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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 1권(6화)
제3장 황대사의 보좌관(1)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지하게 묻는 그의 말에 알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뜬금없이 자신과 일해 보지 않겠냐라니? 의문을 표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었다.
그의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에 곧 커스 공작이 진지한 표정으로 양손을 깍지 낀 뒤 턱 아래에 받치며 말했다.
“자네 내가 황궁 내에서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나?”
“물론 알고 있습니다. 황궁 내에서 공작이란 직위를 가지고 있기도 하시며, 소드 마스터로서 황궁 내의 기사들을 모두 통솔하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그래, 아주 잘 알고 있군.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 내가 가진 또 다른 무언가가 있지.”
“또 다른 무언가요?”
갑자기 자신과 함께 일해 보자고 하였다가 이번에는 자신이 어떤 이인 줄 아는지 물었던 커스 공작으로 인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던 알론이 그의 말에 또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니? 알 수 없는 소리뿐이었다.
“황대사. 황궁 내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 이는 황제를 대신하는 사람이라는 말로서 귀족들의 비리 등을 잡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네. 난 이제껏 이 일을 비밀리에 5년 이란 시간 동안 해 왔네.”
“비밀리에 말입니까? 그렇다면…… 저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시는 이유가 뭐죠?”
5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황대사라는 일을 했다면 이렇듯 쉽사리 자신에게 말해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알론의 생각이었다.
헌데 그의 입에서 술술 황대사라고 나오니, 조금은 황당하면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를 자네에게 해 주는 이유는, 요즘 난 나를 도와 나와 함께 일해 줄 보좌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네. 그리고 난 그 보좌관을 자네로 점찍은 거고.”
“보좌관이 돼 줄 사람이요?”
알론의 조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에 커스 공작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뭘 믿고 대체 그런 비밀리에 활동한다는, 황대사의 보좌관을 맡긴다는 건지 알론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커스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물음에 답해 주자 단호하게 말했다.
“싫습니다. 별로 내키지 않는 이야기군요.”
알론으로서는 애당초 달갑지 않은 제의였다. 황대사의 보좌관이라니,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직업이었으며, 또한 그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방금 전 커스 공작이 말해 주었던 게 다였다.
헌데, 커스 공작이 그 일을 함께 하자고 해서 덥석 ‘네! 하겠습니다’ 하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내가 왜 이렇듯 자네를 내 보좌관으로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군. 그럴 만도 하지. 내가 자네에게 이렇듯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자네의 신념 때문이지. 그 어떤 이에게도 물러서지 않는 패기! 자신의 앞을 막는 것이 그 어떤 것이라고 할지라도 법 하나만으로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가짐! 그 모든 부분이 이 나를 충족시켜 줬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스 공작님이 말씀하시는, 그 황대사의 보좌관이라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커스 공작의 설득하는 말에도 불구하고 알론이 이번에도 고개를 저어 극구 사양을 했다. 분명 그 황대사의 보좌관이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알론 본인은 그 황대사의 보좌관이 쉬운 일이 아니라서 거절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하기 싫었다. 그 이유뿐이었다. 남들에게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숨겨 가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껄끄러웠고, 또 조금은 커스 공작을 대신해 그를 보좌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뿐이다.
“자네 정말 이러기인가?”
자신이 설득해 보았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알론으로 인해 커스 공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웬만한 이들이라면 자신의 설득 어린 말에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 넙죽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앞의 알론은 거절하였다. 자신을 보좌하라는 자신의 청에 말이다. 때문에 조금은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알론을 바라보고 있던 커스 공작이 이내 피식 웃더니 폭소했다.
“푸, 푸하하하. 그래. 역시 자네는 남들과 달라! 하하하! 이렇게 나와야 내 보좌관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지!”
커스 공작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커스 공작 본인도 황궁에서 직위가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 자신의 청을 거절했다는 것은 알론이 자신 말고도 다른 귀족들에게도 이렇듯 조금은 무식하지만 돌격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 때문에 더욱더 그가 탐이 났다.
그랬기에 커스 공작은 꿩 대신 닭이라고 일단은 어떻게 해서든 그를 잡아 두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다면 말이지. 자네가 내 보좌관이 되기 싫다면 임시 동안, 내게 잠시 여유가 생길 동안만이라도 날 보좌해 주게.”
“잠시 동안 말입니까?”
잠시 동안 자신을 보좌해 달라는 그의 청에 이번에는 알론이 단번에 거절하지 않고는 고민을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대사가 비밀리에 활동하는 일인 만큼 현재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신이 커스 공작의 말처럼 임시지만 보좌관을 해 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덥석 받아들일 수는 없었기에 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고, 그가 결국 간청 어린 눈빛의 커스 공작으로 인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임시로라면 받아들이도록 하죠.”
“후, 후후후. 분명 자네 입으로 대답한 것이네.”
커스 공작이 그의 대답에 조금은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웃음에 알론이 미간을 찌푸렸다. 알론은 걸려든 것이다. 커스 공작의 덫에 말이다.
커스 공작의 속셈은 그에게 임시 보좌관이라는 말을 붙여, 언젠가는 자신 쪽으로 완전히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
“그렇다면 내 임시 보좌관 알론 더 프레인. 내일부터 내 사무실로 출근하도록 하지. 뭐 다른 이들에게는 내가 시킨 일이 있다고 둘러대도록 하고 말이야.”
“그러도록 하죠.”
커스 공작이 마지막으로 그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고, 곧 알론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인사를 해 보인 뒤 밖으로 나섰다.
“저 친구의 행보가 정말 기대되는군. 후후후.”
커스 공작이 그가 나간 자리를 보며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어 댔다.

***

우두둑우두둑.
잠에서 깨어난 알론은 자신의 몸의 뼈 마디마디를 풀어 줬다. 뼈의 마디마디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더욱 시원해지는 느낌을 그가 느꼈다.
“자, 가 볼까.”
뼈의 마디마디를 푼 그가 나갈 준비를 마치고는 문고리를 잡았다.
바로 오늘부터가 커스 공작의 보좌관으로서의 첫날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날이었다.
과연 황대사라는 직업의 보좌관이 무엇을 할지 알 수는 없었지만 꽤 기대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문고리를 잡은 알론이 곧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그를 반겨 준 것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스였다.
“여어, 오늘은 조금 늦었네.”
한스가 웃어 보이며 늦은 그에게 말했다. 어떻게 보면 한스는 매일같이 먼저 알론의 방 앞에 오거나, 방에 들어와 알론을 깨워 주는 것을 보면 황궁 내에서도 꽤 부지런한 이였다.
물론 그 부지런한 몸을 고작 친구를 깨워 주는 데에 쓰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왁자지껄.
어느새 식당으로 온 이 둘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던 알론이 한스에게 대충 둘러대야 한다는 생각에 음식물을 모두 씹어 넘기고는 말했다.
“한스, 나 오늘부터 가끔 커스 공작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러 갈 것 같아.”
“응? 커스 공작님이 시키신 일?”
뜬금없이 커스 공작이 시킨 일을 하기 위해 가끔 자리를 비운다는 식의 그의 말에 한스가 음식물이 입안 가득 들어 있음에도 답했다.
“그럼 어제 그것 때문에 커스 공작님께서 널 부르신 거야?”
“응.”
“흐음…… 수상한데, 커스 공작님이 고작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뭔가 일을 시키실 사람이 아닌데. 혹시 숨기는 거 있는 거 아냐?”
뜨끔.
한스의 꽤 예리한 지적에 알론은 속으로 뜨끔하였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표도 나지 않았기에 그가 가볍게 시치미를 뗐다.
“무슨 잡일 같은 거 시키려나 보지.”
“그래? 크흐흑, 불쌍한 자식. 요즘 그렇게 나대더니, 결국 커스 공작님에게 찍혀 잡일이나 하러 가는구나.”
알론의 말에 피식하고 웃은 한스가 곧 우는 제스처를 취하며 장난을 쳤다. 그의 행동에 알론이 잘 넘어갔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식사를 마친 그 둘이 곧 수련장으로 향해 대충 아침운동을 했다. 아침운동이 끝나는 시각이 9시쯤에 되었기에 그때쯤에 커스 공작의 사무실로 가도 별 무리가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대충 아침운동을 마친 알론이 기사단장 제이온에게 커스 공작과 함께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며 둘러대고는 빠져나왔다.
수련장을 빠져나온 그가 어느새 커스 공작의 사무실 앞에 다다랐다. 그의 가슴에 꽤 긴장감이 어렸다.
똑똑.
“들어오지.”
노크 소리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답변 소리가 들려오자 알론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응?”
문을 열고 들어온 알론은 평소 못 보던 이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못 보던 이들의 숫자는 세 명으로 자신도 가끔 황궁 내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이들이었다.
“누구죠……?”
황대사는 비밀리에 활동하는 직업이라고 바로 어제 커스 공작이 이야기해 주었다. 헌데, 그런 비밀리에 활동하는 황대사와 다른 누군가들이 있자, 알론이 의문이 들었다.
“아아, 내가 말 안 했나? 자네 말고도 나를 도와주는 이들은 한두 명이 아니지.”
“한두 명이 아니라구요……?”
알론이 여태껏 말해 주지 않다가 지금에서야 말해 주는 커스 공작으로 인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네. 각자 하나씩 맡은 일이 있는 사람들이네. 이쪽 라스는 뒤처리 담당으로 업무 수행 중 생기는 뒤처리를 하고 있지. 또 저쪽의 갈색 머리는 기온이네. 서류 같은 거나, 승인서 같은 서류 작성을 맡고 있네. 쉬워 보이지만 기온이 처리하는 서류가 하루에 500장이 넘지. 크큭.”
커스 공작이 기온이라는 사내를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알론이 기온을 바라보자 그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고, 그에 알론도 고개를 살짝 숙여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일. 자네와 마찬가지로 기사이네. 제1기사단의 기사 말이야.”
마지막으로 커스 공작이 소개한 이는 카일이라는 기사였다. 카일은 꽤 실력 있는 기사로 통하는 이였다.
하지만 조용한 성격과 차가움 때문에 많은 이들이 말을 걸기 꺼려하는 이였다.
“커스 공작님. 이의가 하나 있습니다.”
“뭔가?”
알론이 카일이라는 기사에게 시선을 두자 카일이 커스 공작에게 이의를 청했다.
“저 사람은 제4기사단의 사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런 사람이 저희 보좌관들 중 한 명이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곧 이어진 카일이라는 사내의 말에 알론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에 비해 커스 공작은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크큭, 하긴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알론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맡은 바의 최고의 이들이니, 알론이 가소로워 보일 만도 하겠지. 하지만 저 사람도 꽤 호락호락한 녀석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커스 공작이 알론에게 쏘아진 불덩이를 대충 얼버무렸다. 커스 공작의 말과 함께 더 이상 카일이라는 사내는 반박하지 않았다.
커스 공작은 웬만해서는 누군가를 도와주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알론을 옹호해 주는 걸로 보아, 커스 공작의 말처럼 무언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보다 알론, 알고 있겠지? 보좌관이 되었으니,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는 걸?”
“테스트요?”
테스트라는 말에 알론이 미간을 찌푸리며 의문을 표했다. 분명 자신에게 애초에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었던 커스 공작이다. 헌데 지금은 그런 사실도 몰랐냐는 표정을 지으며 조금 한심스럽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이런 중대한 일에 합류했으니, 테스트를 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지.”
“하아…… 테스트가 뭡니까.”
자신을 한심스럽게 바라보는 커스 공작의 시선과 주위의 시선에 슬쩍 주위를 한번 둘러본 알론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테스트는…… 음…… 뭐 쉬운 걸로 하도록 하지. 어디 보자.”
커스 공작이 이내 한 종이 뭉치를 집어 들어 빠르게 눈으로 스캔하며 넘겨 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괜찮은 걸 발견한 듯 말했다.
“제2기사단의 레일이라는 기사 알고 있겠지? 이번에 그 기사가 약을 한다는 신고가 들어왔더군.”
“약 말입니까?”
약이라는 말에 알론이 표정을 잔뜩 찌푸렸다.
“그래. 약. 흔히 마약이라고들 하지. 아무튼 자네는 레일 경을 충분한 정보 수집과 물증 확보 후 잡아오면 되는 것이네. 자네가 잡아오면 뒤처리는 레스가 알아서 해 줄 거고, 그가 벌을 받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기온이 알아서 해 줄 거네. 할 수 있겠나?”
커스 공작이 양 팔짱을 끼며 물었다. 분명 커스 공작이 쉬운 걸로 해 준다고 했었으니 충분히 할 만한 일이어야 했다. 하지만 전혀 쉬운 일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첫날부터 같은 팀원들 앞에서 ‘못하겠습니다’ 하며 망신을 당할 수는 없었기에 그가 수락했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네. 그래야 황대사 보좌관이지.”
그의 수긍의 답에 커스 공작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고, 곧 말을 이었다.
“그리고 기간은 1주일 정도 주도록 하지. 그 안에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게 좋을 거야. 혹시 그 마약을 레일이 다른 이들과 공유하려 한다면 일이 커질 테니 말이지.”
“알겠습니다. 전 그럼 이만.”
주위의 서먹서먹한 분위기와 자신에게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알론이 후다닥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묵묵히 있던 카일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