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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 1권(5화)
제2장 함께 일해 보지 않겠나?(2)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로서는 기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알론이 자신에게 웃어 보이며 자신이 건네는 보석 상자를 건네받은 노부인의 말에 대답했다. 현재 알론의 몸으로 이환이 들어온 지 한 달가량이 지난 상태였다.
그동안 알론은 예전의 알론과는 다른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꽤 인식이 되기 시작했다.
예전의 알론이 순둥이, 혹은 기사로서의 자질이 없는 이. 라고 사람들에게 보였던 것에 반면, 요즘의 알론은 법을 실천하는 이. 혹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물러섬이 없는 이로 보이고 있었다.
또한, 요즘 알론은 일부러 자신이 나서서 황도 내에서 발생하는 범죄들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가 이토록 범죄 소탕 혹은 기사 일에 애쓰는 이유는, 지금 자신이 있는 위치보다 더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알론은 이 몸의 주인이었던 사람을 예전과는 다른 이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제4기사단이라는 것을 떠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였다.
그 때문에 이렇듯 황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진하여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저…… 이거 내가 고마워서 그러는 건데…… 기사양반, 이거 받아요.”
금은보화가 쏠쏠하게 들어 있는 보석 상자를 도둑맞았던 커렌 노부인이 자신의 집 앞에 있는 알론을 손을 이용해 살짝 집 안으로 밀어 넣더니, 이내 바깥을 살피고는 문을 닫은 뒤 알론의 주머니에 보석 상자에서 꺼낸 에메랄드가 박힌 반지 하나를 넣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주머니에 에메랄드 반지 하나를 넣어 주자 알론이 잠시 바라보는 듯싶더니, 이내 반지를 다시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런 것을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닙니다.”
“내가 고마워서 그래요.”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알론이 다시 자신에게 받기를 권하는 노부인의 말에 또 한 번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의 거부 의사에 또다시 뭐라 말하려던 노부인이 알론의 표정이 썩 탐탁지 않다는 것을 보고는 관두자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언제 한번 식사라도 하러 오세요.”
“그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부인이 포기하자 입가를 살짝 올려 웃어 보인 알론이 곧 상체를 숙여 보인 뒤 노부인의 집을 빠져나왔다.
이렇듯 알론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무언가를 주려고 하였던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알론은 모두 거절하였다. 자신은 기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고, 그 때문에 황궁에서 나오는 돈이 있었다.
헌데, 일한 대가로 돈을 받는 자신이 그들이 건네주는 것들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물론 법에도 위반되는 행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디 갔었어?”
“커렌 부인 좀 만나고 왔어.”
황궁으로 돌아오자마자 그의 절친인 한스가 기다리고 있었던 듯 그에게 물었다.
“벌써 범인을 잡은 거야?”
한스가 커렌 부인을 만나고 왔다는 그의 말에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 알론이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대단하다…… 그 범인은 한 달 동안 제1기사단원들도 잡기 힘들어 했던 녀석인데…….”
“뭐…… 운이 좋았나 보지.”
한스의 감탄 어린 시선에 알론이 대충 얼버무렸다. 하지만 한스는 그것이 단순히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스가 요즘 들어 본 알론은 예리하고 날카로운 사람이었다. 어떤 일이든 척척 차분하게 해내고, 범죄가 일어나면 마치 자신이 범죄자가 된 듯 범죄자의 심리를 꿰뚫고 있었다.
그랬기에 요 근래 10일 동안 알론이 해결한 범죄의 횟수만 세 번이 넘었다.
제4기사단에서 10일 동안 세 개의 사건을 해결한 것은 꽤 실적이 높은 것이었다. 때문에 딱 한 개밖에 해결하지 못한 한스는 조금 알론이 부러워졌다.
‘제길…… 그래도 언제나 나보다 못하던 녀석이었는데…….’
딱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알론은 한 달에 하나의 일을 해결할까 말까 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달에 열 건 정도 되는 일을 해결해 버리니. 아무리 친구지만 조금은 질투가 나는 게 사실이었다.
“밥 먹었어?”
“이제 먹어야지.”
“잘됐다. 나도 아직 먹지 않았으니.”
알론의 대답에 한스가 속으로 조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까지 한스가 사실 알론을 기다리고 있던 이유는 그와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왠지 모르게 매일같이 함께 식사를 하였던 친구와 오늘 하루 함께 먹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곧 식사를 한 그들이 이내 수련장으로 향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 그런 알론의 눈에 한 귀족과 황궁 내의 하녀 한 명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였다. 둘이 이야기하는데 알론이 반응을 보일 이유가 무엇이 있겠냐마는 사실 지금 현재 앞에 보이는 귀족이 귀족답지 않게 조금은 추한 꼴을 보이고 있었다.
“하녀 주제에 거…… 술이나 한잔 하자니까.”
“정말 왜 이러세요, 아르튼 남작님.”
아르튼 남작이라는 사람이 앞의 하녀가 마음에 들었던 듯 술자리를 권하고 있던 것이다. 사실 현재 아르튼 남작의 앞에 있는 여성은 황궁 내에서도 손꼽히는 하녀들 중 꽤 이쁜 편에 속하는 에르웬이라는 하녀였다.
“거 비싸게 구는군! 정말 이러긴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웃어 보이던 아르튼 남작이 계속하여 그녀가 거부하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성을 내듯 말했다.
그에 그녀의 표정이 살짝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아르튼 남작은 여자 쪽으로는 소문이 안 좋은 사람으로 유명했다.
때문에 덜컥 겁이 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에르웬과 아르튼 남작이 술자리를 갖네 안 갖네를 하여 이야기를 나눌 때, 알론이 그 둘의 딱 중간에 끼어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아르튼 남작님. 제4기사단의 알론 더 프레인이라고 합니다.”
“으, 으음! 그, 그래요! 알론 경. 헌데 무슨 일로?”
갑작스럽게 가운데에 딱 끼어들어 인사를 해 보이는 그로 인해 살짝 당황한 아르튼 남작이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남작님께서는 법을 어기고 계십니다. 비록 이 여성 분이 황궁에서 일하는, 아르튼 남작님보다 신분이 낮다 하지만 분. 명. 히 거절 의사를 밝히셨습니다. 하지만 계속 이러신다는 것은 법에 위반된다고 생각합니다.”
“버, 버어어어업!?”
이제까지 자신이 황궁 내의 하녀들에게 찝적거리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아르튼은 제4기사단의 알론 더 프레인이라는 기사가 갑자기 태클을 걸어오자, 당황했다.
“예. 지금 당장 남작님께서 하시는 이 행동을 그만두시지 않는다면 연행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뭐,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알론의 또다시 이어진 말에 아르튼 남작이 속으로 그를 곱씹었다. 고작 여자 문제 때문에, 더군다나 하녀 따위로 인해 자신을 연행해 가겠다니? 귀족인 그에게는 미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곧 하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빠졌다.
“차, 참! 급한 일이 있었지!”
그는 마치 급한 일이 본래 있었던 것처럼 후다닥 그곳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알론이 다시 제 갈 길을 가기 위해 몸을 돌리려 했다. 그때 자신의 앞에서 양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커스 공작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커스 공작님.”
“그래. 오랜만이군. 그보다 자네…… 역시 재밌군.”
커스 공작이 삐뚤어진 안경을 맞추며 피식하고 웃어 보였다.
‘다행이군. 그때의 그 행동은 본래 이 사람이 가진 본질이었어.’
커스 공작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혹여 그때 보여 준 알론의 행동이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했던 커스 공작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그가 보여 준, 한 귀족에게 법에 대해 운운하며 그의 행동을 제지하는 그의 모습은 가히, 자신이 찾고 있는 적임자와 흡사하다고 볼 수 있었다.
“나와 차나 한잔 하겠나?”
“차…… 말입니까?”
뜬금없이 차를 한잔 하자는 말에 의문을 띄운 알론이 곧 자신의 옆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한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난 상관없으니, 네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렇다면, 그러도록 하죠.”
한스의 말에 알론은 지금 딱히 수련장에 가서 수련을 하는 것 빼고는 할 일이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는 곧 커스 공작을 뒤따라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알론 녀석이 또 사고를 쳤나……? 갑자기 웬 차? 아무튼 요즘 저 녀석 조용한 날이 없는 것 같군.”
한스가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요즘 들어 알론의 주위로 조용한 날이 왠지 없던 것 같다.
일주일 전에는 어떤 귀족에게 방금 전 아르튼 남작의 일과 같이 법에 대해 운운하였다가 대판 말싸움을 하였던 때가 있었다.
더군다나 그때, 귀족의 연행할 테면 해 봐! 라는 말에 알론이 정말 그를 연행했었다. 그때는 정말 한스가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었다.
그는 처음에 알론이 빈말로 겁을 주는 것인 줄 알았다. 헌데 진짜로 연행하다니, 무엇을 믿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그때 한스는 계속 두고 봐도 될 것인지 심히 걱정했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잠시 한 자리에 서서 꿍얼꿍얼 중얼거리던 한스가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내 조금은 씁쓸히 수련장으로 향했다.

“거기 앉지.”
사무실로 온 커스 공작이 그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그에 탁자 하나가 놓여 있고, 양 맞은편에 푹신한 소파가 하나씩 있는 자리 중 한 자리를 찾아 알론이 앉았다.
“금방 끓여 줄 테니. 기다리게.”
커스 공작이 마법 주전자를 이용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마법 주전자는 마법사들이 만든 물건으로 뜨거운 물 없이도 물을 끓일 수 있게 해 주는 편리한 도구였다.
쪼르르.
물이 다 끓자 커스 공작이 찻잔에 물을 쪼르르 따랐다. 꽤 능숙한 모습이, 그가 꽤 차를 좋아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딸칵.
“마시지.”
“네.”
어느새 알론의 앞으로 약간 연초록색을 띠는 차가 놓여졌다. 알론이 그의 말에 대답하고는 찻잔을 살짝 들어 입안을 축였다.
‘괜찮군.’
차 맛은 꽤 괜찮았다. 입안과 코 안으로 퍼지는 향이 맛있는 차라는 것을 보여 줬다.
딸칵.
“내가 자네를 이렇게 부른 것은 할 이야기가 있어서이네.”
“할 이야기요?”
알론과 마찬가지로 차로 입안을 적신 커스 공작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할 이야기. 흐흠,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커스 공작은 알론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때문에 더욱 많은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길게길게 할 필요가 조금 있었다.
“본론만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지만 커스 공작의 바람과는 다르게 알론은 길게 끄는 것을 싫어하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후, 후후. 그, 그러지. 역시 자네는 뭔가 다르군.”
커스 공작에게 이렇듯 말을 할 수 있는 이는 황궁 내에서도 손가락에 꼽혔다. 더군다나, 기사들 중에서는 아무도 자신에게 이렇듯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알론의 당돌한 행동은 커스 공작이 조금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자네…… 자네 말이야. 만약 누군가 황궁 내에서 범죄를 저지른다면 어떻게 할 건가?”
“당연한 이야기를 묻는군요. 전 기사 된 자로서 잡을 것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자가 황제 폐하도 쉽사리 손도 못 댈, 혹은 제국 내에서 손꼽히는 귀족 중의 귀족이라면?”
커스 공작이 살짝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는 앞으로 알론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심히 기대가 되었고, 알론은 커스 공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제국 내에서 손꼽히는 귀족이라고 한들, 황제 폐하도 쉽사리 어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건 그뿐입니다. 저는 기사 된 도리를 하면 되는 것이고, 그들이 그 후 저에게 무슨 일을 하든, 그건 나중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 그런가?”
너무나 간단명료한 대답에 커스 공작이 오히려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원하던 대답은 맞았지만 너무 쉽사리 대답하는 그로 인해 ‘이 녀석 혹시 바보라서 그런 거 아냐?’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곧, 찻잔을 홀짝이다 방금 전 위풍당당 말했던 알론과 눈이 마주친 커스 공작이 자신이 허튼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진심이었다. 또 그는 바보도 아니었고,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도 아니었다. 설령, 그 누구라 할지라도, 만약 커스 공작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잡아들이겠다는 생각이 그의 눈에서 보였다.
또한,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정말 커스 공작이 말했던 예처럼 그 귀족을 알론이 어찌한다면 분명 보복이 크게 생길 것이다.
하지만 알론에게는 그 보복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해볼 테면 해봐라. 라는 식의 표정이 엿보였다.
‘이자다! 역시 이자가 날 보좌할 만한 사람이야!’
커스 공작이 이제야 확신이 선 듯 옳거니 하였다. 이자였다. 자신이 몇 개월간 찾아다녔던 자신을 쉬게 해 줄 보좌관! 그리고 앞으로 자신을 대신해 줄 사람! 알론 더 프레인이었던 것이다.
‘이, 이거 제4기사단에서 나올 줄이야.’
비밀리에 활동하는 황대사. 그리고 그의 보좌관이 될 사내 알론 더 프레인. 커스 공작은 제4기사단에서 자신이 이토록 마음에 쏙 들고, 적임자라고 단번에 생각하게 된 이가 나오게 될 줄 몰랐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알론이 탐나는 마음은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제4기사단이라고 하면 어떠랴, 오히려 그것이 더 잘된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알론과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은 커스 공작이 조금은 식어 버린 차를 단 한 번에 입안으로 털어 넣고는 말했다.
“자네…… 나와 일해 보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