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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문 1권(8화)
3. 천심법(天心法)(2)


“후우, 후우…….”
바람이 불어온다.
천심법에는 혈도나 혈맥과 같은 개념이 없었다.
그저 자연이다.
어릴 적부터 선식을 강요당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일식과 조식 때 해와 달을 마주했던 정현의 몸은 그야말로 자연체였다.
그 때문에 세상의 누구보다 자연의 기운을 가장 잘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휘이잉!
정현의 귓가로 환상과도 같은 바람 소리가 스쳤다.
감각을 확장하고 주위로 영역을 넓혔다.
단순히 불어오는 바람이 아닌, 그것이 품고 있는 기운이 사방에서 몰려들며 정현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아우성을 쳤다.
바람은 개구쟁이였다.
전 세계를 좁다 하고 사방팔방 돌아다니다가 자신들을 몸속으로 부르는 작은 존재를 접하며 흥미가 돋아 그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것은 무서운 함정!
천심법의 주술적인 요소를 담은 진언(眞言)은 막강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었다.
자유로운 바람일지라도 일단 근처로 오게 되면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무시무시한 그물!
주위를 맴돌던 바람의 기운은 모조리 정현의 몸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단…… 단을 만들어야 한다.’
천심법을 수련하면서 처음으로 그전까지의 성취와 구분이 되는 단계.
바로 몸속에 기운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무협소설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영물이 체내에 지니고 있는 내단과 비슷한 개념이었는데, 정현은 천심법을 통해서 이것을 하나도 아닌 다수를 만들려고 하였다.
‘어릴 때부터 수련해 왔던 자연의 기운을 바람의 속성을 입혀 단으로 녹여내야 한다.’
정현은 어렸을 때부터 제천문의 무공을 수련해 왔다.
그렇기에 꽤나 많은 양의 기운을 몸속에 지녔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천심법의 특성이 있기에 다시 기운을 모을 필요도 없이 기존의 것을 이용하여 바람의 단을 이루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성공적인 시도였다.
우웅, 우우웅!
머릿속에서 기묘한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골이 울리고 흔들린다는 차원을 넘어선, 좀 더 고차원적인……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등골이 오싹해지고 전신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한 감각이었다.
몸속에 존재하였던 모든 기운들이 주변에서 흡수되는 바람의 기운을 접하자 환호하며 아우성을 쳤다.
그런 두 가지 기운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정현은 끝없이 집중하며 속으로는 천심법의 진언(眞言)을 외웠다.
“후읍, 하아…… 후읍, 하아…….”
들숨과 날숨이 교차되고 주위에 휘몰아치는 기운이 점점 강력하게 변해 갔다.
마치 정현의 몸을 중심으로 작은 태풍이 일어난 것 같았다.
평범한 사람들은 볼 수 없겠지만, 그 중앙인 태풍의 눈에서 정현은 원래의 기운에 조금씩 바람의 특성을 입히고 있었다.
‘천천히…… 난폭하게 하지 마라.’
촤악.
서걱!
‘큭!’
바람의 기운은 통제받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기에 정현의 의지를 거부하며 난폭한 야생마처럼 날뛰었다.
몸속을 미친 듯이 헤집고 다니며 가끔은 기운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현실에 실체화하여 정현의 겉피부에 베인 것 같은 따끔한 상처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집중, 집중하자.’
천심법은 기운을 모으는 효율성 외에도 보기 드물 정도로 뛰어난 안정성마저 갖추었다.
하지만 자연의 기운이라는 것이 워낙 난해하고 통제가 어려운 것이어서 가끔은 외부에서뿐만이 아니라 이미 몸 내부로 합류한 기운도 날뛰려고 하여 정현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다른 무공과는 비교를 거부한다.’
여타의 무공들은 순전히 자연의 기운에서 힘만을 추려서 모으는 방식이다.
그 기운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나 특징 같은 것은 모두 배제하고 힘 자체만을 모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바로 기(氣)라는 단어로 표현하는데, 다른 말로는 내공이라고도 불렸다.
불, 물, 바람 등 수많은 자연의 기운이 가진 특징을 무시하고 오직 힘만을 정제하는데, 이럴 경우 놀라울 정도로 기운의 통제가 쉬워지고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의 힘을 이용하려고 하는데, 그가 난폭하고 거친 성품을 가졌다면 당연히 다루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그가 힘만 가졌고 머릿속이 백지와 같은 상태라면 이용하기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러한 이치인 것이다.
위험하고 힘든 과정이지만 단을 이룬 천심법의 위력은 자연의 기운, 그 자체를 순수하게 담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강하다.
구구구궁!
바람의 규모가 점점 작게 압축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정현이 받고 있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비 오듯 흘러내리는 식은땀과 입술이 찢어져라 꽉 깨문 치아는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이려는 행동이었다.
‘반드시 성공한다!’
정현은 평범한 삶을 살고자 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천심법’만은 예외였다.
아버지의 마지막 숙원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정현은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인내하고 감수해 낼 수 있었다.
입으로는 계속해서 천심법의 주술이라 할 수 있는 진언을 내뱉으며 머릿속으로는 몸 내부의 구조를 그렸다.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는 바람의 기운은 일정한 경로를 타고 몸 내부를 질주하고 있었다.
최종적인 목표는 그것을 한 지점에 고정시켜서 하나의 원으로 뭉치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난이도.
정현은 기존부터 가지고 있던 기운을 이용하여 꼼꼼하게 그물을 쳤다.
바람의 기운은 그러한 저항에 부딪칠 때마다 조금씩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동시에 막대한 고통과 충격이 전달되어서 몸이 연신 부들부들 떨려 왔다.
‘정신 차려!’
그럴 때마다 정현은 아득해지는 정신의 끈을 붙잡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아무리 어렵고 험한 길이라고 해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천심법은 정현에게 있어서 남은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콰과과과!
바람이 난폭하게 몸 내부를 난도질했다.
하지만 곧 기존의 기운으로 그것을 최대한 억제하며 모든 것을 한곳으로 이끌었다.
정현은 숙련된 투우사였다.
바람을 흥분시키고 유인하며 끝에 가서는 무엇보다 날카로운 비수를 감추고 있었다.
승부는 한순간이었다.
목덜미에 치밀하게 갈아 온 회심의 공격을 꽂아 넣을 수 있을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할 미지수였다.
‘바로 지금!’
아랫배가 있는 위치에 정현은 기존의 기운으로 다섯 면이 가로막힌 네모난 형태를 만들었다.
오직 바람의 기운이 들어올 한쪽 면만을 열어 놓은 상태로.
콰과과과!
실제로는 들리지 않지만 정현의 머릿속을 꿰뚫는 소리였다.
미친 듯이 질주하던 바람의 기운이 정현이 만들어 놓은 함정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고는 부딪쳤다.
쿵!
“컥!”
엄청난 충격이었다.
정현은 혼미해져 가는 의식을 겨우 붙잡아 내며 더욱 정신을 집중했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통제에서 벗어난 바람의 기운은 정현의 몸을 난도질하며 주변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러면 막대한 부상은 둘째 치더라도 이미 바람의 기운과 동화(同化)가 어느 정도 진행된 기존의 기운들도 허공으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해!’
다시금 의지를 불태웠다.
지금의 한순간을 위해서 막대한 고통을 감내하며 바람의 기운이 몸 내부를 맘껏 휘젓고 다니도록 방치한 것이 아닌가.
다행히 효과가 있는지, 바람의 기운은 지쳐서 그 세가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콰과과과!
자신이 들어온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 막혀 있는 면을 뚫어 내려는 바람의 기운이었다.
그 난폭함과 위력에 정현의 인상은 점점 굳어져 갔다.
‘참자, 참자. 조금만 더…….’
인내심의 한계가 올 무렵, 정현은 만들어진 함정으로 유입되는 바람의 기운이 점점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이제 잠시 뒤가 되면 역풍(逆風)으로 변할 것이다.
뚫어 낼 수 없는 벽을 만난 바람이 뒤로 후퇴하려는 바로 그 순간!
‘지금이다!’
우웅!
정현은 지금까지 아껴 왔던 모든 기운을 투입하였다.
전력을 다한 공세!
순간, 한 면만이 열려 있던 함정은 모든 방향이 닫힌 육면체의 사각형이 되었고, 바람의 기운은 그 안에 갇혀 버렸다.
휘이이잉!
미친 듯이 날뛰는 바람의 기운.
생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감히 자신을 가두려 하느냐는 듯 바람은 정현의 기운에 감싸여서 사방팔방으로 부딪쳐 왔다.
“후읍, 하아…… 후읍, 하아…….”
들숨과 날숨을 반복했다.
그렇게 정현은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끝이 난 것 같지만 아직도 중요한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웅, 우웅!
얼마나 날뛰었을까.
바람이 움직이던 속도가 점점 둔화되고 있었다.
그러자 정현이 다시 한 번 기운을 운용했다.
‘이제 마지막 과정!’
필사적으로 천심법의 진언을 외웠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진언(眞言)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그 무엇이 있어서 자연의 기운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바람의 장(章).

동화(同化)라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 닮아져서 결국에는 같게 된다는 것이다.
바람과 같아진다면 그것의 특징과 힘, 모양새, 근원적인 기운마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의 기운, 그것을 얻는 것이 바로 첫 번째 장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