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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얼스 1권(3화)
2장. 알바하는 암살자(1)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카일러는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현재 고정 수입이 없어 걱정이던 참에 혜린이 ‘알바’란 것을 주선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내가 설마 암살 이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될 줄이야…….’
며칠 전만 해도 암살밖에 몰랐던 암살자, 카일러. 하지만 이제는 이곳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씻기 위해 카일러는 물이 나오는 곳을 찾아 나섰다. 원룸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문물에 무지한 카일러는 물이 나오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이 집에는 물도 구비되어 있지 않은 건가?’
카일러는 집안을 한참 동안이나 빙빙 돌며 헤맸다. 그 결과 마침내 뭔가를 발견해 냈다. 카일러는 항아리 비슷하게 생긴 용기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물이 있었다.
‘덮개에 덮여 있어 미처 몰랐군. 물을 이런 곳에 받아 놓았을 줄이야.’
카일러는 그곳에 있는 물로 세수를 시작했다. 그것이 변기물이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물에서 썩은 내가 나는 것을 보니 이곳 수질이 별로 좋지 않은가 보군.’
그렇게 카일러는 이곳 사람들이 봤다면 토가 나올 법한 ‘더러운’ 세수를 했다.
꼬르륵.
‘그러고 보니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군. 이 집안에 먹을 게 있으려나…….’
카일러는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마침내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군. 양이 많지는 않지만 이걸로라도 끼니를 해결해야겠군. 그런데 왜 이렇게 미끌미끌거리는 걸까?’
카일러는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것을 집어 들어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어 약간의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만족스러움이 경악으로 바뀌는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우욱, 맛이 왜 이래?”
카일러가 베어 문 것은 다름 아닌 ‘비누’였다. 그것의 용도도 모른 채 그저 향긋한 냄새만으로 먹을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발생한 불상사였다.
‘이곳에서는 정말 항상 조심해야겠군.’
우여곡절 끝에 외출 준비를 마친 카일러는 혜린과 만나기로 한 집 앞으로 나갔다.
약속 장소로 나가는 카일러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자신이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우울하고, 무거운 과제로 느껴졌기에 다시는 자신의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 씁쓸한 기분이 들어 잠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냥 우울해 하기만 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이곳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가야만 한다.’
카일러가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그곳에 이미 도착해 있던 혜린이 카일러를 반갑게 맞이했다.
“약속 시간에 맞게 나오셨네요. 그럼 이제 가 보도록 할까요?”
“그러죠.”
카일러는 혜린을 따라 알바생을 모집하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알바생을 구한다고 했죠?”
“네, 학생이 알바하실 건가요?”
“제가 아니라 이분이 하실 거예요.”
“성함하고 나이 좀 말해 주시겠어요?”
“…….”
성함, 나이는 알바 자리를 구할 때 당연히 물어보는 것이지만 전직 암살자, 카일러에게는 모든 사람을 믿지 않고 경계하는 버릇 때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알바를 하려면 성함하고 나이 정도는 알려 주셔야 해요.”
카일러의 반응에 당황한 혜린이 카일러를 타이르자 카일러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카일러, 20살입니다.”
“혹시 전에 햄버거 가게에서 알바한 적 있어요?”
‘알바는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고 햄버거는 이곳에서 파는 음식을 의미하는 건가?’
“아뇨, 없습니다. 그 경력이 꼭 필요합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카일러의 톡톡 쏘는 정곡을 찌르는 말투. 그 말투에 햄버거 가게 점장은 순간 당황한 듯했다. 자칫하다가는 점장이 퇴자를 놓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건 아니더라도 있으면 좋다는 얘기일 거예요. 하지만 없어도 점장님이나 이곳 점원분들이 친절하게 알려 주시겠죠. 그렇죠?”
“그, 그렇지. 우리가 알려 줄 테니까 잘 따라오면 돼요.”
다행히도 혜린이 눈치 있게 카일러를 도와주자 위기는 넘길 수 있었다.
“좋습니다, 여기서 일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합시다.”
“그러죠. 강혜린 씨,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20살이에요. 동갑인데 그냥 편하게 부르세요. 말도 놔도 되요.”
“다음에 보도록 하자.”
혜린과 작별 인사를 하자마자 일이 시작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교육’부터 받기 시작했다.
“손님이 오면 ‘어서 오세요’라고 말한 다음에 주문할 메뉴를 물어보고 그 메뉴를 조리실에 있는 점원에게 말한 다음에 그 메뉴 가격을 계산하기만 하면 끝이에요.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돈 계산은 좀 힘들 것 같은데…….”
이곳 세계의 돈이 종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카일러였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계산까지 한다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어차피 요즘은 다 카드로 계산하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텐데… 아, 손님이 카드를 건네면…….”
짧지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교육이 끝난 뒤 카일러는 실전에 투입되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이 카운터로 오자 카일러는 교육받은 대로 인사를 했다. 점원의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딱딱해?”
“어서 오세요가 아니라 나가라는 듯한 표정이네?”
카일러가 인사하는 모습은 가게 안의 누가 보더라도 어색하고 딱딱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뒤에 터졌다. 손님이 메뉴를 주문하고 카일러가 계산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카드로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카드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아무리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워낙 교육 시간이 짧았고 이곳 세계의 문물 중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카일러였다. 카일러는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돌처럼 딱딱하게 제자리에 굳어 있을 뿐이었다.
“저기, 뭐하세요?”
“잠, 잠깐만 기다려 주시죠.”
“5분 동안이나 거기서 그러고 있었잖아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데요? 점원이 그런 것도 못하면 어떻게 해요?”
결국 기다리다 지친 손님이 화를 내며 카일러를 재촉했다.
“제가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신입, 그냥 안에 들어가서 음식 조리나 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게 되자 급한 대로 접장이 다가와 수습을 하고 카일러를 조리실로 보냈다. 조리실이라고 해도 햄버거에 들어가는 고기를 굽거나 감자 튀김을 만드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이 정도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겠군.’
하지만 카일러는 그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기를 태워 먹을 생각이에요?”
“도대체 감자를 언제까지 튀길 겁니까?”
“죄송합니다.”
“그냥 걸레 들고 식사 끝난 손님들 상이나 닦고 다니세요.”
결국 카일러는 조리실에서도 쫓겨나 냄새나는 걸레를 들고 상이나 닦는 신세가 되었다.
‘젠장, 뭔 일이 이렇게 복잡하단 말인가? 이제 이거라도 제대로 못하면 잘리게 생겼군.’
카일러는 눈물을 글썽이며 걸레질을 시작했다. 자존심 강한 전직 암살자 카일러가 한 순간에 무너져 가는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깨끗하다.’
걸레질을 마친 카일러는 다른 테이블로 이동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으악, 갑자기 움직이시면 어떻게 해요?”
그만 음료수를 들고 이동하고 있던 손님과 부딪혀 음료수 쏟아지며 카일러뿐만 아니라 손님의 옷을 흠뻑 적시는 일이 발생했다.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나발이고 여기 점장 누구야? 뭐 이런 어리버리한 점원을 쓰고 있어?”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손님의 성난 소리를 듣고 달려온 점장은 카일러를 노려보며 말했다.
“신입, 그만 나가 주세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잘할 수 있습니…….”
“나가란 말 안 들려요? 그냥 나가세요!”
“알겠습니다.”
결국 카일러는 첫 알바 자리를 몇 시간도 안 되어 잘리고 말았다.
‘젠장,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여기서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다른 알바 자리를 찾아야 한다.’
카일러는 가게 밖으로 나가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아무 가게나 들어가 ‘알바’ 자리가 있냐고 물어보길 몇 십 분. 카일러는 또다시 일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학생, 그냥 거리에 돌아다니면서 이 전단지만 다 나눠 주면 돼.”
“알겠습니다.”
카일러는 가게 주인으로부터 몇 백장의 전단지를 건네받았다. 이번에 카일러가 얻은 일거리는 바로 전단지 돌리기였다.
“룰루 치킨입니다.”
카일러는 거리에 나가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귀찮게 말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고, 그냥 건네주기만 하면 되니까 편하군. 게다가 전단지만 전달하면 되니까 다른 사람들과 싸울 일도 없다.’
카일러는 전단지 돌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 일을 편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카일러는 사람을 죽이는 암살자였던 만큼 사람을 도와주는 업종인 서비스업은 잘 맞지 않았다. 때문에 첫 알바가 카일러에게는 괴로움 그 자체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전단지를 돌리는 일은 카일러는 상당히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룰루 치킨입니다.”
“학생이나 드세요.”
‘뭐 저런 사람도 가끔 있겠지.’
“룰루 치킨입니다.”
“그래요, 학생.”
‘저렇게 친절한 사람도 있군.’
팔락팔락.
그런데 그때, 방금 전 친절하게 전단지를 받은 사람이 카일러가 돌아서자마자 전단지를 가차없이 버렸다.
‘이런 빌어먹을 놈.’
카일러는 화가 났지만 애써 참았다. 아니, 먹고 살기 위해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단지를 돌리면 돌릴수록 전단지를 도로 버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카일러의 인내심도 바닥이 보이고 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 알바다. 또다시 망치면 안 된다.’
“룰루 치킨입니다.”
“그래? 이리 줘 봐.”
카일러가 전단지를 건네자 그것을 건네받은 사람은 흥미로운듯 전단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전단지를 꾸겨서 카일러에게 던졌다.
“뭐하는 짓입니까?”
“그냥 필요가 없어서. 다음부터는 귀찮게 하지… 악!”
그 사람의 말이 끝나기 전에 카일러는 그만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카일러는 전단지 뭉치를 앞에 있는 그 사람의 면상에 던져 버렸다.
“더러워서 때려친다.”
그 한마디를 내뱉고 카일러는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다.
‘젠장, 돈 벌려고 나온 것인데… 한 푼도 못 벌게 생겼군.’
카일러는 이 세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