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뉴얼스 1권(9화)
5장. 투지(2)


“이, 이건… 설마!”
카일러는 멧돼지에게 죽은 후 이것저것 조사해 봤었다. 그때 특정일을 반복하면 그 일과 관련된 특화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봤었다.
하지만 반복 노동이란 것이 워낙 힘든 것이라 이런 특화 스킬을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그런데 카일러가 그것을 이뤄 냈다. 카일러의 독한 성격이 뉴 얼스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1.5배면 지금보다 훨씬 빨라진다. 마무리 작업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겠군.’
“역시 뭐든지 포기하면 안 된다. 특화 스킬을 얻게 될 줄이야… 그럼 계속 삽질이나 해 볼까?”
카일러가 삽질을 하자 확실히 스킬이 생기기 전보다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만약 스킬 레벨이 최고 등급까지 올라간다면 얼마나 빨라질지 궁금했다.
“그런데 스킬 레벨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군. 나중에 인터넷이나 찾아봐야겠다.”
인터넷 사용 하루 만에 인터넷의 노예가 되어 버린 카일러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모든 준비를 마친 카일러는 멧돼지들이 모여 있는 동굴 입구 근처로 갔다.
멧돼지가 보였다. 크기가 작은 것으로 볼 때 겁이 많은 새끼 같다.
주변에 적이 없는 줄 알고 입구에서 어슬렁대는 것 같았다.
카일러는 슬그머니 다가가 손수 만든 나무창으로 새끼 멧돼지의 엉덩이를 찔렀다.
역시나 나무창이라 약하다 보니 그저 휘둘러 찌르는 것으로는 멧돼지를 죽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새끼 멧돼지가 고통에 휩싸여 큰소리로 울부짖게 만들 수는 있었다.
“그래, 그래! 더 크게 울부짖어라! 니네 가족들이 전부 뛰쳐나오게!”
엉덩이가 창에 찔린 새끼 멧돼지는 계속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사방팔방 뛰어다녔고 마침내 동굴 안의 멧돼지가 우르르 달려왔다.
퀘스트를 위해 필요한 40마리는 족히 넘는 것 같았다.
카일러는 냅다 도망쳤다.
그러자 멧돼지 무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떼거리로 카일러를 뒤쫓았다.
그런데 멧돼지 몇 마리가 구덩이에 빠져 밑에 세워 둔 나무창에 찔려 피를 흘렸다.
그냥 찌를 때는 약한 창이었지만 무거운 멧돼지가 깊게 판 구덩이 안에 있는 나무창으로 떨어지자 멧돼지를 꿰뚫기에 충분했다.
“헥… 헥… 역시 돼지는 돼지군.”
미친듯이 달렸기 때문에 숨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쉴 시간은 없었다.
나머지 멧돼지들은 다른 멧돼지들이 갑자기 사라지자 당황했지만 곧 다시 카일러를 뒤쫓았기 때문이다.
멧돼지들은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자 더 필사적으로 쫓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멧돼지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있던 밧줄을 못 보고 걸려 넘어지며 뒤에 오던 멧돼지들에게 밟혀 죽었다.
“좋아, 좋아! 이게 바로 진정한 팀킬 유도지. 크크.”
카일러는 이번에는 트랩이 대량 설치된 곳으로 방향을 꺾어 냅다 달렸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멧돼지들은 치타로 빙의한 듯한 속도로 달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카일러를 잡기는 커녕 멧돼지들의 수는 줄어 갔다.
“풋하하하하. 멍청한 돼지 새끼들. 이제 보니 좀 귀여워 보이는구나? 풉하하하하!”
카일러의 조롱을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조금 겁먹은 멧돼지들이 다시 안간힘을 써 카일러를 뒤쫓았다.
그런데 갑자기 카일러가 나무 위로 점프하여 매달렸다.
멧돼지들도 점프를 하여 카일러를 잡으려 했으나 점프를 할 수 없었다.
멧돼지가 밟고 있는 곳은 바로 함정 구멍 위에 있는 덮개였기 때문이다.
“잘 가라∼ 멍청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란다!”
멧돼지들은 전멸하고 말았다.

“레벨 업하셨습니다.”

레벨 3인 멧돼지를 몇 십 마리 사냥하자 카일러는 2업이나 하여 레벨 3이 되었다.
레벨을 올리고 받은 보너스 스텟은 10포인트.
카일러는 자세히 알아보고 보너스 포인트를 분배하기 위해 일단 내버려 뒀다.
“훗. 역시 멧돼지도 돼지일 뿐. 몸에 근육 좀 박혔다고 해도 대가리에 든 게 없으니 상대하기 쉽군.”
멧돼지한테 다굴 당해서 사망한 주제에 잘난 척을 해 대는 카일러였다.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아이템.
구덩이에 빠져 죽은 멧돼지들이 떨어뜨린 아이템을 주우러 함정 구멍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자칫하다간 꼬치가 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 참.”
동굴 입구에서 사망하면서 떨어뜨린 아이템이 검이다.
그런데 동굴 입구에 다시 가 봤을 때는 그곳에 검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멧돼지들이 무슨 짓을 했다는 건데… 아마도 자신들의 소굴인 동굴 안에 갖다 놓은 듯했다.
‘동굴 안에 들어가 봐야겠군.’
카일러는 횃불은 준비하고 기쁜 마음으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들어가자 드디어 카일러의 검을 발견했다.
“드디어!”
크르릉.
“뭐지?”
카일러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소리가 난 쪽으로 횃불을 돌리자 험악하게 생긴 덩치 큰 짐승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멧돼지였다.
“아, 아니 무슨 멧돼지가 저렇게 커?”
아까 카일러가 떼거리로 잡았던 멧돼지들보다 4배는 컸다.

“보스 몬스터 ‘타이푼’이 출현했습니다.”

“보스 몬스터?”
보스 몬스터를 보자 그 많은 수의 멧돼지가 동굴에 모여 있던 이유가 대략 짐작이 갔다.
“인간… 감히 내 동굴에 들어오다니!”
‘이 좁은 동굴에서 보스 몬스터를 만나게 될 줄이야. 분명 다른 멧돼지들보다 모든 면에서 앞설 것이다. 그냥 도망치거나 덤볐다가는 바로 사망인데…….’
보스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보다 레벨이 더 높았고 그에 따라 능력치가 더 높아 훨씬 강한 편에 속한다. 게다가 보스 몬스터가 사용하는 특수 스킬은 유저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로 강력했다.
‘젠장… 조금이라도 능력치를 끌어 올려야 하니까 일단 보너스 스텟을 분배해야겠군.’
“힘에 8 분배…….”
“인간!”
“민첩에 2 분배…….”
‘좋아 이제 힘 13, 민첩 6이다. 상황이 조금은 나아졌군. 하지만 보스 몬스터면 일반 멧돼지보다 레벨이 5 정도 높다. 그러면 저 타이푼의 레벨은 8. 레벨 5 차이를 극복해 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아남아야 한다!’
“죽어라, 인간!”
그때였다. 타이푼이 카일러를 향해 돌진해 왔다. 갑작스러운 타이푼의 돌격을 카일러는 몸을 날려 피해 냈다.
콰쾅, 쾅, 쾅, 쾅!
타이푼이 지나가는 곳에 있던 바위는 모두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쥐새끼 같은 인간!”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 동굴 안은 좁아서 피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어떻게?’
카일러가 만약 도망치려 한다면 타이푼이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때문에 도망치기 전에 타이푼을 묶어 둘 것이 필요했다.
‘어디 보자…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겠군.’
“그 정도 속도로 달려들면 잡을 수나 있겠나?”
“크르릉, 버르장머리 없는 인간!”
카일러의 도발에 타이푼은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카일러를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보스 몬스터라고 해도 결국은 멧돼지. 이미 멧돼지를 상대해 봤기 때문에 전직 암살자 카일러가 그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카일러는 이번에도 몸을 날려 타이푼의 돌격을 피해 냈다.
‘지금이다!’
카일러는 타이푼의 공격을 몸을 날려 피하자마자 곧바로 동굴 밖으로 내달렸다.
“크르릉, 인간!”
하지만 타이푼은 동굴에 머리를 깊이 처박아 곧바로 쫓아오지 못했다.
카일러가 노린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세게 박으면 박을수록 더 깊이 박힐 것이고 그로 인해 길지는 않더라도 잠깐이라도 타이푼의 발을 묶어 놓으려는 의도였다.
카일러가 마침내 동굴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타이푼도 곧 뒤따라왔다.
“인간, 죽여 버리… 꾸에엑!”
타이푼은 무턱대고 카일러를 쫓아가다 그만 함정에 발이 빠졌다. 카일러가 멧돼지 무리를 잡기 위해 파 두었던 구덩이었다.
‘계획대로군.’
입구 앞에 파 놓은 함정이 그리 크지 않고 또 깊지 않은 터라 타이푼은 피를 철철 흘리면서 다시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깊은 분노를 담아 외쳤다.
“인간, 죽여 버리겠다!”
“지독하군.”
카일러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며 도망갔다.
하지만 타이푼은 나무를 쓰러뜨리며 혈안이 되어 쫓아왔다.
“이런 무식한 멧돼지 새끼!”
“반드시 죽이겠다, 인간!”
타이푼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함정을 재활용하는 것이었다.
이미 써먹은 터라 눈치 못 채개 덮개로 가려 놓은 것이 모두 사라진 만큼 쉽지 않겠지만 그 방법밖에 없었다.
‘무식하게 쫓아오는 타이푼이라면 잘만하면 충분히 구덩이에 빠뜨릴 수 있을 거야.’
카일러는 멧돼지들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함정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거의 도착했을 때 갑자기 몸을 날려 방향을 꺾었다.
달려오던 타이푼은 미처 방향을 꺾지 못했고 결국 구덩이에 빠져 치명타를 입고는 피를 줄줄 흘렸다.
“꾸에엑… 인간 주제에…….”
“이제 끝이로군… 이런!”
그런데 그때 타이푼이 안간힘을 더해 몸을 비틀어 대더니 구덩이에 설치해 놓은 나무창을 부러뜨리고 다시 구덩이 위로 기어올랐다.
“이런 지독한 돼지 새끼.”
카일러는 또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콰르릉!

“데미지 10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땅이 흔들려 카일러가 무게 중심을 잃고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뭐야!”
“더 이상 도망가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 죽어라, 인간!”
타이푼은 말을 마치자마자 양 앞발을 모두 들어 땅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좀 전과 같은 진동이 땅 위를 뒤흔들었다. 땅의 진동은 바로 타이푼이 한 짓이었다.
콰르릉!

“데미지 10을 받았습니다.”

‘젠장, 계속 이러다간 죽는다. 어떻게 하지?’
타이푼은 다시 한 번 땅을 내려치려 하고 있었다.
‘잠깐, 땅을 내려쳐서 진동을 주는 거니까…….’
카일러는 타이푼이 땅을 내리찍는 그 타이밍에 점프를 했다. 그러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보스 몬스터가 아무리 무식하게 쌘 스킬을 써도 다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있군.’
“끝장을 내주마!”
그런데 타이푼이 이번에는 땅을 빠른 속도로 연속해서 내리찍었다.
몇 번의 공격을 점프를 하는 동안에 피해 냈지만 바닥에 착지하는 그 순간에는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