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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얼스 1권(8화)
4장. 초보자, 카일러(3)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군.”
“그럼. 갔다 올 테니까 보상이나 두둑하게 준비해 둬.”
카일러는 그곳을 나와 식당으로 가 싸구려 스프를 샀다.
그리고는 말라크가 건넨 포션에 스프를 넣고 잘 흔들어 주었다.
‘진정제가 분량은 적지만 고농축이기 때문에 효과 하나는 끝내 줄 테니까 적어도 10마리는 즉사시킬 수 있겠지.’
카일러는 지도를 따라 소굴 근처로 갔다.
‘일단 소굴 근처에 약을 섞은 스프를 뿌려야겠군.’
그리고는 소굴로 갔다. 그곳은 동굴이었다.
동굴 안은 너무 어두워 뭣도 모르고 들어갔다가는 자칫하면 멧돼지한테 다굴을 맞을 것 같았다.
‘흐음… 어차피 스프를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스프가 있는 근처에서 대기 타야겠군.’
그런데 그때 갑자기 멧돼지 한 마리가 나왔다.
그러더니 카일러를 발견했고 멱따는 소리를 내 댔다.
‘젠장, 다른 놈들도 몰려오겠군.’
카일러는 재빨리 도망갔으나 어느새 여러 마리의 멧돼지가 카일러의 뒤를 바짝 쫓았다.
‘저게 총 몇 마리야? 잡히면 죽는다!’
카일러는 안간힘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멧돼지들의 달리가 속도는 정말,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결국 총 9마리 정도의 멧돼지가 카일러를 둘러쌌다.
‘참 빠르기도 하네. 벌써 달려온 거? 이런, 젠장! 도망가야 된다!’
사실 이제 막 시작한 레벨 1의 초보 카일러에게 멧돼지는 한 마리씩 상대해도 버거운 상대였다.
카일러가 뛰어난 검술과 운동 신경을 발휘한다고 해도 한 번에 한 마리씩 상대해야 간신히 이길 수 있는 수준.
그런데 멧돼지 9마리가 동시에 달려든다면 카일러는 순식간에 사망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젠장, 1마리씩 유인하여 싸웠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경솔했군. 일단 도망가야 하는데… 포위당해 버렸으니 어쩌나.’
잠시 고민하던 카일러는 임기응변책을 떠올렸다.
“아이템 창!”
카일러는 아이템 창 한 곳에 있는 딱딱한 식빵을 꺼냈다. 그리고는 마을과 반대쪽 방향으로 던졌다.
“저거 맛있는 거야. 가서 처먹어!”
하지만 멧돼지들은 생각보다 영리했다.
9마리 중 한 마리만이 빵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빵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꾸에엑!
그런데 입에 넣자마자 멱따는 소리를 내며 빵을 내뱉어 버렸다. 그러더니 다시 동료들에게 왔다.
꾸에엑!
그 멧돼지가 또다시 멱따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은 멧돼지들이 분노한 듯이 카일러를 노려보았다.
“제, 젠장… 맛 없다고 그러는 건가?”
꾸에엑.
마치 알아듣기라도 하듯이 멧돼지가 또다시 멱따는 소리를 냈다.
‘멧돼지 주제에… 이렇게 된 이상…….’
카일러는 미친듯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멧돼지가 눈부신 속도로 달려와 카일러의 다리를 물어뜯었다.
‘우홧! 뭔 돼지 새끼가 이렇게 빨라.’
“데미지 40을 받았습니다.”
“젠장!”
갓 시작한 카일러의 체력은 100.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카일러의 체력이 반 가까이 깎였다. 이어 나머지 멧돼지들도 카일러를 물어뜯었다.
“사망하셨습니다. 사망 페널티로 8시간 동안 접속하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눈앞이 희미해지더니 캡슐 안이 보였다.
말 그대로 강제 로그아웃된 것이다.
‘사, 사망 페널티 때문에 8, 8시간 동안 접속할 수 없다고? 그런 패널티가 있었나? 젠장, 게임 안내 영상을 끝까지 다 봤어야 하는 건데…….’
카일러는 게임 관련 정보를 담은 영상을 끝까지 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첫 접속에 죽은 것도 억울한데 8시간 동안 접속할 수 없다고 하자 카일러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카일러, 이것밖에 안 되는 녀석인가…….’
카일러는 자기 자신을 원망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뉴얼스 1권(8화)
5장. 투지(1)
8시간 동안 접속하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인 걸림돌이었다.
그 사이에 멧돼지들이 어슬렁거리다가 스프를 먹어 치우고 죽거나 기절할 것이다.
그리고 몬스터이기 때문에 리젠이 될 것이고 기절한 몬스터는 8시간 안에 회복될 것이다. 8시간이면 충분히 그럴 것이 분명했다.
동물용 진정제를 더 구할 수는 없다. 그 퀘스트를 깨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카일러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뭔지 깨달았다. 그것은 철저한 준비였다.
사망 페널티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면 분명히 조금 더 조심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멧돼지의 행동 패턴 등을 미리 조사해 봤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언제해도 늦은 것이다.
‘앞으로는 철저하게 행동한다.’
한 번 실수가 두 번 실수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카일러는 철저한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인터넷으로 사망 페널티에 대한 것부터 알아봤다.
―뉴 얼스 사망 페널티
사망하게 되면 강제 로그아웃되며 8시간 동안 재접속할 수 없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일정 확률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 중 랜덤으로 하나를 떨어뜨리게 됩니다.
“허.”
카일러는 아까보다 더 혼란스러워졌다. 단지 8시간 접속을 못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일정 확률로 아이템을 하나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가진 것도 없는 초보자라 잃은 것이 별로 없긴 했지만 반대로 가진 것이 없는 초보자라 한 번 잃은 장비를 다시 살 돈도 없었다.
쏟아지는 걱정에 당장에라도 접속해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저 떨어뜨린 아이템이 없길 바랄 뿐이다.
‘그 퀘스트는 포기해야 하나?’
하지만 이제 와서 포기하기에는 아까웠다.
카일러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에는 멧돼지에 대해 조사했다. 그리고 퀘스트를 깨기 위한 대비책도 구상했다.
한참을 퀘스트 때문에 씨름하다 보니 어느덧 8시간이 지났다.
카일러는 곧바로 접속했고 처음 접속했을 때 보였던 푸른 비석 옆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이 부활석인 것 같았다.
카일러는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이템 창을 열었다.
그런데 카일러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필이면 카일러의 유일한 무기, 검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나 보고 게임 접으라는 거야?”
허공에 대고 욕질을 해 봤자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만 돌아올 뿐이었다.
“저 사람 왜 저래?”
“시끄럽게 왜 소리를 질러 대.”
하지만 그런 시선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어떻게 하지?’
그런데 자포자기하고 아무 곳이나 걸어 다니던 카일러의 눈에 무엇인가가 눈에 띄었다.
카일러의 눈에 띈 것은 바로 삽과 톱이었다.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톱으로 다듬은 나무창을 세워 놓으면 달려오던 멧돼지가 그곳에 빠져 즉사할 것이 분명했다.
스프를 사며 돈을 탈탈 털은 터라 무기 하나 살 돈 없는 카일러가 무기를 잃어버렸으니 방법은 트랩을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삽은 잠깐 빌릴 거다… 정말로 빌리는 거다.
카일러는 삽을 조심스럽게 챙겨 다시 멧돼지 소굴이 있는 산으로 갔다.
그리고 하루 종일 곳곳에 함정 구덩이를 준비했다.
힘든 일이었으나 멧돼지들한테 다굴 당한 것을 생각하면 이까짓 육체적 고통은 참아 낼 수 있었다.
한창 작업 중인데 갑자기 몸에 힘이 빠졌고 그와 함께 음성 메시지가 떴다.
“쉴 틈 없이 과도한 일을 하여 탈진하셨습니다.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만 탈진하고 만 것이다.
마음 같았으면 탈진이 와도 계속 구덩이를 팠겠지만 카일러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자리에 앉은 카일러는 상태 창을 확인해 봤다.
“상태 창.”
아이디:카일러
생명력:100/100
마 나:50/50
힘:5
민첩:4
지능:4
운:3
체력:3
정신력:1
*상태 이상:탈진
휴식 없이 과도한 일을 하여 탈진 상태입니다.
30분간의 휴식이 필요합니다.
무리하고 몸을 더 움직였다가는 과로사할 수도 있습니다.
“30분이나 가만 앉아 있어야 하다니…….”
1분 1초라도 쉬지 않고 구덩이를 파 빨리 그 멧돼지 대식구를 괴멸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카일러에게 30분이나 가만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정신적 충격이었다.
꼬르륵.
잠시 멍하게 있던 카일러는 뱃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는 처음 뉴 얼스를 시작하는 초보자에게 주어지는 딱딱한 빵을 꺼내 먹었다.
“아오, 이건 또 왜 이렇게 딱딱해. 차라리 돌을 씹는 게 더 낫겠다.”
가뜩이나 짜증나는데 딱딱한 빵을 씹고 있자 화만 날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30분이 모두 지나 탈진 상태에서 벗어났다.
카일러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계속해서 함정 구멍을 팠다.
그런데 그때,
빠각!
그만 카일러가 ‘빌려 온’ 삽이 두동강이 나 버리고 말았다.
‘이런, 젠장! 아직 다 파지도 못했는데!’
카일러는 부러진 삽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카일러는 동강 난 삽을 잡고 계속해서 땅을 팠다.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부분이 짧아진만큼 힘이 배로 들 수밖에 없었고 카일러의 몸은 극도로 피로해졌다.
빠각!
그런데 그때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멀쩡했던 부분마저 완전히 부서져 버렸고 이제 카일러에게는 삽이라 할 만한 물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좀만 더 파면 될 것 같았는데. 이를 어쩌지?”
카일러는 멍한 표정으로 완전히 산산조각난 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카일러의 눈이 순각 번뜩였다.
“이렇게 된 것, 이판사판이다.”
카일러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깊이 팔수록 딱딱해지는 땅에 카일러의 손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전직 암살자 카일러는 상식을 넘어서는 독종이었다. 카일러는 두더지로 빙의해서 계속해서 땅을 팠다.
‘반드시 끝을 봐야 한다!’
카일러가 땅을 맨손으로 파자 카일러의 손은 피가 나올 정도로 다쳤다. 그런데도 카일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땅을 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뜻밖의 메시지가 카일러의 눈 앞에 떴다.
“땅굴 파기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땅굴 파기 스킬―초급”
“땅굴 파는 속도가 기존 속도의 1.5배 빨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