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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얼스 1권(11화)
6장. 슬란 마을(2)
‘그렇지 않아도 손해 봤는데 고기까지 넘겨주다니…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치사해 보이더라도 할 수 없군.’
“고기 값은 나중에 갚도록.”
“자식, 그냥 주면 덧나나. 알았다, 나중에 다 갚아 주마. 그런데 그 뼈는 토르한테 맡기면 좋은 장비로 제작해 줄 거야. 이 마을에서 제일 솜씨 좋은 대장장이지. 마을의 영웅이니까 아마 무료로 해 줄 걸?”
“장비? 무료? 흐흐… 어디야? 바로 가자.”
“저기 있는 무기점에 가면 돼. 같이 가 줄까?”
“아니, 그냥 혼자 갈게.”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털복숭이 말라크와 함께 싸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기에 거절했다.
“내가 가서 타이푼을 잡았다고 말해 줘야 믿을 텐데? 그래야 장비를 무료로 제작해 줄 테고.”
“당장 가도록 하지. 흠흠.”
무료를 위해 카일러는 태도를 180도 바꿨다.
“좋아, 지금 당장 가자.”
카일러와 말라크는 무기점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자 토르와는 다르게 짧은 수염을 기른 중년의 아저씨가 있었다.
“토르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하하, 오랜만이로구나, 말라크.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왔는가?”
“여기 이 친구 장비 제작 좀 부탁하려고 왔죠.”
말라크가 카일러를 초롱초롱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맞춤 제작을 하려는 것이군. 어떤 장비를 제작할지 말하고 장비에 첨가할 재료를 갖고 온 게 있으면 내게 건네주게나. 재료에 따라 성능이 더 좋아질 수도 있다네.”
“여기 타이푼의 뼈입니다.”
“타, 타이푼? 그 무식한 멧돼지 새끼를 말하는 것인가?”
‘타이푼’이라는 말에 토르는 어울리지 않게 토끼눈을 했다.
“그렇습니다만.”
“하, 하지만… 이 뼈를 구하려면 당연히 타이푼을 잡아야 하지 않나? 혹시 자네가 타이푼을 잡았다는 겐가?”
토르는 여전히 토끼눈을 하며 물었다.
“역시 믿지 못하시는군요. 그럴까 봐 여기 이 말라크가 증인으로 함께 오지 않았습니까.”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고기하고 뼈를 다뤄 봐서 아는데 그 뼈는 모양으로 보나 크기로 보나 타이푼이 분명하답니다.”
말라크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자네가 그렇다고 하니 믿겠네만… 도대체 그 무식하게 큰 멧돼지를 어떻게 잡았다는 말인가? 설마 혼자서?”
“아… 네, 그렇습니다.”
순식간에 마을의 영웅이 된 카일러는 슬슬 부담스러워졌다.
“자네 정말 대단하구만! 예전에 마을 남자들은 전부 모여서 타이푼을 잡으려 했지만 된통 당하기만 했는데…….”
토르는 그때의 처참함이 떠오르는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곧 말을 이어 갔다.
“마을의 큰 걱정거리를 덜어 주다니 자네는 이 슬란 마을의 영웅일세. 내 다른 일 다 제쳐 두고 자네를 위해 특별히 장비를 제작해 주겠네. 타이푼의 뼈라면 분명히 훌륭한 장비가 나올 걸세. 그리고 이런 재료를 다뤄 보는 것도 내게 영광일세!”
타이푼의 뼈를 보는 토르의 눈은 마치 불길에 휩싸인 듯 정열적이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내 만사 다 제쳐 두고 제작할 테니 하루면 완성될 것일세. 내일 다시 찾아오게나.”
“네, 그럼 그때 뵙죠.”
‘후후, 타이푼 덕분에 일이 술술 풀리는군.’
카일러는 당장에라도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지만 그러면 결과는 어떻게 될지 뻔히 알고 있었기에 참았다.
“카일러, 난 이제 가 볼게. 온 동네에 마을의 영웅이 탄생했다고 알려야 하니까, 흐흐.”
말라크는 카일러보다 더 들 떠 있는 듯했다.
“그래, 수고해.”
카일러는 말라크와 작별 인사를 하고는 로그아웃했다.
현실로 돌아온 카일러는 가장 먼저 시간부터 확인했다.
낮 5시.
퀘스트 하나 깨기 위해 하루 종일 게임만 한 것이다.
낮이기 때문에 잔다고 해도 밤에 잔 것만 못하므로 우선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물을 끓여 컵라면에 넣었다.
‘간단해서 좋군.’
요리는 전혀 할 줄 모르는 카일러가 끼니를 때울 수 있게 해 주는 고마운 음식이었다.
그리고 간단한 것뿐만 아니라 맛도 있어 박스 채 사다 놨다.
테스터로 선발된 뒤 매달 100만 원씩 받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도 요리의 ‘요‘자도 모르던 카일러다.
게다가 이곳에서 살 수 있는 음식 재료들은 이름만 알 수 있을 뿐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나저나 박현석 팀장에게 보낼 보고서를 준비해야겠군.’
테스터인 카일러는 1주일에 한 번씩 박현석의 이메일로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물론 아직 플레이한 지 1주일은 커녕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미리 보내기로 했다.
보고서 내용은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내든, 글로 써서 보내든 상관없었지만 카일러는 간단하게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내기로 했다.
캡슐은 모든 게임 플레이를 자동 저장하기 때문에 그 내용 중 일부분을 추출하여 보내기로 했다.
“멧돼지 잡는 장면을 보내야겠군.”
멧돼지를 잡는 장면은 뉴 얼스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다시 캡슐로 들어간 카일러는 이메일을 보냈다.
―카일러입니다. 이번 주 보고서 일찍 보냅니다. 아래 동영상 첨부했습니다.
“멧돼지 잡는 거 보고 너무 멋있어서 눈물 흘리는 거 아냐?”
비록 카일러가 승리했지만 멧돼지를 잡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렸던 모습은 마치 한 편의 슬픈 드라마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본인은 알지 못했다. 그저 멧돼지를 잡고 나서 있는 폼이란 폼은 다 잡던 모습만 기억하는 것 같았다.
“자, 그럼 일단 좀 씻어야겠다.”
아침 7시.
카일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우선 혜린이 알려 준 대로 간단한 요리를 해 끼니를 챙겨 먹고는 운동하러 밖에 나갔다.
운동을 위해 잘 조성된 공원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뉴 얼스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아무리 뇌와 연결을 해 하는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몸이 건강하지 못해 감기라도 걸리면 아무래도 악영향이 미칠 수도 있었다. 건강 관리를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오래달리기, 전속력으로 달리기, 푸샵, 윗몸 일으키기, 앉았다 일어나기 등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자 9시가 되었다.
카일러는 샤워를 한 뒤 캡슐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메일 확인.
보낸 메일함을 확인해 보니 수취 확인이 되어 있었다.
메일이 무사히 잘 도착한 듯했다.
‘자, 그럼. 접속해 볼까나.’
“접속.”
“접속합니다.”
그러자 환한 빛이 주변을 모두 감싸더니 잠시 뒤 어두운 공간에 한 곳만 밝게 조명된 곳에 카일러의 캐릭터가 보였다.
“접속.”
“뉴 얼스로 접속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다시 한 번 환한 빛이 주변을 모두 감쌌고 다시 빛이 사라지며 여관 방 안이 보였다.
카일러는 여관에서 나와 곧장 토르에게 달려갔다.
토르가 제작해 주기로 한 장비를 한시라도 빨리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토르 아저씨!”
“어∼ 카일러로구나. 여기 네 장비 찾으러 왔지?”
토르가 책상 위에 뼈로 이루어진 견갑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견갑?”
“그래. 성능 확인해 보면 아마 입이 쫙 벌어질 거다, 하하!”
토르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카일러가 그 견갑을 집어 들자 아이템 정보가 나왔다.
타이푼 견갑
타입:견갑
내구도:15 무게:5 레벨 제한:5
타이푼의 뼈를 이용하여 만든 견갑으로 너무나 단단하여 웬만한 검으로는 뚫을 수도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이 장비를 착용하면 어깨 방어에 상당히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견갑을 이용한 ‘특수 스킬’ 시전이 가능합니다.
*특수 스킬:밀치기
강력한 어깨치기로 타깃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힙니다.
타깃은 5%의 데미지를 받고 뒤로 밀려나며 뒤로 밀려나는 동안 40%의 확률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직 상태에 빠집니다.
스킬 시전 소모 마나:20
“스킬?”
“그래, 녀석아. 특수 스킬이 달린 장비가 얼마나 유용한지 알지?”
“제대로 된 공격 스킬 하나 없었는데 잘됐군요.”
카일러는 아직 전직한 상태가 아니라 특별한 공격 스킬이 없는 상태였다.
그나마 갖고 있는 스킬은 삽질 스킬로 직접적인 공격 스킬이 아니라 막상 전투 중일 때는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제대로 된 공격 스킬이 생겼다. 잘만 활용하면 사냥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감사합니다, 토르 아저씨.”
“나야말로 고맙지. 덕분에 타이푼의 뼈를 다 만져 보고.”
“그런데 이 마을 근처에 멧돼지보다 강한 몬스터가 뭐가 있죠?
“저쪽 숲이 우거지고 근처에 폭포가 있는 곳에 미니 슬라임이 있지. 보기에는 귀여워 보이지만 상대하기 깐깐한 녀석일세.”
“특별한 약점이라도 있습니까?”
“그 녀석을 잘 보면 안에 둥그런 핵이 있을 걸세. 그것을 공격하면 녀석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걸세.”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마을의 영웅.”
토르와 작별 인사를 한 카일러는 무기점을 나와 토르가 말한 곳을 찾았다.
주변을 둘러보자 숲이 가장 우거지고 근처에 폭포가 있는 곳은 단 한 군데였다. 카일러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길을 잘못 찾았나?”
촤악. 촤악.
그런데 그때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뒤돌아 봤다.
그곳에 미니 슬라임이 있었다.
방금 그 이상한 소리는 미니 슬라임이 이동하면서 난 소리였다.
“귀엽게 생겼는데?”
초롱초롱거리는 큰 눈망울에 둥근 몸체를 가진 미니 슬라임을 보자 왜 저 녀석이 멧돼지보다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방심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미니 슬라임의 머리 쪽에 핵이 보였다.
‘좋아, 저기다.’
카일러는 빠른 움직임으로 슬라임의 핵이 있는 부분에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런데 검이 핵에 닿기 전에 슬라임의 물컹물컹한 살에 막혀 멈췄다.
“뭐, 뭐야?”
그런데 그 순간 검이 약간씩 부식했다.
“아, 안 돼! 내 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