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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 1권(7화)
제3장 황대사의 보좌관(2)
“제2기사단의 레일 경의 일은 제가 맡은 일 아닙니까.”
“오늘 하루는 자네가 양보해 주지. 저 친구에게 기대가 되어서 그러네.”
카일이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인상을 잔뜩 쓰며 말했다. 그에 커스 공작이 양해를 구했다. 사실 카일도 알론과 마찬가지로 범인을 잡아오거나, 혹은 물증을 잡는 데에 투입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졸지에 자신이 맡은 임무를 빼앗겼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어째서 제가 있는데 저런 사람을 영입한 거죠? 저 혼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카일이 이번에는 다른 걸 걸고넘어졌다. 실상 그로서는 자신 혼자서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헌데 갑자기 웬 돌이 굴러 들어오자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자네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다라…… 그래 충분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이렇다 할 특별한 일에 나선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는 생각 안 하나? 또 미래를 위한 방편이라고 생각을 해 두게. 그리고 자네들은 저 친구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저 알론에게 기대가 되는 군. 두고 보게. 분명 알론은 일주일 내로 레일 경을 잡아올 것이네.”
“1주일이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거죠?”
1주일이라는 시간이면 꽤 촉박한 것이었다. 심증을 조사하고, 또 용의자에 대해 조사를 해 가며 물증이 확보되면 잡아들여야 한다.
이런 일들을 단 일주일 만에 하는 것은 꽤 벅찬 일이었다.
“어떻게 확신한다라…… 난 저 사내의 가치관을 믿네. 참으로 독특한 가치관이지. 그리고 저 사내는 왠지 내 이 기대를 실망시킬 것 같지가 않군.”
“그렇다면 단순 감이시군요.”
“뭐 그럴 수도 있지.”
카일의 말에 커스 공작이 정곡을 찔렸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카일과 그 주위의 이들이 한숨을 쉬었다.
‘저 늙은이가 혼자서 일을 추진하다니.’
다른 팀원들로서는 조금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 하루는 팀원들 휴식 기간이었다. 헌데 그 휴식 기간인 단 하루 만에 이제부터 함께 할 사람이다. 하고 떡하니 누군가를 상의 없이 데려왔으니 마음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알론이 영입된 것은 사실이었기에 커스 공작에게 따지지는 못하고, 조용히 알론이 과연 1주일 내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자,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알론이 대충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끝낼지에 대해서 말이다.
“일단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조사겠지?”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던 알론이 가장 먼저 시급한 건 레일에 대한 조사라고 여겼다. 아직 레일에 대해 소문이 도는 것일 뿐이지, 레일이 마약을 한다고 확실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가장 먼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아낸 알론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제2기사단이 있는 수련장으로 향했다.
제2기사단은 주로 황도에서 영지 쪽으로 물품을 배송하는 상인들이나, 혹은 이름 높은 귀족들을 호위하는 일을 맡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수련장에 있는 이들은 오늘 딱히 귀족 호위라던가, 상단 호위에 투입되지 않아 수련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 하루 레일은 일을 하러 간 듯 수련장에서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알론이 잘되었다는 생각에 곧 땀을 뻘뻘 흘리며 손 부채질을 하며 쉬고 있는 기사에게 수련장에 놓여 있는 농구공만 한 주전자에서 물을 한 컵 따라 그에게 다가갔다.
“열심히시군요. 물 한잔 마시도록 하시죠.”
“아. 네. 가뜩이나 목이 말랐는데.”
기사는 뜬금없이 자신에게 다가와 물을 건네는 그로 인해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물을 받아 들고는 목구멍 뒤로 넘겼다. 메말라 있던 그의 목구멍을 시원한 물이 한 아름 적셔 줬다.
“크.”
갈증을 해소한 그가 감탄사 비슷한 것을 내뱉었다.
“그보다 오늘 레일이 보이지 않네요?”
그가 물을 단번에 들이켠 것을 본 알론이 은근슬쩍 레일이 보이지 않는다며 마치 자신의 친구인 양 말했다.
“아. 레일 경 오늘 상단 호위 때문에 투입되신 걸로 압니다. 친구 분이신가 봐요? 보통 기사들끼리는 ‘경’ 자를 붙이는데.”
“네. 흐음. 녀석, 갈 거면 미리 귀띔이라도 해 주지.”
알론이 남우주연상 급의 연기를 펼쳤다. 그에 앞의 기사는 껌뻑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요즘 레일이 무슨 일 있나요? 통 안 보여서 말이죠.”
알론이 은근슬쩍 그에게 물었다. 일부러 들키지 않게, ‘이상한 점 있나요?’가 아닌 ‘무슨 일 있나요?’로 바꿔 말했다.
“아니요. 무슨 일이라…… 딱히 그럴 일은 없던 것 같은데…… 그것보다 레일 경이 요즘 조금 평소와는 다르더라고요.”
“……평소와는…… 다르다고요?”
알론이 그의 말에 단번에 단서라는 것을 알아챘다.
“네. 뭔가 숨기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아픈 것 같기도 한데, 또 다음 날이 되면 쌩쌩해지더라고요.”
“그렇군요.”
기사의 말을 들은 알론이 소문의 진실성 여부가 더욱 높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기사에게 대충 레일에 대해 몇 가지 사실을 더 들은 알론이 곧 수련장을 빠져나가는 몇몇 기사들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일단 한 사람에게 정보를 얻었으니, 다른 이들에게도 정보를 얻어야 했다. 그렇게 알론이 제2기사단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얻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방으로 돌아온 그가 기사들이 해 준 이야기를 듣고는 소문의 진실성 여부가 상당히 높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어떤 기사에게는 곱게 빻아진 무언가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다가 목격이 되었던 적이 있다고도 들었다.
때문에 레일에 대해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난 알론이 일어나자마자 고민에 잠겼다. 본격적인 수사에 앞서서 무언가 증거가 필요했다.
하지만 예전 이환이 살았던 세계에서라면 모를까. 이곳에서 마약에 대해 증거물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약의 복용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주로, 피 검사 혹은 소변 검사와 그 외 등등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방법이 이곳에서는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아아…… 어쩐다.”
그가 아픈 머리를 부여잡았다. 한숨 자고 나면 맑아진 머리로 대충 계획을 짜려던 그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레일의 마약 복용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사실 이 때문에 이스론트 대륙은 꽤 많은 마약복용자들이 존재하였지만 마약복용자들을 걸러 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딱 한 가지 마약복용자들을 걸러 내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마약복용자들이 일으키는 부작용이었다.
보통 마약복용자들이 일으키는 부작용은, 환각 증상과 몸의 나태해짐. 또한 구토와 정신 이상 그 외 등등이 나타나며 또 심각한 중독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각 제국마다 빠르게 잡아들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마약을 복용한 이가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몸이 쇠약해진 때였으며, 마약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그런 심각한 중독에 이르렀을 때였다.
결국 알론이 딱히 증거 확보에 대해서 방법을 알아내지 못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였다. 밖으로 나온 알론이 곧 한스와 합류하여 수련을 하거나, 황도에서 들어온 신고를 접수하여 일을 해결하는 등의 일을 하며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평범한 하루가 끝이 나고, 밤이 되었을 때 아침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쥐어 싸고 있는 알론의 방문을 익숙한 목소리의 누군가 두들겼다.
“알론∼.”
그 익숙한 목소리는 역시나 한스였다. 한스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조금 귀찮다는 것을 느꼈지만 알론이 곧 하는 수 없다는 듯 문을 열어 주었다.
“술이나 한잔 하자∼.”
알론이 문을 열자 술병 하나와 오징어를 들고 있는 한스와 그의 뒤에 서 있는 한 사내가 보였다.
“저분은 누구……?”
“아아…… 나하고 조금 친분이 있으신 분인데, 황궁 마법사 제4사단 소속이신 하룬 포 레스트라는 마법사 분이셔.”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한스의 소개와 함께 자신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는 황궁 제4사단의 마법사라는 하룬에게 곧 알론도 맞춰 끄덕여 보였다.
“하룬 님도 술이 고프신 거 같아서 내가 데려왔어.”
한스가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오자 곧 하룬이라는 마법사도 그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알론의 방에는 의자가 두 개밖에 없었기에 침대 쪽으로 탁자를 끌어와 알론은 침대에 앉고, 하룬과 한스는 의자에 앉게 하였다.
‘에잇. 모르겠다. 오늘은 술이나 마시자.’
괜히 풀리지 않는 일, 머리를 꽁꽁 쥐어 싸맨다고 쉽게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그가 오늘 하루는 그냥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말고, 한스와 함께 술이나 마시기로 하였다.
“자자∼ 한잔 받으시고∼ 원샷∼.”
하룬이라는 마법사도 그렇게 말솜씨가 있는 것은 아닌 듯 역시나 한스가 주를 이뤄 술자리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서서히 셋 모두의 얼굴에 홍조가 띠기 시작할 때, 알론이 하룬에게 궁금한 것이 생각난 듯 물었다.
“하룬 님께서는 주로 무슨 일을 하세요?”
황궁 마법사들도 기사단과 마찬가지로 그 단이 나눠져 있었는데, 역시나 1사단의 마법사들이 가장 높은 위엄을 자랑하는 이들로 5서클 이상의 마법사들이 모인 이들이었고, 또 그 밑으로는 2사단과 3사단, 그리고 역시나 4사단이 제일 영향력이 약한 마법사들이 주를 이룬 곳이었다.
“저요? 저야, 뭐 이것저것 하지만 주로 폐하께 올라가는 음식을 관리합니다.”
“폐하께 올라가는 음식이요?”
“네. 사실 알다시피 4사단의 마법사들이 대부분 황궁 내의 잡일을 맡아 하는데요. 전 특별히 이물질이라던가, 혹은 독소 물질을 찾아내는 마법을 유별나게 잘 사용하는 편이어서 폐하에게 올라갈 음식을 검토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꽤나 독특한 일을 하는 하룬으로 인해 알론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왠지 하룬이 하는 일이 이환이 살았던 대한민국의 과거 왕들의 음식을 대신 먹어 보던 궁녀들과 비슷한 면모가 보였다.
그렇게 그가 하는 일에 대해 듣고 다시 막 입안으로 술을 가져가려던 알론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술잔을 우뚝 멈췄다.
그러고는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하룬을 바라봤다.
제4장 테스트. 그리고 수색(1)
“그렇다면 혹시, 소변 내에 존재하는 독소 성분도 찾아낼 수 있는 겁니까?”
알론이 우뚝 멈춰서 하룬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정말 음식 속 이물질과 독소 물질을 스캔할 수 있다면 소변 내의 마약 성분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글쎄요…… 해 보지는 않았지만 가능할 것 같기는 합니다.”
하룬이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갸웃해 보이는 듯하더니, 말했다. 그에 알론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만약 정말 소변 내의 오줌 성분을 그가 스캔할 수 있다면 충분히 증거를 확보하게 되는 샘이다.
“저 하룬 경. 죄송한 말씀이지만,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소변 성분 스캔을 위해선 그 전에 하룬의 양해를 구해야 했기에 알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들어 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야 뭐…….”
하룬이 술자리를 함께한 사람이고, 또 한스의 절친한 친구라는 생각 때문인지, 우물쭈물거리며 흔쾌히 승낙했다.
“사실 이번에 황도 내에서 황도의 시민 중 한 사람이 마약을 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요. 또 제가 이번에 그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황대사라는 것이 비밀리에 활동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가 거짓말을 가미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무래도 그 사람을 잡아낼 물증이 없다 보니, 증거가 필요합니다. 헌데 알다시피 마약이란 것이 복용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쉽지 않잖습니까. 그러니, 만약 가능하다면 그 사람의 소변 성분을 스캔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방금 소변 이야기를 하였던 이유가 그거였군요. 할 수 있다면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론의 부탁 어린 말에 하룬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에 흔쾌히 승낙했다. 그에 알론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만약 정말 스캔이 가능하다면 일단은 골칫거리 하나를 덜게 되는 것이었다.
“하룬 님! 잔이 비었군요. 제가 따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론이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부탁에 흔쾌히 승낙한 하룬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그렇게 술자리가 오순도순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크으윽. 내가 어제 너무 많이 마셨나?”
잠에서 깨어난 알론이 속 쓰림과 머리의 어지럼증을 동반하며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그가 잔뜩 널브러진 방 안과 자신의 옆에서 드르렁거리며 자고 있는 한스를 발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