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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얼스 1권(5화)
3장. 뉴 얼스(2)


카일러가 처음 접속하자마자 느낀 것은 당혹감이었다.
이 가상현실 세계가 게임 속 세상이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현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곳이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향긋한 풀향, 그리고 지면을 밟고 있는 발에 전해지는 촉각. 현실과 다른 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대단한데.’
카일러는 이 가상현실을 구현한 뉴 얼스 제작자들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인간인가 궁금했다.
분명히 이 게임 만드느라 고생깨나 했을 것 같았다.
잠시 멍한 상태로 있던 카일러는 이곳에 온 목적이 시험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수백 명의 응시자들이 바글바글한 체육관이었다.
아마 시험을 응시하기 위해 카일러처럼 캡슐로 ‘뉴 얼스’에 접속한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때 맨 처음 설명을 했던 박현석 팀장이 가운데로 걸어가 설명을 시작했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곳은 저희가 제작한 가상현실 게임 ‘뉴 얼스’ 안에 시험을 위해 임시로 구현한 곳입니다. 여러분이 보실 시험은 3차로 나뉩니다. 각각의 시험에서 일정 인원의 테스터를 선발합니다. 즉, 3가지 시험 중 한 가지를 통과하면 테스터로 선발됩니다. 1차 시험에서 선발된 분은 2, 3차 시험을 응시할 수 없으며 1차 시험에서 탈락한 분들은 2, 3차 시험 중 하나라도 합격하면 테스터로 선발되실 수 있으므로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1차 시험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차 시험은 바로 ‘대련’입니다.”
‘대련’이라는 말에 카일러는 기쁜 마음에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주변 시선 때문에 참았다.
“몬스터, 인간 NPC와의 1:1 대결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3분 뒤 각각의 대련 장소로 순간 이동됩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박현석의 말이 끝나자 이번 시험 내용에 반가워하는 사람도 있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잠시 뒤 그곳에 있던 응시자들이 각각의 대련 장소로 이동되었다.

‘여기가 맞짱 뜨는 곳인가?’
카일러가 축구장 만한 크기의 대련 장소를 보며 말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데 누구와 대련을 하라는 거야?”
카일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늑대 인간 하나가 나타났다.
그 늑대 인간의 면상에는 흉측한 흉터가 길게 나 있었다.
“첫 상대는 반인반수인가? 덤벼라.”
“가소롭군.”
늑대 인간은 말을 마치자마자 카일러에게 다가와 돌려차기를 했다.
카일러는 몸을 살짝 낮춰 인간형 늑대의 발차기를 가볍게 피하고 무릎으로 복부를 걷어찼다.
“쳇! 귀찮은 녀석이군.”
그런데 인간형 늑대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인간형 늑대는 자신의 옆구리에 달린 주머니에서 쇠파이프를 꺼냈다.
“빌어먹을! 무기까지 쓰다니 비겁한 늑대 새…….”
카일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간형 늑대가 쇠파이프 양손으로 잡고 휘둘렀다. 워낙에 빠른 속도로 쉴 틈 없이 휘둘러 피하기 힘들었지만 잘 피해 냈다.
그때 열심히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인간형 늑대의 허점을 발견했다.
쇠파이프를 열심히 휘두른 나머지 옆구리 방어에 소홀했다.
‘지금이다!’
카일러는 인간형 늑대의 옆구리에 돌려차기를 했다.
빠득!
공격이 제대로 먹혔는지 발차기 한 번에 늑골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크흑! 이런 빌어먹을 자식! 널 씹어 주겠다!”
“내가 가만히 씹히고 있을 것처럼 보이나?”
늑대 인간이 또다시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하지만 늑골이 부서졌기 때문에 속도도 느릴 뿐더러 딱 보기에 힘도 별로 들어가지 않은 약한 공격이었다.
“힘이 다 빠졌나 보군.”
카일러는 늑대 인간이 쥐고 있던 쇠파이프를 잡고 늑대 인간의 공격을 봉쇄했다. 그리고 곧바로 옆구리에 니킥을 갈겼다.
“크헉!”
늑대 인간은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고 카일러는 계속해서 니킥을 갈겼다. 부서진 늑골이 내장을 찔렀는지 인간형 늑대의 입에는 피가 흘러나왔다.
“이, 인간 따위가!”
카일러는 고통에 허우적대는 늑대에게 다시 한 번 강하게 니킥을 갈기고 쇠파이프를 빼앗았다.
그리고 쇠파이프로 늑대의 머리, 늑골을 노리고 미친듯이 휘둘렀다.
“큭!”
“마무리다.”
카일러는 늑대 인간의 무릎을 걷어차 넘어트렸다.
그리고 쇠파이를 치켜 들고 있는 힘을 다해 늑대의 머리를 내려쳤다.
“윽!”
마침내 늑대 인간이 죽었는지 미동도 없었다.
잠시 뒤 늑대 인간은 서서히 희미해지더니 결국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휴, 한 놈은 해치웠군.”
카일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부신 빛이 카일러를 둘러쌌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자 몸에서 다시 힘이 솟아났다.
체력이 회복된 것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늑대 인간과 싸우느라 지쳤는데 힘이 다시 솟아나는 것 같군. 다음 대련 때는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겠군.’

유니벌스 본사의 한 사무실.
수천 명의 직원이 각각 컴퓨터를 놓고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바로 1차 시험을 응시하는 참가자를 보고 평가를 하는 것이었다.
“오, 싸움 좀 하는데?”
말단 직원 현달환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늑대 인간을 때려잡은 카일러였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실력이었다.
“다음 대련이 기대되는군. 흐흐.”
현달환은 들뜬 마음에 주변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기까지 하며 몰입했다.

잠시 뒤 카일러가 있는 대련장에 새로운 대련 상대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보는 것만으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거구의 검사였다.
“저, 저런 놈하고 무기도 없이 싸우라고?”
카일러가 당황하여 소리쳤지만 검사는 아무 말 없이 카일러의 옆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언제 생겼는지 테이블이 있었고 그 위에 여러 종류의 무기가 있었다.
“네놈이 가장 자신 있는 무기를 골라라. 선택은 한 번뿐.”
카일러는 가장 자신 있는 한 손 검을 들었다.
“자, 이제 덤벼라.”
검사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카일러는 천천히 다가가 거리를 좁힌 뒤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검사는 재빠르게 받아치고 곧바로 카일러의 목을 노리고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검사의 날렵한 동작에 당황했지만 카일러는 몸을 뒤로 젖혀 피해 냈다. 하지만 검사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계속되는 검사의 날카로운 공격에 방어하기도 급급했다.
‘이 검사는 지칠 줄도 모르는군. 일단 조금 무리해서라도 공격을 끓어야 한다.’
카일러는 검사가 수직으로 휘두른 검을 몸을 회전하며 피했다.
검사가 또다시 공격을 하려 했지만 카일러는 그보다 빠르게 검사의 턱을 노리고 검을 수직으로 휘둘렀다.
검사는 공격하기 위해 휘두른 검의 방향을 재빨리 바꿔 그 공격을 간신히 막아 냈다.
‘이번 공격은 속임수고 진짜는 이거다.’
카일러의 검과 맞닿은 검사의 검을 쳐 내고 빠른 속도로 몸을 바짝 수그려 검사의 발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촤악!
“이런, 애송이가!”
카일러가 휘두른 검에 검사의 왼쪽 발목이 베였다.
“넌 이제 진 거나 다름없다.”
카일러가 검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일러는 검사에게 맹공격을 퍼부었다.
검사는 왼쪽 발목을 베였기 때문에 공격에 제대로 힘을 실지 못했고 심지어 방어조차도 버거워했다.
카일러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검사의 왼쪽을 파고들며 공격했고
부상을 입은 검사는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다.
“쫄았나 보군.”
게다가 검사를 도발하며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마침내 검사가 중심을 잃으며 뒤로 물러날 때 한 쪽 손목을 베어 버렸다.
양손 검을 사용하는 검사에게 치명타였다.
“이런, 젠장!”
“이제 끝이다!”
카일러는 검사의 왼쪽 발목을 발로 차며 검사의 뒤로 돌아 검사의 양쪽 다리를 횡으로 베었다.
“크흐흑!”
“마무리 시간이군.”
카일러는 몸을 빠르게 회전하여 그 회전력을 이용해 검사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결국 전사한 검사는 쓰러졌고 서서히 사라졌다.
검사가 사라지자 카일러는 처음 접속했을 때 있던 곳으로 이동되었다. 다시 그곳으로 가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끝내고 대기하고 있었다.
똑같은 시험을 봤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기뻐하는 사람, 아쉬워하는 사람, 겁에 질린 사람 등 다양했다.
카일러는 기뻐하는 사람에 속했다.
이번 시험 덕분에 테스터로 선발될 것이라는 좋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뒤 몇 명의 사람이 더 모이자 총책임자 박현석이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몬스터, NPC와 대련하는 모습을 평가하기 위해 대련 장소 천장에 카메라를 설치해 뒀었습니다. 정확한 평가를 위해 여러분 한 명당 1명의 직원이 평가를 하고 있을 겁니다. 평가가 끝나면 이번 시험에서 합격한 사람들의 명단을 제게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좀 있다가 제가 호명한 분은 ‘로그아웃’하시기 바랍니다. 로그아웃하는 방법은 그냥 ‘로그아웃’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로그아웃하신 다음에는 저도 로그아웃을 하여 제가 직접 인솔하도록 하겠습니다.”
박현석의 긴 설명이 끝나고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직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나타났다.
“합격자 명단입니다.”
직원이 박현석에게 서류 파일을 건네고 다시 사라졌다.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호명하는 분은 로그아웃하시기 바랍니다.”
박현석이 막 발표를 하려하자 한 응시자가 긴장된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 직원이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만약 이의제기를 하실 분이 있다면 일단 나머지 시험을 모두 응시하시길 바랍니다. 며칠 안으로 저와 그 직원이 재평가를 한 후 합격, 불합격 여부를 전화로 통지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자격이 없는데 합격된 사람들은 어떻게 하죠?”
“합격자들 역시 나중에 재확인 팀을 구성하여 다시 한 번 확인할 예정입니다. 그럼 호명하겠습니다.”
카일러는 대련을 훌륭히 마쳤음에도 초조했다.
‘제발 합격돼야 할 텐데…….’
잠시 뒤 발표가 끝났다. 다행히도 카일러의 이름도 불렸다.
“그럼 제가 호명하신 분은 로그아웃하시기 바랍니다.”
박현석은 말을 끝마치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하라는 듯 로그아웃했다.
카일러도 로그아웃을 외쳤다.
그러자 주변이 희미해지더니 캡슐이 보였다.
카일러는 캡슐에서 나왔다. 카일러를 포함한 합격자가 모두 나오자 박현석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지금 합격자 대기실로 갈 것입니다. 한 분 한 분 저와 마무리 면접을 할 계획입니다.”
잠시 뒤 사무실에 도착했고 차례차례 1:1 면접을 했다.
마침내 카일러의 차례가 되어 박현석 팀장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카일러 씨, 합격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측에서 공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테스터로 선발되신 분에게 월마다 급여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당연한 것이었나?’
카일러는 캡슐과 월 사용료 때문에 테스터로 온 것이었고 테스터들에게 급여를 제공하는 것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정, 정말요?”
“그렇습니다. 월 100만 원씩 지급합니다.”
“많은 건가요?”
카일러는 아직까지도 이곳 세상의 화폐 가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보통 직장인들 초봉의 반도 안 되는 액수라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 그렇군요.”
“그런데 테스터가 뭘 해야 하나요?”
“그저 뉴 얼스를 충실히 플레이해 주시고 1주일에 한 번 보고서를 보내 주시면 됩니다. 보고서는 제 이메일로 보내 주시면 되는데 캡슐에 게임 플레이 영상을 저장하여 보내 주시거나 글로 보고서를 써서 보내 주시면 됩니다. 저희 유니벌스 사에서는 현실에서의 능력이 게임에도 잘 반영되도록 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대련 실력입니다. 하지만 대련 실력이 그저 그러면 실제 실력이 게임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카일러 씨처럼 실력자들을 선발한 것입니다.”
“흐음… 제가 좀 하긴 하죠.”
“하하! 어쨌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주의하실 점이 하나 있습니다. 선발된 천 명 중 캐릭터의 성장이 더디거나 성과가 별로 없는 분들은 테스터에서 제외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게임만 하라는 건가? 뭐 나야 상관없지만.’
“알겠습니다. 그런데 캡슐은 언제 보내 주시나요?”
“며칠 안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에 주소만 적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통장 계좌 번호도 적어 주세요.”
박현석이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카일러는 그곳에 주소를 적었다. 그런데 통장이 없었기에 잠시 당황했다.
“저 통장이 없는데…….”
“네? 아, 그럼 새로 하나 만드시고 연락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주소로 캡슐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네, 수고하세요.”
카일러는 당장에라도 날아갈 듯한 마음으로 그곳을 나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카일러는 이곳 주민번호가 없었기 때문에 통장을 만들 수 없었다.
‘혜린에게 부탁해야겠군.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