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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법도 법이다 1권(12화)
제5장 레카 아카데미(2)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온 카일이 곧바로 향한 곳은 그가 끔찍이 싫어하는 알론의 방이었다. 현재 시각은 수련도 끝나고, 하루의 일과가 끝났을 즈음의 시간이었기 때문에 방에 있을 것이었다.
똑똑.
“들어오시죠.”
문을 두들기고, 약 2초 정도가 지난 후에야 대답이 들려왔다.
끼이익.
“아. 카일 경.”
카일 본인이 알론을 끔찍이 싫어하는 것에 반면, 알론은 그가 오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를 맞이해 주었다. 사실 그로서는 카일을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알론이 알고 있는 그는 법을 준수하고, 침착하며 또 실력 또한 좋은 사람이라고 들었다. 왠지 자신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이였기에 알론으로서는 그가 꽤 친근했다.
‘하아, 귀찮군.’
그에 반면 카일은 그의 방 자체에 있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고, 곧 알론이 권하는 의자에 앉았다.
“그보다 무슨 일로 오신 거죠? 바쁘실 텐데.”
“우리 둘에게 임무가 하나 생겼습니다.”
“임무요? 무슨 임무인데 저희 둘까지 필요한 거죠?”
임무라는 이야기에 그가 반응을 보였다. 테스트 이후 2주 정도 보좌관에 대해서는 잊고 생활하고 있었다.
헌데, 갑작스럽게 불쑥 찾아와 임무를 둘이서 같이 해야 한다니?
더군다나 카일도 알론과 마찬가지로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실력자였다. 그런 그와 함께 임무라면 꽤 큰일일 듯싶었다.
“레카 아카데미의 일입니다.”
“레카 아카데미요? 고작 아카데미 때문에 저희 둘이 가는 겁니까?”
아카데미라는 말에 알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로 그럴 것이 알론은 레카 아카데미에 대한 소문을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레카 아카데미는 만만히 볼 곳이 아닙니다. 그곳에 가면…… 하아…… 아닙니다. 그때 가면 알게 되실 겁니다.”
“그렇다면 언제 출발하는 거죠?”
카일이 말을 이으려다 이내 지금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여기고 한숨을 쉬었고, 그에 알론이 말하기 꺼려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출발 날짜를 물었다.
“출발은 이틀 후로 추정됩니다. 또, 아마 알론 경이나 제가 자리를 비우는 부분에 대해서는 커스 공작님께서 알아서 해결해 주실 겁니다.”
“이틀 후라…… 알겠습니다. 준비하도록 하죠.”
준비한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딱히 준비할 것은 없었다. 단지 카일과 있는 것이 조금 서먹서먹하기 때문에 그의 말 이후에 입을 열지 않는다면 어색함이 감돌 것 같았기에 한 말이었다. 그리고 곧 카일이 몸을 일으키고는 그의 방을 빠져나갔다.
“레카 아카데미라…… 무슨 일이지?”
홀로 방에 남게 된 알론은 그가 나간 자리를 주시하며 레카 아카데미란 곳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다.

이틀 후, 알론이 레카 아카데미로 학생들의 교육 만족도와 아카데미 시설 확인을 위해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스가 그와 함께 마차가 준비 중인 성문 쪽으로 발걸음을 이동했다.
“아무튼 그 레카 아카데미의 소문이 좋지 않으니, 또 괜히 나서지 말고. 거기에는 자존심 높은 아무것도 모르는 귀족 꼬마들이 많으니까.”
“생각해 보도록 하지.”
“이익! 정말! 생각해 보는 게 아니라 좀 참으라니까! 넌 그냥 그곳에 가서 학생들이 수업하는 모습이나 보고 오면 되는 거라고!”
“아아. 잔소리 좀 그만해라.”
알론이 그가 목청을 높여 말하자 시끄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귀를 후볐고, 그의 행동에 한스가 한숨을 쉬며 마차로 올라서는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끼이익.
“먼저 와 계셨군요.”
알론이 마차 문을 열자 미리 타고 있었던 듯 손으로 턱을 짚고 있던 카일이 있었다. 알론이 먼저 말을 건네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힐끗하고 알론을 본 그가 다시 마차에 두 개 존재하는 창문 중 자신과 가까운 왼쪽 창문을 통해 경치를 내다봤다.
그의 쌀쌀맞은 행동에 알론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곧 자신도 자신이 대충 챙겨 온 짐을 내려놓고는 창문을 통해 경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출발합니다!”
히히힝!
곧 마부의 외침 소리와 함께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곧 마차가 덜컹거리며 출발했다. 그렇게 마차는 오랜 시간 동안 내달리기 시작했고, 6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레카 아카데미가 위치해 있는 아르온 영지에 도착했다.
턱.
“흐으읍하아아.”
마차에서 내린 알론이 곧 기지개를 찢어져라 폈다. 6시간 동안 딱딱한 마차의 의자에 계속 앉아 있기만 하였더니, 몸의 뻐근함이 말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몸을 가볍게 풀어 준 그가 곧 영지를 눈대중으로 대충 둘러봤다. 아르온 영지는 꽤 많은 귀족들이 살고 있는 영지답게, 황도에 비해 떨어지지만 많은 발전을 이룬 곳이었다.
또한 간혹 보이는 허리춤에 목검이나 혹은 책을 끼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는데, 알론은 단숨에 그들이 레카 아카데미의 학생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 가죠.”
아르온 영지를 구경하는 알론에 비해 이곳에 이미 몇 번 와 봤던 적이 있는 카일은 발걸음을 재촉했고, 그렇게 그 둘이 레카 아카데미로 향하기 시작했다.
레카 아카데미는 보통의 아카데미보다 그 규모가 방대한 듯 아직 아카데미까지는 많은 거리가 남았음에도 아카데미의 건물이 보일 정도였다.
30분 정도를 걸어오자, 아카데미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의 정문의 위에는 ‘레카 아카데미’라고 푸른 글씨가 씌여 있었으며 정문의 옆에는 아카데미가 방출해 낸 훌륭한 이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오셨습니까.”
이미 황궁 측에서 사람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들었던 아카데미의 관계자가 기다리고 있었던 듯 그들의 옷차림새를 보고는 황급히 달려왔다.
“전 이곳에서 방어 검술을 가르치고 있는 카렌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카렌 경.”
“하하, 경이라…… 감사합니다.”
카일이 자연스럽게 ‘경’ 자를 붙이자 카렌의 얼굴로 활짝 웃음이 피었다. 사실 카일이 카렌에게 ‘경’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못 되었다.
카렌은 적어도 이 이름 높은 레카 아카데미의 교사 중 한 명이었기에 소드 익스퍼트 중급 정도는 되어 보였다.
“이제 들어가 보죠.”
“네.”
“그리고 황궁 측에서 들은 바가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이곳에서 약 1주일 정도 머무를 생각입니다.”
“1주일이요?”
“네. 괜찮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1주일이란 말에 미간을 찌푸렸던 카렌이 곧 물어오는 그로 인해 다시 얼굴 표정을 풀며 대답했다. 사실상 아카데미 측에서는 황궁 측 관계자들이 아카데미에 오랫동안 머무른다면 좋을 것이 없었다.
그 이유는 오랜 시간 그들이 머무를수록 일부러 짜 맞춰 놓은 아카데미 상황이 서서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분명 레카 아카데미도, 황궁 측에서 사람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청소를 하거나, 혹은 미리 수업 내용을 엄선하여 학생들에게 말해 놨을 것이었다.
때문에 일주일이란 시간은 그들이 준비해 놓은 것이 충분히 동이 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왁자지껄.
화려한 장식이 되어 있는 외부에서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온 알론과 카일이 꽤 요란스러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점심시간인 듯 학생들이 분주히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두 분께서도 식사하러 가시죠.”
이미 아카데미 측에서 준비해 놓은 화려한 식사가 있는 듯 카렌이 눈짓을 했고, 곧 알론과 카일이 주위의 학생들을 관찰하며 그를 따라 움직였다.
카렌이 안내한 곳이 교사들이 주로 식사를 하는 곳이었던 듯 열 명 정도 되어 보이는 교사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가, 알론과 카일의 등장에 몸을 일으켜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이는 턱과 코에 휜 수염을 길게 기른 이곳의 교장 카르 콘 라데스였다.
카르 콘 라데스. 그는 한때, 제국에서 알아주는, 어찌 보면 지금의 커스 공작과 같은 소드 마스터였던 이로 지금은 여든이 넘은 나이로 인해 이곳에서 교장을 하며 쉬고 있는 사람이었다.
“커스는 잘 지내고 있는지 묻고 싶군요.”
알론과 카일이 자리에 앉자 카르 교장이 자연스럽게 커스 공작에 대해 물었다. 그의 말투에서 커스 공작과 카르 교장이 꽤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네. 공작님께서는 잘 지내고 계십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아무쪼록 차린 게 없지만 많이 드시지요.”
그렇게 식사가 시작되었다. 카르는 차린 게 없다고 말하였지만 역시나, 웬만한 귀족들도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호화스러운 음식들이 주를 이루었고, 교사들의 손놀림이 빠르게 움직였다.
“참, 그러고 보니. 귀한 술이 한 병 있는데, 한잔 하시겠습니까?”
카르 교장이 아무래도 좋은 점수를 따고 싶은 듯 술을 권했다. 하지만 업무 중에 술은 금지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었기에 알론이 거절하기 위해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카일이 그보다 한발 빠르게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는 현재 레카 아카데미에서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술은 할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쩝, 그렇군요.”
카일의 태도에 카르가 입맛을 다시었다. 카르는 단번에 카일이 꽤 수준 높은 기사단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실 보통 이렇듯 아카데미를 둘러보거나 하는 이들은 대부분 황궁 제3기사단에서 맡아 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술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카일의 말투에서 묻어난 단호함과 결의는 그가 수준 높은 기사임을 보여 주었다.
식사가 끝이 나고, 마법을 이용해 만든 마법 스피커가 요란하게 울리며 종이 쳤다. 종이 치자, 각각 교실로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갔고, 카렌은 둘을 데리고 수업 준비를 끝내 놓은, 이미 대충 각본을 짜 놓은 반으로 들어갔다.
“차렷! 경례!”
“카네시스!”
교실의 맨 끝에 그 둘과 카렌이 서고, 곧이어 앞문이 열리자 식사를 함께하였던 교사 중 하렐이라는 여성 교사가 들어왔다.
그녀가 레이피어를 들고 들어오자 반의 실장으로 보이는 소년이 몸을 일으켜 인사를 했고, 그 뒤를 이어 학생들이 우렁차게 카네시스 제국에서의 기사로서의 예의를 취하는 행동을 보였다.
“오늘은 레이피어를 더욱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에 대해 배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인 그녀가 곧 자신이 차고 온 레이피어를 허리춤에서 뽑아 들며 가볍게 시범을 보여 주며, 레이피어 사용법에 대해 설명하거나 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설명할 때마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학생들이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들어오면 그녀는 본래 준비되어 있던 답변을 하였고, 그렇게 시간이 차츰 흘렀다.
‘지루하군.’
알론이 속으로 지루함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학생들이 아니라, 본인이 수업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지루함에 그가 허우적거릴 때, 닫혀진 문의 창문 사이로 누군가 스윽 하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지금은 수업 시간일 텐데?”
알론이 지나간 학생에 의해 의문을 띠었다. 지금은 수업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장학사들인 자신들이 왔으니, 학생들이라면 교사들이 무서워 교실에 틀어박혀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방금 자신이 스치듯 본 갈색 머리의 조각 같은 외모를 지닌 소년은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 간 것이다.
“잠시 아카데미 좀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시죠.”
소년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알론이 옆의 카렌에게 말했고, 카렌은 어차피 카일이나 알론 둘 중 누군가는 아카데미를 둘러봐야 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