교육을 못 받았어도 이들보다는 수학 실력이 더 뛰어날 거 같은데… 아니다. 그래도 자기가 바로 자기를 칭찬하지는 않고 남을 칭찬하면서 서로 추켜세우는군. 그나마 양심이 있는 놈들이라고 칭찬을 해 줄까? 아니면 전부 다 끌어내어서 목을 쳐 버릴까?’
그렇게 부글부글 끓는 속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는 제라린에게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두 명의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다른 학자들처럼 떠들지 않고 조용히 제라린을 관찰하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각각 아폴로와 루이스라는 이름을 가진 30대 후반의 학자들이었다. 평민 출신들로 어렸을 적부터 똑똑했기에 주변의 학식 있는 사람에게서 읽기, 쓰기, 숫자 공부를 했고 마침내는 왕국의 수도에 있는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했었다.
그리고 비록 배경이 없었기에 왕국이나 대귀족에게 등용되지는 못했지만 조그마한 귀족 영지에서 문관으로 활약했었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각자의 영지에서 세금과 제도를 개선하던 중 그들로 인해서 수입이 줄어든 다른 문관들로부터 핍박을 받다가 끝내는 그들의 자리에서 쫓겨났었다.
그들은 몸을 피한 후 수도에서 장사를 하면서 홀로 공부를 하던 중 제라린에 대한 소문을 듣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다른 학자들을 따라 이곳에 왔던 것이다.
그들이 서로에게 눈빛을 보내면서 작은 목소리로 서로 대화를 했다.
“음… 떠버리 홉킨스에게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킬 방법을 물었다는 말에 혹시나 해서 와 봤는데… 저 영주도 머저리 같군.”
“잠시만 조용히 해 보게. 아직까지 영주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고 그냥 듣기만 하고 있잖은가?”
“하지만 벌써 저들의 허황된 말에 반쯤 넘어간 거 같아 보여.”
“쉿! 들리겠네. 이 사람아. 조금 있으면 저 영주가 뭐라고 말이라도 하겠지.”
가만히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두 인물에게 흥미가 생긴 제라린은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던 생각을 바꾸어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학자들 전체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전에 홉킨스 학자에게도 질문을 했다가 그에게서 좋은 답변을 받았던 게 있소… 혹시 이 중에 본 영지의 농업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갖가지 대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영주님. 주신께서 내리신 영지의 농산물을 일정합니다. 따라서 생산량을 더 늘리기보다는 세금을 더 거두어서 영주님의 재산을 더 늘리는 것이 타당합니다.”
“농업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땅을 더 개간하면 됩니다. 요즘 산에 화전민이라는 집단이 많이 있는데, 영주님의 주민 중 일부를 산으로 보내서 개간을 시키고 그들로부터 세금을 더 받으시면 됩니다.”
…….
보통의 영주들이 좋아할 세금을 높이는 방법부터 영지민을 산으로 떠밀어 넣고 그 수확을 취하라는 방법까지 정말 다양한 방법들이 학자들로부터 나왔다.
제라린은 끝까지 참고 그들의 말을 듣다가 전부 한두 마디씩 대답을 한 학자들 조용해지자 마침내 뒤쪽에 앉은 아폴로와 루이스를 보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농업생산량에 대해서 답변을 했는데, 거기 계신 두 분은 왜 아무 말이 없소? 어떤 방안을 가지고 계시오?”
제라린의 질문에 마침내 밝은 갈색의 곱슬머리를 가진 아폴로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까지는 학자들에게 휘둘리는 제라린의 태도에 실망을 했던 그였으나 한 번 입을 열기 시작하자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자세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제라린은 그의 이상을 실현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지금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삼포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즉 땅을 세 군데로 나누어서 2/3의 땅에는 밀이나 호밀 등을 심어서 기르고 나머지 1/3의 땅은 지력의 회복을 위해서 그냥 놀립니다. 이러한 지금의 방식을 개선하여 전체의 토지에 농사를 짓도록 해야 합니다. 그 궁극적인 방법으로는 각 땅에 귀리, 보리, 콩과 같은 작물들을 번갈아 재배해야 합니다. 이들 작물들은 땅의 지력을 크게 향상시켜 줄 수 있는 작물이어서 지력 회복에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지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대대적으로 두엄을 만들어서 보급을 해야 합니다.”
그가 여기까지 말하자 주위에 있던 학자들의 비웃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두엄?”
“두엄이 뭔가요?”
“두엄? 음… 내가 나중에 말해 주리다.”
“허… 두엄이라니… 그 냄새나는 두엄을…….”
“하하, 앞으로는 밥 못 먹겠군. 밥 먹을 때마다 그 냄새나는 게 생각날 테니…….”
“아니 저자가…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 알고 감히 저렇게 경망된 말을 하다니…….”
학자들은 두엄이 뭔지 몰라서 옆에 묻는 자부터 시작해서, 평소에 아폴로가 주장하는 두엄에 대해서 아는 자들은 그를 힐난하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여 줬다.
제라린은 손을 뻗어서 웅성거리는 학자들을 조용시키면서 물었다.
“두엄이란 게 무엇이오?”
이제까지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아폴로가 목소리에 어느 정도 힘이 빠진 채로 대답했다.
“두엄은 짚에다가 인분과 짐승의 분뇨 등을 잘 섞어서 완전 발효를 시켜서 만드는데 농지의 지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력을 높이기 위해서 생초분, 구비분, 잠사분 등을 사용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아폴로가 제라린의 안색을 살폈다.
농업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 하여 많은 영주들을 어렵게 만나 봤지만 그들은 여기까지만 듣고는 안색을 찌푸리면서 그를 내쫓거나 그의 말을 무시했기에 혹시나 제라린도 그러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다.
여기서 농민들은 인분이나 짐승의 분뇨 등을 밭에 뿌리면 그 부분의 생산량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아폴로가 말한 두엄처럼 그것들을 모아서 발효 부식을 시키는 방법은 아직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