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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 1권(8화)
제4장 테스트. 그리고 수색(2)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제4기사단원들이 일주일에 딱 한 번 쉴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늦잠을 잔 것 같았지만 괜찮았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는 그가 곧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혹시 제2기사단의 레일이 돌아왔는지 보기 위함이었다.
알론이 향한 곳은 수련장이 아닌, 식당이었다. 알론이 사실 이제까지 레일을 본 곳은 식당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만큼 제2기사단인 레일과 알론이 마주칠 일이 없던 것이다.
‘저기 있군.’
다행스럽게도 어제 상단 호위를 끝내고 돌아온 듯 레일이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눈 밑으로 조금 짙게 내려온 그의 다크 서클이 피곤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듯싶었다.
‘자, 어떻게 소변을 얻느냐가 문제인데.’
알론이 레일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는 척하며 그를 주시하며 생각했다.
비록 소변 성분을 검출할 만한 방도를 찾기는 하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변을 어떻게 채취하느냐였다.
“한스는 어디 가고 혼자 왔나?”
“아. 단장님.”
그때, 비어 있는 그의 옆자리에 제4기사단의 기사단장 제이온이 자연스럽게 앉았다.
“매일 같이 붙어 다니더니, 이젠 질린 건가? 크큭.”
그가 입으로 음식을 넣으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한편, 알론은 그의 말에 대꾸를 하는 듯하면서도 여전히 시선을 레일에게 두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하여 레일을 주시하던 알론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며 밖으로 나서려는 레일을 보고는 자신도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 제이온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급한 일이 없다면 나 식사할 동안 기다려 주지. 혼자 오니, 씁쓸해서 말이야.”
제이온은 알론마저 가 버리면 이 커다란 식장에서 홀로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먹어야 한다는 것이 기사단장 체면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에 잠시 레일과 제이온을 번갈아 보던 알론이 하는 수 없다는 듯 자리에 털썩 앉았다.
어차피 계속 따라다닌다고 해서 소변을 채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러다가 괜히 의심을 사면 상황만 더 안 좋아질 뿐이었다.
“고맙네. 금방 먹을 테니, 기다리게.”
제이온이 아무래도 식사를 끝내고 나가려는 그를 붙잡은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식사 속도를 높였다. 그에 알론이 한숨을 쉬었다.
“천천히 식사하세요. 그러다 체하십니다.”
“우물우물, 알았네.”
기사단원의 눈치를 살피는 제이온으로 인해 알론이 피식하고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곧 제이온과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차피 기다려 줘야 한다면 담소를 나누는 것이 꽤 좋은 것이었다. 그렇게 제이온의 식사가 끝나 갈 무렵. 제이온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아차 하였다.
“참! 그러고 보니, 오늘 기사단 전체가 소변 검사를 하는 날이었지!”
아무래도 바로 오늘이 1년에 한 번 있는 소변 검사를 하는 날인 듯 제이온의 얼굴로 낭패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비록 이곳 이스론트 대륙에서 소변을 통해 마약, 혹은 몸의 세세한 아픈 곳까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소변의 색으로 하여금 어느 정도 발견할 수 있는 병은 발견할 수가 있었다.
“제길. 누굴 시켜야 한다.”
제이온이 깜빡하고, 전 기사단의 소변을 받아 올 단원들을 뽑지 않은 듯 그의 얼굴로 낭패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자칫 잘못하면 오늘 커스 공작에게 욕을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제이온이 불안감에 손톱을 잘근잘근 씹을 때, 옆에 앉아 있던 알론이 구원의 손길을 보내왔다.
“자, 자네가 하겠다는 건가?”
“네.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알론의 표정은 ‘단장님이 곤란하시지 않게 제가 하도록 하죠.’ 이러했다. 하지만 실상으로는 단순 알론으로서는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신이 자신을 돕고 있는 것인지, 왠지 오늘과 어제 사이 꽤 일이 술술 순탄하게 풀리고 있었다. 이렇듯 자신이 이제 기사단을 돌며 자연스럽게 소변을 받고 다니면 그중에 레일의 소변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난 처음부터 자네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니까! 하하하!”
제이온이 마치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라도 된 것처럼 그의 손을 잡고는 웃어 보였다. 그렇게 웃어 대던 제이온의 표정이 또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 한 명으로는 부족할 텐데……?”
그의 얼굴 표정이 어두워지는 이유는 역시, 한 명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뭐 한스와 함께 걷도록 하겠습니다.”
제이온의 또다시 시작된 걱정 어린 표정에 이번에도 알론이 도움을 주었다. 사실 애초에 한스와 함께 소변을 받으러 다닐 생각이었다.
‘뭐 한스에게는 미안하지만.’
알론이 기사단을 돌며 소변을 받으며 얼굴을 잔뜩 찡그릴 한스의 얼굴을 생각하고는 조금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알론이 곧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우고는 옆에서 자신의 손을 잡으며 또다시 천사를 만났다는 표정을 짓는 제이온을 보며 조금의 피곤함을 느꼈다.

“아아, 내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 건데∼.”
“내가 나중에 술집에서 거하게 한잔 살게.”
“흐흑, 괜히 나까지 끌어들이고. 예전의 알론이 그립구나∼.”
마치 지옥의 길을 걷는 듯 한스가 제1기사단의 단원들이 머물고 있는 방 쪽으로 향하며 눈물을 머금었다.
괜히 잠자다가 알론에게 끌려와 현재 소변을 받으러 가는 중이었다. 이곳에서의 소변 채취는 아주 조그마한 병에 담아 소변에 만드라고라라는 신비의 묘약을 이용해 만든 액체를 한 방울 똑 떨어뜨려서 병의 여부를 검사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종이 같은 것에 묻히고, 색의 변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병에 소변을 받는 것이었기 때문에 전 기사단의 소변을 모두 모은다면 꽤 무겁기도 하였다.
똑똑.
“소변 받으러 왔습니다.”
끼이익.
알론은 자신의 앞에 쭉 펼쳐진 제1기사단의 단원들이 머물고 있는 서른 개의 방을 보고 한숨을 한번 쉬고는 가장 먼저 자신의 옆에 있는 방의 문을 두들기고는 들어갔다.
그러자 책을 읽고 있던 만나고 싶지 않은 1인인 벨로운이 그를 반겨 주었다.
“알론 경. 이제는 소변도 받으러 다니는군? 크큭.”
벨로운이 그를 비웃듯 말했다. 하지만 알론은 그에 별 개의치 않았다. 자신은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비록 그것이 소변을 받는 일이기는 했지만, 엄연히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말이다.
“저기 올려놨으니, 가져가지.”
벨로운이 탁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시선을 그곳으로 돌리자 조금은 누런 액체가 손가락 하나만 한 크기의 병에 담겨있는 것이 보였고, 알론이 병에 자신이 챙겨 온 이름표가 적혀 있는 종이를 병에 붙이고는 상자에 담았다.
“수고하십시오.”
알론이 인사를 해 보이고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첫 번째 방을 들어왔던 알론이 이내, 방을 여러 군데를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소비해서야 겨우겨우 제1기사단의 소변이 담긴 병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자, 이제 2기사단이다.”
알론이 한스를 옆에 끼고는 제2기사단의 단원들이 있을 방을 눈으로 스캔했다. 이 방 중 분명 하나에는 레일이 있을 것이었다.
자신이 소변의 병을 받으면서 레일을 만날 수 있을지는, 반반의 확률이었지만 직접 그의 방에서 그를 보고 상태를 눈짐작으로 보는 것이 좋았다.
제2기사단의 단원들이 머물고 있는 방을 쓱 둘러본 알론이 곧 한스와 함께 또다시 소변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10개가 넘는 방을 돌았을까. 알론이 다른 방과 마찬가지로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알론의 눈으로 레일이 포착되었다.
“소변은 저기 있습니다.”
레일이 손으로 탁자 위를 가리켰다. 그에 알론이 탁자로 가는 듯하면서 빠르게 레일의 얼굴과 방 내부를 살폈고, 알론이 방의 바닥에 미세하게 흩어져 있는 하얀 가루를 발견하였다.
대충 방의 내부와 레일의 상태를 스캔한 알론이 곧 병을 가지고는 황급히 빠져나왔다.
“얼굴 상태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가루들…… 뭐 60%는 확정된 셈이군.”
어느새 알론의 레일이 약을 한다는 추정이 60%를 넘어섰다. 그만큼 방금 전 보았던 레일의 표정은 조금 창백했고, 뭔가에 지친 듯 보였다.
아마도 요 근래 약을 복용하지 못한 듯싶었다. 또한 바닥에 흩어져 있던 가루들이 하나의 증거를 만들어 주었기에 이제 알론은 사실상 거의 레일이 약을 한다고 판단을 마친 상태이다.
제2기사단에 이어 제3기사단 제4기사단의 모든 소변을 모은 알론이 곧 자신의 제2기사단원들의 소변이 모여 있는 상자를 뒤졌다.
그러고는 곧 레일의 소변이 담겨 있는 병을 꺼내 들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소변들을 황궁 내에 머물고 있는 신관들에게 넘겨주었다.
신관들에게 소변이 담긴 병을 한 아름 넘겨 주고 방으로 돌아온 알론이 곧 한스에게 부탁해 하룬을 불러오게 하였고, 곧 하룬이 그의 방으로 왔다.
“얼마 전 부탁했던 일. 오늘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 그 소변을 스캔해 달라는 부탁 말이군요?”
어느새 밤이 되고 막 자기 위해 몸을 뉘었던 하룬이 자신을 부른다는 한스의 말에 온 듯 부스스한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물질이나 독소 성분을 검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충분히 이곳에서 빠른 시간 내로 끝낼 수 있었다.
문제는 과연 하룬의 마법이 소변에도 영향을 미치느냐였고, 곧 하룬이 레일의 소변이 담긴 병을 막고 있는 병마개를 살짝 열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수건에 두 방울 정도 똑 떨어뜨렸고, 곧 그 손수건을 움켜쥐고 있는 주먹 사이에서 밝은 빛이 살짝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곧 그 밝은 빛이 사라지더니, 하룬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마약 성분이라…… 마약 성분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의 소변에서 안 좋은 이물질과 독소 성분이 발견되었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이 소변의 주인이 알론 경 말씀처럼 무슨 약을 하고 있는 건 맞는 사실 같습니다.”
“그렇군요.”
알론이 그의 말에 이제까지 계속하여 올라가던 레일의 마약복용 여부 확률을 100%로 확신시켰다.
“그럼 전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흐아암.”
하룬이 많이 피곤한 듯 하품을 쩍 하며 말했고, 알론이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곧 하룬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보다 마약을 했다는 사람이 누구야?”
“신경 쓰지 마. 넌 모르는 사람이야.”
한스가 물어오자 알론이 대충 얼버무렸다. 그의 반응에 한스가 입을 삐쭉 내밀고는 구시렁거리더니, 이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심증도 대충 끝났고, 증거도 있으니. 이제 마약의 소지 여부만 남은건가?”
알론은 바로 내일 레일의 방으로 들어가 방 수색을 할 생각이었다. 만약 그곳에서 마약이 발견되면 레일은 꼼짝없이 알론에게 끌려가야 하는 것이다.
또한 레일이 변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알론은 모든 증거 자료를 확보한 상태이고, 주위 사람들의 그의 심리 상태가 이상해졌다는 등의 정보도 얻은 상황.
이제는 레일을 잡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룬으로 하여금 레일이 마약을 한다는 사실에 확신을 얻은 알론이 향한 곳은, 레일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황궁에 위치한 제4기사단원들의 수련장이었다.
그가 수련장으로 향한 이유는, 혹여 레일과의 충돌을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알론은 뚜렷이 이곳에서 검을 잡아 보거나 한 적은 없었다. 비록 머릿속에 이곳의 검술이나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각인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머릿속에 있는 생각일 뿐. 오늘 하루는, 혹여 있을 충돌을 위해서 검을 잡아 보려는 것이었다.
“후우…… 처음이지……?”
그가 자신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의 손잡이 부분을 검으로 잡으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의 근육들이 심히 긴장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곳의 검은 날카롭고, 또 공격적이었다.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되레 상처를 입을 수도 있었다.
알론은 본래의 살았던 차원에서도 어렸을 적부터 검도를 익힌 바가 있었다. 또 검도뿐만이 아니었다. 특공무술이나, 혹은 태권도 같은 유용한 실전기라면 한 번쯤 접해 보았고, 또 꽤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비록 그런 그가, 조직 폭력배들에 의해 목숨을 잃기는 했지만, 사실 그가 자신의 몸을 지킬 능력 정도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조직 폭력배란 이들도 운동을 하고, 몸을 키우며 갖가지 무술들을 익히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렇게 맥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스르릉.
밤의 시원한 공기를 폐부 깊숙한 곳까지 마시던 알론이 조심스럽게 허리춤의 검을 빼 들었다.
청아한 소리와 함께 검이 뽑혀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