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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문 1권(23화)
7. 대화(4)
“아무튼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층 인사들의 도움이 있으니, 그들 범죄자들이 쉽게 입을 놀려도 정보가 퍼지기는 힘들 테지. 각 언론사들은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까. 더불어서 몇몇 언론사들은 우리 협회에서 직접 운영하기도 하고.”
“하, 정말 대단한 협회군요.”
“왜? 당장에라도 가입하고 싶나?”
“그건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싱겁기는.”
현대의 사회에서 언론이란 그야말로 막강한 위력을 가진다.
그들이 힘을 모아 사실이라고 이야기하면 거짓도 사실이 되는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말은 안 했지만, 정현은 고대무술협회와 관계가 있는 것이 언론사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토록 철두철미하고 힘이 있는 단체라면 그 정도로 그치는 것이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그럼 이제 마지막 남은 세 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군.”
“긴장되는군요. 전의 아홉 명이 범죄자들이라면 그다음에 이야기하는 세 명의 정체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왠지 조금 머뭇거리는 영진의 모양새가, 그들 세 명에 대해서는 입에 담는 것도 꺼려하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불길하고 거부감이 드는 세 명의 존재.
“남은 세 명의 위험도는 앞의 아홉 명과는 비교를 할 수 없지. 그들이 절도나 폭행, 강도 등을 저지르는 단순한 범죄자들이라면 남은 세 명은 음모를 획책하는 자들이야. 질이 나쁜 것으로 따지면 몇 배는 더 나쁘지.”
“그렇게 인식되는 자들이라면 고대무술협회에서 많은 제제가 있었겠군요.”
“큭! 그들 중 첫 번째가 바로 조광현이라는 놈이지. 벌써 15년이나 지났나? 그놈은 살인광이자 무(武)에 미쳐 버린 광인이다. 고대무술협회에서는 매년 친목의 일환으로 무술 대회를 연다. 그런데 그놈은 단순한 대련에서 상대 선수를 살해한 것은 물론이고, 협회 사람을 추가로 다섯이나 죽였지.”
“무공이 대단한가 봅니다?”
“확실히 무공은 대단하지. 15년 전에도 고대무술협회 안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혔으니까.”
영진의 얼굴이 조금 아련하게 변했다.
마치 15년 전의 사건을 추억하듯.
하지만 이내 정색을 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흠흠, 두 번째는 정회찬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인데, 이놈은 앞선 조광현보다 더욱 위험하다고 할 수 있지.”
“어떤 이유에서 위험합니까?”
“조광현이 홀로 행동하고 오직 살인과 무공을 위해서 움직이는 전형적인 무인이라면, 정회찬은 사상가다.”
“사상가?”
“그래, 몽상가라고도 할 수 있지.”
얼핏 들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뜬금없이 무공을 수련하는 무인에게 사상가는 무엇이고, 몽상가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정회찬, 그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무인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지.”
“네?”
정현은 무척이나 놀랐다.
내공을 다룰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해 봐야 고대무술협회의 통계를 신뢰한다면 고작 50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 소수의 인원으로 5천만에 달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어떻게 지배한다는 말인가.
“한때는 고대무술협회의 소속된 인원의 30% 정도가 그의 말에 현혹되어 국가 전복을 생각했을 정도로 무서운 달변가이자 상당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라는 소리가 있더군. 만약 10년 전의 만월봉 사건으로 인해 그의 가면이 벗겨지지 않았더라면 정말 이 나라의 역사와 고대무술협회의 운명에 큰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지.”
10년 전에 벌어진 만월봉 사건은 고대무술협회를 비롯하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능력자들에게는 무척이나 유명한 일이었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지. 그렇게 학식 있고 명망 있는 인사로 보였던 자가 사실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악마였다는 것은.”
“그자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겁니까?”
조광현이란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그저 담담한 느낌으로 내뱉던 분노였다면, 이번에는 그야말로 활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회찬이 저지른 죄악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놈은 인체 실험을 했지. 그가 주장했던 능력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평범한 사람에게 강제로 기를 주입시켜 각성을 시키려고 한 것이야.”
“…….”
영진이 흥분한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유였다.
인체 실험이라니.
정말이지, 같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었다.
“만월봉에 위치한 정회찬의 비밀 기지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라졌는지는 정확히 집계가 되질 않아. 후, 정말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지.”
“동감입니다. 그나저나 사건이 벌어진 지 벌써 10년이나 지났는데, 종적은 찾은 겁니까?”
정회찬과 같은 인간이 편하게 세상을 산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왕이면 좋은 답변을 기대하는 정현에게 영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보통 영악한 놈이 아니어서 만월봉의 비밀 기지가 들통 나자마자 자취를 감추었지. 그러고는 벌써 10년째 오리무중이야. 협회에서는 놈이 해외로 도주했다고 짐작하고 있지. 만약 국내에 있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찾지 못했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군요.”
그런 악인이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더불어서 점점 강도가 심해지고 있는 탓에 마지막 세 번째 인물은 얼마나 극악하고 어마어마한 존재일지 살짝 걱정이 되는 정현이었다.
“마지막은 좀 특이한 케이스라서…… 흠, 일단 이름은 린차오후이. 한국명으로는 서소원이라는 이름을 가졌지.”
“중국인입니까?”
“부친은 한국인이고 모친이 중국인이니까, 우리나라 사람이긴 하지. 이 여자는 앞선 둘보다 죄질이 나쁘지는 않지만 무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더한 죄를 지은 자이기도 하니, 어떻게 보면 가장 최악이라고 할 수 있겠군.”
“무인의 입장에서 살인보다 더한 죄라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정현과 시선을 마주친 영진이 짐작하고 있는 것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대담하게도 그녀는 고대무술협회의 비고에 보관된 무공 서적들을 노렸지. 무인에게 무공이란 목숨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 게다가 서소원은 그러한 무공들을 중국으로 빼돌리려고 했으니, 협회의 입장에서는 앞선 둘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배신자라 규정하고 있지.”
“그럴 만하겠네요.”
무인에게 무공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천심법을 빼앗고자 한다면 그전에 정현의 시체를 넘어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만성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가 언제 이야기가 넘어갔는지 원.”
“궁금증은 충분히 해소했으니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죠. 무공의 특성에 대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래, 어디 한 번 밤새 토론을 해 보지. 껄껄!”
호탕하게 웃는 영진의 모습은 무(武)를 사랑하는 무인, 그 자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정현의 입가에도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드륵!
그 순간, 입구 쪽에서 울리는 작은 소음.
“……?”
두 남자의 시선을 받으며 문틈으로 살짝 고개를 내민 것은 바로 아름이었다.
“밤을 샌다면 야식이 빠져서는 안 되겠죠? 아빠가 시장하실까 봐 야식을 챙겨 왔어요.”
“오오, 역시 우리 공주님밖에 없구먼.”
누가 딸 바보 아니랄까 봐 조금 전까지의 진지한 표정이 아닌 만면에 웃음꽃이 한가득인 영진이었다.
“자, 이것도 직접 만들었으니 맛있게 드세요.”
“…….”
순간, 영진의 얼굴에서 미소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름은 처음으로 시도한 요리들이 매우 호평을 받았다는 생각에 들떠서 지극정성으로 만든 야식을 하나둘씩 도장의 바닥에 꺼내 놓았다.
그 양이 결코 만만치가 않아서 영진의 얼굴은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만 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떠오른 묘안.
“크흠! 무척 먹고 싶지만 신성한 도장 안에서 음식을 먹을 수야 없는 노릇이지. 아쉽지만 다음에 먹자꾸나.”
하지만 아름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제가 깨끗하게 뒷정리까지 할 테니 걱정 말고 드세요.”
“아, 아니, 그러니까, 다음에…….”
영진이 자꾸 머뭇거리자 아름이 직접 음식을 들어서 내밀었다.
그 강렬한 압박감에 영진은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정현을 향해 구원을 요청하는 시선을 보냈다.
그 간절함이 통했을까?
정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다가왔다.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부녀지간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할 수는 없죠. 오늘은 먼저 들어가서 쉬겠습니다.”
“어, 어어? 아니, 그게 아니라…….”
영진의 강한 시선을 빨리 사라지라는 것으로 오해를 했는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 정현이 말릴 틈도 없이 도장의 문을 열고 사라졌다.
“아빠, 아∼ 하세요.”
“크흑! 마, 맛있구나, 정말 맛있어.”
억지로 들어간 첫 번째 음식부터 위장에서 공포와 혼돈의 세계가 펼쳐짐을 알려 왔다.
게다가 더욱 절망적인 사실!
“정현이 것까지 차려 왔는데 먼저 가 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아빠가 다 드셔야겠네요.”
“…….”
영진은 그대로 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