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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 1권(2화)
제1장 알론 더 프레인(1)
이스론트 대륙에는 총 여섯 개의 제국과 다섯 개의 왕국이 존재하였다. 이중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곳을 뽑으라면 누구든 입을 모아 카네시스 제국이라고 칭할 것이다.
카네시스 제국.
비록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른 제국과 왕국들에게 밉보이기 십상이었던 제국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황제는 그로 인해, ‘제국 번창기’라는 제도를 실시한다. 이 제도는 글을 모르는 국민들에게 글을 깨우치게 하고, 제국 곳곳에 아카데미를 세움으로써 인재를 육성하는 데에 힘쓴 것을 말한다.
비록 그때 들어간 돈이 꽤 되었기에 카네시스 제국의 자금이 휘청하기는 하였었지만 그로 인하여 지금의 카네시스 제국이 되었다고 하여도 무방하였다.
그리고 그런 막대한 카네시스 제국의 황궁. 그 황궁 안에는 수많은 기사들과 마법사, 혹은 대 귀족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인 알론 더 프레인도 수많은 황궁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황궁 제4기사단 소속의 크로스트 기사단원으로서 황궁 내에서도 가장 덜떨어진, 한마디로 황궁의 모두에게 무시당할 만한 기사단에서 일을 하고 있는 기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서 그의 검술 실력이나, 신체적 능력이 다른 기사단원들에 비해 딸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무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제1기사단에 들어도 충분할 정도의 실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황궁이란 곳에서도 직위를 얻기 위해서는 독한 마음이 필요한 법이었다.
하지만 기사 알론은 다른 여타의 기사들에 비해 권력 같은 부분에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또 너무나 착한 심성 때문에 크로스트 기사단원 중에서도 얕잡아 보이기 십상이었다.
“아, 정말입니까?”
“그래. 그렇다니까. 하하하!”
알론이 기사단 전용 식당에서 식판에 음식을 받으며 웃는 한스의 말에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고, 그의 물음에 한스가 폭소해 보였다.
이미 알론은 그의 이야기가 허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맞장구쳐 준 것이다.
“아, 저기 자리 있다. 저기 가서 앉자. 알론.”
언제나 수줍은 성격. 또는 소심한 성격의 알론이었기에 그는 자신이 앉을 자리도 제대로 찾지 못했다. 그랬기에 언제나 그의 옆에 붙어 있는 한스가 주도권을 잡았다.
그렇게 그 둘이 비어 있는 자리로 이동하려 할 때, 아래쪽에서 다리 하나가 쑥 삐져나왔다.
턱.
털푸덕.
“이거 미안하네, 알론 경. 괜찮나?”
“아아…… 이거 어쩌나…… 저는 괜찮습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시나요. 벨로운 경.”
삐져나온 다리가 알론의 다리와 만나며 알론이 중심을 잃고 그대로 식판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바닥으로 빵이나, 수프 같은 음식들이 쏟아졌다.
발을 건 이는 바로 제1기사단에서도 실력 있기로 유명한 벨로운이었다.
“이익! 뭐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알론! 어째서 네가 저 사람 걱정 따위를 하는 거야!”
“그만해요, 한스. 전 괜찮습니다.”
둘의 대화를 지켜본 한스가 자신이 참을 수 없었던 듯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누가 보더라도 엄연히 벨로운이 시비를 건 것이었다. 하지만 이 착한 알론은 그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남 걱정 따위나 하고 있으니, 한스로서는 한심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너무 나서는 거 아닌가. 한스 경. 그러다 큰코다치지. 크큭.”
나서는 한스를 보며 벨로운이 가소롭다는 듯 피식하고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제1기사단의 실력자인 그로서는 제4기사단 소속의 한스가 덤벼드는 것이 가소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익…… 정말!”
“그만하라니까요. 한스! 전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다혈질인 한스가 벨로운에게 덤벼들 것 같자, 그 후의 상황은 안 봐도 뻔히 아는 알론이었기에 황급히 몸을 움직이려는 그를 잡고 막았다. 알론이 그를 막아서자 벨로운의 입가로 더욱 짙은 미소가 생겼다.
“제발 참아 줘요. 한스.”
“제길!”
알론이 그런 한스를 꼭 붙들고는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결국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스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식당을 나섰고, 곧 알론도 그를 따라나섰다.
“씨익씨익.”
“정말 미안해요, 한스.”
“알론! 네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근데 어째서 정말 네가 그 사람 걱정 따위를 하는 거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스가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고요…….”
“하!”
순간 알론의 말에 한스가 헛바람을 내뱉었다. 그는 황궁에서 알론과 3년간 함께했기에 그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벨로운과 견줄 만한 실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배짱은 검을 익히지 못한 자만큼도 못하고, 마음은 아직 어린아이 같으니 황당해졌다.
“그보다 저 때문에 식사도 못하셨으니, 저녁에 술이나 한잔 대접해 드릴게요.”
“정말 너…….”
은근슬쩍 술을 유도해 자신의 화를 풀어 주려는 그로 인해 한스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하는 알론을 보고는 졌다는 듯 화를 풀 수밖에 없었다.
저녁이 되자, 그 둘이 나갈 채비를 하였다. 황궁의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지만 황도의 술집으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편안한 복장이었다.
벌컥.
“어서 오세요. 아, 오랜만이에요. 한스 경, 알론 경.”
그들이 자주 찾는 이슬의 밤이라는 술집에 들어오자 젊은 여성이 그 둘을 반겨 주었다. 아무래도 낮에 황궁에서 있었던 일 비슷한 일이 생길 때면 오는 곳이었기 때문에 주인 여성과도 꽤 많은 친분이 쌓여 있었다.
쪼르르.
여성이 둘의 잔에 위스키를 가득 따라 주었다. 한스가 거칠게 입안으로 술을 털어 놓았다.
“캬! 역시 이 맛이야!”
황궁의 기사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대부분의 이들이 술이었다. 그만큼 술은 고된 그들의 삶에 하나의 안식처와도 같은 것이다.
홀짝홀짝.
“그게 뭔가, 알론! 남자라면 원 샷이지!”
술을 원 샷 하고 머리 위에 올려 털어 보이며 다 마셨다는 제스처를 취해 보인 한스가, 잔을 홀짝이는 알론을 보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알론 그였다. 때문에 비록 어리석다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너무나도 어리석고 착한 그 때문에 그의 곁에 자신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렇게 그 둘이 술을 한 잔 두 잔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 모두의 얼굴에 홍조가 생겼을 때, 밖에서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치는 소리가 들렸다.
콰콰쾅!
후두두두두.
“이크, 비가 오나 보네.”
술집 주인 여성이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술에 조금은 취기가 오른 그 둘은 비가 오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고, 완전히 취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흐흐, 아무튼 알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빠샤!”
“네네, 알겠어요. 한스. 잘 마셨습니다. 저희 이만 가 볼게요.”
그나마 정신이 조금은 있는 알론이 그를 부축하며 돈을 올려놓은 뒤, 술집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우주죽 쏟아지는 비를 발견하였다.
비는 생각보다 많이 오고 있었다.
“이크, 빨리 가야겠다.”
처벅처벅.
알론이 한스를 부축하며 비를 맞으며 빠르게 황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걸었을까. 한스가 또다시 술주정을 시작했다.
“으으음, 이거 놔! 니들 내가 제4기사단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이래 봬도 내 친구 중에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 있어!”
피식.
한스가 손을 저으며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 바닥을 구르며 술주정을 하는 것을 본 알론이 피식하고 웃어 보였다.
그래도 황궁에서 자신을 아껴 주는 이는 한스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매일 그에게 고마웠다. 그렇게 그가 피식 한번 웃어 주고 다시 한스를 부축하려는 때에 갑자기 하늘이 하얘지며 천둥이 쳤다.
우르릉.
천둥이 치자 알론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번에는 번개가 바로 그의 눈앞으로 보였고, 그 번개가 그를 강타했다.
콰콰쾅!
“으, 으아아악!”
번개에 강타당한 그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철푸덕 하고 쓰러져 기절했다. 하지만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면 쓰러져 기절한 그의 몸에는 번개로 인해 얻은 화상이나, 외상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어둡다…….’
정신이 든 이환은 무언가 어둡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왜 어두운 것인지에 대해 의아해하는 듯싶더니, 자신의 눈꺼풀이 내려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힘겹게 눈을 떴다.
“……!”
벌떡.
퍽.
“악!”
“윽.”
힘겹게 눈을 뜬 그가 자신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내로 인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을 내려다보던 사내와 머리가 부딪쳤다.
“괜찮아. 알론?”
“으윽, 음……? 크, 크으으윽!”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사내가 머리를 비비며 묻자 이환은 뭐라 말하려다, 이내 머리에 극심하게 찾아오는 고통으로 인해 말을 잇지 못했다. 무언가 머리로 비집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곧 그의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허억허억.”
그리고 그 고통은 약 2분 정도 지속되었고, 고통이 사라지자 이환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이 내가…… 알론이라는 사람이 된 건가……?’
방금 전 그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본래의 몸의 주인 알론의 것이었다. 알론의 기억을 그대로 받은 이환은 마지막, 알론이 천둥을 맞기 전까지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알론이란 본래의 몸의 주인은 죽어 버리고, 자신은 알론의 기억과 자신의 영혼만을 가지고 본래 몸의 주인의 속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왜 그러는 거야. 정말 어디 아픈 거야?”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스가 또다시 걱정스러운 듯 물어오자 재빨리 상황을 인식한. 이제는 알론이 되어 버린 그가 대답했다. 그의 대답을 들은 한스가 고개를 갸우뚱해 보였다. 무언가 왠지 모르게 평소 알론의 말투와 다른 느낌이 났다.
하지만 곧 괜한 걱정이라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어제 너무 과음시켜서 그런 것 같으니까, 오늘은 푹 쉬도록 해. 단장님한테도 내가 말해 놓을 테니까.”
말을 마친 한스가 곧 방을 빠져나갔다. 그가 빠져나가고, 알론이 황급히 몸을 일으켜 거울을 찾았다. 그리고 곧 자신의 앞에 있는 거울을 발견하고는 자신을 비춰보았다.
확실히 자신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잘생긴 것 같으면서도 순해 빠진 얼굴. 민소매 사이로 보이는 잘 다져져 있는 몸매. 그리고 턱에 조금은 너저분하게 자란 턱수염과 보통 자신의 키보다 10cm는 더 큰 키.
믿을 수 없는 현실이기는 했지만 이제는 믿어야만 하는 사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기, 기사……? 왜 하필 환생을 했는데 기사로 태어난 거지? 그보다 이 사람……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었군.”
기사라는 부분에서 의문을 느끼던 알론이 곧 이 사람의 기억을 끄집어내 이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신체적으로는 강하지만 내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약하여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사람.
또한, 권력에 대한 욕심을 모르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본래 몸의 주인 알론이었던 것이다. 본래 냉철했던 검사였으며, 수단과 방법이라는 것을 몰랐던 이환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후, 후후후. 그래 까짓거 이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한참 거울을 바라보던 알론이 곧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웃어 보였다. 꽤 재밌을 것 같았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게 되었다는 것이, 또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새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
비록 다른 이의 몸이기는 했지만, 이제부터 그는 변할 것이었다. 이환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