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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문 1권(20화)
7. 대화(1)


아름에게 정현이란 정말 특이하고도 괴상한 녀석이라 정의 내릴 수 있었다.
뭔가 청학동에서 살다가 온 것 같은 어리바리하거나 미숙한 모습도 보이고, 주위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많이 어색했다.
그러면서도 사람 열 받게 하는 짓은 정말 잘한다.
‘아우! 생각하니까 또 화나네.’
그러고 보면 한 달 조금 남짓한데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고 느끼는 아름이었다.
그중 백미는 역시 첫날 벌어진 싸움!
‘설마 기까지 사용했는데 패배할 줄은…… 역시 녀석도 기를 다룰 수 있는 것이겠지.’
아름이 기를 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하게 익혀 왔던 가전의 무학(武學).
영진의 재능을 물려받아 성취가 뛰어났던 아름은 결국 노력을 바탕으로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연과 소통하여 기(氣)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 느낀 만족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의 소중한 기억이요, 경험이었다.
‘역시 세상을 넓어. 고대무술협회 소속도 아닌데 그런 어린나이에 굉장한 성취를…….’
당시만 해도 아름은 정현에게 약간의 호감을 지니고 있었다.
무(武)를 동경하는 아름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동갑내기에 자신보다 강한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러나…….

“서로 되도록 아는 척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분노였다.
믿음에 대한 크나큰 배신이랄까?
조금씩 생기고 있던 호감도가 한순간 폭락한 주가처럼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그 뒤로도 가끔 한 번씩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화를 솟구치게 했다.
그렇기에 아름은 대놓고 정현을 무시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골목길이었다.
뒤쪽에는 하연이 연신 칭얼거리면서 ‘어떻게 해’를 연발했다.
그리고 눈앞에는 건장한 체격에 험상궂은 인상을 한 제일고등학교의 일진 나부랭이들이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너머에는…….
“그럼 꿇어.”
“뭐?”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 싸늘한 표정이 그곳에 있었다.
‘뭐야, 저런 모습은…….’
정말 양파같이 껍질을 벗길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녀석이었다.

***

정현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이건…….’
그것은 논리적이지 못한 표현이지만, 익숙하면서도 낯선 종류의 것이었다.
날이 선 듯한 긴장감, 그리고 무거운 제약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해방시킬 때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
“너, 너 이 자식!”
“가만두지 않겠어.”
잔뜩 흥분한 일진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하지만 정현에게 있어서 여름철 앵앵거리는 모기들의 날갯짓보다 가치가 없는 목소리들이었다.
퍼억!
“크어…….”
정현에게는 아름이 가지고 있는 머뭇거림이나 거리낌이 없었다.
달려드는 선두의 녀석은 최초의 일격으로 복부를 잡고 고꾸라졌다.
“뭐, 뭐야?”
“이 새끼 주먹에 무슨 장치라도 한 거야?”
처음 등장 때 한 명, 그리고 방금 한 명.
순식간에 둘이나 당하자 남은 셋은 당혹감에 휩싸여서 소리쳤다.
그들의 상식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상대는 같은 고등학생이었다.
격투기 세계 챔피언이라든가 하는 거창한 수식어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만화 같은 일이란 말인가.
딱 두 번의 주먹질로 건장한 체격의 남학생 둘이 전투 불능 상태가 된 것이다.
“하, 한 번에 덮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제일고등학교 일진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죽엇!”
“으아아아!”
남은 셋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등 뒤와 좌우 대각을 점하는 효과적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정현에게는 조금의 위협도 되지 못했다.
‘느껴진다.’
바람의 단에서 흘러나온 기운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것은 정현에게 있어서 제3의 눈이나 다름이 없었다.
실제의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은 선명함은 없지만 주위의 공간을 점하고 있어서 상대방이 그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정현에게 인식이 되었다.
휘익!
“헛!”
정확한 타이밍에 몸을 돌리는 정현.
뒤에서 기습을 해 온 일진의 놀란 표정이 순간 클로즈업되었다.
퍼억!
“컥!”
복부를 꿰뚫어 버릴 듯한 강렬한 일격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상대방과 자리를 바꿨다.
퍼억, 퍽!
“크윽!”
“헛! 미, 미안.”
“이 새끼가!”
순간적으로 자리가 바뀌어서 친구를 때리고 만 두 일진의 표정에서 당황함이 엿보였다.
그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현의 옆차기가 그대로 좌측에 있던 일진의 복부를 가격했다.
퍼엉!
“크억!”
풍선이 터지는 것 같은 소음이었다.
충격으로 인해 뒤로 넘어지며 두 바퀴를 굴러 버린 일진의 모습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으, 으으…….”
마지막 남은 일진의 표정은 두려움과 절망으로 가득했다.
다섯이나 있었는데 순식간에 혼자만 남은 것이다.
항상 집단을 이루던 습관의 인간이 홀로 남게 되면 의외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미, 미안해. 돈 다 돌려줄게. 그만……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
“…….”
“다시는…… 다시는 이쪽에는 얼씬도 안 할게. 응? 한 번만 봐주라. 진짜야.”
일진의 눈에 비친 정현은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아무런 대꾸도 없이 싸늘한 시선만을 보내자 지레 겁을 먹고 주머니에 있던 금전들을 주섬주섬 다 꺼내놓았다.
“이게 전부야. 저 녀석들 것도 다 줄게.”
“그것으로 네 죗값이 다 치러졌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강자의 입장에서 으스대며 타인을 괴롭히던 녀석이 입장이 바뀌자마자 겁먹은 개처럼 꼬리를 내리는 꼴이 우스웠다.
그 모습을 보며 기분이 불쾌해진 정현의 주먹에는 앞서보다 좀 더 강한 힘이 들어갔다.
터억!
“……그만해.”
“히익!”
정현의 주먹이 눈앞에서 잡혀 부르르 떨고 있었다.
눈 깜빡하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주먹을 인식하고 다리가 풀려 버린 일진은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
“이 정도면 끝났잖아. 정당방위도 필요 이상이면 죄가 된다고.”
정현의 주먹을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아름이었다.
혹시나 해서 힐끔 뒤를 돌아봤더니, 잡혀왔던 명성고등학교 남학생은 이미 내뺀 상태였다.
그렇기에 아름이 나설 수 있던 것이라 짐작되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할 이유가 있나?’
그런 의문은 잠시였다.
일단은 현재 상황을 종료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알았으니, 좀 놓아줄래?”
“뭐?”
“손 좀 놓아달라고.”
“……!”
과도한 폭력을 막자는 생각에 덥썩 잡았다가 의식하고 나니 부끄러움에 홱 손을 뿌리치듯 놓는 아름이었다.
“으으…….”
아름이 새침한 표정으로 돌아서자 다시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덜덜 떨고 있는 제일고등학교 일진이었다.
“가 봐.”
“……?”
“마음 바뀌기 전에 사라져.”
“아, 알았어.”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 일진이 주위를 돌며 친구들을 일으켜 깨우더니 서로서로 부축해 가며 이내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난감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